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욱이 삼성으로 이적하며 FA 잭팟을 터뜨렸다

김동욱이 삼성으로 이적하며 FA 잭팟을 터뜨렸다 ⓒ KBL


김동욱이 친정 삼성으로 '금의환향'한다.

오리온의 '포인트 포워드' 김동욱(36, F)이 삼성으로 이적한다. 3년 계약에 첫 해 보수 총액 6억 3천만원(연봉 5억 6700만원, 옵션 5300만원)으로 'FA잭팟'을 터뜨렸다. 2005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2라운드 4순위(전체 14번)으로 삼성에 지명되었던 김동욱은 역대 드래프트 2라운드 출신 최다 연봉자 기록을 이어가게 되었다.

이러한 대박은 농구 팬들 사이에서 '인생은 김동욱처럼'이라는 말을 유행시키고 있다. 이미 야구계에는 '인생은 이호준(NC 다이노스)처럼'이라는 말이 존재한다. 대형 투수 유망주에서 타자로 전향, 첫 번째 FA 대박 후 부상과 슬럼프, 그리고 말년에 들어 맹활약을 이어가며 이러한 별명이 붙은 것이다. 김동욱 역시 한 때는 '고교 농구 스타'에서 2라운드 신인, 그리고 식스맨을 거쳐 선수 생활 말년에 대박을 터뜨리며 파란만장한 농구 인생의 2막을 열었다.

■ 고교 농구 최고 스타에서 2라운드 신인까지

유망주 자원이 부족하다는 평이 많았던 00학번 중 김동욱은 고교 농구 최고의 스타였다. 특히 김동욱은 '마산 농구왕'이라는 별명을 가지며 당시 농구 팬들 사이에서는 '마왕'이라고 불렸다.

그를 향한 상위권 대학들의 스카우트 구애도 당연히 끊이질 않았다. 각 대학은 그의 마산고 동기들까지 데려올 것을 약속하며 그에게 끊임없는 구애를 보냈다. 이러한 스카우트 전쟁의 최종 승자는 고려대학교였다.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고려대는 현주엽(현 LG 감독), 전희철, 이규섭을 이을 빅 포워드 계보를 이을 적임자로 김동욱이 될 것이라 확신했다.

그러나 탄탄대로일 것만 같던 김동욱의 농구 인생은 여기서부터 꼬이기 시작한다. 바로 입학을 위한 수능 최저 기준에 김동욱이 미달된 것. 김동욱은 결국 재수를 하게 되고 1년 늦게 고려대에 입학할 수밖에 없었다.

경기 감각이 떨어진 것과 더불어 대학 입학 후에는 잦은 부상에 시달리며 그는 대학 무대에서 별다른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라이벌로 평가되던 연세대의 방성윤(전 SK나이츠)이 성인 국가대표팀에 차출되어 아시안 게임 금메달을 목에 매고 미국 진출까지 노리던 것에 비하면 대조되는 모습이었다. 또한 드래프트 직전에는 불성실하다는 이야기까지 돌아 '게으른 천재'라는 낙인마저 찍힌다.

 김동욱은 2라운드라는 낮은 순번에 삼성에 지명되었다

김동욱은 2라운드라는 낮은 순번에 삼성에 지명되었다 ⓒ KBL


결국 2005년 드래프트에서 김동욱의 이름은 2라운드가 되어서야 불린다. 그 해 드래프트는 신인이 유난히 없어 해외동포였던 김효범, 한상웅이 전체 2, 3순위에 지명되고 대학을 자퇴하며 농구를 쉬었던 정상헌(전 모비스)이 1라운드 8순위에 지명될 정도였다. 그런 순번에서 한때 농구 천재였던 김동욱이 2라운드까지 밀려난 것은 충격이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프로에 입성한 김동욱은 첫 해 평균 0.8득점이라는 조촐한 성적표를 남기고 군에 입대한다.

■ 식스맨에서 우승 주역까지, '김동욱 시대' 열다
군대에서 복귀한 김동욱은 삼성의 백업으로 시작하게 된다. 당시 삼성은 우승권 전력으로 국가대표 슈터 이규섭을 주축으로 한 포워드진이 풍부해 주전을 잡기엔 쉽지 않은 환경이었다.

그럼에도 김동욱은 묵묵히 기다렸다. 2년간 평균 20분 내외를 뛰며 식스맨으로 활약한 김동욱은 10-11시즌 마침내 삼성의 주전으로 자리 잡는다. 내외곽을 가리지 않는 플레이를 선보이며 평균 11.5득점 2.8리바운드를 기록했다. 기량발전상 또한 수상하며 늦게 입성한 프로에서 서서히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12-13시즌은 그런 김동욱에게 전환점이 된 해였다. 당시 최하위를 기록하던 삼성은 가드진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고 오리온과 트러블이 있던 김승현을 영입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김동욱은 트레이드 대상으로 오리온으로 이적한다. 오리온의 포워드 농구에서 김동욱은 자신의 기량을 만개한다. 이적 후 평균 14득점 4리바운드 4.4AS의 맹활약을 펼치며 시즌 후 FA에서 보수 총액 4억 5천만원의 첫 번째 '잭팟'을 터뜨린다.

첫 번째 FA 대박 후 김동욱은 3년간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전태풍과 호흡이 맞지 않았고 여러 가지 구설수에 오르며 소위 '먹튀'가 아니냐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35살의 나이에 그는 농구에 더욱 눈을 뜬다. '포인트 포워드'라고 불릴 정도의 패스 능력과 미스 매치를 활용한 수비, 그리고 정확한 외곽포까지 갖추며 정상급 슈팅 가드로 발돋움한다. 농구 센스가 탁월한 김동욱의 활약을 바탕으로 소속팀 오리온은 15-16시즌 챔프전 우승의 영예를 차지한다. 비록 언론의 주목은 조 잭슨과 이승현, 문태종에게 갔지만 포지션을 가리지 않고 맹활약한 김동욱이 없었다면 오리온의 우승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김동욱은 올 시즌에도 평균 10득점 4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오리온 포워드 농구의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그리고 시즌 후 얻게 된 자신의 두 번째 FA에서 6억 3천만원이라는 대박을 다시 한 번 터뜨리며 농구판 '인생은 OOO처럼'의 주인공이 되었다.

누군가는 이를 보며 거품이라고 비판할지 모른다. 36세의 나이의 선수에게 6억 3천만원이라는 돈은 과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김동욱은 본인의 라이벌들이 농구계를 떠난 가운데서도 매년 발전하는 모습을 보이며 FA 제도를 잘 활용한 사례로 남을 것이다.

'인생은 김동욱처럼', 그의 인생 2막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 지켜보는 것도 큰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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