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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탄핵 이후 이명박 전 대통령의 4대강 사업은 적폐청산 1호라 할 만 하다. 차기 정권은 수문 개방뿐만 아니라 4대강 청문회를 최우선 정책 과제로 선정해야 한다. <오마이뉴스>는 대통령 선거에 즈음해 미국 현지 취재 등을 통해 4대강 사업의 폐해를 환기시키고, 정책 대안을 제시한다. 많은 관심과 응원을 부탁드린다. [편집자말]


한국 대선 D- 30일 새벽. 비명을 지르며 꿈에서 깼다. 거실에서 자던 아내가 방으로 뛰어 들어왔다. 5~6명이 나를 끌고 캄캄한 하천 둑 아래쪽으로 끌고 가는 꿈. 이마에 식은땀이 흥건했다. 악몽이었다. 

"모처럼의 4대강 해외 취재인데, 대선 이슈에 묻히면..."

미국 취재를 떠나기 전에 주변에서 우려했던 말이다. 개인적인 일이 겹치면서 나를 옥죄었다. 맞는 말이지만, 그래서 더 절박했다. 최순실 국정농단에 버금가는 문제인데 대선에서 한 마디라도 더 나와야 했다. 박근혜 구속 이후 적폐 청산 1호인 4대강 사업 문제 해결을 각 정당 후보들의 공약에 넣는데 작은 힘이라도 보태고 싶었다. 

오마이뉴스 4대강 독립군은 지난 4월 9일 오후 6시 40분 인천국제공항에서 비행기로 10시간을 날아 미국 시애틀 공항에 도착했다. 현지 시각 9일 오후 1시에 가이드가 취재진을 맞았다. 

"어디부터 갈까요? 여기 스타벅스 1호점이 있는데, 우선 거기서 커피 한잔할까요?"

4대강 독립군들은 돌아가면서 같은 말을 했다.

"아뇨. 그냥 가죠."

4시간여를 차로 달려 도착한 곳은 미국 북서부 워싱턴 주 엘와강(Elwha River) 하구였다. 내비게이션을 검색하면서 어렵게 찾아간 곳. 대자연의 신비가 4대강 독립군을 맞았다. 뜻밖의 소득이었다. 죽은 강에 새살이 돋듯이 태평양과 만나는 곳에 모래와 나무를 실어 나르면서 엘와강은 위대한 귀환을 알렸다. 거대한 검은 모래 삼각주. (참고기사: 콘크리트 벽 뚫은 미국 물고기)

[4대강 독립군 김종술] 몸 취재의 달인

미국 엘와강에서 두 손으로 모래를 떴다. 금강의 시커먼 펄에서 풍기던 시궁창 냄새와는 달리 향긋한 냄새가 난다.
 미국 엘와강에서 두 손으로 모래를 떴다. 금강의 시커먼 펄에서 풍기던 시궁창 냄새와는 달리 향긋한 냄새가 난다.
ⓒ 올림픽 국립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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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 시궁창 펄과 같은 색인데, 파보니 실지렁이가 없네. 여기서 나오면 대박인디. 히-히-히."

그는 장난기가 넘쳤다. 첫 해외 취재, 심지어 해외여행을 한 번도 하지 않았지만 현장 적응력은 뛰어났다. 끝없이 펼쳐진 검은 모래사장을 샅샅이 뒤졌다. 강 하구로 쓸려온 수십 년 된 나무 더미 위에 올라갔다. 양 손으로 모래를 푼 뒤 코를 박고 냄새를 맡았다. 등산화를 신은 채 물속에 들어갔다가 물을 떠서 한 모금을 마신 뒤 이렇게 말했다.

"크... 물맛 좋다! 짠맛이 아니네. 철재야 이리와 봐. 너도 물맛 좀 봐라."

큰빗이끼벌레도 삼켰던 '온몸 불사형' 기자. 오마이뉴스 4대강 독립군의 맏형인 김종술 시민기자(51)는 미국에 도착한 첫날부터 몸 취재를 시작했다.

[4대강 독립군 정수근] 말은 짧지만 취재 열정은...

4대강 독립군 정수근 기자. 그는 말은 짧지만 누구보다 열정은 강하다.
 4대강 독립군 정수근 기자. 그는 말은 짧지만 누구보다 열정은 강하다.
ⓒ 정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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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애틀행 비행기 안에서 낯익은 코골이 소리를 들었다. 우렁찼다. 처음 들은 사람은 오해할 수 있다. 젊을 때 목을 다쳐서 내는 쇠 긁는 숨소리다. 소리를 따라가니 화장실 앞 복도다. 일을 보려고 3~4명의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는데, 그 앞에 주저앉은 채 노트북을 켜놓은 사람. 밝은 모니터 화면이 늘어지게 하품하는 그의 얼굴을 비췄다. 어깨를 툭 쳤다. 

- 여기서 뭐해요?
"기사 쓰죠."

경상도 남자. 4대강 독립군 정수근 시민기자(45. 대구환경운동연합 생태보존국장)는 말은 짧지만 열정은 강했다. 엘와강 하구에 갔을 때도 수평선 끝까지 가서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모래 위에 찍힌 야생동물 발자국과 새똥까지 담았다. 갈 길이 먼데, 그는 취재 망중한이다. 멀리 있는 그를 부르고 한참 뒤에 소감을 들었다. 역시 짧았다.  

"대단하네요. 자연이 진짜 사라있네(살아있네)~"

[4대강 독립군 이철재] 현장, 이론 겸비한 환경 학구파



김종술, 정수근 기자가 현장파라면 4대강 독립군 이철재 기자(45. 환경운동연합 정책위원, 에코큐레이터)는 환경 학구파다. 달리는 차 안에서 김 기자는 '아재 개그'를 날리고, 정 기자는 노트북을 켠 채 자다 깨다를 반복하면서 코를 고는데 이 기자는 뒷좌석에 앉아 책을 읽었다. 그에게도 엘와강 하구를 본 소감을 물었다.

"이런 델타 지역(삼각주)은 상류에 엘와댐이 철거된 뒤에 형성됐을 겁니다. 상류에서 흘러온 모래와 자갈이 자연스럽게 뒤섞인 퇴적 현상입니다. 이곳은 새들의 쉼터입니다. 저기 보이죠. 갈매기와 도요새, 저건 꼬마물떼새입니다. 한국 4대강 하구에선 볼 수 없는 모습입니다. 우린 하구둑으로 강을 막았기 때문이죠."    

이철재 기자의 예측은 맞았다. 다음날 이곳 원주민인 로워 엘와 클랄람 부족(Lower Elwha Klallam Tribe)들을 만났을 때 사진으로 확인했다. 아래 엘와강 두 개 댐을 허물기 전과 후의 모습을 비교해보시기 바란다.

2011년 엘와댐이 폭파되면서 엘와강 하구에는 거대한 검은 모래 삼각주가 만들어졌다.
 2011년 엘와댐이 폭파되면서 엘와강 하구에는 거대한 검은 모래 삼각주가 만들어졌다.
ⓒ 맥헨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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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박9일] 4대강 독립군은 2253km를 달렸다

4대강 독립군은 7박9일 동안 차를 타고 2253km를 달렸다. 한반도를 왕복할 거리다. 밤 12시가 넘어 숙소에 도착한 날이 많았다. 아침 7시부터 강행군했다. 댐을 해체한 뒤 강이 회복되는 3곳을 취재했다. 4대강과 같은 녹조와 물고기 떼죽음으로 4개 댐 철거를 결정한 곳도 갔다. 원주민과 댐 해체 기획 담당자를 만났고, 전력회사도 방문했다.

이들의 말을 종합하면 미국이 댐을 허무는 이유는 '돈' 때문이었다. 전력과 용수를 공급하는 것보다 경제적이라는 판단이었다. 댐은 수질을 악화시키는 등 환경도 죽였다. 미국은 이것도 돈으로 계산했다. 언제 붕괴할지 모른다는 불안감도 한몫했다. 경제가치와 안전, 환경가치는 일치했다. 댐은 특정인의 이익에 복무했지만, 댐 해체는 공동체에게 이로웠다.     

아메리칸 리버스(American Rivers)에 따르면 미국은 지난 30년간 1100개의 댐을 부수고 지난 한 해 동안에만 72개 댐을 해체했다.경제를 살리고 환경도 살리겠다는 이유에서였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명박 전 대통령도 4대강에 16개 댐을 세우면서 똑같은 말을 했다. 누가 거짓말을 하는가?  (관련 기사: 댐 폭파한 미국, 4대강도 가능할까)

[엘와강] 댐 2개 폭파

4대강 독립군은 미국 워싱턴 주 포트 앤젤레스(Port Angeles)의 숙소에서 묵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산책을 하는데 숙소의 배경으로 멀리 높은 봉우리에 만년설이 펼쳐졌다. 첫 취재원은 올림픽국립공원 부감독관인 브라이언 윈터(Brain Winter) 씨. 지난 9일 아침에 그를 만나려고 원시림에 둘러싸인 올림픽국립공원 방문자센터에 갔다. 

그는 엘와강 복원 프로젝트를 총괄한 매니저다. 올림픽국립공원을 관통하는 엘와강의 엘와 댐(Elwha Dam)과 글라인스 캐니언 댐(Glines Canyon Dam) 철거를 주도했다. 엘와댐은 2011년, 글라인스 캐니언 댐은 2014년에 폭파했다. 당시 미국 역사상 최대 댐 해체작업이었다.

윈터 씨는 4대강 독립군에게 1시간에 걸쳐 엘와강 복원 과정을 설명했다. 그가 전한 엘와강의 사례를 구체적으로 알고 싶다면 이철재 기사(관련 기사 : 댐 철거한 미국...손해 본 건 하나도 없다)를 클릭하시면 된다. 4대강 독립군은 인터뷰가 끝날 즈음에 한국의 4대강 상황을 설명한 뒤 이런 질문을 던졌다.

"당신이 만약 정책 결정권자였다면, 4대강 16개 댐을 어떻게 할 것인가?"

그는 사견임을 전제로 단호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툭~"이라는 의태어를 내뱉었다. 가슴에서 머리 위쪽으로 손을 올리며 4대강 댐을 거둬내는 손짓도 했다. 그는 "댐은 문제를 불러오기에 없애야 한다"면서 "단, 댐을 해체했을 때의 부작용을 최대한 경감할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엘와의 눈물] 댐에 코를 박고 죽어간 연어들

미국 워싱터주 포트앤젤레스(Port Angeles)에 있는 로워 엘와 클랄람부족(Lower Elwha Klallam Tribe) 사무실 앞에는 '엘와의 눈물'이란 제목의 시누크 연어 두 마리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미국 워싱터주 포트앤젤레스(Port Angeles)에 있는 로워 엘와 클랄람부족(Lower Elwha Klallam Tribe) 사무실 앞에는 '엘와의 눈물'이란 제목의 시누크 연어 두 마리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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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헤어진 뒤 엘와강 원주민사무소(Lower Elwha Klallam Tribal Center)에 갔다. 현관 앞에서 두 마리 청동 연어가 눈물을 흘렸다. 동상의 제목은 '엘와의 눈물'. 강 상류에서 태어나 바다로 나간 뒤 다시 산란장을 찾는 100파운드(약 45kg) 시누크 연어들이 댐에 코를 박고 죽어가면서 100여 년간 흘렸던 눈물이다.

클랄람 부족 사무실에서 1시간30여 분에 걸쳐 어류 연구자 마이크 맥헨리(Mike McHenry) 씨의 프리젠테이션을 들었다. 4대강 독립군은 그의 설명이 끝난 뒤 박수를 세게 쳤다. 그는 과학자였다. 엘와강의 역사, 댐이 지어지기 전과 후의 탁도 등 수질 변화 데이터와 연어 회귀 비교 그래프. 우리가 전날 보았던 엘와강 하구의 변화된 모습을 항공촬영 사진으로 보여줬다.

그의 말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이것이다.

"댐으로 가로막혀 퇴적토가 2100만m³ 정도 쌓였는데, 탁도가 심해서 저서생물이 줄어들고 수질 문제도 일으켰다. 2015년에는 이 물을 정수해 먹는 2만 명의 포토 앤젤레스 시민들에게 불편을 줬다."

이 말을 듣고 1300만 명의 영남인이 먹는 물을 공급받는 낙동강이 떠올랐다. 엘와강은 국립공원지역이다. 4대강과는 달리 강으로 흘러드는 오염원이 없다. 그럼에도 먹는 물에 문제를 일으켰다. 우리는 어떤가? 녹조가 창궐하고 펄밭에 실지렁이와 깔따구가 득실거려도 수문조차 열지 않고 버티는 한국. 국격을 높이겠다고 말하던 이명박 전 대통령의 얼굴도 떠올랐다. 

[침묵의 강] 댐은 무엇인가?

4대강 독립군이 엘와댐으로 안내해줄 것을 부탁하자 프란시스 찰스(Frances G. Charles) 부족의장이 앞장섰다. 깎아지른 협곡 바위에 다이너마이트로 댐을 폭파한 흔적이 남았다. 수장됐던 곳을 복원하려고 심은 나무는 비를 맞고 있었다. 빠른 속도로 협곡을 빠져나가는 물살은 비췻빛이었다. 올림픽국립공원의 만년설이 녹아 흐르는 강이다. 통역 시간만 되면 돌아서서 핸드폰 카메라로 엘와강을 담는 찰스 부족의장의 눈동자를 닮았다. 

그에게 물었다. '클랄람 부족에게 댐은 무엇이었나?'

"댐은 장벽(Barrier)이었다. 모든 걸 차단했다. 연어가 강에 오르는 것을 막았고, 연어가 다른 생물들과 만나는 것을 가로막았다. 또 연어가 우리 부족과 만나는 것을 막았고, 우리 부족의 문화적인 전통 가치를 후대들이 접하는 것을 막았다."

그에게 또 물었다. '강은 무엇인가?'

"강은 자유다.(River is free.)" 

댐으로부터 해방된 엘와강과 '이명박근혜 정권'에 의해 16개의 댐에 갇힌 한국의 강. 비 오는 날, 찰스 부족의장이 보는 앞에서 4대강 독립군 정수근 기자는 작년 낙동강에서 김종술 기자가 한 'MB, 녹조라떼 받아랏' 퍼포먼스를 엘와강에서 시도했다. 이 기념사진은 정대희 기자가 연출했다. 한번 비교해보기 바란다.

[미국의 교훈] 강은 누구의 것인가?



우린 어떤 강물을 원하나? '녹조는 물이 맑아진 증거'라고 궤변을 늘어놓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얼굴에 끼얹고 싶은 녹색 물인가, 아니면 흐르는 강물인가.

강은 누구의 것인가? 개인 업적을 위해 5년짜리 대통령이 자기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맘대로 할 수 있는 강인가, 아니면 수천만 년 그곳에서 살아온 생명들의 것인가.

잔뜩 찌푸린 하늘, 4대강의 펄밭을 연상시키는 검은 모래 언덕, 강에서 떠 내려와 그 위에 수없이 엉켜있는 나무들이 자아내는 을씨년스러운 풍경. 4대강 독립군들이 차에서 내려 모래인지 펄인지도 모를 땅을 밟기 전에는 새벽 꿈속 같았다. 검은 모래벌에 들어서자 모든 게 달라졌다.

모래는 바람 향기를 품었다. 쓰러진 고목 아래에 피기 시작한 새싹, 모래 위에 찍힌 야생동물 배설물과 발자국, 모래톱 위에서 쉬고 있는 도요새와 갈매기들을 본 뒤에야 악몽에서 깨어났다. 두 댐을 철거한 지 3~5년 만에 생긴 기적이다. 우리 4대강에도 이런 기적이 찾아올 수 있을까? 태평양과 엘와강이 만나는 거대한 검은 모래 삼각주를 걸으며 혼잣말을 내뱉었다.

"강은 누구의 것도 아니야."

지난 100년간 댐 정책에서 실패한 미국으로부터 우리가 배워야 할 교훈이다. 나는 촛불 시민들이 적폐 청산을 명령한 오는 9일 대통령 선거에서 미국 엘와강처럼 4대강에 드리워진 '이명박근혜 정권'의 족쇄를 풀어줄 정책을 기준으로 투표한다. 하루빨리 4대강 청문회를 열어 이명박 전 대통령의 탐욕과 오만을 심판해야 한다. 

*다음 화에서 발로 쓴 7박9일 취재 보고서②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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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4대강, #4대강 독립군, #4대강 청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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