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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기사의 모든 사진은 60*45mm 사이즈의 필름(KODAK Ektar100)으로 촬영하였으며 필름 스캔 후 리사이징 이외 다른 보정을 하지 않았음을 미리 밝힙니다. - 기자 말

모든 강이 다 그렇겠지만 특히 섬진강은 인간의 소박한 삶이 묻어있는 느낌이 강하다. 그래서 수많은 시인들이 섬진강변을 걸으며 시 한구를 읋었을지도 모르겠다. 섬진강의 봄빛에 이끌려 순창에서 곡성까지 마음이 닿는대로 셔터를 눌렀던 바로 다음 주말, 근무하는 학교(전주고등학교)의 오랜 행사이자 사제동행 도보여행인 '나를 찾아 걷는 아름다운 순례길' 행사에 동참하게 되었다.

순창으로 떠나기 전 교감선생님의 사전교육을 듣고있다.
▲ 안전교육 및 사전교육 순창으로 떠나기 전 교감선생님의 사전교육을 듣고있다.
ⓒ 안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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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의 모든 것을 기획하시고 주관하시는 수석교사 선생님의 안내 쪽지에 코스가 자세히 안내되어 있었다. 포털사이트 지도를 켜고 마을의 명칭들을 검색해보니 지난 주 다녀왔던 섬진강 여행과 빈틈 없이 연결되는 코스였다. 아이들을 인솔해야한다는 부담감이 없지는 않았으나 지난번의 여정과 연관이 된다는 점, 생명력 넘치는 강물과 그 물을 먹고 자라는 주변 생태를 관찰할 수 있다는 점에서 걱정보다는 설렘이 더욱 컸다.

먼저 도착한 수석교사 선생님과 아이들이 마침 마을 어귀에 계시던 김용택 시인과 함께 사진을 찍고 있다.
▲ 김용택 시인과 한컷 먼저 도착한 수석교사 선생님과 아이들이 마침 마을 어귀에 계시던 김용택 시인과 함께 사진을 찍고 있다.
ⓒ 안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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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여행을 다녀와보니 가장 싱그럽게 살아 숨쉬는 것은 다름아닌 우리 아이들이었고, 학교 건물을 벗어나 다양한 방식으로 주어지는, 보다 삶과 가까운 교육활동이야말로 아이들의 내면에 잠재되어있는 놀라운 생명력을 일깨워준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다.

진뫼마을, 김용택 시인과의 짧은 만남

마을 어귀까지 들어왔다가 나가는 시내버스가 참 정겹다. 아직 안개가 채 가시지 않았는지 하늘이 살짝 뿌옇다.
▲ 진뫼마을 앞 작은 다리에 서서 마을 어귀까지 들어왔다가 나가는 시내버스가 참 정겹다. 아직 안개가 채 가시지 않았는지 하늘이 살짝 뿌옇다.
ⓒ 안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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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행은 제14차 순례길 코스를 걷는 행사로, 현재 전주고등학교의 대표적인 특색사업 중 하나이다. 5년째 꾸준히 기획하여 실행해오고있으며 매 차시마다 100명이 넘는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15키로가 넘는 길을 걸으며 지역사회의 사람 사는 모습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직접 두 발로 체험하는 시간을 갖고 있다. 제14차 순례길 행사인 이번 여정은 다음과 같았다.

'진뫼마을 - 천담마을 - 구담마을 - 장구목 - 구미교'

우리는 본격적으로 걷기에 앞서서 김용택 시인의 집 마당에 모여서 그 분의 짤막한 말씀을 들었다. 사투리가 구수하게 들리는 듯 마는 듯 묘한 말투와 다소 허스키한 하이톤으로 이런 저런 말들을 이어 나가셨다. 마을의 역사적인 배경, 현재 마을에서 짓고 있는 농사 등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들 후에 마지막으로 아이들에게 도전이 될 만한 말씀을 하셨다.

전세버스를 타고 진뫼마을에 막 도착한 아이들이 김용택 시인의 집으로 모여들고 있다.
▲ 시인의 집에서 전세버스를 타고 진뫼마을에 막 도착한 아이들이 김용택 시인의 집으로 모여들고 있다.
ⓒ 안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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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택 시인이 마을에 대해 설명을 하면서 가리키는 곳으로 아이들이 시선을 옮기고 있다.
▲ 시인의 집에서(2) 김용택 시인이 마을에 대해 설명을 하면서 가리키는 곳으로 아이들이 시선을 옮기고 있다.
ⓒ 안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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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취를 해놓지 않아 정확한 인용을 할 수 없기에 요약만 해보자면, 학생들이 살아가야 할 수명은 이제 120년이 될 텐데 그 긴긴 세월 동안 그저 '잘 먹고 잘 사는' 삶을 위해 자신이 '진짜로 하고싶은 것'을 놓치지 말라는 것이었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일평생 생존과 안정적인 삶을 위해 살아왔지만, 은퇴 후에도 6~70년을 더 살아가야하는 시대에 평생을 행복하게 살려면 그 누구의 말도 중요하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해야 한다는 말씀이었다. 비교적 정확하게 기억하는 마지막 말씀은 따옴표를 사용하여 인용하도록 하겠다.

"여러분이 가장 좋아하는 것을 하세요. 좋아하는 것을 열심히 하세요. 열심히 하면 '잘'하게 되겠죠? 이곳 부터 여러분들이 걸어야 하는 길을 바보처럼 일렬로 행진하듯이 걷지 말고, 주면 농작물들도 보고, 꽃들도 보고, 그렇게 걸어. 알겠지?" -김용택시인의 말.

사전에 강의를 부탁한 것도 아니었고 다소 갑작스러운 방문이었을텐데 130명이 넘는 아이들을 앞마당으로 불러와, 짧지만 힘있는 말씀들을 해주신 김용택 시인께 글로나마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김용택시인이 아이들에게 진뫼마을의 유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시인의 집에서(3) 김용택시인이 아이들에게 진뫼마을의 유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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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담, 구담마을을 지나 장구목까지

보통 사람들은 '섬진강' 하면 하동과 화개장터를 떠올릴 것이다. 벚꽃이 피어있는 하류의 섬진강은 분명 절경임에 틀림이 없지만 이번 순례길 걷기 행사에서 다녀온 코스를 걸어보지 않고서는 섬진강을 절대 논하면 안된다는 말을 자신있게 하고싶다. 평소에도 곡성과 임실읍 부근의 섬진강을 자주 보아 왔지만 그 사이에 있는 이 보석같은 길을 이제라도 알게 되었음에 대단히 감사할 정도로 가슴 벅찬 풍경이었던 것이다.

전주고등학교 순례길 행사에 참가한 학생들이 섬진강 길을 따라 진뫼마을을 나서고 있다.
▲ 섬진강과 아이들 전주고등학교 순례길 행사에 참가한 학생들이 섬진강 길을 따라 진뫼마을을 나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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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한 온도와 습도의 날씨 속에서 섬진강변을 따라 아이들이 힘차게 걷고 있다.
▲ 발걸음도 힘차게 적당한 온도와 습도의 날씨 속에서 섬진강변을 따라 아이들이 힘차게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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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뫼마을을 벗어나 이제 처음으로 섬진강변 길에 발을 디디는 순간, 귓가에 풍경과는 정말 어울리지 않는 소리가 들려왔다. 삼삼오오 짝을 지은 아이들이 무리끼리 경쟁이라도 하듯이 핸드폰 스피커로 틀어놓은 음악 소리였다. 유유히 흐르는 강물과 천연의 빛깔들이 화사함과 평온함을 동시에 보여주고있는 이 길 위에, 랩과 비트가 난무하는 힙합 음악을 깔아놓다니, 평소 공부할 때나 등교할 때를 가리지 않고 이어폰을 꽂고 다니는 학생들의 모습을 익히 보아왔지만 이런 자연 속에서조차 인공의 소리를 듣게 할 수는 없었다.

"누가 음악을 트냐. 안어울리게."

장난기가 뚝뚝 넘치는 말투이긴 했지만 다소 높아진 언성으로 나의 입에서 처음 튀어나온 말이었다. 입을 닫은 후에 곧바로 아차 싶은 마음이 몰려왔다. 이 아름다운 경치를 제대로 감상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지적을, 나 역시 아름답지 못한 언어로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후에도 5차례 정도나 더 음악감상을 저지하는 발언을 했지만 순간 순간 튀어나오는 공격적인 말투가 여간해서 고쳐지지 않았다.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진심이 담긴 설명과 함께 부드러운 말투로 말할 수 있었다.

"자연에 왔으면 자연의 소리를 듣는 것이 더 어울릴거야. 노래는 언제나 들을 수 있으니, 오늘은 물소리, 바람소리를 들어야 하지 않겠니?"라는 말을, 보다 덜 간지럽게 하기 위해 어깨동무와 함께 무의식적으로 사투리가 나온다.

"00야. 우리가 지금 어디를 걷고 있냐. 
노래는 암때나 틀믄 나오는거아녀. 
여기 왔으믄 물 흐르는 소리, 바람 소리 같은걸 들어야하지 않겄냐? 어이?"

음악선생님이 음악을 못 듣게 하니 아이들도 다소 당황스럽기는 했겠으나, 오히려 그래서 더 설득력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비쭉이는 입모양 하나 없이 밝은 표정으로 핸드폰을 고요하게 넣어두는 아이들의 모습이 참 고마웠다.

중간에 꽤 넓게 조성된 쉼터에서 아이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 섬진강과 아이들(2) 중간에 꽤 넓게 조성된 쉼터에서 아이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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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히 보면 누군가 돌을 던진 듯 수면위에 동심원의 파장이 그려지고 있다.
▲ 잔잔한 수면 위에 자세히 보면 누군가 돌을 던진 듯 수면위에 동심원의 파장이 그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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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에 만난 쉼터에서 바라본 잔잔한 수면, 그리고 그 위에 펼쳐진 산과 하늘의 반영에 잠시 눈과 마음이 쉬었다. 반영사진을 찍기 위해 카메라를 든 순간 '풍덩' 하는 소리가 두 차례 들린다. 사진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세 명의 아이들이 저 곳으로 내려갔고 그 중 두 녀석이 돌을 던졌던 것이다. 웃음이 나왔다. 잔잔한 수면 위에 파장을 일으키고싶은 마음이야말로 건강한 청소년의 마음이 아닐까 싶었다. 물결이 없는 깨끗한 반영사진은 조금 걸어가서 어렵지 않게 다시 담을 수 있었다.

한 시간여에 걸쳐 걷다가 운전을 하다가 아이들과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며 천담마을을 지나 구담마을에 도착했다. 강 건너에서 아이들이 걷는 모습을 담기도 하고 평화로운 풍경을 담기도 하면서 필름을 소진해나갔다.

잔잔한 섬진강의 수면 위로 반사된 풍경의 모습
▲ 섬진강과 반영 잔잔한 섬진강의 수면 위로 반사된 풍경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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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늘이 많았지만, 그렇지 않은 곳도 꽤 있었는데도 큰 불평 없이 즐겁게 걷고 있는 아이들.
▲ 걷는 아이들 그늘이 많았지만, 그렇지 않은 곳도 꽤 있었는데도 큰 불평 없이 즐겁게 걷고 있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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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담마을로 올라가기 직전, 강을 건너는 낮은 다리 위에서 바라본 섬진강의 모습.
▲ 섬진강과 푸른 나무들 구담마을로 올라가기 직전, 강을 건너는 낮은 다리 위에서 바라본 섬진강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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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담마을로 올라가기 직전, 강을 건너는 낮은 다리 위에서 바라본 섬진강의 모습. 위 사진에서 뒤를 돌면 보이는 풍경이다.
▲ 섬진강과 푸른 나무들(2) 구담마을로 올라가기 직전, 강을 건너는 낮은 다리 위에서 바라본 섬진강의 모습. 위 사진에서 뒤를 돌면 보이는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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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변을 걷고있는 아이들. 봄의 싱그러운 녹색빛이 돋보인다.
▲ 강 건너편에서 섬진강변을 걷고있는 아이들. 봄의 싱그러운 녹색빛이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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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물이 산자락을 거울처럼 비추고 있다. 저 산자락 중간에 구담마을이 위치해있다.
▲ 구담마을 아래 강물이 산자락을 거울처럼 비추고 있다. 저 산자락 중간에 구담마을이 위치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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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담마을에 오르니 전망이 시원하다. 섬진강은 지금 한참 봄의 생명력이 움트는 중이다.
▲ 구담마을에서 구담마을에 오르니 전망이 시원하다. 섬진강은 지금 한참 봄의 생명력이 움트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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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변에서 100미터 가량 오르막을 걸으면 구담마을이 나온다. 이런 첩첩산중, 그것도 산허리 중간에 변변한 마을 터가 있을까 싶었는데, 올라와보니 꽤나 아늑한 공간이다. 영화 '아름다운 시절'의 촬영지이기도 한 이곳은 10여세대 정도의 허름한 시골집이 있고 따뜻한 햇살에 매실 열매가 시나브로 익어가는 곳이다. 장구목까지 가는 여정 중간에 이곳으로 올라와 정자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다.

시원한 그늘 아래 휴식을 취하고 있는 아이들.
▲ 구담마을에서(2) 시원한 그늘 아래 휴식을 취하고 있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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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시간 정도의 도보 후 쏟아지는 졸음에 달콤한 낮잠을 자고있다.
▲ 쪽잠 두 시간 정도의 도보 후 쏟아지는 졸음에 달콤한 낮잠을 자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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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자연과 함께 어우러져있는 광경을 털털하게 담으려고 하였으나 어느새 아이들이 카메라를 발견하고 브이를 그리고 있다.
▲ 포즈를 취하는 아이들 아이들이 자연과 함께 어우러져있는 광경을 털털하게 담으려고 하였으나 어느새 아이들이 카메라를 발견하고 브이를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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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담마을에서 내려다본 섬진강의 모습. 빨간 철쭉이 화사함을 더해주고 있다.
▲ 구담마을에서(3) 구담마을에서 내려다본 섬진강의 모습. 빨간 철쭉이 화사함을 더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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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폭의 그림과도 같은 구담마을의 모습. 3월이면 매화가 피고 4월이면 신록이 자라나며 10월이면 오색 빛으로 물들었다가 12월이 되면 순백의 무명 이불을 덮는 곳.
▲ 구담마을 전경 한폭의 그림과도 같은 구담마을의 모습. 3월이면 매화가 피고 4월이면 신록이 자라나며 10월이면 오색 빛으로 물들었다가 12월이 되면 순백의 무명 이불을 덮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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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몇 녀석이 징검다리를 건너도 되냐고 조심스레 다가와 묻는다. 조심히 건너라는 말이 떨어지자마자 내리막을 내려가 징검다리를 건너고 있다.
▲ 징검다리와 아이들 아이들 몇 녀석이 징검다리를 건너도 되냐고 조심스레 다가와 묻는다. 조심히 건너라는 말이 떨어지자마자 내리막을 내려가 징검다리를 건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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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구목, 섬진강이 나의 마음에 물이 되었네

구담마을에서 내려와 장구목 유원지로 향했다. 그곳까지 가는 길은 자동차가 갈 수 있는 길과 갈 수 없는 길, 두 갈래로 나뉘어있다. 요강바위가 있는 장구목 유원지에 도착하면 사람과 자전거만 건널 수 있는 작은 현수교가 하나 있다. 그곳에 서니 앞뒤가 모두 절경이다. 누가 이 시대의 청소년들의 감성이 메말랐다고 했는가. 핸드폰과 게임만 들여다볼것 같았던 우리 아이들도 한참 동안 강과 산자락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다리 위에서 물 흐르는 방향(남동)을 바라보고 찍은 사진
▲ 장구목 현수교에서 다리 위에서 물 흐르는 방향(남동)을 바라보고 찍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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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 위에서 물 흐르는 반대방향(북서)을 보고 찍은 사진
▲ 장구목 현수교에서(2) 다리 위에서 물 흐르는 반대방향(북서)을 보고 찍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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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부터 구미교까지의 풍경이야말로 섬진강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곳이다.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최대한 간직되어있는 원시적인 풍경이면서도 소박함과 애틋함까지 느껴지는 풍경이다. 갈림길 때문에 아이들과 다른 길을 가면서, 운전대를 잡고 홀로 '아니,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울수가 있지.'라는 말을 연거푸 탄식처럼 뱉아냈다.

'풍경'이라는 단어가 가진 분위기가 무뚝뚝하게 느껴질 정도로 저곳의 강변은 하나의 커다란 생명체 같았다. 그렇다고 압도적으로 다가왔다는 것은 아니다. 마치 자신의 포근한 품에 안기라는 듯 온유한 표정으로 편안하게 두 팔을 펼친 자연의 얼굴을 보는 듯 했다. 어린 시절 고사리같은 맨손으로 자신이 먹던 포도 알맹이를 하나 쥐어 나의 입에 넣어주던 누이의 얼굴과도 같은 느낌이었다.

오른편의 큰 나무 숲, 먼 산의 푸르름, 잠시 머물렀다 나가는 동그란 물길, 늦봄의 푸르른 색채. 모든 것이 마음을 풍요롭게 했다.
▲ 섬진강의 백미 오른편의 큰 나무 숲, 먼 산의 푸르름, 잠시 머물렀다 나가는 동그란 물길, 늦봄의 푸르른 색채. 모든 것이 마음을 풍요롭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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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을 받아 투명하게 빛나는 어린 녹색과 세월을 가늠치 못할 만큼 오랜 시간 저 자리를 버텨온 바위, 그리고 그 사이를 쉴새없이 오래도록 흐르는 강물.
▲ 바위와 물과 숲 햇빛을 받아 투명하게 빛나는 어린 녹색과 세월을 가늠치 못할 만큼 오랜 시간 저 자리를 버텨온 바위, 그리고 그 사이를 쉴새없이 오래도록 흐르는 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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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큰 감동을 받아서일까. 카메라를 들고 화면을 구성해보다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내려놓기를 십수번, 결국 가장 아름다웠다고 느낀 곳에서 담아온 사진은 달랑 두 장 뿐이었다. 그것도 같은 위치에서 렌즈의 화각만 바꾸어 찍은 사진이다. 두 눈을 통해 마음으로 들어와 나의 내면을 가득 채워준 그곳을 표현할 길이 없었다.

대신 어제였던 초파일, 부모님과 외할머니를 모시고 그곳을 다시 다녀왔다. 올해 여든 여섯째 세월을 살고계신 외할머니의 마음에 약동하는 봄날이 스며들어 조금이라도 더 정정하게, 오래 사시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을까.

가장 아름다운 것은 다름아닌 우리 아이들

이 기사의 마무리는 아이들의 사진으로 하려고 한다. 그 어떤 푸르름보다 더욱 더 싱그럽고, 그 어떤 생태계보다 더 복잡한 메커니즘을 가진, 눈동자에 온 우주의 이치가 담겨있는 듯 오묘하고도 아름다운 존재가 바로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이 아닐까. 나는 이 날, 지금까지 보아온 산하들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보았고, 그보다도 더 깊은 아름다움을 자연이라는 커다란 교실 속 아이들에게서 찾았다.

천담마을 어귀로 네 명의 아이들이 어디선가 아이스크림을 사 물고 걸어오고있다.
▲ 아이들 천담마을 어귀로 네 명의 아이들이 어디선가 아이스크림을 사 물고 걸어오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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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담마을에서 강변을 바라보고있는 아이들에게 사진을 찍어주겠노라 말하였고 아이들은 "감사합니다!"를 연발하며 포즈를 취했다.
▲ 아이들(2) 구담마을에서 강변을 바라보고있는 아이들에게 사진을 찍어주겠노라 말하였고 아이들은 "감사합니다!"를 연발하며 포즈를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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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담마을 오솔길로 멀리 걸어가고있는 아이들의 사이가 참 좋아보여 손나팔을 만들어 불러세웠다.
▲ 아이들(3) 구담마을 오솔길로 멀리 걸어가고있는 아이들의 사이가 참 좋아보여 손나팔을 만들어 불러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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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섬진강, #진뫼마을, #전주고등학교, #구담마을, #필름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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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립 대안교육 특성화 고등학교인 '고산고등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필름카메라를 주력기로 사용하며 학생들과의 소통 이야기 및 소소한 여행기를 주로 작성하고 있습니다.

공연소식, 문화계 동향, 서평, 영화 이야기 등 문화 위주 글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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