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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아빠가 왜 필요해요? 우리 집은 돈도 엄마가 벌고, 자동차도 엄마가 운전해요."

어린이 동화 <아빠가 길을 잃었어요>에 나오는 한 장면이다. 한 남자는 이사한 집으로 가기 위해 버스를 탄다. 그때 옆에 앉은 아이가 남자에게 저 질문을 던진다. 남자는 아이의 물음에 대한 답을 생각하느라 내려야 할 곳을 잊고, 길을 잃어버리고 만다.

다수의 자녀교육 책을 집필하고, 아빠 학교를 운영하는 권오진 교장은 "아빠에게는 아빠만의 특별함이 있다"며, 저 아이의 질문에 대한 해답을 "아빠와 함께 하는 놀이"에서 찾고 있다. 어떻게 해야 좋은 아빠가 될 수 있을까. 한 아이의 아빠가 되기 시작하는 30대. 이젠 떫지도 그렇다고 무르익지도 않은 나이에 아빠가 된 사람들을 대신해 지난달 11일 경기도 용인에 위치한 그의 사무실을 찾았다.

그는 20년동안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는 수천가지의 놀이를 개발했다.
 그는 20년동안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는 수천가지의 놀이를 개발했다.
ⓒ 강영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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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20년 전부터 아빠 학교를 시작했다. 그때는 정식명칭도 없었고 단순히 이웃집 부부와 아이들을 데리고 가까운 공원에 가서 놀고, 함께 시간을 보내는 개념이었다.

"갓 결혼했을 때, 혼자 아이랑 놀아주는 게 쉽지 않았다. 그래서 머리를 쓴 게 이웃집 가정이랑 같이 아이들 데리고 공원에 함께 나가는 거였다. 아이들끼리 붙여두면 서로 잘 논다. 어른들은 옆에서 지켜봐 주기만 하면 된다. 그게 아빠 학교의 시작이었다."

두세 가정으로 시작한 작은 커뮤니티는 점점 커져 5년 뒤에는 5천 가정이 넘게 참여하는 대형 커뮤니티로 발전했다. 그때부터 권오진 교장은 본격적으로 아빠와 함께 하는 다양한 행사들을 기획하기 시작했다.

"제일 반응이 좋았던 행사가 무인도 프로젝트다. 2박 3일 동안 아빠와 아이가 함께 극한의 상황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활동이다. 최소한의 식량과 도구를 준다. 그때 아이는 아빠를 의지할 수밖에 없다. 저녁에 둘이 텐트에서 평소 못했던 속마음 이야기도 나누며 자연스럽게 관계가 친밀해진다. 무인도 들어가기 전에 서로 쳐다보지도 않던 부자가 나올 때는 손 잡고 나오는 기적을 체험할 수 있다. (웃음)"

아빠와 아들의 죽느냐 사느냐 물총서바이벌
 아빠와 아들의 죽느냐 사느냐 물총서바이벌
ⓒ 권오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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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놀이 개발의 영감을 일상 속에서 찾는다. 외출할 때도 휴대폰은 잊어도 메모장과 연필은 꼭 챙긴다.

"우리 삶 자체가 다 놀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일상 속에 수천 가지의 놀이가 숨겨져 있는데 사람들이 모를 뿐이다. 신문 하나로도 수백 가지의 놀이를 할 수 있다. 평소 아이랑 무슨 놀이를 하면 재미있을까를 항상 생각하다 보니 길가다가도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매일 업무에 짓눌려 집에 돌아오면 녹초가 되는 아빠들에게는 아이와 놀아주기가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권오진 교장은 아빠들이 오해 하고 있는 부분을 지적했다.

"아빠들이 놀이에 대한 개념을 잘못 알고 있다. 아이와 놀아 주려면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오해다. 놀이는 양보다 질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못 노는 아빠들은 5분도 안 돼서 아이를 울린다. 그러면 아빠도 힘들고 아이도 힘들다. 억지로 마지못해 아이랑 놀면 아이도 바로 안다."

아빠들이 아이와 놀아주는 것을 힘들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아빠도 '아빠'와 놀아본 기억이 없기 때문이다. 아빠의 몸에는 '아빠와의 놀이'라는 DNA가 존재하지 않는다.

"시대마다 아빠에 대한 요구가 달랐다. 옛날에는 아이와 놀아주는 아빠가 오히려 이상하게 보였다. 그 당시에 유교 문화가 강했기 때문에 아빠는 근엄해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어디서나 수직보다는 수평적인 관계를 중요시하고, 명령보다는 소통을 중요시 하는 시대가 되었다. 자상하고 친밀한 아빠가 인정받는 시대가 된 것이다. 권위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란 지금의 아버지들에게는 이런 분위기가 적응하기 힘들다."

아이와 놀때는 양보다 질에 초점을 맞춰야 해요.
 아이와 놀때는 양보다 질에 초점을 맞춰야 해요.
ⓒ 강영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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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아빠들을 위해 권 교장이 추천하는 것은 '1분 놀이법'이다. 퇴근 후 아이와 1분만 놀아줘도 아이가 좋은 관계를 만들 수 있다. 1분 놀이의 핵심은 아빠의 목소리, 액션, 칭찬에 있다.

"먼저 아빠의 재미있는 목소리 연기가 제일 중요하다. 그 다음은 액션이다. 마지막으로는 '우와 잘하네' 같은 칭찬이다. 이 세 가지만 잘 조합해서 1분 만에 아이를 웃게 하는 것이 포인트다. 일주일에 1번 1시간 놀아주는 것보다, 매일 1분씩 이렇게 놀아주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그가 제시하는 1분 놀이는 짧지만, 효과가 큰 이유는 아빠만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는 아빠의 목소리는 제일 좋은 교재다. 엄마의 목소리는 중 고음이고, 아빠는 중저음인데, 아빠의 중저음의 목소리가 아이의 사회성, 배려, 리더십 등 16가지 인성발달에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래서 아빠가 아이와 노는 게 시간 낭비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실은 아이에게 최고의 투자를 하는 셈이다." 

그는 오랜경험을 통해 좋은아빠 진단표를 제작했다.
 그는 오랜경험을 통해 좋은아빠 진단표를 제작했다.
ⓒ 권오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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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가 유명한 교육자라도 자기 자식만큼은 부모 뜻대로 안 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권오진 교장의 사무실 벽에 붙어있는 사진을 보니, 그는 요즘 소위 말하는 '자식 농사'를 잘 지은 듯 보였다.

"얼마 전에 딸아이가 K모 메신저 회사에 수백 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입사를 했다. 세 살 때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는데, 그리다가 싫증 나서 그림을 내팽개쳐 놓을 때가 자주 있었다. 그러면 나는 그것을 잘 모아 놨다가 앨범으로 만들어 거실에 잘 보이는 곳에 놓아줬다. 집에 오는 친척들이 그걸 보고 딸아이를 칭찬해 주곤 했는데, 그런 것들이 딸아이에게 그림을 계속 그릴 수 있는 동기를 유발한 것 같다."

그가 생각하는 좋은 아빠는 무엇일까. 그는 자녀가 어려울 때 스스럼없이 아빠를 찾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아빠가 좋은 아빠라고 말한다.

"요즘은 자녀를 낳아도 1명만 낳는다. 외동은 형제가 있는 아이들보다 외로움을 많이 느낀다. 그런 상황에서 아빠가 권위적으로 거리를 두거나 엄하게 대해버리면 그 아이는 갈 곳이 없다. 그래서 짧지만 자주 아이와 친밀한 관계를 쌓는 것이 중요하다. 그 시작은 바로 놀이다."

<아빠가 길을 잃었어요>의 남자 주인공은 어떻게 되었을까. 남자는 답을 찾기 위해 1주일간 방황을 했다. 이곳저곳을 떠돌다가 남자는 어린 시절 자신이 살던 집을 찾았다. 그곳에서 옛날 자신의 아버지 모습을 떠올렸다. 그리고 순간 깨달았다. 아이들이 필요로 하는 아빠는 슈퍼맨 같은 멋진 영웅이 아니라, 힘들 때 함께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따뜻한 친구 같은 존재라는 사실을 말이다.

덧붙이는 글 | 월간 세상사는 아름다운 이야기 5월호에도 실렸습니다.



태그:#권오진, #아빠학교, #아빠, #육아, #어린이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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