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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절반 이상의 대학생들이 대2병을 앓고 있다.
 한국의 절반 이상의 대학생들이 대2병을 앓고 있다.
ⓒ SBS 스페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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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 2병. 요즘 대학생들 사이에서 급속도로 퍼지고 있는 신종 바이러스다. 평소보다 자신감과 자존감이 떨어지고, 우울해지며 미래에 대한 걱정이 늘어나는 증상이다.

최근 방영된 <SBS 스페셜 대 2병, 학교를 묻다>에서는 젊은이들이 대학 진학 후 삶의 목적을 잃어버린 모습을 인터뷰를 통해 보여주었다. 2년 전 수능 만점을 받고, 서울대 경영학과에 재학 중인 한 학생은 "대학 간 다음에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무엇을 위해서 대학에 가는 건지 알려 주지 않은 우리나라의 교육에 분노했다"고 고백했다.

그동안 수동적인 삶을 강요받아 왔던 젊은이들은 주체적인 삶을 되찾을 수 있을까. 그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4일 <열정에 기름 붓기> 공동대표 이재선씨를 찾아갔다.

열정에 기름붓기 대표 이재선씨도 대학생때 대2병을 앓았다.
 열정에 기름붓기 대표 이재선씨도 대학생때 대2병을 앓았다.
ⓒ 강영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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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입구역 근처 위치한 무인서점에서 그를 만났다. 반짝이는 눈빛과 조리 있는 말에서 자신감과 당당함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도 몇 년 전 대 2병 때문에 힘든 시절을 겪었다.

"사실 대학생 때는 공부에 흥미를 못 느꼈어요. 대학에서 광고홍보를 전공했는데 점수 맞춰서 들어갔거든요. 그러다 보니 매일 선배들 따라다니면서 술 마시고 놀면서 시간을 보낸 것 같아요."

그런 그를 바꾼 건 짧은 질문이었다. 그는 어느 술자리에서 한 선배의 질문을 듣고 충격에 빠졌다.

"술자리에서 선배가 저에게 어떤 카테고리의 사람인지 묻더라고요. 제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잘하는 지를 물은 건데 쉽게 답이 안 떠올랐어요. 20년 넘게 저에 대해 알고 있는 게 전혀 없다는 사실이 좀 부끄럽더라고요. 그때부터 대충대충 살 게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일, 잘하는 일을 하나씩 찾아보자고 다짐했어요."

그는 '두 달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인쇄소 코팅업무, 명동에서 제일 줄이 긴 음식점에서 서빙, 광고 촬영장 스텝, 택배알바. 연기 등 다양한 분야에서 두 달 동안 일을 하면서 자신을 발견해가기 시작했다.

"수십 가지 알바를 하면서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일과 다양한 보람이 존재한다는 것을 느꼈어요. 알바를 하기 전에는 머리로만 판단했지, 자세히는 몰랐거든요. 여러 경험을 할수록 그동안 제가 몰랐던 저의 장단점, 강점, 약점 같은 것들이 하나씩 보이기 시작하더라고요. 이전에 몰랐던 저에 대해서 조금씩 알아가는 느낌이었어요."

그의 진로에 대한 고민은 군대를 제대한 뒤에도 이어졌다. 가슴 뛰는 일이 존재한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었다. 하지만 술자리에서 수없이 꿈과 이상을 이야기하던 오랜 친구들은 조금씩 변해갔다.

"전역하고 나니깐 친구들하고 소통이 잘 안 되는 거예요. (웃음) 그때 친구들은 한창 취업 준비 중이었어요. 그래서 만나면 스펙, 대외활동 같은 이야기를 주로 했죠. 물론 어떻게 보면 취업이 자연스럽고 당연한 건데, 이상하게 저는 그런 이야기들이 조금 낯설었어요."

'가치 좇으면 돈은 따라온다' 자신있게 말했지만

그가 홍대 근처에서 운영하고 있는 무인서점에는 젊은이들의 다양한 사연이 가득하다.
 그가 홍대 근처에서 운영하고 있는 무인서점에는 젊은이들의 다양한 사연이 가득하다.
ⓒ 강영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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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취업의 길로 떠날 때, 그의 옆에는 지금의 <열정에 기름 붓기> 공동대표 표시형 씨가 있었다. 둘은 이야기가 잘 통했다. 2014년 1월 1일. 둘은 그동안 술자리에서 수없이 해오던 꿈과 열정에 관한 이야기들을 직접 만들어 보기로 했다.

"1달 동안만 기획만 했어요. 둘이서 회의를 하면서 쓰고 고치고를 수 없이 반복했어요. 제대로 된 결과물은 없고 계속 시간만 흘러갔죠. 그러다가 시형 씨가 저에게 이렇게 하면 시작조차 못 할 것 같다며, 일단 어설프게라도 만들어 놓은 콘텐츠를 올려보자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일단은 올렸죠."

좋아요 300개. 첫 콘텐츠에 대한 주변의 첫 반응이었다. 나쁘지 않았다. 잭팟은 얼마 가지 않아 터졌다.

"네 번째 콘텐츠부터 좋아요가 많아지면서 콘텐츠가 엄청 확산되더라고요. 운이 좋았죠. 그때 이런 콘텐츠에 대한 사람들의 니즈를 발견했어요. 사람들이 공감해주니깐 콘텐츠를 만드는 게 점점 재미있더라고요. 그래서 그때 둘이서 창업을 결심했어요."

주변 친구들의 반응은 미지근했다. 부모님도 아들의 결심을 '젊은 날의 객기' 쯤으로 생각하셨다.

"사실 제가 학교에서는 영향력이 별로 없어요. (웃음) 친구들 눈에는 여전히 선배들 따라다니면서 술 먹고 놀러 다니는 애거든요. 부모님도 진지하게 안 보셨어요. 매번 알바도 두 달 하고 말았으니까 조금 하다가 그만두겠지 생각하신 것 같아요."

그는 창업 전에는 꿈과 열정만 있으면 모든 것이 생각대로 이루어 질 줄 알았고 했다. 마치 이전에 읽었던 성공 스토리의 주인공들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우리가 다루는 콘텐츠가 전부 어려운 데서 성공한 이야기들이니깐 신념에 차 있었어요. 확신이 단단했죠. 뭐든지 다 될 줄 알았어요. 처음에 친구 2명 꼬셔서 시작했는데, 그때 제가 팀원들에게 한 말을 아직도 기억해요. 돈 걱정하지 말라고. 가치만 좇으면 돈은 따라오게 돼 있다고요.(웃음)"

인생은 겪어봐선 모른다. 당해봐야 안다. 현실은 그의 생각과 너무나도 달랐다. 1년 동안 고생만 했다. 주위 친구들은 하나둘 떠나갔다. 하지만 그를 더 힘들게 한 것은 따로 있었다.

"가치만 좇으면 돈은 따라서 온다는 이야기는 정말 제가 세상을 잘 몰랐기 때문에 한 말이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2015년 초에 포기할까 고민을 엄청 많이 했어요. 그때 제일 힘들었던 건 그동안 제가 믿어 왔던 것이 사실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거였어요. 제가 열정의 기름 붓기에서 만들던 콘텐츠들도 허황된 메시지가 아니었냐는 라는 의심이 들더라고요. 육체적으로 힘들고 정신적으로도 괴로웠던 시기죠."

포기하려던 참에 찾아온 기회

"인생에 정답은 없어요.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는 과정이 중요한것 같아요"
 "인생에 정답은 없어요.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는 과정이 중요한것 같아요"
ⓒ 강영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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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을 생각했다. 사업은 접기로 했다. 조금씩 세상을 알아가면서 현실과 타협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러던 중 예상치 못한 곳에서 기회가 찾아 왔다.

"사업을 접으려던 중에 우연히 정부기관에서 주최하는 성년의 날 행사를 홍보해달라는 연락을 받았어요. 저는 안 하려고 했는데, 표시형 대표가 이것까지만 해보자고 해서 그것만 하고 끝내기로 했어요. 그런데 그때부터 일이 조금씩 들어오기 시작하더라고요."

조금씩 외주를 받으면서 낮에는 타인의 삶을 살았다. 저녁이 되어야 자기 일을 할 수 있었다. 그렇게 6개월간 세상의 요구와 자신의 신념 사이를 오가며 지독하게 버텼다.

"낮에는 외주업체 페이스북 페이지를 운영해주고, 밤에는 우리가 쓰고 싶은 글을 썼어요. 정말 말도 안 되는 비용 받으면서 글을 썼어요. 그때 돈 버는 방법을 조금씩 깨닫기 시작한 것 같아요. 옛날엔 멋있게 꿈, 열정 이야기만 하다가 팀원들 다 떠나보내고 그랬는데, 창업은 비즈니스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돈이 굴러가야 한다는 사실을 그때 몸으로 배운 거죠."

사업을 포기하리라 마음먹고 1년이 지났다. 지독하게 버틴 만큼 사업에도 변화가 찾아 왔다.

"외주 업체 일을 대신하던 중에 출판사들로부터 연락이 왔어요. 자기네들 책으로 콘텐츠를 만들어 달라고 하더라고요. 이제 우리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진짜 할 수 있게 되는 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때부터 사업이 조금씩 확장되기 시작했어요."

사업이 조금씩 나아지자 그에겐 또 다른 고민이 찾아왔다. 학교 졸업 문제다.

"이거 하려고 휴학을 했어요. 사업을 하면서 '왜 학교를 계속 다녀야지'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처음엔 대학교에 대한 필요성을 못 느껴서 자퇴하려고 했는데, 부모님께서 졸업만 제발 해달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래서 그럼 졸업은 할 테니 학점은 기대하지 말라고 합의를 봤어요. (웃음)"

어쩌면 우리는 아직도 학교에서 시험문제를 풀 듯 인생 가운데 '정답'을 찾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상에 정답 인생(人生)은 존재하지 않는다.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자기만의 해답을 찾아가는 미생(美生)들만 존재할 뿐이다.

덧붙이는 글 | 월간 세상사는 아름다운 이야기 5월호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이재선, #열정에기름붓기, #청춘, #대학생, #대2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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