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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이와 지아가 함께 보내는 첫 여름방학,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
 선이와 지아가 함께 보내는 첫 여름방학,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
ⓒ (주)엣나인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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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나 소설, 만화나 드라마에 등장하는 음식들. 군침이 절로 나오는 이야기 속 음식 레시피와 그에 얽힌 잡담을 전한다. 한 술 뜨는 순간 장면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음식 이야기를 '씨네밥상'을 통해 풀어낼 예정이다. - 기자 말

무성하게 자라난 베란다의 갖가지 화분에 햇빛이 낮게 드리우는 한여름의 오후, 지아는 풀이 죽은 채 쪼그리고 앉아 애꿎은 꽃송이만 뚝뚝 따낸다.

"누나, 지아 누나가 꽃 다 따버렸어."
"괜찮아 들어가."

고사리 손으로 바닥에 떨어진 꽃송이를 그러모아 내미는 윤이를 물리치고 선이는 지아 옆으로 다가가 앉는다.

"지아야 손 좀 줘봐."
"왜? 이거 뭐야?"
"이거 봉숭아 물, 손톱에 물 들이는 거"
"아..."
"내가 예쁘게 해줄게."

선이는 지아가 좋다. 학교에도 별 다른 친구가 없던 선이에게 지아는 처음 사귄 친구이자 '엄마보다도 더 좋은', 온 신경이 쏠린 대상이다. 둘이 함께 보내는 첫 여름방학, 이 아름다운 방학이 끝나도 둘의 관계는 여전할까?

순수하지만 고된 아이들의 세계 그린 <우리들>

지아와 선이 그리고 선이의 남동생 윤이.
 지아와 선이 그리고 선이의 남동생 윤이.
ⓒ (주)엣나인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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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우리들>은 "어린애들이 무슨 고민이 있어"라고 하는 어른들의 말을 무색하게 만드는, 초등학교 4학년 아이들의 치열한 관계 맺기에 관한 영화다. 학교에서 피구팀을 나눌 때 아무도 함께 하려 하지 않아 마지막까지 남겨진 선이의 얼굴을 가만히 클로즈업하며 영화는 시작한다.

이 표정 하나에 순수하지만 그만큼 잔인하고 고된 아이들의 세계가 그대로 예고된다. 카메라는 찬찬히 아이들의 표정을, 그들 사이의 공기를 그리며 보는 이들을 진짜 감정의 세계로 데리고 간다. 어른들의 눈으로 본 아이들, 혹은 어른들이 예상하는 아이들의 세계가 아닌 아이들의 눈높이 그대로의 감정선을 보여주는 영화는 그동안 막연하게 뭉뚱그려 갖고 있던 첫 관계 맺기의 추억을 세밀하게 되살려 그 감정에 빨려들게 한다. 어떤 스펙터클 블록버스터보다도 손을 꽉 쥐게 하는 긴장감, 더 이상 더할 것도 뺄 것도 섬세한 한 권의 스케치북이다.

주인공 선이는 주변을 조용히 응시하며 생각하는 속 깊은 아이다. 하지만 딱히 눈에 띄는 아이도 아니다. 오히려 반에서 잘 나가는 여자 아이인 보라네 그룹에 무시당하고 이용된다. 그런 선이가 방학식 날, 방학식이 끝나고 나서야 전학수속을 하러 온 지아를 만난다. 들뜬 마음으로 얘기를 주고 받는 지아와 선이의 말투는 어린 아이의 것도 어른의 것도 아니다. 어른의 말투를 빌려왔지만 무언가 어색한, 그래서 딱 초등학교 4학년의 말투다.

"4학년 여름방학이 제일 중요한 시기야 알지?"

담임 선생님의 대사에 '아 초등학교 4학년에는 저런 말을 들었지' 싶다. 물론 5학년 때에도 6학년 때에도 들었지만. 11살의 아이는 자신이 곧 아이에서 벗어날 나이라는 사실을 자각하며 실제 나이보다 훨씬 더 나이를 먹은 느낌으로 애어른 같은 모습을 보인다. 속이 깊고 감수성이 예민한 아이라면 특히나 더 그렇다. 친구가 어느 때보다 중요하고 소중해지기 시작하는 시기이며 그만큼 너와 나의 관계에서 오는 오해와 어긋남은 당혹스럽기만 하다.

"엄마 제발요 네? 제가 윤이도 잘 돌볼게요. 숙제도 할게요. 청소도 할게요. 김밥도 쌀게요 네? 아 엄마~"

엄마를 조르고 졸라 할머니와 단둘이 사는 지아를 일주일 동안 자신네 집에서 있을 수 있도록 한 선이는 어느 때보다 신이 난다. 좋아하는 친구와 함께 일어나고 같이 밥을 먹고 문방구에 가고 방방을 타며 하루 종일 같이 놀 수 있다니! 동네 하천에서 첨벙거리며 물장구 치기, 선풍기 앞에서 과자를 먹으며 그림 그리기, 방학이라 텅 빈 학교의 운동장에 앉아 학교 바라보기, 감독은 둘이 함께 하는 여름 방학의 심상을 유려하게 담아낸다. 그리고 또 한가지, 영화의 신 스틸러 역할을 톡톡히 하는 선이의 남동생 윤이의 똥강아지 같은 귀여움은 보는 내내 엄마 미소를 짓게 한다.

모든 것이 설레고 당혹스러웠던 그 여름의 우리들

오이김밥을 좋아하는 지아를 위해 선이는 엄마에게 오이김밥을 해달라고 조른다.
 오이김밥을 좋아하는 지아를 위해 선이는 엄마에게 오이김밥을 해달라고 조른다.
ⓒ (주)엣나인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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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김밥집을 하고 아버지는 야근이 잦은 공장에서 일하는 선이네, 선이와 윤이는 힘을 합쳐 저녁으로 김치볶음밥을 만들어 지아에게 대접한다.

"누나부터 먹어 누나가 손님이니까."
"와 대박 이거 진짜 맛있어. 근데 이거 어떻게 만드는 거야?"
"어 먼저 햄이 안 넣고, 김치부터 넣고, 햄 그리고 밥. 그리고 그 담에 김치 넣고... 그 담에 섞어! 간단해."

발음도 부정확한 꼬맹이 윤이가 이렇게 설명을 잘 하는 비결은 직접 김치 볶음밥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영화 상에서만 그렇다는 것이 아니고, 감독은 촬영 하기 전 아이들끼리 직접 김치볶음밥을 만들어 먹도록 했으며 윤이의 대사는 암기가 아닌, 자신의 경험을 되짚어 얘기한 것이다. 이 영화가 억지스럽지 않게 미묘한 아이들의 감정과 세계를 재현해 낸 비밀이 여기에 있다.

감독은 촬영 전, 아역 배우들에게 갖가지 상황극을 주고 "너가 이 상황이면 어떨 것 같아?"를 물은 뒤 아이들이 자신의 생각대로 움직이고 말하게 했으며 이를 기반으로 콘티를 완성하고 실제 촬영도 그런 식으로 진행하였다. 영화 속 아이들의 모든 대사도, 딱 한 대사만 빼고 아이들의 입에서 직접 나온 것이라고 한다.

"있잖아 사실 우리 부모님, 나 1학년 때 이혼하셨다. 그런데 그때는 이혼한 줄 몰랐어 웃기지."
"아니야."
"그래도 아빠랑 오래 살 줄 알았는데... 맨 처음에 엄마랑 살 때가 제일 좋았는데."
"그러면 엄마랑 살겠다고 하면 안돼?"
"어떻게 그래, 그리고 우리 할머니는 엄마 얘기만 꺼내며 신경질내시거든."
"진짜? 우리 아빠도 그러는데 우리 아빠도 할아버지 얘기만 나오면 짜증내고 술만 마셔."
"그래? 어른들은 왜 이러냐."
"그러니까."
"나 사실 우리 엄마 본 지 오래 됐다. 이번에 꼭 바다 같이 가기로 했는데."
"진짜? 우리도 바다가기로 했었는데."
"진짜?"
"응. 지아야 우리 나중에 우리 둘만 바닷가 같이 갈래?"

그러게 어른들은 정말 왜 그럴까? 이해할 수 없는 어른과는 달리 마음이 통하는 친구와의 약속은 얼마나 소중하고 설레는지. 그러나 이 약속은 너무 쉽게 깨져버리는 허약한 약속이기도 하다. 틀어지고 화해하고를 반복하며 보낸 둘의 여름 방학이 끝나가고, 지아에게 새로운 친구들이 생긴다. 그것도 선이를 따돌리는 친구들이다. 지아는 선이보다 잘 나가고 재미있는 친구 무리와 지내기 위해 그들이 무시하는 선이를 애써 무시한다.

"지아야 너 생일파티 안 하다며, 숙제해야 한다며."

지아의 생일날, 선이는 처음으로 엄마의 돈을 훔쳐 비싼 선물을 사들고 설레는 마음에 지아의 집으로 달음박질한다. 하지만 선물을 풀어 보지도 않고 돌려 보내는 지아, 선이만 따돌리고 다른 친구들과 생일파티를 하는 지아를 선이는 이해할 수가 없다. 그동안 지아가 애써 외면하고 무시해도 끝끝내 다시 잘 될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있던 선이는 세상을 잃은 듯한 모습이다. 무엇을 해도 재미가 없고 학교 가는 날이 기대되지도 않고 도대체 세상이 살 만하다고 느껴지지가 않는다.

아이들의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못난 어른들은 아이들을 힘들게만 하고 아이들끼리 맺는 관계의 세계는 때론 잔인하기까지 하다. 그 상황에서 빠져나갈 수도, 어떤 처세의 기술도 익히기 전이기에 더 당혹스럽고 고되다. 선이 뿐 아니다, 지아도 마찬가지다. 지아는 공부를 잘 한다는 이유로 함께 놀던 무리에서 따돌림을 당하기 시작하고 선이와 지아의 관계는 복잡하게 얽혀 오해만 커져간다. 그렇게 바다를 보고 싶어하던, 지아와 함께 바다를 보고 싶어하던 선이는 할아버지의 장례식날에야 바다에 간다. 쓸쓸한 아버지의 뒷 모습 너머로 보이는 바다는 선이가 기대하던 그 바다가 아니다. 선이는 세상이 자신의 희망 같지 않다는 것을 알아챘을 것이다.

선이는 맨날 친구에게 맞은 채로 돌아오는 윤이가, 그런데도 같은 친구와 계속 노는 윤이가 속상하고 답답하다.

"이번에는 나도 때렸어."
"그래서 그 다음엔."
"연오가 또 때렸어."
"그래서?"
"그래서 같이 놀았어."
"야 이윤 너 바보야? 그리고 같이 놀면 어떡해!!"
"그럼 어떡해."
"다시 때렸어야지."
"또?"
"걔가 다시 때렸다며 또 때렸어야지."
"그럼 언제 놀아, 연오가 때리고 나도 때리고 연오가 때리고 그럼 언제 놀아. 나는 그냥 놀고 싶은데."

보는 이들의 마음을 찔러버린 어린 연오의 대사, 그 말을 듣고 선이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선이의 약지 손톱에는 지아와 나눈 여름의 봉숭아 물이 아직 얇게 남아있다. 그 봉숭아 물이 다 없어지기 전에, 너와 나는 다시 우리가 될 수 있을까? 처음이기에 모든 것이 설레고 당혹스러웠던 그 여름의 우리들.

[씨네밥상 레시피] <우리들> 속 오이김밥 (김밥 4줄 분량)

영화 우리들 속 오이김밥
 영화 우리들 속 오이김밥
ⓒ 강윤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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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고 나면 못 참겠을 정도로 오이김밥이 먹고 싶어진다. 선이네 엄마가 김밥집을 하니 김밥 솜씨야 알아줄테고, 오이김밥은 지아가 좋아하는 김밥이기도 하다. 지아는 선이 엄마의 오이김밥을 좋아하고 그런 지아를 기쁘게 해주기 위해 선이는 엄마에게 오이김밥을 해달라고 조른다.

아마 오이김밥은 김밥집의 메뉴에는 없는 특별 메뉴인 것 같다. 영화속에서 선이는 지아에게 두 번에 걸쳐 엄마의 오이김밥을 건네지만 두 번 다 속상한 상황으로만 연결된다. 아니 그래도 그 오이김밥은 참 맛있어 보이는데, 좀 먹지 그러니 싶다. 오이김밥은 여름의 맛이다. 아삭한 오이가 김밥에 산뜻한 풍미를 더한다. 집마다 오이를 소금에 살짝 절여 물기만 짜내거나, 아님 그 상태로 가볍게 볶거나 오이를 넣는 방법도 가지각색이다. 김밥이야말로 백인 백색의 음식이다.

이번에 사용한 방법은 아주 간단하면서도 맛이 좋다. 길게 자른 오이에 소금을 살짝만 뿌린 뒤 단무지가 들어있던 국물에 15분~1시간 절인다. 아삭아삭하면서도 새콤달콤한 단무지 국물 맛이 옅게 들어 기분이 좋아진다. 아직 초여름이라 참기름과 다시마, 소금을 넣어 지은 밥을 썼지만 더 더워지면 배합초를 넣은 밥을 쓰는 것이 좋다. 크래미, 조린 어묵, 햄, 다진 소고기 무엇이든 좋을대로 넣자. 친구와 김밥을 나눠 먹는 초여름이 얼마나 좋은지.

밥 : 쌀 2컵, 참기름 ½큰술, 소금 ½작은술, 마른 다시마 사방 7cm 1장
달걀지단 : 달걀 3개, 소금 약간, 식용유 적당량
당근채 : 당근 ½개, 소금 약간, 식용유 적당량
오이절임 : 오이 ½개, 소금 약간, 단무지 국물 적당량
깻잎 8장, 크래미 4~6개, 단무지 8줄, 우엉조림 12줄, 김밥김 4장

1. 쌀을 씻어 소금, 참기름으로 간한 뒤 마른 다시마를 얹어 밥을 짓는다. 밥이 되면 다시마를 빼고 간이 모자란다 싶으면 소금을 더해 살살 섞어 한 김 식힌다. 
2. 오이는 씨부분을 제외하고 길이대로 썰어 소금을 살짝 뿌린 뒤 단무지 국물에 넣어 15분~1시간 가량 재운다.
3. 달걀은 곱게 풀어 소금으로 간하고 달군 팬에 기름을 더해 약한 불에서 부친 뒤 곱게 채썬다.
4. 당근은 곱게 채썰어 달군 팬에 기름을 더하고 소금으로 간해 살캉거릴 정도로 볶는다.
5. 크래미는 먹기 좋은 두께로 자른다.
6. 김 위에 밥을 고루, 최대한 얇게 편 뒤 깻잎을 두 장 얹고 깻잎 위에 나머지 재료들을 적당히 올린다.
7. 김밥을 단단하게 말아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낸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강윤희는 음식잡지에서 기자로 일하다 회사를 나와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있는 푸드라이터. 음식에 관련된 콘텐츠라면 에세이부터 영화, 레시피 북까지 모든 것을 즐긴다. 영화를 보다가 호기심을 잡아끄는 음식이 나오면 바로 실행.



태그:#영화 우리들, #우리들, #윤가은 감독, #윤가은, #오이 김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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