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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잠이 깼으면 빨리빨리 일어나!"
"먹지 마! 대신 밥 다 안 먹을 거면 학교도 가지 마!"
"싸우지 마! 확 다 뺏어버린다 (갖다 버린다)!"

아침에 자주 등장하는 목소리다.

쌍둥이 남매를 키우는 워킹맘이라 그렇게 드세게 육아하는 거라고 스스로를 위로하곤 했다. 회사의 동료들은 대개 우아했고 직장을 다니지 않는 아이 친구의 엄마들을 동네에서 우연히 만나도 늘 나보다 괜찮은 엄마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것이 내가 본 그 사람의 가장 우아한 순간이라는 걸 깨닫기까지 좀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말이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 특히 워킹맘의 경우 직장에서의 우아한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 집에서는 엄청나게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백조
 백조
ⓒ Tama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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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직장인은 대개 출근할 때 복장을 점검한다. 집에서 입는 옷보다는 깔끔한 외모로 변신을 하는 것이다. 출근길에 음악, 팟캐스트 등을 듣거나 책을 읽을 수도 있고, 직장에서는 천천히 커피 한 잔을 음미할 수도 있으며, 어른 사람들과 대개는 이성적인 대화를 통해 생산적인 일을 한다. 직장인 워킹맘 역시 그러하다. 다만 직장에서 보여주는 변신은 물 위에 떠있는 우아한 백조와 다를 바 없다는 게 차이점일 것이다. 백조가 물 위의 우아한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 물 아래서 끊임없이 발장구를 치고 있다는 것은 익히 아는 사실일 터.

아이가 나이를 먹을수록 스스로 챙길 수 있는 일의 가짓수가 늘어나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한두 살 나이를 먹는다고 해도 엄마가 챙겨야 할 일이 획기적으로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얼마 전에 깨달았다. 돌 이전의 아이를 보고 아이가 말문만 트이면, 어린이집을 다니는 아이를 보고 아이가 기저귀만 떼면, 유치원을 다니는 아이를 보고 아이가 초등학교만 들어가면, 초등학교에 입학하니 1학년만 마치면!이라고 늘 미래를 기대하며 육아의 고된 시간을 버텨냈던 나는 아이가 초등 2학년이 되면서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을 맛보았다.

그러나 그런 기쁨도 잠시. 초등학교 2학년이 된 쌍둥이 남매는 1학년과 다를 바 없는 '아이'에 불과했으며 아침에 옷 입히고, 씻기고 밥 먹여서, 학교에 보내는 일은 전쟁, 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온 아이들과 잠자기까지의 시간은 여전히 집을 제2의 일터로 여기기에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는 일이었다. 일각을 다투는 아침 시간에 아이들을 챙기랴 엄마의 출근을 준비하랴 현관문은 잠갔는지, 가스불은 껐는지 혼비백산한 경우가 많아 가스 배관에는 자동 잠금 타이머를, 현관은 도어록을 설치하기에 이르렀다.

지하철워킹맘
 지하철워킹맘
ⓒ eutah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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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장 혹은 급한 마감 업무가 있을 때에는 내 한 몸 챙기기도 바쁜데 아이들을 챙겨야 하는 일은 줄어들지 않는다. 짧은 시간밖에 아이들과 함께 있지 못하니까 그 시간만큼이라도 아이들에게 질적 애정을 주겠노라 결심해보지만 아침 시간에 아이들에게 잔소리를 하지 않기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 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리라.

취학 전의 아기라면 엄마가 직접 해주기라도 할 테지만 학교 다니는 아이들을 일일이 앉혀놓고 옷 입히고 숟가락으로 밥을 떠먹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꾹꾹 눌러놨던 잔소리는 고함으로 터져 나올 수밖에 없다. 친정부모님이 육아를 도와주셔서 워킹맘으로는 최고의 조건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며칠간 아이들의 등하교를 챙겨보니 이렇게 아이들에게 잔소리를 할 바에는 차라리 회사에 출근해있는 것이 낫겠다는 어처구니없는 생각도 든다.

집에서는 아이들에게 빨리하라고 재촉하며 짜증을 내고 밖에 나가서는 최대한 평정심을 유지하며 좋은 엄마, 성실한 직장인으로 변신한다. 집에서는 헝클어진 머리, 늘어진 잠옷으로 겅중겅중 뛰어다니다가 회사에 갈 때에는 정돈된 머리와 화장한 얼굴, 정장까지 챙겨 입는 워킹맘은 물 아래에서 정신없이 발장구를 치지만 물 위에서만은 우아한, 한 마리의 백조와 다를 바 없는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네이버 포스트, 블로그(http://post.naver.com/nyyii)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워킹맘, #70점엄마, #워킹맘육아, #쌍둥이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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