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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량해전에서 전사한 이순신 장군의 유해가 처음 안치됐던 고금도 월송대. 장군의 유해는 여기에 80여 일 동안 안장됐다가 아산으로 옮겨졌다.
 노량해전에서 전사한 이순신 장군의 유해가 처음 안치됐던 고금도 월송대. 장군의 유해는 여기에 80여 일 동안 안장됐다가 아산으로 옮겨졌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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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강진 가우도에 들렀다가 마량항에서 대교를 건넌다. 고금도다. 강진에서 다리로 연결되지만, 행정구역은 완도군에 속한다. 올해 신지도와 잇는 장보고대교가 개통되면 완도읍과도 가까워질 섬이다.

고금도는 정유재란 때 목포 고하도에서 전열을 정비한 이순신 장군이 본영을 설치하고 명나라 수군과 연합군을 이뤄 일본군에 맞섰던 곳이다. 조선수군의 마지막 본영이었다. 이순신 장군은 여기서 수군을 이끌고 노량으로 나아갔다.

1598년 11월 19일 노량해전에서 도망치는 일본군을 쫓다가 일격을 당한 이순신 장군의 유해가 옮겨진 곳도 고금도였다. 장군의 유해는 고금도의 북서쪽 덕동리 야산에 80여 일 동안 안장됐다. 이듬해에 충남 아산으로 옮겨졌다. 이순신 장군의 유해를 급하게 안장했던 터가 월송대다.

이순신 장군의 주검이 처음 안치됐던 월송대. 가운데 풀이 나지 않는 부분이 장군의 주검 자리라고.
 이순신 장군의 주검이 처음 안치됐던 월송대. 가운데 풀이 나지 않는 부분이 장군의 주검 자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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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금도 충무사로 들어가는 길. 연둣빛 물을 머금은 후박나무가 우거져 있어 풍경이 아름답다.
 고금도 충무사로 들어가는 길. 연둣빛 물을 머금은 후박나무가 우거져 있어 풍경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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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송대는 생전의 이순신 장군이 밤이면 깊은 생각에 잠기곤 했던 바닷가의 작은 동산이다. 소나무 사이로 달이 비춘다고 '월송대'라 이름 붙었다.

이순신 장군의 주검이 안치됐던 월송대에는 지금도 풀이 자라지 않는다. 소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는 땅이지만, 풀이 없다. 겉보기에 맨땅이나 진배없다. 아주 오래전부터 그랬다고 전해진다. 주민들은 이순신 장군의 기개가 서려 있어 풀이 자라지 않는다고 믿고 있다.

이순신 장군의 영정을 모시고 있는 고금도 충무사. 해마다 4월 28일에 탄신제를, 11월 19일엔 순국제를 지내고 있다.
 이순신 장군의 영정을 모시고 있는 고금도 충무사. 해마다 4월 28일에 탄신제를, 11월 19일엔 순국제를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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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사에서 만나는 전진도첩. 당시 조선수군의 해상전투 대형을 그린 그림이다. 이순신 장군이 직접 구상하고 실전에 활용했다고 전해진다.
 충무사에서 만나는 전진도첩. 당시 조선수군의 해상전투 대형을 그린 그림이다. 이순신 장군이 직접 구상하고 실전에 활용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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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송대에서 내려와 녹음이 우거진 후박나무 숲을 지나면 이순신 장군을 기리는 사당 충무사와 만난다. 충무사는 이순신 장군과 함께 정유재란 당시 가리포진(완도) 첨사였던 이영남 장군의 신위를 모시고 있다. 해마다 4월 28일에 탄신제를, 11월 19일엔 순국제를 지내고 있다.

충무사에는 당시 조선수군의 해상전투 대형을 그림으로 그려놓은 전진도첩(戰陣圖帖)이 전시돼 있다. 모사본이지만 전라우수영의 군사 조직과 운영 실태를 엿볼 수 있는 그림이다. 전진도첩은 해전 진법으로 이순신 장군이 직접 만들고 실전에 활용했다고 전해진다. 진본은 아산 현충사 유물관에 있다.

이순신과 조선 수군의 흔적들

당시 조선수군들이 먹는 물로 썼다는 우물의 흔적. 최근 재현해 놓았다.
 당시 조선수군들이 먹는 물로 썼다는 우물의 흔적. 최근 재현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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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사에 세워진 관왕묘비. 노량해전 때 이순신과 함께 조·명 연합군을 꾸렸던 명나라 진린 장군이 이순신 장군의 전사를 애석히 여기고 피를 토하며 돌아갔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충무사에 세워진 관왕묘비. 노량해전 때 이순신과 함께 조·명 연합군을 꾸렸던 명나라 진린 장군이 이순신 장군의 전사를 애석히 여기고 피를 토하며 돌아갔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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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사와 월송대 인근에는 당시 조선 수군들이 먹는 물로 썼다는 우물의 흔적도 남아있다. 그 자리에 우물을 재현해놨다. 관왕묘비도 한쪽에 있다. 노량해전 때 이순신과 함께 조·명 연합군을 꾸렸던 명나라 진린 장군이 이순신 장군의 전사를 애석히 여기고 피를 토하며 돌아갔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관왕묘비에 대한 일화도 전해진다. 일제강점기 고금주재소 순사부장이 관왕묘비를 철거하려 하자, 지역의 유림들이 앞을 막아섰다. 하지만 순사부장은 유림들을 제치고 도끼로 관왕묘비를 내리쳤다. 관왕묘비는 끄덕하지 않고, 대신 순사부장이 즉사했다는 이야기다.

충무사를 둘러싼 숲속 산책로. 연둣빛 작은 꽃을 피운 후박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충무사를 둘러싼 숲속 산책로. 연둣빛 작은 꽃을 피운 후박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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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사를 둘러싸고 있는 산책로. 군락을 이룬 후박나무가 산책로를 더 멋스럽게 해준다.
 충무사를 둘러싸고 있는 산책로. 군락을 이룬 후박나무가 산책로를 더 멋스럽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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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사를 둘러싼 숲속 산책로가 예쁘다. 연둣빛 작은 꽃을 피운 후박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충무사 바로 앞은 바다다. 정유재란 때 이 바다를 누비며 일본군을 물리친 이순신 장군의 기개를 떠올릴 수 있다.

충무사와 월송대가 있는 이 일대는 당시 묘당도에 속했다. 고금도에 딸린 작은 섬이었다. 일제강점기 때 고금도와 묘당도 사이 바다를 매립, 간척지로 만들었다. 주민들은 이순신 장군의 흔적을 지우려는 일제의 술책이었다고 입을 모은다.

해남과 진도 사이 바다 울돌목. 이순신 장군의 명량대첩 현장이다. 13대 133의 신화가 서린 해협이다.
 해남과 진도 사이 바다 울돌목. 이순신 장군의 명량대첩 현장이다. 13대 133의 신화가 서린 해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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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에 있는 충민사. 이순신 장군을 기리는 최초의 사당이다. 아산 현충사, 통영 충렬사보다도 먼저 세워졌다.
 여수에 있는 충민사. 이순신 장군을 기리는 최초의 사당이다. 아산 현충사, 통영 충렬사보다도 먼저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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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장군의 숨결은 완도 외에도 전남도내 곳곳에 살아 숨쉬고 있다. 우수영 앞바다 '명량' 울돌목이 첫손가락에 꼽힌다. 울돌목은 이순신 장군의 명량대첩 현장이다. 13대 133의 신화가 서린 해협이다.

여수에는 진남관과 고소대, 선소 그리고 충민사가 있다. 진남관은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끈 전라좌수영의 본영이었다. 옛 여수성곽의 보루였던 고소대에는 이순신 장군이 군령을 내리던 정자가 있었다. 이순신 장군이 전사한 뒤 세운 타루비와 통제이공수군대첩비가 여기에 있다. 충민사는 이순신 장군을 기리는 첫 번째 사당이다.

구례와 순천은 모함으로 의금부에 투옥됐던 이순신이 풀려나 백의종군했던 지역이다. 조선수군이 칠천량 해전에서 크게 패한 뒤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기용된 이순신 장군이 조선수군 재건의 첫발을 내디딘 곳이기도 하다.

정유재란 당시 보성 고내마을의 조양창 터. 조선수군 재건에 나선 이순신 장군이 군량미를 다량 확보했던 자리다.
 정유재란 당시 보성 고내마을의 조양창 터. 조선수군 재건에 나선 이순신 장군이 군량미를 다량 확보했던 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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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성군청 앞마당에 전시된 열선루의 활주석들. 열선루는 정유재란 때 수군철폐령을 받은 이순신 장군이 '신에게는 아직도 열두 척의 배가 있다'는 장계를 썼던 곳이다.
 보성군청 앞마당에 전시된 열선루의 활주석들. 열선루는 정유재란 때 수군철폐령을 받은 이순신 장군이 '신에게는 아직도 열두 척의 배가 있다'는 장계를 썼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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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성은 조선수군 재건에 나선 이순신 장군이 다량의 군량미를 확보했던 지역이다. 고내마을의 조양창 터와 박곡마을 양산원의 집이었다. 조정의 수군철폐령에 맞서 '신에게는 아직 열두 척의 전선이 있다'는 장계를 쓴 곳이기도 하다.

장흥 회진에서는 이순신 장군이 배설로부터 12척의 전함을 넘겨받았다. 목포 고하도는 명량해전에서 승리를 거둔 이순신 장군이 전열을 다시 가다듬었던 섬이다. 이순신이 수군만호로 처음 부임했던 곳은 고흥 발포였다.

목포 앞의 섬 고하도와 목포대교 전경. 고하도는 명량해전에서 승리를 거둔 이순신 장군이 전열을 다시 가다듬었던 섬이다.
 목포 앞의 섬 고하도와 목포대교 전경. 고하도는 명량해전에서 승리를 거둔 이순신 장군이 전열을 다시 가다듬었던 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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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월송대, #고금도, #묘당도, #이순신, #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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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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