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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5월 17일 새벽, 강남 한 상가 화장실에서 20대 여성이 30대 남성에게 살해당했습니다. "평소 여자들이 나를 무시해서 죽였다"는 게 살인의 이유였습니다. 강남역 10번 출구는 이 애석한 죽음을 애도하기 위한 사람들로 가득 찼고, 추모의 글과 '나는 우연히 살아남았다'는 문구들이 적힌 포스트잇이 나붙었습니다. 그 후 1년, 2017년의 대한민국은 무엇이 바뀌었을까요? 강남역 여성 살인 사건 1주기를 맞아 이 사건의 의미를 되새겨봅니다. [편집자말]
내가 교사로 근무하는 학교는 흔히 말하는 '어려운 지역'에 있다. 학생 중 기초생활수급대상자와 차상위계층의 비율이 높고, 가정에서 제대로 돌봄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넉넉지 않은 형편보다 더 안타까운 것은 다친 마음이다. 못다 한 숙제나 멀어진 친구보다 큰 걱정을 몰라야 할 나이에, 이미 세상의 근심을 다 알아버린 표정을 짓는 아이들이 적지 않다.

아이들이 교실에 있는 동안 최선을 다해 빈 곳을 채워주려 노력한들, 집으로 돌아가면 가정의 상황은 그대로임을 어찌할 수 없어 무력감이 들 때도 있다. 교육으로 가정환경의 한계를 극복한다는 것은 어쩌면 기적에 가까운 일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기적은 때때로, 생각보다 꽤 자주 일어난다. 다른 아이와 어깨만 스쳐도 분노를 터트리며 주먹질을 하던 아이가 먼저 사과를 하는 모습도 보고, 모자를 깊이 눌러쓰고 불러도 대답은커녕 눈조차 마주치지 않던 아이가 아침에 와서 웃으며 인사를 하는 모습도 본다. 물론 조금 달라지는가 싶더니 제자리인 경우도 많고, 교사의 노력과 진심이 이렇다 할 결과를 낳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는 더 많다. 그럼에도 교육으로 인한 변화는 결코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이 일이 사막에 나무를 심는 일과 비슷하다고 느낄 때가 있다. 싹이 틀지 않을지 알지 못하면서도 다만 꾸준히 씨를 뿌리는 일. 내 노력이 무의미하지 않다고 굳게 믿되, 섣불리 낙관하지도 쉽게 실망하지도 않는 일. 굳은 심지가 필요한 일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현실을 냉정하게 직시할 수 있어야 하는 일이다.

'성평등'한 교육을 위해 선생님들이 모였다 

 18일 오후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에는 지난 17일 새벽 노래방 화장실에서 발생한 '강남역 살인' 피해 여성을 추모하는 인파가 몰리고 있다. 추모를 위해 강남역을 찾은 시민들은 추모의 글을 적은 메모지를 붙히거나 헌화를 했다.
 강남역 여성살인사건이 일어난 다음날인 2016년 5월 18일 오후,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에는 지난 17일 새벽 노래방 화장실에서 발생한 '강남역 살인' 피해 여성을 추모하는 인파가 몰리고 있다. 추모를 위해 강남역을 찾은 시민들은 추모의 글을 적은 메모지를 붙히거나 헌화를 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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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역 한복판에서 한 여성이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무참히 살해되었을 때, 나에게 일어난 일이 바로 그것이었다. 마침내 현실을 냉정하게 직시하게 된 것이다. 여성이 아직도 차별받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게까지 심각한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설령 차별이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나와는 크게 상관없는 일이라고 여겼다. 누구나 능력만 있다면 차별을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여기가 울창한 삼림은 아닐지라도 햇볕 내리쬐는 풀밭쯤은 된다고, 적어도 나는 서늘한 나무 그늘 아래 앉아있는 거라고 믿었다. 착각이었다. 내가 서 있는 이곳은 줄곧 사막이었음이 이제야 두 눈에 들어왔다. 

나 혼자만의 변화는 아니었다. Yourlife(@hs_abab) 선생님의 주도로, 서로 얼굴 한 번 본 적 없지만 같은 문제의식을 나누는 선생님들이 '초등성평등연구회'의 이름으로 모였다. 주말이면 모여 몇 시간씩 토론하며 성평등한 교육의 방향을 고민하고 수업 자료를 개발했다.

아이들의 변화로부터 느끼는 희망과, 어른들의 편견과 아집으로부터 느끼는 좌절이 수없이 교차하는 과정이었다. 여성과 남성의 차이가 그렇게 크지 않다는 것, 여자다움과 남자다움의 기준이 성별을 막론하고 모두에게 폭력적이라는 것, 타인을 성적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인간으로 대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것, 현실에 존재하는 차별에 맞서야 진정한 정의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을, 아이들은 금세 스스로 발견하고 자신의 언어로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그동안 우리는 초등성평등연구회의 수업에 대한 글마다 맥락도 없이 쏟아지는 '우리나라에 성차별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말과 '여성이 임금과 승진에 차별을 받고 폭력에 노출되는 것은 당연하고 어쩔 수 없는 일이다'라는 말에 동시에 맞서 싸워야 했다. 

그 모든 답답함에도 불구하고, 연구회 활동은 나에게 힘을 주는 일이었다. 연일 보도되는 여성 대상 폭력이나 미디어에서부터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만연한 차별과 혐오의 언어들에 지치고 화가 날 때면, 지금과는 다른 미래를 위해 미약하게나마 노력을 보태고 있다는 사실이 위안이 되었다. 그렇게 매일을 분주하게 보내다 보니 어느새 1년이 흘렀다.

그럼에도, 나는 희망을 가질 것이다

피켓을 들고 행진하는 추모행진 참가자들 강남역 10번출구 추모행진 참가자들이 피켓을 들고 사건이 일어난 건물쪽으로 행진하고 있다.
▲ 피켓을 들고 행진하는 추모행진 참가자들 지난 17일, 강남역 10번출구 추모행진 참가자들이 피켓을 들고 사건이 일어난 건물쪽으로 행진하고 있다.
ⓒ 장성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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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아직도 두렵다. 연구회 활동을 통해 용기를 얻고 많이 단단해졌는데도 그렇다. 두려운 마음은 1년 전 강남역 여성 살인 사건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와 비교해 조금도 줄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커졌다. 이제 나는 나 자신만 두려운 것이 아니라, 우리 아이들의 미래 역시 두려워서였다.

삶이 각박해질수록 모든 분노와 위협이 약자에게로 향하는 이 사회에서, 우리 아이들이 약자로써 매일을 헤쳐 나가야 한다는 것이 두렵다. 여학생들이 대중문화를 통해 전달되는 성적 대상화의 기제에 기꺼이 순응하는 것이 두렵고, 남학생들이 폭력적인 차별과 혐오의 언어들을 배워 되풀이하는 것이 두렵다. 우리 아이들이 성범죄의 책임을 피해자에게 전가하는 사고방식에 물드는 것이 두렵다. 무엇보다도 우리 세대가 우리 아이들 세대에게 어떤 세상을 물려주게 될지, 우리 아이들이 앞으로 어떤 세상을 만들어가게 될지가 두렵다.

그러나 나는 두려워하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현실을 직시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갖기. 그것이 내가 하는 일의 핵심일 뿐 아니라, 우리 모두가 살아가는 방식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희망을 가질 것이다. 밑도 끝도 없는 낙관은 아니다. 우리에게는 서로가 있기 때문이다.

5월 17일은 강남역 여성살인사건 1주기였다. 1년 전 두려움과 슬픔으로 강남역 10번 출구를 가득 메웠던 우리는, 다시 광장에 모여 '우리의 두려움은 용기가 되어 돌아왔다'라고 외쳤다. 나에게 용기를 주는 것은 내 옆에 서서 함께 싸우는 다른 이들의 존재다. 우리를 둘러싼 사막에 절망하지 않고, 백 명이 나무를 심고 천 명이 나무를 심을 때, 우리는 마침내 무성한 숲을 일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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