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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전남 곡성 세계장미축제장입니다. 축제는 이번 주말부터 시작합니다.
 전남 곡성 세계장미축제장입니다. 축제는 이번 주말부터 시작합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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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우리 장미 보러 가요?"

또 봄입니다. 그리고 5월입니다. 어김없이 장미가 그립나 봅니다. 어디로 가자고 말하지 않아도 압니다. 뻔하니까요. 세계장미축제가 열리는 전남 곡성입니다. 아내가 장미 보러 가자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나이 먹으니 그냥 꽃이 좋아요."

업고 살아도 부족한 아내인지라 흔쾌히 동의했습니다. 아내, 흥얼거리며 물과 과일 등을 챙깁니다. 나들이에 밋밋한 고속도로보다 아기자기함이 깃든 국도를 달립니다. 아내, 운전하는 남편의 지루함을 달래주려는 듯 재밌는 이야기를 풀어놓습니다.

어째야 쓰까? 딸을 도둑으로 만든 엄마였다니...

앵두입니다. 왜 앵두같은 입술이라 하는지 알겠더군요...
 앵두입니다. 왜 앵두같은 입술이라 하는지 알겠더군요...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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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앵두 엄청 좋아하잖아. 하루는 같이 일하는 직원이 시장에서 앵두를 싹쓸이로 사왔더라고. 그리곤 다른 사람은 손도 대지 마라면서 나만 먹으라는 거야. 다른 사람은 내가 다 먹은 후 앵두가 남으면 그때 먹으라나. 같이 나눠먹으면서도, 고맙고 행복하대. 그런 날도 있었는데…."

재밌는 이야기보다는 맛있는 이야기였습니다. 이야기 듣고 나니 찔리더군요. 언젠가, 지인 집에 갔다가 나무가 휘어지도록 달린 앵두를 따 먹었던 기억이 단 한 차례뿐. 사 준 적은 없네요. 아내가 앵두를 그토록 좋아하는지 미처 몰랐네요. 그래도 앵두 좋아하는 줄 알고 앵두를 원 없이 사 준 사람이 있었다니 다행이었습지요. 아내, 구깃구깃 꼬불쳐 뒀던 이야기를 하나 더 꺼내대요.

"대학 다니는 딸 하는 말이 친구들이 아직도 그때 재밌었다고 기억한대. 딸 초딩 때 딸 친구들과 우리 아파트 옆 동네에 놀러 갔는데, 어느 집 담장 안에 탐스러운 앵두가 주렁주렁 달렸더라고. 아이들에게 담에 올라가 앵두를 따오라 시켰어. 겁내면서도 재밌게 잘 따대. 앵두는 그렇게 먹어야 맛있어."

살다 살다 별일 다 보네요. 귀를 의심했습니다. 딸과 딸 친구들에게 서리의 쾌감을 알려주려는 의도였겠지만 요즘 세상에 있을 법한 일입니까. 아내, 딸을 도둑으로 만든 그런 엄마였다니 믿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 치죠. 구례에서 곡성 방면으로 접어들 즈음, 아내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앵두가 씹히는 달콤함이란? 짐짓 칭찬을 기대했습니다

도로가에 앵두가 주렁주렁 달렸습디다. 길가인데도 손을 타지 않았더군요. 손이 부족한 탓일까?
 도로가에 앵두가 주렁주렁 달렸습디다. 길가인데도 손을 타지 않았더군요. 손이 부족한 탓일까?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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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세워. 당신 길가에 주렁주렁 달린 앵두 봤어요?"

차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아내의 얼굴을 살폈습니다. 앵두를 따기도 전에 벌써부터 행복감에 취해 있었습니다.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앵두를 발견한 황재수를 만끽하는 순간 아니었을까. 아내, 차에서 내리더니 팽팽 걸음으로 길가의 앵두나무에게로 향했습니다. 어쩐 일일까. 바로 터덜터덜 돌아왔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

"키가 안 닿아요. 당신이 좀 따요."
"허허, 딸에 이어 남편까지 도둑 만들려고? 싫어. 어서 타. 장미 보러 가게."
"차 안 타. 혼자 가."

농담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단호했습니다. 결단코 볼 수 없었던 모습이었습니다. 간이 배 밖으로 나왔나 싶었습니다. 난감했습니다. 딸 친구들이 지금까지도 앵두 따던 때 이야길 한다는데 생각이 미쳤습니다. 그래,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는데 산 사람 소원이라니 했습니다. 업고 살아도 모자랄 여인의 소원, 한 번쯤 들어주는 게, 한 이불 덮고 사는 남자의 예의거니 했습니다. 마음 비웠습니다.

천천히 차에서 내렸습지요. 터벅터벅 걸었더랬지요. 곱디 고은 앵두가 주렁주렁 달렸습디다. 앵두가 짧은 순간에도 봄 햇살에 반짝반짝 황금빛이 납디다. 황당하게 침이 고이대요. 주위를 살폈네요. 공간이 빈틈을 타 슬며시 손을 뻗었습지요. 어라~, 낭패였습니다. 어쭈구리, 앵두가 잡히지 않았던 게지요. 아내가 터덜터덜 걸어온 이유를 실감했습니다. 허탕이 곧 허무일 줄이야!

자존심이 발동했습니다. 무릎을 구부려 힘차게 뛰어 올랐습니다. 다행입니다. 주렁주렁 달린 앵두 가지 하나가 잡혔습니다. 살며시 꺾었습니다. 의기양양하게 돌아왔습니다. 아내는 웃음을 머금고 반겼습니다. 앵두 가지를 건넸습니다. 차에 탔습니다. 아내가 입에 넣어 준 앵두를 씹었습니다. 앵두가 씹히는 달콤함이란? 그리고 짐짓 칭찬을 기대했습니다.

"어찌 그 많은 앵두 중에 가지하나 달랑 꺾어 오냐."

곡성 장미축제... "그저 꽃을 볼 뿐인데 기분이 좋네요"

장미, 역시 그 원색의 아름다움이란...
 장미, 역시 그 원색의 아름다움이란...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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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성 세계장미축제장입니다. 지난 주말에는 꽃이 덜 피었던데, 이번 주는 활짝 필 것으로 기대됩니다.
 곡성 세계장미축제장입니다. 지난 주말에는 꽃이 덜 피었던데, 이번 주는 활짝 필 것으로 기대됩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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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도 피었더군요.
 연꽃도 피었더군요.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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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성 세계장미축제장에는 차들이 넘쳤습니다. 축제는 오는 19일부터 시작입니다. 축제 전인데도 사람들이 붐비는 걸로 봐선 올해에도 장미축제, 대박 예감입니다. 아직 축제 전인 이유가 있습니다. 장미 피는 시기가 이르기 때문입니다. 축제장 입구에서부터 '화관'을 팔고 있습니다. 여성들 머리에 하나씩 두른 폼이 '공주'와 '여왕' 포즈입니다. 이럴 때라도 공주요, 여왕이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여보, 나 작년에 머리에 썼던 화관 가져올까 하다가 그냥 왔어요. 올해는 안 쓰려고."

꽃을 보니 역시 좋습니다. 장미 종류도 가지가지입니다. 빨간 장미에서부터 흰색, 노란색, 주황색, 보라색 등 다양합니다. 피어나길 기다리는 꽃 봉우리에서부터 활짝 핀 장미까지 저마다 자기만의 아름다움을 뽐내는 듯 머리를 쑥 내민 폼이 참 사랑스럽습니다. 꽃 하나하나가 다 예쁘지만 군락으로 어우러졌을 때가 더 빛나는 것 같습니다.

"우리 나이는 장미로 치면 활짝 핀 꽃쯤 될까?"

아내, 꽃이 핀 상태와 비교해 인간의 나이를 가늠합니다. 앵두에 정신 뺏긴 여인, 장미꽃을 보더니 이제야 제정신으로 돌아 온 듯합니다. 꽃이 핀 정도에 따라 인간의 나이를 대비해 보니 재밌습니다. 꽃이 피기 전 봉오리는 태아기, 살짝 핀 꽃은 유아기, 중간 쯤 피어난 꽃은 청소년기, 활짝 핀 꽃은 중년기, 지는 꽃은 장년기 쯤 되지 않겠어요. 그러고 보니 우리네 삶, 존재가치가 아주 분명합니다.

"그저 꽃을 볼 뿐인데 기분이 좋네요. 고마워요, 여보!"

장미축제장에는 장미뿐 아닙니다. 연못에 고고히 핀 연꽃, 도랑가에 핀 창포, 하늘거리는 꽃양비귀 등…. 삶이라는 연극에서 주연만 있다면 무슨 재미. 장미축제장에서는 조연들마저 빛이 납니다. 조연이 있으니 그만큼 주연이 빛나는 게지요. 아내, 얼굴에 웃음 가득합니다. 고단한 일상 속에서와 달리 환히 핀 아내의 웃음꽃에 덕분에 덩달아 행복합니다. 이렇게 삶의 여유를 되찾습니다. 좋은 마음 가득한 상황에서 집으로 향합니다.

5월 장미는 힐링입니다.
 5월 장미는 힐링입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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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성 세계장미축제장에는 장미뿐아니라 창포까지 덩달아 피었습니다.
 곡성 세계장미축제장에는 장미뿐아니라 창포까지 덩달아 피었습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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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장미는 여유입니다.
 5월 장미는 여유입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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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헤야, 디야! 해탈은 허무와 한 끝 발 차이였습니다

"그 앵두 따러 다시 갈까?"

아내에게 툭 던집니다. 고개 살래살래. 그러나 아쉬운 표정입니다. 아내는 "앵두는 일주일만 지나면 뭉개지고 다 떨어지는데…"라면서도 "집 근처에 있는 앵두 따 먹어야겠다"는 말로 위안 삼습니다. 앵두를 기어코 아내에게 한 아름 안겨야겠다는 다짐뿐. 아내, 옆에서 재잘거립니다.

"일전에 자취하던 집에 앵두 한 그루 있었어요. 5월 이맘때쯤 앵두가 익었지요. 아침마다 앵두 한 사발씩 따 먹는 게 행복이었지요. 어느 날 주인아저씨가 앵두나무를 베었대요. 앵두나무 밑이 더럽다는 이유였어요. 앵두나무 밑은 사람들이 먹고 버린 씨와 떨어진 열매를 밟아 늘 지저분했거든. 그런다고 나무를 베냐? 정말 속상했어요. 이런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죠. 우리 단독으로 이사 가면 앵두와 감나무, 사시사철 피는 꽃은 꼭 심어요."

앵두를 통해 본 해탈과 허무는 한 끝 발 차이였습니다.
 앵두를 통해 본 해탈과 허무는 한 끝 발 차이였습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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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드러진 장미를 본 덕분일까. 아내는 추억 여행 중이었습니다. 잠시나마 아내에게 이런 시간을 줄 수 있었음에 만족했습니다. 그러나 아내에겐 뭔가 부족함을 직감적으로 알아챕니다. 장미 나들이에서 아내를 충족시키기 위한 마지막은 앵두지요. 어떻게 만족시킬까, 고민 중에도 단독으로 이사하면 아내가 원하는 나무는 꼭 심어야지 다짐했습니다. 그때, 아내의 즐거움에 가득 찬 목소리가 터졌습니다.

"저기 앵두다. 차 세워. 당신 봤어? 앵두가 엄청 많네."

헉. 눈이 보배입니다. 앵두를 본 아내 얼굴에는 동자승의 천진난만한 표정이 고스란히 내려앉아 있었습니다. 간절함 속에 맑음까지 포함돼 있는 줄 까마득히 몰랐습니다. 아내는 차 세우기가 무섭게 잽싸게 앵두 쪽으로 내달렸습니다. 이때 처음 알았습니다. 육중한 중년 여인이 나비처럼 살랑거릴 수 있다는 걸. 아내가 멈춰선 곳 아래에는 앵두나무가 서 있었고, 앵두 열매는 손을 뻗으면 따기 적합하게 달려 있었습니다.

어~, 아내가 미소를 띤 채 곧바로 빈손으로 되돌아왔습니다. 의아했습니다. 앵두를 기어코 따먹어야 직성이 풀릴 간절한 욕망을 어떻게 이겼을꼬? 인간의 탐욕을 넘어선 아내가 대단하게 여겨졌습니다. 먹을 것 앞에서 참을 수 있는, 도가 통했나 했습니다. 아내가 해탈한 고승처럼 고고하게 보였습니다. 득도의 원인을 알아봐야 했습니다. 아내에게 그냥 되돌아 온 이유를 물었습니다.

"앵두 따서 가득 담을 봉투 가지러 왔어요."

에~헤~야~~, 디~야!!! 해탈은 허무와 한 끝 발 차이였습니다.

장미는 순백의 아름다움까지 간직하고 있습니다.
 장미는 순백의 아름다움까지 간직하고 있습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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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의 여왕, 장미는 천상의 아름다움입니다.
 5월의 여왕, 장미는 천상의 아름다움입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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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성, 흐드러진 장미가 유혹합니다.
 곡성, 흐드러진 장미가 유혹합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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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제 SNS에도 올릴 예정입니다.



태그:#곡성 세계장미축제, #앵두, #해탈과 허무, #엄마,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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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힐 수 있는 우리네 세상살이의 소소한 이야기와 목소리를 통해 삶의 향기와 방향을 찾았으면... 현재 소셜 디자이너 대표 및 프리랜서로 자유롭고 아름다운 '삶 여행'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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