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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과 들에 누가 물을 주지 않고 누가 거름을 나르지 않아도 갓 태어난 연하고 밝은 색깔들이 춤을 추는 이 때에, 사람의 손길이 닿는 곳에 물결이 일렁이는 곳이 있다. 이런 저런 작물들이 천지인의 보살핌을 받고 자라나는 개간된 땅에도, 바람따라 새생명들이 제 몸을 일제히 누이는 물 없는 파도가 펼쳐진다. 한창 청보리밭 축제가 열린 고창 '학원 농장'을 찾았다. 초록의 물결과 대칭을 이루어 함께 넘실대는 노랑의 물결은 뜻하지 않은 덤이었다.

이곳에 방문을 한 단 하나의 이유는 '사진촬영'이었다. 고로, 이 기사 또한 사진과 관련한 내용만 집중적으로 조명할 것이다. 필름의 종류, 감도, 조리개수치, 셔터스피드도 함께 기록하도록 하겠다.

필자는 긴급한 상황을 제외하고는 언제나 필름으로 사진을 촬영한다. 현재 광학적 성능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고, 디지털 센서의 기술 또한 필름을 한참이나 능가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름을 고집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하지만 그 이유들을 모두 이야기할 수는 없고, 딱 두 가지만 이야기하자면, 첫째는 촬영, 스캔, 출력 등에서 자동화되지 않은 많은 부분을 찍는 이가 직접 다룬다는 점, 그리고 둘째는 풀프레임을 넘어서 그보다 5배, 혹은 10배가 넘는 촬상면으로 촬영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날 들고간 카메라는 slr(일안반사식) 구조로 된 67판형의 중형 카메라이다. 67판형이라 함은, 촬영에 사용되는 한 컷의 필름 크기가 60mm * 70mm라는 이야기다. 보통 말하는 풀프레임의 센서는 크롭 센서의 1.6배 정도 된다. 이 풀프레임의 'Full'은 35mm 규격으로 상용화된 필름의 규격을 나타낸다.

67판형은 풀프레임보다 약 4.9배의 촬상면을 가진다. 촬상면의 크기가 달라지면 같은 수치의 초점거리에도 화각이 달라진다. 풀프레임에서의 표준 줌 렌즈는 '24-70mm'가 되고, 크롭바디에서의 표준 줌 렌즈는 '18-55mm'가 되는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67판형에서의 90mm 렌즈는 35mm(풀프레임)규격에서의 50mm 렌즈와 화각이 같다. 촬상면이 커지면 여러 가지 이점이 생긴다. 명암의 계조가 더 부드러워지고 같은 감도라 할지라도 원본의 상이 크기 때문에 입자감이 매우 곱게 느껴진다. 전체적으로 화질이 좋아진다고 생각하면 쉬울 것 같다.

그럼에도 4천만 화소급 카메라의 기계적 성능에 비하면 뚜렷하게 더 낫다는 평가를 받기 힘들다. 하지만 이렇게 불편하고 한계가 있는 아날로그의 필름에 피사체를 담고, 후속 작업을 공들여 하는 것이 참 재미있다. 그렇다. 필름을 고집하는 모든 이유를 종합하여 단 하나의 말로 표현한다면 바로 이것일 것이다. '재미있으니까!'

천막에서 풍기는 고소한 부침개 냄새를 뒤로 하고 농장을 한바퀴 돌았다. 사진을 찍지 않으면 굽이굽이 길을 다 돌아도 1시간 남짓이면 걸을 수 있을만한 규모이다. 삼각대를 세우고 각도를 조정하고 신중히 셔터를 누르면서도 두시간이 채 되지 않아 산책을 마칠 수 있었다. 시간의 순서대로 사진을 배치한다.
Ektar100 / 90mm / F2.8 / 1000분의1초 주차장에서 밭으로 처음 들어서면 보리밭과 유채밭이 반반씩 보인다. 조리개를 조여서 넓게 초점을 맞추는 방식의 사진은 나중에 전망대 위에서 찍기로 하고, 조리개를 최대로 열어서 바로 앞의 보리를 부각시키고 원경을 흐릿하게 처리했다. ⓒ 안사을
Ektar100 / 90mm / F2.8 / 500분의1초 알곡을 수확해야하는 보리밭으로는 들어가면 안된다. 울타리도 쳐있고 경고 문구도 붙어있다. 그런데 유채꽃밭은 그 출입이 자유로운 편이다. 별도의 경고를 해놓지는 않았지만 당연히 지켜야 할 매너는 적절히 지켜야 할 것이다. 역시 낮은 심도를 위해 조리개를 최대로 개방했다. 67판형에서의 2.8이라는 조리개 수치는 풀프레임 기준으로는 약 1.4 정도로 생각하면 될 것 같다. ⓒ 안사을
Ektar100 / 90mm / F16 / 15분의1초 마차가 지나다니는 길을 왼쪽으로 하여 쭉 걷다보면 보리밭을 한 바퀴 돌아서 산책하는 꼴이 된다. 얼추 입구의 반대편 정도가 되면 위와 같은 풍경을 만날 수 있다. 아직은 갸냘픈 소년같지만 시간이 흐르면 더욱 늠름한 나무가 될 것이다. ⓒ 안사을
Ektar100 / 90mm / F11 / 60분의 1초 나무가 있는 풍경에서 조금만 더 걸어가면 입구 쪽에 있던 원두막과 전망대의 윗동만 보인다. 사진에서 보아 알 수 있듯이 입구쪽에서는 이곳을 걷는 이들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울타리를 넘어 소위 말하는 '인생샷'을 찍기 위해 밟혀진 보리 줄기들이 뭉텅이로 쓰러져 있었고, '제발 들어가지 마세요. 정말 수고해서 키운 작물입니다.'라는 호소문이 군데 군데 써 있었다. 씁쓸했다. ⓒ 안사을
Ektar100 / 90mm / F2.8 / 1000분의1초 농장에 도착한 시각이 4시 반 정도. 산책을 하다보니 어느덧 해가 많이 기울어 빛이 비스듬하게 들어오고 있었다. 렌즈 정면을 향하는 빛이 보릿잎을 하얗게 비추고, 그 가운데 유채꽃 한 송이가 피어있다. 따져보면 잡초인 셈인데 함께 커가는 모습이 무언가를 시사하는 듯 했다. ⓒ 안사을
Ektar100 / 45mm / F8 / 125분의 1초 사진에서 보이는 가장 큰 길을 따라 왼쪽으로 한 바퀴를 돌고 전망대 위로 올라와 담은 사진. 보이는 곳 외에도 보리밭이 더 있었으나 관광객에게 개방이 되어있지는 않았다. ⓒ 안사을
Ektar100 / 45mm / F8 / 60분의 1초 전망대에서 내려와 주차장으로 가는 길 고개를 다시 돌려보니 사광으로 들어오는 빛이 청보리에 닿는 각도에 따라 다른 색채를 보여주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담은 사진. 필름 한 롤을 끼우면 총 10컷이 나온다. 한 컷 한 컷을 신중하게 담을 수밖에 없다. 10컷을 찍었고, 7컷을 건졌다. 괜찮은 확률이다. ⓒ 안사을
이곳은 비단 보리와 유채꽃 뿐 아니라, 8월이 되면 해바라기가 일제히 고개를 까딱거리고, 10월이 되면 메밀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다. 따가운 여름날 해바라기를 만나러 이 곳을 다시 찾을 때까지, 푸르디 푸른 저 청보리들이 부디 잘 자라서 실한 알곡이 되기를 마음 모아 바란다.
태그:#고창, #청보리밭, #학원농장, #필름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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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립 대안교육 특성화 고등학교인 '고산고등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필름카메라를 주력기로 사용하며 학생들과의 소통 이야기 및 소소한 여행기를 주로 작성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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