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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골할머니와 강아지 태어난지 2개월 여 된 강아지, 할머니는 "끼고 자면 너무 크겠죠?"하신다. ⓒ 김민수
어머니가 그리우면 달려가곤 하는 물골, 물골에 가면 꼭 물골 할머니도 만나 근황을 묻고 용돈도 조금 쥐여 드리고, 간식도 넣어드리곤 한다. 어머니에게 못하는 것을 해드림으로 스스로 위안을 받는 것이다.

지난주 월요일(5월 22일)에는 생존해 계신 아버지께 점심 대접을 하고 나니 홀로 외로이 선산에 묻혀계신 어머니가 보고 싶었다. 어머니 산소정리를 하고 물골 할머니를 뵈러 내려왔더니 두 달이나 되었음 직한 작은 백구 한마리가 반갑게 맞이한다.

"아유, 예뻐라!"

절로 감탄사가 나올 정도로 예쁜 강아지, 쓰다듬어주니 손이며 얼굴이며 핥아 준다고 야단법석이다.
멍멍이의 이름 "이름이 뭐예요?" 묻자, "뭐, 개이름까지 지어줘요?"하신다. 그래서 '뽀순이'라고 지어줬다. ⓒ 김민수
"할머니, 이름은 있어요?"
"뭐, 개한테까지 이름을 붙여줘요. 그냥 키우면 되지."
"음, 여자니까 뽀순이라고 지어줄까요?"

우리 집 애완견 '뽀뽀'(요크셔 수놈)의 별칭이 '뽀돌이'인데, 암놈이니 '뽀순이'도 좋을 듯하다.

"뭐가 되었든지요."

할머니는 개 이름 지어주는 일에는 관심이 없으신 듯하다.

"근데 아직 어려서 이놈을 데리고 자려고 해도 버릇 나빠질까 봐 방에 들이질 못하겠어요."
"금방 클 텐데, 집에서는 못 키우실 것 같은데요? 부엌에서 키우세요."

도시에서 애완견 키우듯 하시지는 못하실 터인데 위생상의 문제도 있을 것 같아서 집안에 들이는 것은 반대를 했다.
물골 마냥 할머니가 좋단다. 순하디 순한 순동이도 점차 물골에 적용할 것이다. ⓒ 김민수
"그래도, 요즘에 강아지 때문에 웃어요."
"예, 새끼들이 다 귀엽잖아요. 아무튼, 할머니 웃음꽃이 피시니까 좋네요."

물골 할머니는 홀로 사시는 것을 좋아하시는 분은 아니시다. '외로움' 같은 단어는 그닥 어울리는 단어도 아니다. 사람을 좋아하시고, 동물을 좋아하신다. 그러나 또한 오랜 산골생활 때문인지 오랫동안 어울리는 것은 피곤하시단다.

강아지는 금방 커버릴 것이고, 앳된 모습이 사라지면 곧 바깥 개집에 묶여서 물골 할머니 집 지킴이가 될 것이다. 이제 곧 여름이 다가오니 겨울이 오기 전에 제법 몸집은 커질 터이고, 추운 겨울을 엉성한 개집에서 모포 같은 것 한 장으로 날 것이다. 뽀순이의 앞날을 그리며 괜스레 슬퍼진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떵 밟는 일이 거반 없이 살아가는 우리 집 '뽀뽀'보다는 훨씬 더 '개 다운 삶'을 살아갈 것은 분명한 일이다.
다래꽃 함박눈이 내린듯 다래꽃이 피어났다. 이른 봄 다래순도 맛난 봄나물이었지만, 저 화사한 꽃들 가운데 맛난 다래를 맺는 것들도 있을 터이다. ⓒ 김민수
계절은 시나브로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고 있다.

이팝나무 꽃이 지고 보리가 익어가는 계절이다. 그동안 보릿고개에 닿기 전에 조팝나무, 이팝나무의 꽃을 보면서 배고픔을 달랬는데, 이젠 보리밥이라도 배불리 먹을 수 있는 계절이 되었다.

그 보릿고개를 넘어가는 길에 화들짝 피어나는 꽃이 하얀 다래꽃이며, 먼 산에 하얀 눈 내리듯 피어나는 산딸나무, 주먹밥을 닮은 백당나무는 어쩌면 그리도 하얄까 싶다.
옥수수 가지런하게 심겨진 옥수수, 여름휴가철이 시작될 무렵이면 실한 옥수수가 열릴 것이다. ⓒ 김민수
할머니는 올해 농사를 거의 짓지 않으셨다고 했다.

고구마 순을 심었는데 가뭄으로 많이 말라죽었고, 올해는 매년 거르지 않고 심던 옥수수조차도 심지 않으셨단다. 참 맛난 물골의 옥수수였는데 아쉽지만, 이제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든 할머니에게 농사를 강요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물골 아랫마을 밭에는 옥수수 싹이 이렇게 올라왔는데 물골 할머니 집에는 지난해 남겨두었던 옥수수 종자가 그대로 달려있다. 시나브로 힘도 사라지고, 그렇게 육체는 세월을 따라 힘을 잃어가고, 그 힘이 다하면 귀천하는 것이리라.
옥수수 종자로 남겨졌던 옥수수, 올해는 흙을 만나지 못했다. 내년에는 흙을 만날 수 있길 바란다. ⓒ 김민수
올해는 이렇게 흙을 만나지 못했지만, 내년엔 흙을 만날 소망을 품고 매달려있는 옥수수 종자를 보면서 GMO를 떠올린다.

농촌이 살아야, 나라가 든든하게 사는 법인데, 생명의 흙을 일구는 땅의 사람들이 천대받는 시대이니 비틀거리며 살아갈 수밖에. 조금 천천히 가더라도 흙의 소중함을 알고, 아이들도 어려서 흙을 만지며 놀고, 자기가 직접 심고 가꾼 열매의 맛을 보는 경험을 해봐야 자연의 소중함을 알 터인데. 모두 부질없는 소망인가 싶다.

평생 흙을 일구며 살아온 물골 할머니, 그러나 더는 몸을 움직여 일하기 힘든 때가 되었음에도 살림은 늘 풍족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삼시 세끼 꼬박꼬박 챙기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던 그 시절, 거기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모내기 요즘 모내기는 기계로 이뤄지지만, 작은 논이나 구석진 곳은 사람의 손길이 필요하다. ⓒ 김민수
모내기 철이다.

논마다 모내기가 한창이었고, 기계로 모내기를 마친 논에서 기계가 다하지 못한 세심함을 농부의 손이 더하고 있었다. 사람의 손만큼 꼼꼼하고 세밀하고 조밀한 도구가 또 있을까 싶다.

물골에서 나와 서울로 향하는 길, 그래도 강아지가 할머니 친구가 되어주니 마음 한쪽이 따스하다. 오히려 홀로 흙 속에 누워계신 어머니가 애잔하다. 서울로 향하는 길, 아버님이 응급실에 입원하셨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혹시, 오늘 급하게 어머니 산소에 와서 묘지정리를 한 것과 아버님의 입원이 관련성이 있는 것이라며 그리 좋은 소식이 아니다. 오늘 점심도 그리 맛나게 드셨는데, 갑자기 응급실이라니 무슨 일일까?

이틀이 지난 후 이른 아침, 아버님은 중환자실에서 가족들의 배웅을 받으며 귀천하셨다. 그리고 어머니 곁에 안장되었다. 불과 일주일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이제 어머니는 덜 쓸쓸하시겠지.

물골 할머니도 만났다.

며칠 사이에 '뽀순이'는 더 큰듯하다. 사나흘 간격으로 봤음에도 여전히 반가워한다. 살아계신 물골 할머니에게는 친구가 생겼고, 년 전에 돌아가신 어머니는 이제 곁으로 아버님이 오셨으니 덜 쓸쓸하시려나 싶다.

태그:#물골, #반려견, #모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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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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