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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오후 정부세종청사 국가보훈처에서 피우진 신임 처장이 취임식에 참석하고 있다.
▲ 취임식장 입장하는 피우진 보훈처장 18일 오후 정부세종청사 국가보훈처에서 피우진 신임 처장이 취임식에 참석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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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는 2017년 5월 17일, 신임 보훈처장에 피우진 예비역 중령을 임명했다. 청와대는 이 인선과 관련하여 "평생을 남성 군인들도 감당하기 어려운 길에서 스스로의 힘으로 유리 천장을 뚫고 여성이 처음 가는 길을 개척해왔으며, 부당한 전역조치에 맞서 싸워 다시 군에 복귀함으로써 여성은 물론 국민들에게 감동을 주었다"고 평가하며 "국민의 마음을 모으지 못했던 국가보훈처가 신임 보훈처장의 임명으로 국민과 함께하는 보훈처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는 보도자료를 냈다.

피우진 보훈처장의 군 경력은 원칙에 충실했다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1979년 육군 소위로 임관한 피 보훈처장은 특전사 중대장을 거쳐 육군 항공병과에서의 조종과정을 수료하며 헬기 조종사가 되었다. 남녀 차별의 부당함이 제도적, 의식적으로 존재하던 한국군에서 피 처장의 성실함과 원칙을 중시하는 태도는 본인뿐 아니라 이후 후배 여군들이 군대내에서 안정된 입지를 확보하는데 큰 힘이 되었다.

특히 피 처장은 부당한 퇴역명령을 받고, 국방부를 상대로 제기한 복직소송에 승소하여 복직판결을 이끌어냈다. 이 소송은 피 처장 개인의 승리를 넘어 국방부의 군인사법시행규칙 개정으로 이어져 심신장애등급을 받은 군인이라도 심사를 거쳐 계속 복무할 수 있도록 하였다. 복직 후 계급정년을 채우고 전역한 피 처장은 지속적으로 여군의 지위향상과 인권분야에서의 활동을 지속했고, 문재인 캠프 여성정책 자문그룹 '여성의 힘'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은 피 처장의 군경력이나 삶의 모습 때문에 피 처장의 임명은 각계각층의 환영과 찬사를 받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질문을 던져보고자 한다.

첫 번째 질문은 "전두환 정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이다. 2008년 3월 창당한 진보신당은 비례대표 후보 3번으로 피 처장을 지명했다. 당시 이를 두고 진보신당 내에서는 논란이 있었다. 복직 소송 중인 영관급 군인이 진보정당의 후보가 되는 것이 적합한가와 같은 적합성의 문제 뿐 아니라, 그의 경력 중 80년 특전사 복무 경력이 문제가 된 것이다.

민중의 소리 기사에 따르면, (http://www.vop.co.kr/A00000199657.html) 당시 피 후보는 특전사 복무 시기가 "80년 7월부터 81년 6월"까지라고 해명함으로써 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하지만 이어진 "전두환 정권에 대한 문제의식은 없었냐?"는 질문에 그는 "우리는(군대에서는) 잘 몰랐다"고 말했고, "지금은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그는 "대답하기가 대단히 난해한 문제"라고만 답변했다.

전두환 정권 하에서 군인으로 복무하는 동안, 문제의식이 없었다는 대답에 그를 비난하기는 어렵다. 당시 언론과 표현의 자유가 억압당한 한국 사회에서 민간과 분리되어 초년생 장교로서 군생활을 해야 했던 군인에게 그런 의식을 바라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특히 군인으로서 국가가 마땅히 보장해야 할 제도적인 차원의 평등도 제대로 보장 받지 못했던 피 처장의 한계를 고려하면,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2008년 당시 전두환 정권에 대한 평가 문제는 다른 문제이다. 1997년 대법원이 전두환과 노태우에 대해 "반란수괴, 반란모의참여, 반란중요임무종사, 불법진퇴, 초병살해, 내란수괴, 내란모의참여, 내란중요임무종사, 내란목적살인" 등에 대해 유죄를 확정 판결했다. 그리고 이 판결을 기점으로 우리 정부는 물론, 시민사회 더 나아가 군대의 입장에서도 전두환은 국가에 대해 반란을 일으키고 광주에서 시민을 학살한 책임이 있는 존재로 규정한다. 피 보훈처장의 10년 전 대답은, 이 판결로부터 10년이 지난 시점에 진보정당의 국회의원 후보가 한 말이라고는 상상하기 어려운 대답이었다.

또 다시 10년이 지난 오늘 피 보훈처장은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했다. 그리고 전날 인터뷰에서의 약속대로 씩씩하게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다. 필경 10년 전에는 대답하기 대단히 난해했던 문제에 대한 답을 오늘 행동으로 보여준 것이다.

보훈처의 어깨는 무겁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 동안 재임한 박승춘 전임 보훈처장은 전두환의 경호실장 출신이다.  박 전 처장은 민주화 세력을 종북으로 모는 '호국 보훈 교육자료'를 배포(2012년) 하고, 5.18 기념곡인 "임을 위한 행진곡" 정식 지정을 반대하기 위해 보도자료를 배포(2015년)하는 등 극우보수적 색채를 드러냈다.

심지어 2016년 6월, 6.25기념 행사로 공수부대의 금남로 행진을 계획하기도 했다. 이러한 결과 같은해 6월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정의당 3당이 공조해 국회 과반인 의원 166명의 서명으로 '국가보훈처장(박승춘) 해임 촉구 결의안'을 국회에 제출하기까지 했다. 박 전 처장은 재임기간 동안 보훈처의 이름으로 사회에 불필요한 갈등을 유발하고, 국가보훈처의 공식 예우 보상 대상자인 5.18민주유공자와 그 관계자들 그리고 국민들에게 실망과 상처를 준 것이다.

청와대가 신임 보훈처장에게 기대하는 "국민의 마음을 모으는" 첫 작업은 광주에서 시작해야 할 것이며, 신임 보훈처장의 첫 공식 행사가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이라는 것 역시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다. 조금 더 욕심을 내어 10년 전에는 대답하기 어려웠던 문제에 대해 구체적으로 선언하고, 표현해주기를 기대해본다.

두 번째 질문은 "최초의 여성헬기조종사입니까"다. 피 보훈처장의 임명과 관련해 언론에 가장 자주 등장한 표현이 바로 "최초의 여성헬기조종사"라는 단어이다. "최초"라는 단어는 개인의 도전정신과 개척정신을 설명하기에 아주 유용한 단어이다. 더 나아가 언론과 세인의 관심을 잡아두는데도 더할 나위 없이 편리한 단어이기도 하다. 하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피우진 보훈처장은 "최초의 여성헬기조종사"가 아니다.

이에 대해서는 이미 2006년 오마이뉴스 기사로 보도된 바 있다. 그 당시 인터뷰를 통해 피 보훈처장 역시 본인이 제1호 여성헬기조종사가 아님을 인지하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는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헬기조종사로 불리고 있다.

유감스럽게도 언론이나 세간의 표현만이 그러한 게 아니라 그 스스로도 "최초의 여성헬기조종사"라는 표현을 썼다. 그는 복직 소송 중 인터넷매체 '가톨릭 뉴스 지금 여기'와의 인터뷰에서도 "1981년부터는 국내 최초 여성 헬기 조종사로 조종간을 잡는 그 매순간을 군인으로 살았고"라고 말했으며, 이후 진보신당 비례 후보 프로필에서도 "대한민국 최초의 여군헬기조종사"라는 표현을 발견할 수 있다.

'최초'라는 것이 가지는 상징성은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그 상징성을 통해 피 보훈처장을 바라보는 사람들도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피 보훈처장은 최초의 여성헬기조종사라는 타이틀이 없더라도 충분히 훌륭한 삶을 살아온 인물이고, 현재 보훈처장의 직위를 수행하는데 누구보다도 적합한 커리어를 가지고 있다. 이 문제 제기를 계기로 피 보훈처장이 "최초의 여성 헬기조종사"라고 하는 타이틀을 원 소유주인 김복선 예비역 대위에게 돌려주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청와대의 보훈처장 인선에 대해 박수를 보낸다. 매우 적절한 임명이었다. 위에 던진 두 가지 질문은 피 보훈처장의 적합성을 부정하거나 도덕성에 상처를 내기 위한 것이 아니다. 여느 공직 인사에서도 따라올 수준의 의문제기다. 공직자로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피 보훈처장이 잘 마무리를 하고 청와대와 국민의 바람대로 국민과 함께 하는 보훈처를 만들어주기를 기대한다.


태그:#피우진, #보훈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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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s a basic truth of the human condition that everybody lies. The only variable is about wha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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