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이 기사는 '오마이베스트' 글입니다. 오마이베스트란 '실시간글' 중 독자들의 추천을 많이 받은 글입니다.

☞ 실시간글 페이지 보기(http://omn.kr/realtime) [편집자말]
교장 선생님을 놀라게 한 아이들

이번에 학교에 새로운 아이가 전학을 왔습니다. 장애가 있는 6학년 아이입니다. 올해에만 장애 학생 두 명이 전학을 왔습니다.

서울에 있는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갔는데 그곳 학부모들이 반발했다는 씁쓸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가평에 있는 학교들 중 수소문 끝에 우리 OO초등학교로 오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아이가 전학 온 첫날 교장 선생님이 깜짝 놀라셨다고 합니다. OO초 아이들이 이 아이를 너무나 반갑게 맞아주더라는 겁니다. 6학년 친구들이 서로 나서서 휠체어를 밀어주고 학교 구경을 시켜주었대요. 그런데 그것이 어떤 의무감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너무나 자연스러운 행동이었다는 것입니다.

학교전경. OO초등학교는 전교생 60여 명의 이쁘고 아담한 학교다
 학교전경. OO초등학교는 전교생 60여 명의 이쁘고 아담한 학교다
ⓒ 하유진

관련사진보기


교장 선생님께서 상담을 했는데 어머님 말씀으로는 학교 다니면서 단 한 번도 웃은 적이 없던 아이가 우리 학교에 와서 처음으로 웃었다고 합니다. 아이도 교장선생님과 상담하면서 친구들이 너무 좋다고 했답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코끝이 시큰했습니다. 그 아이가 그간 겪었을 고통, 마음의 상처가 느껴졌거든요. 우리 아이도 당했던 일이니까요. 부모님은 또 얼마나 괴로웠을까요.



편견 없는 아이들, 따돌림이란 없다

OO초등학교에는 다양한 아이들이 있습니다. 시골 토박이 아이, 도시에서 전학 온 아이, 다문화 가정 아이, 장애아, 외국에서 온 아이도 어울려 지내고 있습니다. 저희 아이는 서울 학교에서 적응을 못해 전학 온 경우이고요.

신기한 것은 이 아이들이 자신과 다르다고 해서 편견을 갖지 않고 정말 잘 어울려 지낸다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아프리카계 다문화가정 아이가 전학을 왔습니다. 동남아시아계 아이들은 많이 보았고 우리와 외모도 비슷하지만 아프리카계 아이를 본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교실에 아이들과 함께 앉아있는데 저는 좀 어색하게 느껴진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가 보더라고요. 그저께 운동회 때 학교에 갔더니 저희 아이가 그 아이랑 다정하게 손을 잡고 다니고 있더군요.

중간놀이 시간에 아이들이 달팽이 놀이를 하고 있는 아이들
 중간놀이 시간에 아이들이 달팽이 놀이를 하고 있는 아이들
ⓒ 하유진

관련사진보기


이렇게 되기까지는 학교 측의 노력이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입니다. 이번에 장애아가 전학 온다는 것이 결정되자 특수반 선생님이 각 교실을 돌면서 미리 아이들을 교육했다고 합니다. 교육을 통해 아이들은 그 친구의 상황과 배려해주어야 할 부분을 충분히 인지한 것입니다.



저희 아이가 서울에서 다녔던 학교에 면역력이 약해 많이 아픈 아이가 전학을 온 일이 있었습니다. 부모는 학교 측에 아이의 상황을 친구들에게 인지시켜 주고 이런 점을 도와주었으면 고맙겠다고 요청을 했는데 전혀 아이들에게 전달되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은 그 아이를 도와주기는커녕 작고 왜소하다고 괴롭히는 일까지 빈번히 있었습니다. 그 아이와 비슷한 체격이었던 저희 아이는 미리부터 괴롭힘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담임선생님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고 그 아이도 저희 아이도 결국은 학교를 떠나게 되었지요.



치유의 공간, 작은 시골학교

저희 아이는 OO초등학교에 전학 온 지 1년이 조금 넘었습니다. 지금은 예전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왜소한 체격에 매사에 예민했던 아이는 후덕한 체격을 갖게 되었고 담임선생님 말씀에 의하면 '유머감각이 뛰어나 분위기를 주도하고 친구들 사이에 인기가 많은' 아이가 되었습니다. 틱장애도 아주 많이 완화되었습니다. 지인들이 보면 깜짝 놀랍니다. "얘가 걔 맞냐?"고.

얼마 전 열린 운동회에서 달리기 1등한 장남. 작년까지는 체력이 약해서 늘 꼴찌를 면하지 못했었다.
 얼마 전 열린 운동회에서 달리기 1등한 장남. 작년까지는 체력이 약해서 늘 꼴찌를 면하지 못했었다.
ⓒ 하유진

관련사진보기


전교생 60명 남짓 되는 작은 시골학교. 수가 적다 보니 선생님도 아이들도 학부모들도 모두 가족처럼 지냅니다. 공동체가 살아있지요. 서로 배려하고 아끼는 것이 습성화되어 있습니다.

아이를 시골학교에 보내면서 저도 많이 건강해졌습니다. 마음이 편해지니까 자연히 몸도 건강해진 것이겠지요. 모두 건강하고 행복한 학교생활을 하고 있기에 서울에서 내내 등교거부를 하던 아이와의 지긋지긋한 실랑이도 지금은 여유 있게 돌아볼 수 있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덧붙이는 글 | 첫째아이 초등 2학년에 음성틱장애가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다음해 저는 유방암 수술을 받았지요. 이 사건을 계기로 우리 가족은 서울에서 경기도 가평으로 삶의 터전을 옮기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은 마을에 있는 시골학교로 전학을 했구요. 1년이 조금 지난 지금 아이는 놀랍게 변했고 저도 건강해졌습니다. 이 신기하고 행복한 경험을 많은 이들과 나누고 싶어 시골학교 일기를 연재해보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태그:#시골학교, #작은학교, #마을공동체, #장애아
댓글15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3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