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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은 어떻게 태어날까요? 과학에서는 으레 우주에서 가스나 먼지들이 모인 곳에서 태어난다고 말합니다만, 가스나 먼지들이 모인 덩어리를 '별'이라고 할 만한지 아리송하곤 해요.
겉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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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시옹 장물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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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어떻게 태어날까요? 단백질하고 피하고 이것저것이 뭉쳐서 살이며 뼈가 이루어져서 태어난다고 말할 만할까 궁금합니다. 그러니까 사람을 두고서 살덩이·핏덩이·뼛조각, 여기에 물이 어우러져 움직이는 것이라고 말할 만할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과학으로 본다면 사람을 이렇게도 말할 만할 테지만, 어쩐지 '사람다운 모습'을 밝힌다고는 느끼기 어렵습니다. 살하고 피하고 뼈하고 물만 '섞어'서 움직이도록 하기에 '사람'이라고 하지는 않을 테니까요.

오늘은 유령으로서 임무를 맡게 된 첫날이에요. 내가 뭘 해야 하는지 동료들이 하는 걸 보고 배우라고 하네요. (1쪽)

갑자기 지붕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어요. 서서히 움직이더니, 가운데 둥근 거울 같은 게 나를 향했어요. 기계 소리는 이내 잠잠해졌으나 어렴풋이 누군가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3쪽)

로버트 헌트 님이 빚은 그림책 <새내기 유령>(에디시옹 장물랭 펴냄)은 '별'이 태어나는 흐름을 밝혀 보려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가스나 먼지로 이루어지는 덩어리가 아닌, 사람들이 밤하늘에 즐겁게 우러러보기도 하고, 바다에서 길잡이로 삼기도 하며, 별자리를 이어 이야기를 짓기도 하는, 우리 마음속에 깃드는 '별다운 별'이란 무엇인가를 찬찬히 짚으면서 생각을 이어 보려고 하는 그림책이에요.

그림책 <새내기 유령>에 나오는 '유령'은 어쩌면 '혼불'이나 '도깨비불'일 수 있습니다. 그림책에서는 영어 'ghost'로 적는데, 유령이나 귀신이라고 하기에는, 또는 도깨비라고 하기에는, 무언가 좀 다른 넋이지 싶어요.

우리한테도 이런 넋을 볼 때가 더러 있다고 하잖아요. 혼불을 본다든지 도깨비불을 본다든지 하면서요. 우리 둘레에 있으나 우리가 미처 못 느끼거나 안 느끼기도 하고, 이러한 혼불이나 도깨비불한테 말을 거는 사람도 있고요. 누구는 이런 것이란 없다고 여기기도 하고요.

아무튼 그림책 <새내기 유령>은 우리가 여느 때에는 못 느끼거나 안 느끼는 다른 차원 넋을, 또는 우리가 아예 없다고 여기는 다른 차원 넋이 주인공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갑니다.

이 다른 차원 넋은 '새내기'인 터라 동무들처럼 날렵하지도 않고 잘 날아다니지도 못합니다. 나뭇가지에 걸린다든지, 어디에 자꾸 부딪힌다든지 합니다. 몹시 어수룩하지요. 이러다가 어느 날 천문학자를 만나요.

속그림. 새내기 유령, 처음으로 하늘을 날다가 나무에 걸린 날.
 속그림. 새내기 유령, 처음으로 하늘을 날다가 나무에 걸린 날.
ⓒ 에디시옹 장물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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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천체망원경으로 별을 관측하고 연구하는 일을 한다고 했어요. 밤새도록요. 해가 뜨면 잠을 자고요. 그러다 오늘 나와 내 동료들이 날아가는 모습을 본 거예요. 그는 언젠가 새로운 별을 발견하고, 그 탄생 과정을 밝혀내는 게 꿈이라고 했습니다. (6쪽)

천문학자하고 가까워지면서 '새내기 다른 넋'은 함께 별바라기를 하고 망원경으로 '동무인 다른 넋'이 무엇을 하는가를 지켜보기도 합니다. 이러다가 어느 날 동무인 다른 넋이 하는 일을 보고는 깜짝 놀라요.

새내기 다른 넋은 저런 일을 하려고 이런 모습으로 태어났나 하고 놀랍니다. 어떻게 저런 일을 해야 하는가 싶어서 슬프지요. 이때에 옆을 돌아보니 천문학자는 어느새 달아났습니다. 천문학자는 저랑 함께 있던 '새내기 다른 넋'이 저를 잡아갈까 두려워하는 마음이 되어요.

같이 보고 있던 그가 언제 도망쳤는지도 모르겠네요. 큰 충격을 받은 나는 멍하니 앉아, 여자가 사라진 자리를 하염없이 바라봤습니다. 동료가 한 일을 나도 해야 하는 걸까요? (13쪽)

새내기 다른 넋이 천문학자를 붙잡아서 하늘로 데리고 올라가는 일을 하지 않자, 동무인 다른 넋들이 잔뜩 몰려듭니다. 동무인 다른 넋들은 천문학자를 붙잡으려고 합니다. 새내기 다른 넋은 천문학자를 달래요. 우리는 서로 어깨동무라고, 새내기 다른 넋이 천문학자를 지켜 주겠노라 말하지요.

속그림. 새내기 유령, 천문학자와 벗이 되다. 천문학자가 빌려준 옷을 입고 망원경으로 이곳저곳 둘러본다.
 속그림. 새내기 유령, 천문학자와 벗이 되다. 천문학자가 빌려준 옷을 입고 망원경으로 이곳저곳 둘러본다.
ⓒ 에디시옹 장물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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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학자는 이 말을 믿어요. 마음을 가라앉히고 함께 움직입니다. 이러다가 새내기 다른 넋은 동무인 다른 넋들한테서 벗어나려고 용을 쓰다가 시나브로 하늘로 올라갑니다. 어라? 어쩌다 보니 새내기 다른 넋도 동무인 다른 넋들처럼 '사람을 안고 하늘로 올라가'네요? 그런데 하늘로 올라가는 천문학자는 더없이 아늑한 얼굴이 되어 웃음을 짓습니다. 이러고 나서 별이 되어요. 새로운 별이 됩니다.

하늘에 가까워지자 그는 신이 나서 크게 웃었어요. 무슨 일이 일어난 거죠? 그가 사라져버렸어요. 그 대신 내 눈앞에는 두 개의 별이 빛나고 있었습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별은 미소짓고 있는 그의 얼굴이었어요. (21∼23쪽)

속그림. 새내기 유령, 동무 유령한테서 벗어나려고 하다 보니, 어느새 하늘로 올라가네.
 속그림. 새내기 유령, 동무 유령한테서 벗어나려고 하다 보니, 어느새 하늘로 올라가네.
ⓒ 에디시옹 장물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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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학자는 죽었을까요? 새내기 다른 넋은 천문학자를 속인 셈일까요?

둘 모두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천문학자는 '몸이라는 옷'을 살며시 내려놓고는 '새내기 다른 넋'하고 우주여행을 했지 싶어요. 이러면서 천문학자 스스로 꿈꾸던 '별이 태어나는 흐름'을 뼛속 깊숙하게 깨달았지 싶어요. 천문학자하고 새내기 다른 넋이 우주여행을 하다가 천문학자가 새로운 별이 되었다고 한 이튿날, 신문에는 '새로운 별'이 태어난 모습을 어느 마을 아무개가 찾아내었다고 밝힌 이야기가 실려요.

다르게 본다면 '사람은 죽어서 별이 된다'는 이야기를 그림책으로 담아내었다고 할 만해요. 사람들은 죽을 적에 스스로 죽은 줄 미처 못 깨달을 수 있어요. 갑자기 숨이 멎기도 해요. 자다가 고요하게 숨이 멎기도 하고요. 스스로 가장 사랑하는 일을 하다가 흐뭇하게 웃음짓는 얼굴이 되기도 하지요. 모든 아쉬움을 내려놓고 환한 낯빛으로 목숨을 내려놓는 분이 있어요.

어쩌면 밤하늘에 가득한 별은 우리가 스스로 가장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삶을 내려놓으면서 태어난다고 할 만하지 싶습니다. 겉으로 보자면 '별을 이루는 성분'은 가스나 먼지일 테지만, 속으로 보자면 '기쁨과 사랑이 가득한 아름다운 숨결'일 수 있어요.

사람을 놓고도 이렇게 바라볼 만합니다. 겉으로 보자면 살이나 피나 뼈나 물이라는 '성분'이 있습니다만, 두 어버이가 사랑으로 만나서 사랑을 속삭이기에 태어나는 사람이라고 할 만해요. 사랑하는 삶이기에 사람이라고 할까요.

<새내기 유령>은 '어른이 생각을 살찌우는 길동무'로 삼기를 바라는 뜻으로 '에디시옹 장물랭'이라는 1인 출판사에서 첫 책으로 펴낸 그림책이라고 합니다. 프랑스에서 레지스탕스를 이끈 장물랭을 기리는 뜻으로 출판사 이름을 지었다는데, '어른 그림책'으로서 우리 삶을 새롭게 생각해 보자는 숨결이 <새내기 유령>에 깃들었구나 싶어요. 유령, 혼불, 꿈, 사랑, 여기에 별과 사람, 이 여러 가지를 가만히 마음에 담아 봅니다.

경기도 부천에 깃든 이 작은 출판사가 선보일 '어른 그림책' 다음 권도 기다립니다.

덧붙이는 글 | <새내기 유령>(로버트 헌터 글·그림 / 맹슬기 옮김 / 에디시옹 장물랭 펴냄 / 2016.8.15. / 12000원)



새내기 유령 - 어른들을 위한 영국의 동화, 개정판

로버트 헌터 지음, 맹슬기 옮김, 에디시옹 장물랭(2018)


태그:#새내기 유령, #로버트 헌터, #그림책, #어른책,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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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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