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나를 쏴라!"

1943년 4월 14일, 작센하우젠 포로수용소의 막사에서 포로 한 명이 뛰쳐나왔다. 그는 고압 전류가 흐르는 철조망을 향해 걸어갔다. 오후 9시를 조금 넘긴 시각, 철조망 앞의 남자는 죽은 채로 굳어 있었다. 남자의 이름은 야코프 주가시빌리. 그는 스탈린의 장남이었다.

공식 기록은 수용소 경비병에 의해 사살되었다는 것이지만, 철조망에 몸을 던져 자살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밀란 쿤데라의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도 야코프의 죽음을 소개한다. 쿤데라는 야코프가 수용소에서 변기를 더럽게 쓴다고 욕먹은 것에 주목했다. 고상한 비극(스탈린의 아들이라는 운명)과 똥을 대비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야코프가 죽음을 택한 과정에 똥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스탈린의 그림자

스탈린의 장남 야코프 주가시빌리는 1943년 4월 14일, 나치 수용소에서 사망했다
▲ 야코프 주가시빌리 스탈린의 장남 야코프 주가시빌리는 1943년 4월 14일, 나치 수용소에서 사망했다
ⓒ 나무 위키

관련사진보기


야코프는 생후 8개월에 병으로 어머니를 여의었다. 스탈린은 소심한 성격의 장남을 미워했다. 야코프는 아버지의 무관심 속에 부모 없이 자랐다. 1937년, 군에 자원한 그는 초급 장교(소위)로 참전한 첫 전투에서 독일군 포로가 되었다.

나치는 그를 선전용 제물로 이용한다. "스탈린을 위해 피를 흘리지 마라, 그는 이미 사마라로 도망쳤다. 그의 아들도 항복했다. 스탈린의 아들이 자신의 목숨을 구했다면 당신들이 자신을 희생할 의무는 없다." 포로로 살아남았다는 것은 조국 소련의 반역자가 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독일 측에서 프리드리히 파울루스와 야코프의 교환을 제안했을 때, 스탈린은 '육군 원수와 일개 병사를 교환하지 않겠다'라며 거절했다. 그가 수용소에 있을 무렵, 소련군이 카틴 숲에서 폴란드인을 학살하는 일도 있었다. 심지어 수용소에서 그와 가장 친한 사람이자 함께 탈출을 시도한 인물이 폴란드인이었다.

야코프가 군에 자원한 이유는 불분명하다. 스탈린의 그림자를 벗어나 조국을 위해 일하고 싶었던 걸까? 스탈린의 인정을 받고 싶었던 걸까? 분명한 것은 그가 평생 아버지의 그림자 밑에서 살아야 했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에게 특권을 주고자 했던 제의를 모두 거절했다. 그러나 그것이 평범한 삶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그는 결국 죽음을 통해 비극적인 자유를 얻었다.

독재자의 자식들

역사는 독재자의 자식들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다. 그중에는 야코프의 이복동생인 스베틀라나, 피델 카스트로의 딸 알리나 카스트로와 같이 아버지를 부정한 자식들도 있다. 마오쩌둥의 아들 마오안잉, 베니토 무솔리니의 아들 부르노 무솔리니와 같이 전쟁 최전선에서 목숨을 내놓은 자식들도 있다(마오안잉은 한국전쟁에서 전사, 부르노는 전투기 시험비행 중 사망).

물론 마르코스의 자식들처럼 과거에 대한 향수에 올라타 정치적 복권을 꿈꾸는 이들도 있고, 카다피의 자식들처럼 폭력과 부패를 이어받다가 아버지와 함께 비참한 최후를 맞은 이들도 있다. 그들 중 북한의 김씨 일가는 여전히 막강한 권력을 자랑한다.

독재자의 자식으로 평범한 삶을 살기란 어려웠다. 많은 독재자가 가족은 뒷전에 두고 권력에만 몰두했다. 자식 중엔 어머니의 이른 죽음을 경험해야 했던 이들도 있다. 지지를 얻기 위해 자식에게 유독 혹독한 태도를 보였던 독재자도 많다.

세상은 그들을 두려워했을 것이다. 아버지에 대한 세상의 평가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은 물론이다. 아버지를 부정한다고 해서 평온한 삶을 살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선전도구가 필요했던 반대 세력이 그들을 가만 내버려 둘 리 없었다. 이런 삶은 그들 중 일부를 비극으로 이끌기도 했다.

정말 박근혜를 위한다면

박근혜 전 대통령이 2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중앙지검에서 첫 재판을 마치고 구치소로 돌아가기 위해 호송차로 향하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2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중앙지검에서 첫 재판을 마치고 구치소로 돌아가기 위해 호송차로 향하고 있다.
ⓒ 이희훈

관련사진보기


간만에 박근혜 전 대통령의 모습이 뉴스에 나왔다. 수갑을 찬 모습을 보며 안타까워할 이들이 꽤 있을 성싶었다. 박 전 대통령도 평범하지 않은 삶을 살았다. 아버지의 그림자를 떨쳐냈다고 하기도 어렵다. 대통령이 된 과정에선 아버지의 후광이 상당한 역할을 했다.

대통령직에서 파면되어 오늘의 재판에 이른 과정도 마찬가지였다. 최씨 가문과의 관계부터 특유의 태도까지도 박정희의 딸로 살아온 삶과 무관하지 않아 보였다. 그런 이미지가 중첩되어 불쌍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의 첫 공판을 두고 굳이 '독재자의 자식'이라는 주제를 꺼내는 것은 바로 그 연민의 시선 때문이다.

하지만, 박근혜는 박정희의 자식이라는 이유로 재판받는 것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독재자의 자식이라는 개인적 비극이 면죄부가 되지는 않는다.

독재자의 자식으로 태어난 것 자체는 죄가 아니다. 우리는 그가 독재자의 부당한 권력을 승계하길 바라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야코프와 같은 비극적 삶을 살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 독재자의 자식은 '독재자의 자식'이 아닌 그 자신으로 살 자유가 있다. 그러나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

결국, 불쌍하다는 이유로 그 책임을 면해준다면 이는 박 전 대통령을 다시 그 비극 속으로 몰아넣는 일이 된다. 비극은 이미 18대 대선에서 시작됐다. 그를 대통령으로 만든 지지 기반의 상당수를 아버지의 후광이 차지했기 때문이다. 그 지지자들에게 부탁한다. 정말 박근혜를 위한다면 이제는 아버지의 그림자를 걷어내 주어야 한다.

연민을 느낄 수는 있지만, 그것을 법적 책임과 연결지어선 안 된다. 이는 박근혜 전 대통령 본인에게도 하고 싶은 말이다. 그가 독재자의 딸이라는 운명에서 벗어나길 바란다. 그 시작은 자신을 성찰하고, 행위에 대한 책임을 지는 데 있다. 그는 공정한 방식으로 대통령이 되었다. 이제 공정한 방식으로 재판을 받을 뿐이다. 자유로운 한 사람의 국민으로.


태그:#박근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