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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탄핵 이후 이명박 전 대통령의 4대강 사업은 적폐청산 1호라 할 만 하다. 차기 정권은 수문 개방뿐만 아니라 4대강 청문회를 최우선 정책 과제로 선정해야 한다. <오마이뉴스>는 대통령 선거에 즈음해 미국 현지 취재 등을 통해 4대강 사업의 폐해를 환기시키고, 정책 대안을 제시한다. 많은 관심과 응원을 부탁드린다. [편집자말]
산 클레멘테(San Clemente)댐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마주친 사슴.
 산 클레멘테(San Clemente)댐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마주친 사슴.
ⓒ 정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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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댐 부순 현장에 갑니다."

정대희 오마이뉴스 기자의 말을 듣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당초 예정에 없던 일정이었다. 강행군 일정으로 피곤에 절어 있던 4대강 독립군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이번에는 내가 물었다.

- 오늘은 기관 방문해 인터뷰하는 거 아니었나요?
"섭외 기관에서 댐 철거현장을 보여주고 싶다는 연락이 왔네요."

- 여기저기 댐 부수는 곳이 많네요.
"지금 가는 곳은 식수용 댐이었는데, 수질문제로 댐을 철거했다고 합니다."

13일 오전 8시 30분, 오클랜드를 떠난 '4대강 독립군' 일행은 미국 시골마을로 향했다. 미국에 도착한 지 5일째인데, 3번째 댐 철거현장 취재다. 미국은 정말 댐의 시대가 끝난 걸까?

드넓은 초원에 드문드문 보이는 집. 도로 양쪽으로 늘어선 아름드리나무는 한 폭의 풍경화였다. 평화로운 미국 서부의 '카멜 밸리(Carmel Valley)'에 이르자 자동차 엔진이 꺼졌다. 약속한 시간보다 일찍 도착했다. 4대강 독립군들이 길가에 서 있는데, 차량 한 대가 다가와 멈췄다. 차량에 붙은 'CA American Water(캘리포니아 아메리칸 워터)'라 적힌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댐 철거) 현장으로 곧바로 가자는데요."

인사도 제대로 나누지 못했는데, 아메리칸 워터의 로버트 제임스 감독관(Robert James, Treatment Supervisor)은 4대강 독립군을 재촉했다. 그는 전미 21개 주에 식수를 공급하는 민간회사 아메리칸 워터에서 37년째 근무 중이라고 했다. 4대강 독립군은 산 클레멘테(San Clemente) 댐으로 향했다. 아니, 댐을 철거한 현장으로 갔다.

산 클레멘테 댐은 미국 캘리포니아의 몬테레이 카운티에 있는 몬테레이의 남동쪽 약 15마일 (24km)에 위치한 카멜 강(Carmel River)의 아치형 댐이었다. 카멜 강과 산 클레멘테 계곡 합류점 바로 아래쪽에 있었다. 

굽이굽이 산길을 내달렸다. 창문 밖으로 펼쳐지는 울창한 숲에 눈이 매혹됐다. 원시림 한복판을 달리는 기분이었다. 사슴을 만나기도 했다. 로버트 감독관은 "이곳에서는 퓨마도 산다"고 말했다.

4대강 독립군은 4륜 구동의 작은 차로 옮겨 탔다. 그 뒤부터 아찔한 풍경의 연속이었다. 비가 내리는 비포장 산길을 오르자 옆은 천 길 낭떠러지다. 차는 자주 빗길에 미끄러졌다. 그때마다 간담이 서늘했다. 천신만고 끝에 댐 철거 현장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도착했다. 만세와 박수소리가 터졌다.

지도상에서 사라진 산 클레멘테 댐의 흔적을 찾기는 힘들었다. 콘크리트 댐이 있던 자리엔 시원한 계곡물이 흘렀다. 로버트 감독관은 "최근 몇 해 동안은 가물었지만, 올해는 유난히 비가 많이 와서 물이 풍부하다"며 "올해엔 25~50년 빈도의 홍수가 발생한 양만큼 많은 물이 흐르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식수용 댐을 철거하다

캘리포니아 아메리칸 워터(CA American Water)에서 37년간 근무한 로버트 제임스 감독관(Robert James, Treatment Supervisor)
 캘리포니아 아메리칸 워터(CA American Water)에서 37년간 근무한 로버트 제임스 감독관(Robert James, Treatment Supervisor)
ⓒ 정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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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클레멘테(San Clemente)댐은 지난 2015년 12월 철거돼 지금은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다.
 산 클레멘테(San Clemente)댐은 지난 2015년 12월 철거돼 지금은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다.
ⓒ 정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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댐 철거 현장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서 4대강 독립군들은 로버트 감독관에게 질문하기 시작했다.

- 댐을 철거한 이유는 무엇인가?
"안전 때문이다. 규모 7.0의 지진을 견딜 수 없었다."

식수원 댐을 내진설계 기준 문제로 철거했다니 믿기지 않았다. 로버트 감독관의 설명이다.

"댐이 만들어진 건 1921년이다. 매년 이맘때쯤 수문을 열어 방류했는데, 저수지와 수문의 유입구에 많은 양의 퇴적토가 쌓였다. 저수지가 더 이상 저수 기능을 못할 정도로 쌓였다. 거기다가 지진이라도 발생하면 댐 구조물이 지탱하지 못할 것이라는 판단으로 철거했다."

그의 설명에 의하면 산 클레멘테 댐은 몬테레이반도 주민 약 8만 명(3만 5천가구)의 식수를 공급하기 위해 지어졌다. 정수처리 시설에선 하루 6700만 갤런의 물이 정화된다고 했다.

식수원 오염이 댐 철거의 원인은 아니었을까?

"지표수를 식수원으로 사용하는 규정이 까다로워졌다. 이곳 댐의 정수 처리시설의 기술로는 충족시키지 못할 정도로 엄격해졌다. 하지만 이 문제가 댐 철거의 결정적인 이유였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퇴적토를 제거할 방식을 찾다보니 댐을 철거하는 게 최적이라고 판단했다. 파이프로 배출하는 방법, 따로 퇴적토를 퍼내서 실어 나르는 방법 등을 논의했으나 댐 철거가 비용을 절감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댐 철거가 퇴적토 문제를 해결하는 경제적인 방법이기도 했지만, 환경단체들의 반발도 거셌던 것으로 보인다.

"환경단체들은 기금을 만들어 댐 철거사업을 지원했다. 무지개송어 등 멸종위기종 어류의 서식지가 줄어들면서 야생위기동물 보호와 관련된 다양한 기관, 조직들도 앞장 서 댐 철거를 지지했다. 댐에 아주 큰 어도가 있었으나 물고기가 자유롭게 드나들지 못했다."

- 댐 철거에 대한 주민들의 반발은 없었나?
"일반적인 정서는 댐을 철거해야 한다는 의견이었다. 댐 바로 아래 사는 주민들은 늘 '댐이 무너지기라도 하면 큰일'이라며 불안해했다. 일부 주민은 '왜 댐이 이 지경(규모 7.0 지진에 견디지 못하게)이 되도록 관리를 잘 하지 않았냐며, 항의하기도 했다."

- 아메리칸 워터가 관리하는 다른 댐의 상황은 어떤가? 
"우리는 공공기관은 아니고 일반 고객에게 식수를 공급하는 민간회사다. 만약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댐을 짓기도 한다. 하지만 지금은 댐을 짓는 시기는 지났다. 댐을 지어서 문제를 해결하는 일은 드물다. 카멜강(Carmel River)상류에 '로스 파드레스(Los Padres)'란 이름의 흙댐이 있는데, 그곳이 우리가 관리하는 유일한 댐이다. 이 댐은 식수 공급을 위한 저장댐은 아니고 어류 등 서식지 보호를 위한 강물 정화를 위해 만들어진 댐이다." 

정리하면 이렇다. 산 클레멘테 댐이 안정성과 퇴적토 문제를 겪었다. 처음엔 댐 철거가 아니라 퇴적토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논의했다. 하지만 가장 좋은 방법은 댐 철거였다. 여러 정부기관들과 함께 댐 철거 허가와 방식을 놓고 논의한 끝에 최종적으로 '미 공공서비스위원회(Public Utility Commission)의 허가를 받는 것으로 행정 절차가 끝났다.

이렇게 해서 2년간의 댐 해체작업에 들어가 2015년 12월 철거가 완료됐다. 캘리포니아 주에서 가장 최근에 철거된 댐이다. 그라고 아직 두어 개 댐이 철거를 앞두고 있다.

"트럼프 4대강? 미국서는 어렵다"

4대강 독립군에게 산 클레멘테(San Clemente) 댐의 철거과정을 설명하고 있는 캘리포니아 아메리칸 워터(CA American Water)의 로버트 제임스 감독관(Robert James, Treatment Supervisor)
 4대강 독립군에게 산 클레멘테(San Clemente) 댐의 철거과정을 설명하고 있는 캘리포니아 아메리칸 워터(CA American Water)의 로버트 제임스 감독관(Robert James, Treatment Supervisor)
ⓒ 정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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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성과 퇴적토 문제를 놓고 보면, 한국의 영주댐과 판박이다. 영주댐은 여기에 더해 수질 문제까지 겹쳐 있다. 미국은 댐 철거를 결정했으나 한국은 댐을 지키기 위한 궁리만 하고 있다. 갖은 누수와 균열로 '4대강 누더기보'란 세간의 비판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언제 붕괴될지 모르는 불안감과 심각한 녹조 현장을 고스란히 껴안고 사는 게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산 클레멘테 댐의 운명에서 영주댐의 미래를 찾을 수 있다. 해체 수순을 밟는 거다. 4대강 재자연화는 선택이 아니라 필연적 과정이다. 4대강 독립군들이 한국의 4대강 상황을 설명하자 로버트 감독관은 이렇게 말했다.

"당신들의 강(4대강)은 계절변화라든가 이런저런 요인에 의해 유황 변화가 클 것 같다. 저수지에 갇힌 물이 수층의 온도 차이로 매년 위아래로 뒤집히면서 더 문제를 악화시킬 것이다. 녹조를 제거하려고 약품처리도 할 것이다. 하지만 약품처리는 역효과만 난다. 매우 극단적 방식이고 비용만 잡아먹는다. 미국의 경우 유입수가 오염되면 정수처리 시설의 법적 규제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한다."

- 한국식 4대강 사업이 미국에서도 가능하다고 생각하는가?
"한국의 4대강 사업과 같은 일은 미국에서 일어날 수 없다. 사전에 여러 전문가들이 긴밀하게 협의해 문제를 해결한다. 여러 기관과 전문가들의 조언을 구할 수 있는 시스템도 구축됐다. 아메리칸 워터는 21개 주에서 영업중인 큰 회사여서 각종 분야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광범위한 네트워크를 갖고 있다."

- 만약 한국의 이명박 전 대통령처럼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강행한다면?
"그래도 (한국식 4대강 사업은) 어렵다. 캘리포니아 주정부가 거절하면 끝이다. 한국의 4대강 사업은 여기서 결코 벌어질 가능성이 없다"

4대강 독립군이 처음으로 찾아갔던 미국 워싱턴 시의 엘와강은 연어 회귀와 수질 문제가 겹쳐서 댐 철거를 결정했다. 두 번째로 찾아갔던 워싱턴 주의 화이트 살먼강(White Salmon River) 컨딧 댐(Condit Dam)도 연어 회귀 등의 문제로 철거했다. 미국 오리건 주 남서부를 지나는 클라마스 강의 4개 댐은 물고기 떼죽음과 녹조 창궐 등의 문제를 일으켜 2020년까지 동시 철거하기로 결정했다. 4대강 독립군이 마지막으로 찾아간 산 클레멘테 댐은 저수 용량에 육박할 정도의 퇴적토 문제로 철거했다.

미국의 오래된 댐은 이렇듯 수질, 어류 회귀, 안전성 등 복합적인 문제를 일으켰다. 한국의 4대강에 16개 댐이 지어진 지 5년이 흘렀다. 미국 댐이 보여 왔던 모습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미국에서 해체된 댐은 전력과 먹는 물 생산 등의 명확한 목적이 있었다. 그럼에도 미국이 뒤늦게 댐 해체를 결정한 것은 경제성 문제 때문이었다. 댐을 유지하는 비용보다 댐을 해체하는 게 이득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한국의 4대강은 어떤가? 산 클레멘테 댐을 떠나오면서 영주댐으로 망가지는 지구별의 유일한 모래강 내성천을 떠올렸다.    

지난 2016년 8월 27일 오후 경북 영주 영주댐이 들어선 일대 낙동강에 녹조가 창궐했다.
▲ 댐에 막혀 녹조로 뒤덮인 낙동강 지난 2016년 8월 27일 오후 경북 영주 영주댐이 들어선 일대 낙동강에 녹조가 창궐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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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4대강, #4대강 독립군, #4대강 청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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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깎이지 않아야 하고, 강은 흘러야 합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의 공존의 모색합니다. 생태주의 인문교양 잡지 녹색평론을 거쳐 '앞산꼭지'와 '낙동강을 생각하는 대구 사람들'을 거쳐 현재는 대구환경운동연합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 장지혜 기자 입니다. 세상의 바람에 흔들리기보다는 세상으로 바람을 날려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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