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도 채 남지 않은 대선에서 강원도 민심은 누구의 손을 들어줄까.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통령 후보와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는 지난 24일 강원도 원주와 춘천 재래시장에서 시간차를 두고 유세전을 펼쳤다. 전통적인 보수 텃밭인 강원권 민심을 잡겠다는 두 후보의 의도가 엿보였다. 현재 홍 후보와 유 후보는 각각 "이번 대선 우파는 나 하나"·"내가 보수의 새 희망"이라 외치며 서로 자신을 '진정한 보수 후보'라고 주장하는 상황. 두 후보의 유세를 바라보는 강원도민들의 표정을 통해 민심의 향방을 살펴봤다.
강원도가 지역구 국회의원 8석 중 단 한 석(송기헌 민주당 의원·원주을)을 제외한 나머지 모두가 구여권(자유한국당·바른정당) 출신일 만큼 보수 우세 표밭으로 분류돼온 지역이다.
그런데 이날 춘천 중앙시장의 경우 홍 후보 측은 약 120여 명, 유 후보측은 약 70여 명의 시민이 유세를 지켜봤다. 그마저도 각각 절반에 해당하는 60여 명(홍)·30여 명(유)은 유니폼을 입은 당 선거운동원들이었다. 한 주변 상인은 "(지난 20일)문재인 후보가 방문했을 땐 이번보다 서너배는 많이 사람이 몰려 골목까지 들어올 정도였다"고 귀띔하기도 했다.
홍·유 유세에도 문·안 얘기만
민심의 안테나는 정작 다른 데에 있었다. 이날 유세 경쟁을 펼친 홍·유 후보보다 주변 시민들에게 오히려 더 많이 회자된 이름은 여론조사 지지율 1·2위를 달리고 있는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였던 것. 홍·유 두 후보에 대한 질문에 "글쎄 잘 모르겠다", "나쁘지 않은데 별 관심 없다"고 대답한 시민들도 문 후보와 안 후보에 대한 질문에는 최근 안보관이나 네거티브 논란을 설명하며 열을 올리는 모습이었다.
특히 60대 이상 노년층의 안보관 관련 '반문' 정서가 가장 뚜렷해 보였다. 문 후보 얘기를 꺼내자마자 당장 "문재인은 안 돼"란 반응도 어렵지 않게 마주칠 수 있었다. 원주시 자유시장의 한 상가 경비원(60대)은 "여기(원주) 분위기는 대개 '문재인은 아니다'이다"라며 "방송에서 보면 뭔가 속이려는 게 많은 것 같고 말 바꾸기를 너무 자주 한다"고 비판했다. 문 후보 이름이 거론되자 주변에서는 "빨갱이", "밥맛 없는 사람" 같은 거친 표현도 나왔다. 한 어르신은 "당선되면 북한부터 간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역성을 내기도 했다.
춘천 중앙시장 주변 음식점을 운영 중인 권아무개씨는 이에 "아무래도 이쪽 시장 주변에는 노년층이 많다. 이분들 대부분이 민주당과 문 후보를 지지하지 않는다"며 "강원도는 오래 전부터 군사접경지역이란 이유로 소외돼있어 특히 그런 것(안보관)에 확고한 후보를 좋아한다"고 설명했다. 권씨는 또 "내 아들은 문 후보(지지)더라. 이쪽도 젊은 사람들은 대부분 그런 것 같다"고 덧붙였다. 실제 본인을 심상정 정의당 후보 지지자라고 밝힌 한 춘천 출신 대학생은 "또래 친구들 사이에선 문 후보가 확실히 된다는 분위기"라고 전하기도 했다.
문 후보에 대해선 다소 격한 반응이 많았다면 안철수 후보에겐 상대적으로 부드러운 평들이 오갔다. "이미 지난 대선(2012년) 때 양보의 미덕을 보였다"며 안 후보 지지 이유를 밝힌 원주 시장 옷 가게 주인 현아무개씨(60대)는 "장사를 많이 해봐서 아는데, 지금 겪는 안 후보의 곤란(부인 김미경 교수 1+1특혜 채용 의혹 등 네거티브)은 문 후보에 비해 금방 스스로 극복할 수 있다고 본다"고 평가했다. 현씨는 또 "박근혜 전 대통령 옆에 있던 홍·유 후보는 왜 사퇴 안 하는 것이냐"며 "그래야 안 후보가 (당선)될 텐데"라고 말했다. 민심은 이미 최근 후보 연대·단일화 움직임이 서서히 일어나고 있는 추세에 기민하게 반응하고 있었다.
홍은 '돼지 흥분제' 논란에, 유는 '사표 방지 심리'에 발목
보수 표밭 강원권에서도 문·안 두 후보에게 주요 화제거리를 내주고 만 형국이지만 이날 홍 후보는 '안보'를 강조한 메시지로, 유 후보는 친근한 '스킨쉽' 유세로 각각 지지를 호소했다.
홍 후보는 이날 유세에서 "지금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 위기에 가장 큰 타격을 입을 곳은 강원도"라면서 "강력한 정권으로 북을 제압하겠다"고 밝혀 지지자들의 호응을 받았다. 홍 후보의 춘천 유세 현장에서 배포 받은 태극기를 흔들던 한 30대 남성은 "홍 후보는 보수의 아이콘"이라며 "안보관에 있어서 가장 확실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반면 최근 홍 후보의 '돼지 흥분제' 논란은 강원 민심에서도 타격이 큰 모양새였다. 춘천 명동길 에서 장을 보던 한 중년 여성 유권자는 "원래는 사람 좋게 봤는데 그게 제정신이냐"며 "왜 사퇴하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주변에 있던 건어물 가게 주인 여성은 "TV(토론)로 봤는데 아이들에게 부끄러운 짓이었다"고 잘라 말했다. 홍 후보의 단점으로 유독 해당 논란을 꼽는 시민이 많아, 타 후보들이 줄줄이 사퇴를 요구했던 지난 23일 선거관리위원회 TV토론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가늠케 한다.
홍 후보가 시민들과의 접촉을 최소화한 채 유세 연설에 집중했다면 유 후보는 직접 시장 주변 가게에 일일이 들어가 상인들에게 먼저 악수를 청하며 친근한 이미지를 강조했다. 유 후보는 춘천 연설 도중 예기치 않게 한 할머니가 큰 목소리로 이야기를 끊자 끝까지 이야기를 경청하는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다. 유 후보의 연설을 본 한 60대 남성은 "나는 진보 지지자이지만 유 후보가 나쁜 보수는 아닌 것 같다. 홍 후보가 해로운 보수라면 (유 후보는)있어도 괜찮은 보수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좀처럼 3~4%대의 지지율 답보 상태를 돌파하고 있지 못한 유 후보는 낮은 인지도와 사표 방지 심리에 발목을 잡혔다. 춘천 시장의 한 상인은 "유 후보는 능력 있고 똑똑해 보이긴 한데 어떤 사람인지는 잘 모르겠다"며 "어차피 찍어도 안 되니까 차라리 3번(안 후보) 찍는 게 낫다"고 전했다.
'박' 찍은 사람들이 느끼는 정치 환멸, 그리고 부동층아직 표심을 결정하지 않은 부동층도 유독 많았다. 특히 박 전 대통령을 찍었다가 실망했다는 유권자들이 그 중 눈에 띠었다. 지지하는 후보가 없다고 밝힌 한 춘천 시민은 "우리는 박근혜를 찍은 사람들이다. 어쩌다 (박 전 대통령이)그 지경까지 됐는지 모르지만 어째든 정치는 다 기득권들 밥그릇 싸움이더라"며 "아직 눈에 드는 후보를 찾지 못했다"고 말했다.
춘천 중앙시장의 한 이불집 점주는 "홍·유 후보 유세에 나오는 이들처럼 마음을 확실히 정한 사람은 소수이지 않냐"며 "대다수 사람들은 아직 관찰 중인 것 같다. 국정농단 사태 이후 확실히 누가 대통령 되든 우리들만 열심히 먹고 잘 살면 된다고 생각하게 됐다"고 전했다. 역시 5년 전 박 전 대통령에게 투표했다고 밝힌 이 시민은 그러면서도 "지금도 (대통령)없는데도 잘 살지만 그래도 좋은 사람 뽑아서 (나라를)잘 이끌어가길 바라는 게 우리들 마음"이라고 했다.
이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자, 강원의 민심을 얻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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