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디스토리


공장에서 일하며 평범한 나날을 보내던 일록(백승환 분)은 친구 예건(이웅빈 분)이 남성 4중창 대회에 나가자고 꼬드기자 가슴속 한 구석에서 잠자던 열정이 불타오른다. 일록이 붙인 모집 공고를 보고 온 생선가게에서 일하는 대용(신민재 분)과 노점상에서 도넛을 파는 준세(김충길 분)가 합류하면서 남성 4중창 그룹 '델타 보이즈'는 그럴싸한 외형을 갖춘다. 그러나 구체적인 연습 방법은 고사하고 어떤 대책도 없는 델타 보이즈의 앞날을 험난하기만 하다. 그들과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을까?

영화 <델타 보이즈>는 2016년 전주국제영화제가 낳은 화제작 중 하나다. 똘끼와 패기로 뭉친 <델타 보이즈>에 영화제는 한국경쟁부문 대상과 CGV 아트하우스 창작지원 상을 주며 격려했다. <와이키키 브라더스><산책><브라보 마이 라이프><즐거운 인생> 등으로 대표되는 한국 음악 영화의 계보를 잇는 <델타 보이즈>는 어떻게 시작했을까?

연출을 맡은 고봉수 감독은 영화 전문매체 <씨네21>과 나눈 인터뷰에서 "배우들과 막연하게 장편 영화를 찍자고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유튜브에서 '델타 리듬 보이즈'란 미국 흑인 그룹의 영상을 보게 되었다."며 "그들이 흑인 영가 '예리코의 전투(Joshua fit the battle of Jericho)'를 부르는 영상이었는데, 그때 남성 4중창 이야기가 떠올랐다."라고 설명한다. <델타 보이즈>는 그렇게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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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타 보이즈>는 꿈을 찬양하는 노래이나 한편으론 현실을 아프게 꼬집는다. 영화 속에 나오는 남성 4중창 경연 대회 포스터엔 "남성들이여, 위대한 꿈을 향해 노래하자"란 문구가 적혀있다. 이젠 잃어버렸던, 또는 예전엔 몰랐던 꿈을 향해 달려가는 델타 보이즈. 하지만 주위에선 "정신 좀 차려라"란 차가운 반응만 쏟아진다. 다른 사람들이 눈엔 이들은 '병신' 같을 뿐이다. 일록이 거울을 보며 자기 뺨을 때리는 장면은 꿈과 현실 사이에서 방황하는 자신을 향한 분노이고, 그가 예건에게 내뱉는 "넌 병신이야"란 대사는 자신에게 던지는 욕지거리인 셈이다.

오합지졸이 모이고, 연습하는 과정에서 갈등을 빚고, 와해 직전에 화해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서사는 스포츠, 성장, 음악 영화에서 자주 활용되었다. 익숙한 틀을 따르던 <델타 보이즈>는 어느새 다른 방향으로 이야기가 흘러간다. 그리고 "왜 노래가 그렇게 하고 싶은 건가?"란 질문에 대해 자신만의 답안을 찾는다.

<델타 보이즈>는 그룹 '델타 리듬 보이즈', 음악 장르 '델타 블루스'에 빚진 제목이다. 또한, '델타'는 그리스 문자의 넷째 자모를 의미한다. 4는 영화에서 네 명의 멤버로 나타난다. 극 중에서 주위 사람들은 델타 보이즈를 비아냥대며 "좀만 있으면 40이야"라고 말한다. 4를 품은 델타 보이즈는 꿈과 열정을 상실하거나 거세당한 40대란 의미를 담는다.

영화엔 대용이 노래하고 싶은 이유를 읊조리는 대목이 나온다(고봉수 감독은 신민재 배우에게 독백 장면의 대사를 맡겼다고 한다. 무슨 이야기를 할까 고민하던 신민재 배우는 어린 시절에 했던 생각을 대사로 풀었다고 밝혔다). 그는 내 생각이 옳았다는 믿음, 함께 하는 이들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 되었음을 고백한다.

그 순간 델타 보이즈의 앞을 막고 있던 현실의 장벽은 그들이 부르는 노래 '예리코의 전투'의 성벽(구약성서 여호수아의 이야기)처럼 무너져 내린다. 상을 받는 것은 더는 중요치 않다. 영화 속 일록의 모습처럼 배팅 머신 앞에서 당당히 방망이를 휘두를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는 것이 중요하다. 홈런을 치든, 안타를 때리든, 헛스윙하던 나의 삶의 주인공은 바로 나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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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타 보이즈>는 독학으로 영화를 공부하고 10년 이상 200여 편이 넘는 습작 영화를 만들며 내공을 쌓던 고봉수 감독의 첫 장편 데뷔작이다. 두 번째 장편 영화 <튼튼이의 모험>은 고봉수와 '델타 보이즈' 주역들이 다시 뭉친 작품이다. <델타 보이즈>에선 가상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적 느낌으로 구축했었다면 <튼튼이의 모험>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그다음 영화로는 다양한 장르가 뒤섞인 멜로물을 준비 중이라고 한다.

고봉수 감독은 <씨네21>과 인터뷰에서 "결과야 어찌 됐든 상관없다. 우리가 좋으면 가는 거다"라고 말했다. <델타 보이즈> 역시 남들이 뭐라 하건 자신들의 방식으로 부른 노래다. 노래는 당찬 기운도 느껴지나 다소 엉성한 느낌도 든다. 매끄럽지 않은 구석도 엿보인다. 영화는 그런 것들을 모아 진심으로, 최선을 다해 노래한다. 그래서 마음에 와닿는다. 이들의 노래가 더 멀리, 더욱 힘차게 울렸으면 하는 마음이다.

델타 보이즈 고봉수 백승환 이웅빈 신민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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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 24프레임의 마음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남자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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