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보험설계사ㆍ학습지 교사ㆍ퀵서비스 기사ㆍ골프장 경기보조원ㆍ방과후학교 강사ㆍ간병인ㆍ여행 가이드ㆍ대리운전자, 그리고 덤프트럭ㆍ굴삭기ㆍ레미콘 등 건설기계 운전자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특수고용직 노동자라는 점이다. 쉽게 말해 노동자이긴 하지만, 특수한 고용형태로 인해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해 노동3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노동자를 말한다.

이들이 처음부터 특수고용형태로 노동을 했던 건 아니다. 레미콘이나 화물운송 노동자의 경우 예전에는 회사에 소속돼 회사 소유 차량을 이용했다. 그러나 지금은 비싼 대출이자를 지불하며 차량을 구입해야만 하는, 회사 소속이 아닌 개인사업자로 등록했다. 개인 사장이라는 것이다.

지난 17일 전국건설노동조합 경인지역본부 사무실에서 최병대 건설노조 수도권서부건설기계지부 지부장을 만나 건설기계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조건과 그들의 요구사항을 들었다.

사고 잦은 건설현장, 노동자에게 책임 전가
   
최병대 건설노조 수도권서부건설기계지부장
 최병대 건설노조 수도권서부건설기계지부장
ⓒ 김영숙

관련사진보기


건설기계노동자들은 지난 13일 여의도 국회 앞에서 '노동기본권 쟁취'를 요구하며 하루 총파업을 벌였다. 이들의 핵심요구는 노동기본권 쟁취ㆍ산재보험 전면 적용ㆍ구상권 폐지ㆍ퇴직공제부금 당연 적용ㆍ적정 임대료와 8시간 노동 쟁취였다.

최 지부장은 핵심요구 다섯 가지 중 '구상권 폐지'를 먼저 설명했다. 구상권이란 다른 사람의 빚을 갚은 사람이 다른 연대채무자나 주된 채무자에게 상환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건설현장에서 벌어진 사고에 대해 건설사가 건설노동자에게 책임을 물어 변제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건설사가 책임져야 하는 상황인데 건설 장비를 가지고 있는 노동자들이 개인사업자라는 이유로 건설노동자들한테 책임을 전가한다. 덤프트럭의 경우, 트럭에 흙을 싣고 후진하다가 신호수가 없어 차가 전복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작업할 때 덤프트럭이 짐을 하차하는 과정에서 제일 많이 일어나는 사고가 전기선이 끊어지는 것이다."

최 지부장은 지난 1월 인천 송도 건설현장에서 일어난 사고를 들려줬다. 덤프트럭 노동자가 토사를 하차하면서 전기선을 건드려 양쪽에 있던 전봇대 두 대씩, 네 대를 부러뜨려 구상권 1000만원이 청구됐다고 했다.

"이 경우도 법적으로 건설현장에 배치해야 하는 신호수가 없어서 일어난 사고다. 신호수가 전기선이 있다는 걸 알리고 피하게 했으면 발생하지 않았을 사고인데, 모든 걸 노동자의 부주의로 치부해 책임을 묻는다. 지금에야 자동차보험이 1억원까지 상향 조정됐지만, 예전에는 보험 한도를 넘기면 개인 돈을 추가로 지불해야만 했다. 문제제기하면 임대차계약을 하지 않아 밥줄이 끊긴다. 억울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최 지부장은 이어서 우리나라 건설현장에서 1년간 사고로 사망하는 노동자가 700여명에 이른다며 다친 경우는 너무 많아 파악조차 안 된다고 덧붙였다. 사고 중 건설기계장비와 관련한 사고가 가장 많다고도 했다.

노동자를 범법자로 만드는 건설현장

최 지부장은 1989년에 덤프트럭 운전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먹고 살만했지만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힘들어졌다고 한 그는 억울한 게 많아 2004년부터 노조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는데, 그 이유는 '과적법' 때문이라고 했다.

"우리가 원해서가 아니라 건설사의 이윤을 위해 짐을 많이 싣는다. 도로 파괴의 주범은 건설사다. 그런데 우리에게 모든 과적의 책임을 물어 범칙금을 부과한다. 우리가 죄를 진 것도 아닌데 범죄자가 돼야 했다."

덤프연대(현 건설기계분과)는 2005년과 2006년에 과적법 개정을 요구하며 총파업을 벌였다. 그 결과 일부 개선되기도 했지만 여전히 불합리한 부분이 있단다.

과적 범칙금이 부과됐을 때 노동자가 거세게 항의하면 건설사가 지불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A 건설현장에서 일하다 과적으로 범칙금 50만원이 부과되면 건설사에서 전액을 지급한다. 그런데 건설이 완료돼 B 현장으로 옮기고 그곳에서도 과적으로 걸리면 가중처벌로 범칙금 70만원이 부과되는데, 건설사에서는 가중된 법칙금은 책임지지 않고 50만원만 준다.

"가중될 때마다 범칙금이 많아진다. 적정량만 싣겠다고 하면 (건설사가) 다른 차와 계약을 맺겠다고 협박해 어쩔 수 없이 과적한다. 차량 할부금을 내고 먹고 살기 위해선 불합리하다는 걸 알면서도 그렇게 일한다. 건설기계 노동자들은 법의 사각지대에 있다. 작업하다가 다쳐도 내가 처리해야 하고, 다른 노동자가 다쳐도 내가 책임져야 한다. 사고가 나면 삶이 파탄에 이르는 경우가 많다."

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건설노동자
  
 건설노조 수도권서부건설기계지부 조합원들은 지난 4월 13일 서울 총파업 출정식에 참여하기 전 인천시청 광장에서 사전 결의대회를 진행했다.
 건설노조 수도권서부건설기계지부 조합원들은 지난 4월 13일 서울 총파업 출정식에 참여하기 전 인천시청 광장에서 사전 결의대회를 진행했다.
ⓒ 김영숙

관련사진보기


건설노조는 지역본부(10개)와 분과위원회(4개)로 구성돼 있다. 분과위원회는 건설기계ㆍ토목건축ㆍ타워크레인ㆍ전기분과가 있다. 최 지부장은 경인지역본부 본부장이자 수도권서부건설기계지부 지부장을 겸하고 있다.

건설노조 조합원 3만 5000명 중 건설기계분과 조합원이 1만 8000명으로 절반을 넘는다. 건설기계분과는 과거 건설운송노조(덤프연대ㆍ레미콘 등)가 건설노조로 통합하면서 만들어졌는데, 덤프트럭과 레미콘 이외에 펌프카ㆍ불도저ㆍ크레인 등, 건설기계관리법상 건설기계 27종 중 14종을 다루는 노동자들을 조합원으로 두고 있다.

수도권서부건설기계지부는 덤프ㆍ굴삭기ㆍ레미콘ㆍ기중기ㆍ로더ㆍ스카이ㆍ살수차ㆍ도저 등, 건설기계 9종의 노동자 1660여명이 조합원으로 조직돼 있다.

"직종마다 노동조건과 현안이 조금씩 다르지만, 큰 문제는 그 뿌리가 같다. 굴삭기의 경우 체불임금 문제가 크고, 덤프는 고용 문제가 심각하며, 기중기는 안전사고가 많다. 로더는 장시간 작업이 문제다. 스카이의 경우 건설현장에서 일하지만 차량도 아니고 건설장비로 분류되지 않아 건설현장에서 외면당하고, 건설사의 횡포가 심하다. 그 중 모든 기종이 겪고 있는 불법 다단계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2008년 건설노조의 투쟁으로 시공참여제도를 폐지해 중간 착취구조를 없앴지만, 현장에는 여전히 존재한다."

시공참여자란 전문건설업체와 노동자 중간에 존재하면서 노동자에게 일을 알선하고 알선료를 받는 중간 단계 구조로, 불법이지만 여전히 횡행하고 있다.

수도권건설기계지부 간부들은 지난 13일 총파업 출정식이 열릴 서울에 가기 전, 인천시청 광장에서 사전 결의대회를 했다. 이때 대표단은 인천시 정무경제부시장과 면담했다. 최 지부장은 부시장이 한 발언에 깜짝 놀랐다고 했다.

"이번 총파업 요구 중 하나가 8시간 노동이다. 노동자라면 당연히 누려야할 권리다. 건설노동자도, 투쟁의 성과로 건설사와 체결하는 공정거래위원회의 표준약관에 8시간 노동이 명시됐다. 그러나 부시장이 '표준약관은 의무조항이 아니라 권고안'이며 '건설현장에서 8시간을 초과해 노동하는 건 지방자치단체의 관리 대상이 아니라, 고용노동부가 관리해야한다'고 말했다. 우리는 특수고용노동자라 노동기본권이 없어 근로기준법 적용 대상도 아니다. 그런데 고용노동부가 관리해야 한다는 부시장의 발언이 기가 막힌다. 우리는 노동법의 사각지대에 존재하는 노동자들이다."

이어서 최 지부장은 건설현장의 장시간 노동은 일이 많을 때 추가로 하는 업무의 연장이 아닌 관행으로 이뤄지는 일이라, 근절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국에서 인천이 적정임대료가 가장 낮다. 이명박 정부 시절 국책사업인 4대강 사업을 하면서 건설장비가 4000대 늘었다. 그 후과로 현재 수도권에 있는 장비 중 70%가 남아돈다. 수요공급의 불균형을 이용해 건설사는 싼 단가의 장비를 모집한다. 영종도나 송도 등, 대단위 공사현장이 생기면서 수도권에 있는 다른 지역의 장비들이 일감을 쫓아 인천으로 쏠린다. 정부의 국책사업이 새 장비를 구입하게 만들었지만, 정부는 일자리를 책임져주지는 않는다. 적정임대료를 건설 설계 계획표에 넣어야 한다. 미국과 같은 외국에서는 표준품셈(=정부가 고시하는 단가표)대로 노동자에게 임금을 지급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건설사끼리 계약할 때는 표준품셈으로 산출하지만, 노동자에게 지급하는 것은 그것의 반이다. 건설산업기본법이 있지만, 그걸 어기더라도 대부분 솜방망이 처벌이라 무시한다."

건설현장, 정경유착의 온상

건설노조 건설기계지부 대표자들은 지난 4월 3일부터 13일까지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노동기본권 쟁취’를 요구하며 노숙농성을 했다.
 건설노조 건설기계지부 대표자들은 지난 4월 3일부터 13일까지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노동기본권 쟁취’를 요구하며 노숙농성을 했다.
ⓒ 김영숙

관련사진보기


21세기에 살고 있지만 여전히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자성을 운운하는 현실이 안타깝다는 최 지부장은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자성을 인정하지 않음으로 인해 건설기계노동자의 가정이 파탄 나는 경우를 많이 봤다고 했다.

"퇴직금은 못 받아도 살지만, 일을 한 대가를 못 받으면 못 산다. 이른바 캐피탈이라고 하는 신용대출을 이용하지 않는 건설노동자는 거의 없다. 장비 구입비를 메우느라 매달 엄청난 이자와 원금을 상환해야 한다. 3개월 이상 돈을 못 내면 차를 빼앗아간다. 게다가 임금체불은 만연해 있다. 지난 설에 인천지역 체불임금만 8억원이었다. 다달이 들어가는 비용은 많은데 부도가 나서 일한 돈을 못 받으면 살고 싶지 않다."

최 지부장은 동료 노동자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했던 아픈 경험을 몇 차례 겪기도 했다. 왜 건설노동자들은 일한 만큼 제때 돈을 받지 못하는 것일까. 그는 건설현장이 정경유착의 온상이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얼마 전 뉴스에도 나왔다. 안전관리비용을 줄여서 사고가 났는데, 줄인 돈을 부정한 세력에 전달한 것이다. 정말 바꿔야하는데, 벽이 높다. 여전히 우리는 노동자냐, 아니냐의 논쟁을 하고 있는 수준이다. 우리가 요구하는 건, 더 달라는 것도 아니다. 표준약관에 명시된 대로 8시간 노동을 하고 표준품셈대로 적정임대료를 책정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죽지 않고, 다치지 않고 일할 수 있게 산업안전보건위원회에 노동자의 참여를 보장해달라는 것이다. 또한 지역경제 발전을 위해 지역의 노동자를 우선 고용하게 하자는 것이다."

건설노조 건설기계분과는 대선 후보들에게 핵심요구 사항(노동권ㆍ산재보험 적용ㆍ구상권 폐지ㆍ8시간 노동ㆍ적정임대료 등)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문재인ㆍ유승민ㆍ심상정 후보캠프는 노조와 입장을 같이 했다. 홍준표 후보캠프는 답이 없었고, 안철수 후보캠프는 검토하겠다는 애매한 의견을 보냈다.

건설노조 건설기계분과 대표자들은 지난 4월 3일부터 총파업을 벌인 13일 오전까지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노숙농성을 진행했다. 농성을 진행하며 관련 법안을 제출한 국회의원과 간담회를 하고 농성장을 찾아온 국회의원들과 면담하기도 했다.

최 지부장은 끝으로 "노동자성을 인정받고 노동기본권 완전 쟁취를 목표로 지금까지 숱하게 싸웠다. 올해 다시 노동기본권 쟁취를 핵심으로 강고한 총파업투쟁을 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건설노조 수도권서부건설기계지부 간부들은 지난 4월 13일 인천시 정무경제부시장을 비롯한 인천시 관계공무원들과 면담을 했다.
 건설노조 수도권서부건설기계지부 간부들은 지난 4월 13일 인천시 정무경제부시장을 비롯한 인천시 관계공무원들과 면담을 했다.
ⓒ 김영숙

관련사진보기


덧붙이는 글 | <시사인천>에 실림



태그:#건설노조, #수도권서부건설기계지부, #최병대, #노동기본권 쟁취, #특수고용노동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