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지난 19일 MBC는 이른바 '반성 동영상'을 올린 막내 기자 등 7명에게 무더기 징계를 내렸습니다. 같은 날 비슷한 시각, YTN 조준희 사장은 자진 사퇴를 발표했습니다. 세상은 봄에서 벌써 여름으로 바뀌고 있지만, MBC는 아직 '겨울'인 듯 합니다. MBC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까요. 지난 '9년' 동안 있었던 '사람의 변화'를 짚어봤습니다. MBC 사람들, 그들의 내밀한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편집자말]
MBC 총파업 당시 모습. 지난 2010년 4월 6일 오전 서울 여의도 MBC 사옥 '민주의 터'에서 열린 총파업 집회에 참가한 서울지부 조합원들이 MBC 장악음모 진상규명과 김재철 사장의 사퇴를 촉구하고 있다.
 MBC 총파업 당시 모습. 지난 2010년 4월 6일 오전 서울 여의도 MBC 사옥 '민주의 터'에서 열린 총파업 집회에 참가한 서울지부 조합원들이 MBC 장악음모 진상규명과 김재철 사장의 사퇴를 촉구하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보도국 내부가 조용하다."
"자기 일만 한다. 편하게 말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서로 인사도 잘 안 한다. 호칭 어색해 존댓말 쓰고, 필요한 얘기가 아니면 대화하지 않는다."

언론(言論). '말(言)'과 '논함(論)'이 넘쳐야 할 자리에 정작 대화가 없다고 했다. MBC 내부 얘기다. MBC는 2012년 파업 이후 5년째 '공채와 경력·시용', '파업참가자와 불참자', '1노조와 반노조' 등 내부 구성원간 분열로 내홍을 겪어왔다. 그동안 공영방송 MBC의 위상은 추락할 대로 추락했다.

사측은 파업 이후 경력 기자 100여 명을 새로 채용했다. 파업 일선에 섰던 기자들은 해직됐고, 상당수 기존 기자들이 보도·제작과는 무관한 부서로 내몰렸다. 인적 구조가 바뀌면서 내부 갈등의 양상도 다변화됐다. 그럴수록 갈라진 구성원들 사이에 생긴 갈등의 골만 더 깊어갔다.

일단 변화의 분위기는 조성됐다. 그동안 문재인 대통령이 줄곧 언론개혁에 적극적인 입장을 보여왔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후보 시절 MBC 토론 프로그램에 출연해 "이명박·박근혜 정권이 공영방송을 장악해 국민의 방송이 아니라 정권의 방송을 만들었다. 공영방송들이 망가졌다. MBC가 심하게 무너졌다"고 말해 이목을 끌기도 했다.

MBC는 어느새 언론개혁 대상으로 지목되고 있었다. 분열된 MBC 내부의 현주소와 그를 바라보는 MBC 언론인들의 다양한 시선이 궁금했다. 2012년 파업 이전부터 MBC에 몸담고 있는 기존 기자들(이후 편의상 '기존 기자')과 파업 이후 입사한 경력기자들(이후 편의상 '경력 기자')의 고민을 함께 들어봤다.

[여전히 불편한 동거] "야근·회식도 따로"

파업 이후 5년이란 시간이 흘렀지만 기존 기자와 경력 기자들은 대체로 서로에 대한 감정이 아직 누그러지지 않은 모습이었다. MBC의 한 기자는 이런 상황을 두고 "MBC엔 모두 피해자만 있다. 가해자는 없는데 피해자만 있는 꼴"이라고 설명했다.

개인차는 있었지만 기존 기자들의 경우 아직까지 경력 기자들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가 많았다. 경력 기자들과 인간적인 유대 관계를 이어가는 이들도 찾기 힘들었다.

한 기존 기자는 "그들의 선택(경력기자들의 입사)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기자 윤리나 저널리즘에 대한 원칙으로 볼 때 정치적·윤리적으로 옳았다고 할 수 없다. 공정방송을 외치던 2012년 파업 때와 가까울수록 더더욱 그렇다"며 "불편하니까 야근도 같이 안 짜고, 회식도 따로 했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기존 기자는 경력 기자들에 대해 "선배들이 쫓겨난 자리를 대체하는 역할을 한 건 사실 아닌가. 기본적인 반감이 있을 수밖에 없다"며 "일은 같이하지만 화학적으로 섞이기는 힘들다"고 했다. "기자로서 인정하기 힘드니 동료나 선후배로 인정하기도 힘든 것"이란 의견도 나왔다.

경력 기자들은 그동안 기존 기자들에게 받은 생채기들을 털어놨다.

한 경력 기자는 "인정해주지 않는 분위기라는 걸 알고 입사했지만 막상 인격 모욕을 받았을 땐 힘들었다"며 "군대에 왔다는 생각으로 버텼다"고 말했다. 그는 "기수 열외 같은 분위기도 있었다"고 설명하면서 "지금은 좀 나아졌지만 아직도 말을 안 하거나 인사를 받아주지 않는 기존 기자들도 많다"고 했다.

그는 또 "선후배 호칭을 피해 '기자님'이라 부르기도 한다"며 "기존 기자끼리 술자리를 가지면 아마 경력 기자들 욕을 하지 않겠나..."라고 말하기도 했다. 또 다른 경력 기자도 "아직까지도 경력 기자에 대한 편견과 비아냥이 있는 게 사실"이라고 전했다.

지난 2010년 4월 7일 오후 여의도 MBC본사에서 열린 전 조합원 총파업 집회에서 'MBC를 지키고 싶습니다'는 구호가 적힌 흰수건을 든 노조원들이 '청와대 직할통지 저지' '김재철 사장 퇴진' 구호를 외치고 있다.
 지난 2010년 4월 7일 오후 여의도 MBC본사에서 열린 전 조합원 총파업 집회에서 'MBC를 지키고 싶습니다'는 구호가 적힌 흰수건을 든 노조원들이 '청와대 직할통지 저지' '김재철 사장 퇴진' 구호를 외치고 있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자성의 목소리] "완벽히 적으로 돌리진 말았어야"

문제는 단순한 갈등 구조를 넘어 기자윤리에 대한 책임감과 인간관계 요소까지 뒤엉켜있었다. 다음은 그 번민을 잘 보여주는 한 기존 기자의 사례다.

"하루는 대여섯 명이 같이 야근을 하는데, 마침 경력 기자가 한 명 있었다. 책상을 두고 등져 앉아있는데 그날따라 누가 야식을 사와 책상 위에 놓는 것이었다. 그럼 보통은 당연히 같이 먹자고 하지 않겠나. 근데 그 순간 이걸 먹으라고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 되더라.

고심 끝에 먹자고는 했다. 하지만 비슷한 상황이라면 그냥 얘기 안 하고 끼리끼리 먹었을 기존 기자들도 많았을 거다. 그게 대개의 분위기였다. 그러면 그 경력 기자 심정은 어떻겠나. 인간적으로 함께 어울리고 싶겠나. 그런데 그렇게 또 같이 먹다 보면 분위기가 좋아지게 되기 마련 아닌가. 그러면 또 어떤 생각이 드냐면, 공정방송 외치고 같이 싸웠던 다른 동료·선후배들이 또 불편해하지 않을까, 속으로 이러는 거다. 휴..."

일부 기존 기자들 쪽에서는 경력 기자들에 대한 지나친 배척이 MBC 내부 투쟁에 있어 전략적으로나 인간적으로 성숙하지 못했던 것 아니냐는 자성의 목소리도 나왔다. 화살의 방향이 사측에 집중됐어야 했다는 분석도 있었다.

한 기존 기자는 "뽑는 사람을 욕해야지 들어오는 사람을 욕하면 안 되는 거 아니냐, 이런 성찰이 부족했다"며 "경력 기자들에 대해선 두 팔 벌려 환영하진 않더라도 최소한 우리(기존 기자)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했어야 했다. 완벽히 적으로 돌리진 말았어야 했다"고 돌아봤다. 그러면서도 그는 "지금 와서 결과적으로 생각하니까 그렇다는 거지, 존경하던 선배들 해직된 것 생각하면 그러기는 어려웠다. 이렇게 상황이 장기화될 줄도 몰랐고..."라고 말끝을 흐렸다.

일각에선 MBC 내부의 갈등을 '기존 기자-경력기자'간 갈등 구도로 단순화시키는 시각에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파업 이후 상당한 시간이 지나면서 같은 기존·경력 기자라고 해도 실상 워낙 다양한 구성원들이 공존해 하나의 통일된 여론으로 분류하기엔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다.

한 기존 기자는 "경력 기자라고 싸잡아서 비판하는 것은 조심스러운 면이 있다"면서 "부당한 보도 지시에 저항하고 거부하다 쫓겨나거나 낮은 인사 평가를 받은 경력 기자들도 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기존 기자도 "경력 기자 중에서도 기자로서의 양심이나 자존감, 윤리의식을 지킨다는 생각을 가진 이들이 있는데 '도매'식으로 하나로 묶어서 바라보니 상처받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어느 기존 기자는 또 "함께 일하던 기존 기자들 중에서도 2012년 파업에 참가하지 않고 경영진 쪽에 가까이 붙어있는 사람들이 있다"며 기존 기자들 내 분열 양상을 들춰내기도 했다. 한 경력 기자도 "(MBC)밖에서 볼 땐 공채·경력·시용 이런 식의 구분이 편할지 모르겠지만, 꼭 그렇게 볼 수만은 없는 문제"라며 "경력 기자들 중에도 부끄러워하거나 괴로워하는 사람들도 존재하고, 개별 감수성의 문제도 있다. 그 결이 매우 다양하다는 거다. 매우 복잡한 문제"라고 봤다.

[다시, 저널리즘] "경영진 교체·해직자 복직이 먼저"

이토록 복잡하게 분열된 MBC가 다시 한목소리로 시청자들과 소통할 수 있을까.

인터뷰에 응한 대부분의 MBC 기자들은 내부 분열의 통합책을 묻는 질문에 한숨을 쉬거나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묘안을 내놓지 못했다. 그만큼 골이 깊다는 의미였다. "아직 그럴만한 분위기가 아니다"는 반응에서부터 "대화로 풀릴 문제였으면 애초에 더 일찍 했어야 했다"는 비관적인 전망도 있었다.

그러면서도 기자들은 MBC 경영진의 교체와 해직 언론인들의 복직과 같은 변화의 계기가 먼저 마련된다면 장기적인 통합도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조심스런 예상도 함께 내놓았다.

한 기존 기자는 "회사가 친목회도 아닌데 일은 함께해야 하지 않겠느냐"면서 "그러려면 먼저 지금 MBC 보도를 책임지는 수뇌부들은 청산돼야 한다"고 말했다. 다른 기자들도 "경영진의 변화가 가장 시급하다", "MBC의 주된 적폐는 경영진"이라고 쏟아내는 등 경영진의 쇄신이 선행돼야 한다는 데에 입을 모았다.

강지웅·박성제·박성호·이용마·정영하·최승호 등 MBC 해직 언론인들의 복귀가 국면 전환의 단초가 될 수 있다는 의견도 공통적으로 나왔다. 한 기존 기자는 "해직자들의 복직이 MBC 정상화의 상징적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했다. 한 경력 기자도 "MBC 해직언론인들이 다 복직해 돌아오면 분위기도 많이 바뀌지 않겠나"라며 "그들이 아직도 돌아오지 못한 데에 대한 죄의식과 죄책감으로 기존 기자들이 마음을 못 여는 경우도 많다고 본다"고 말했다.

단, 이들은 공히 향후 MBC 내부 통합의 단서조항을 달았다. 통합에도 기본적인 원칙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들이 내놓은 원칙은 다름 아닌 '저널리즘'이었다. 다음은 한 기자의 말이다.

"지난 몇 년간 MBC 뉴스의 편파, 왜곡 보도에 가담한 일부 기자들은 그들이 제작한 뉴스, 그들이 쓴 기사에 대해 냉정하게 평가받고, 스스로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 반복적인 편파, 왜곡 보도로 저널리스트로서 갖춰야 할 기본적인 균형감과 능력, 윤리 의식이 부족하다는 사실이 확인된다면 공영방송의 언론인으로서 계속 일하기 곤란하다고 본다."

26기 이하 MBC 기자들의 제작거부 첫날인 지난 2012년 1월 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MBC본사 5층 보도국에서 보도본부장과 국장의 사퇴를 촉구하며 침묵시위를 벌인 기자들이 로비로 이동, 침묵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26기 이하 MBC 기자들의 제작거부 첫날인 지난 2012년 1월 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MBC본사 5층 보도국에서 보도본부장과 국장의 사퇴를 촉구하며 침묵시위를 벌인 기자들이 로비로 이동, 침묵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 이정민

관련사진보기


인터뷰한 대부분의 기자들은 "그냥 나가라는 식의 단순한 보복은 유치하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동시에 '저널리즘의 원칙'을 저버린 이들과 함께 일하기는 힘들지 않겠냐고 반문했다. '언론 농단', '어용 기자', '척결', '단죄'와 같은 강경한 단어들도 나왔다. 통합에 앞서 정당한 책임 추궁과 정리가 필요하다는 것이 요였다. 그들의 표정은 복잡해 보이면서도 단호했다.

새 정부의 사회 개혁이 연일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공영방송 MBC는 곪은 속살을 치유하고  예전의 위상을 되찾을 수 있을까. 언론 개혁을 기대하는 많은 이들의 시선이 MBC를 향해 있다.


태그:#MBC, #공영방송, #경력 기자, #언론, #해직 기자
댓글8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