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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전쟁기념관에서부터는 진짜 걷는 사람들만

 용산 전쟁기념관에서의 출발
 용산 전쟁기념관에서의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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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통신사 옛길 걷기팀은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잠시 쉬어간다. 그것은 두 시간 가까이 걸었기 때문이다. 전쟁기념관은 1955년부터 1989년까지 육군본부가 있던 자리다. 그곳에는 취타대와 농악대가 차로 먼저 와 옛길 걷기팀을 또 다시 환영한다. 여기서 15분 정도 휴식을 취한 다음 옛길 걷기팀이 다시 출발한다. 이곳까지 함께 왔던 유스 조선통신사와 아리랑 태무단 학생들도 떨어져 나간다.

이제 오늘의 최종목적지인 월천현까지 갈 사람만 남은 것이다. 월천현은 순우리말로 달래 고개다. 그런데 이 지역 사람들은 달래내 고개라고 부른다. 달래내 고개서쪽 청계산 자락에 있는 정토사(淨土寺)가 오늘 걷기의 최종 목적지다. 행정구역상으로는 성남시 수정구 상적동 345번지가 된다.

 녹사평로에서 신호등을 기다리는 대원들
 녹사평로에서 신호등을 기다리는 대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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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기념관을 출발해 정토사로 향하는 사람은 80명 정도 된다. 이들은 이태원로를 따라 동쪽 녹사평역 방향으로 걸어간다. 길이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다. 녹사평역은 동서로 이어지는 이태원로와 남북으로 이어지는 녹사평대로가 만나는 지점에 위치한다. 이곳 녹사평역이 과거 부아고개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녹사평역에서 남쪽으로 대로를 따라가면 반포대교가 나온다. 

녹사평역에서 보광동 지나 한강진 건너기

 캐피탈호텔 조형물
 캐피탈호텔 조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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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길 걷기팀은 녹사평대로를 따라가다 장문로 방향으로 좌회전한다. 장문로는 캐피탈호텔을 지나 보광동 주민센터로 이어진다. 이 길 주변에는 외국대사관들이 많아 대사관로로 불리기도 한다. 독일대사관, 이란대사관, 루마니아대사관, 헝가리대사관 등이 이곳에 있다. 보광동 지리에 밝은 걷기팀원이 이곳이 옛날 장문고개로, 보광동 구 버스종점에서 차를 내려 걸어 올라왔다고 한다.

장문고개를 넘으면 내리막길이다. 길 주변에 상가가 많은 편이다. 70/80년대 서울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는 동네라는 생각이 든다. 장문로는 보광동을 지나 한남동으로 이어진다. 보광동과 한남동 경계에 현대 하이페리온 아파트가 위치하고 있다. 바로 이곳에 제천정(濟川亭) 표지석이 있다. 제천정은 한양을 떠나는 시인묵객들이 한강을 바라보며 무수히 많은 시를 남긴 곳이다.

 한강을 건너는 대원들
 한강을 건너는 대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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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7년 제1차 일본사행을 떠난 부사 경섬은 1월 13일 제천정 옛터에서 친우 30명과 전별한다. 이를 통해 임진왜란으로 제천정이 불타 없어진 것을 알 수 있다. 제천정을 지나면 바로 한강진(漢江津)이다. 그것은 경섬이 제천정에서 전별하면서 술을 나누었는지 취기에 한강에서 썰매를 타고 놀았다는 기록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길은 강남대로를 따라 양재역까지 이어진다

 신논현역 주변 빌딩
 신논현역 주변 빌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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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같으면 한강나루에서 배를 타고 한강을 건넜겠지만 우리는 한남대교를 통해 신사동으로 들어간다. 신사동에서부터는 경부고속도로가 시작된다. 그러므로 걸어서 강남대로로 들어서려면 쉽지가 않다. 우리나라 교통이 자동차 위주로 되어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신사역 주변에서 잠시 쉬어간다. 용산 전쟁기념관을 떠난 지 두 시간 가까이 되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걷기는 두 시간 마다 15분 정도 휴식을 갖는 것이 좋다.

신사역에서 남쪽으로 강남대로를 따라가면 논현역이 나온다. 이곳에서 신논현역을 지나 강남역에 이르는 길이 최고의 상업요지가 되었다. 신논현역 부근에는 새로운 건축들이 여럿 보인다. 다홍(Dahong)이라는 상호가 붙은 빌딩이 인상적이다. 벌집 모양이다. 어반 하이브로 불리기도 한다.

 싸리고개 표지석
 싸리고개 표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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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옆으로는 신한은행 논현동지점이 들어선 건물도 특이하다. 골조건물과 유리건물이 붙어있는 형태다. 건물 위쪽의 커다란 원통형 유리 두 개가 인상적이다. 통신사들이 이 건물을 봤으면 아마 기절했을 것이다. 우리는 이제 강남역 지하도를 통과해 뱅뱅사거리까지 걸어간다. 토요일이라 그런지 길이 인산인해다. 

뱅뱅 사거리에서 우리는 강남대로를 벗어나 옛길로 들어선다. 은광여고로 이어지는 도곡로 4길이다. 이 길을 따라가다 보면 싸리고개라는 표지석을 볼 수 있다. 싸리고개를 넘다보면 도곡동 현대 하이페리온 아파트가 나온다. 이곳에서 남쪽으로 양재역이, 북쪽으로 남산이 보였다고 하는데, 이제는 빌딩과 주택에 가려 아무 것도  안 보인다. 우리의 다음 행선지는 양재역(良才驛)이다.

양재역과 말죽거리

 말죽거리 표지석
 말죽거리 표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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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광여고, 은성중학교, 언주초등학교를 따라 길은 내리막이다. 이쯤부터 도심을 조금씩 벗어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건물의 높이도 낮아질뿐더러 거리를 다니는 사람수도 적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하철 양재역에 가까워지니 다시 사람들이 많아진다. 양재역 4번 출구 부근에는 말죽거리 표지석을 세워놓고 그 아래 말죽거리의 유래를 적었다.

"말죽거리(馬粥巨里)는 우리가 흔히 부르는 이름이며 각종 기록에는 양재역으로 되어 있다. 양재역은 한양 도성에서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등 삼남으로 나가고 들어오는 교통상의 요충지였다. 관리들은 역에서 대기하고 있는 말을 징발하거나 삼십 리마다 설치된 역에서 말을 바꿔 탈 수 있었으며, 일반 백성들은 먼 길을 가는 경우 역 부근의 주막에서 여장을 풀고 말도 쉬게 하였다. 긴 여정을 위해 말죽을 많이 먹여야 하는 거리였으므로, 말죽거리라는 이름이 붙여졌을 것으로 보여진다." 

 양재1동 주민센터 앞의 대원들
 양재1동 주민센터 앞의 대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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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역에서 걷기팀 일행은 횡단보도를 건너 양재1동 주민센터 앞으로 간다. 그곳에 말죽거리 표지석이 또 하나 있기 때문이다. 양재역 북동쪽의 표지석이 도곡1동 주민들이 세운 것이라면 이곳의 표지석은 양재동 말죽거리 향우회에서 세웠다. 이곳의 표지석은 말죽거리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제주에서 보내온 말을 손질하고 말죽을 먹인 곳이라는 설과 이괄(李适)의 난 때 인조임금이 피난길에 말 위에서 팥죽을 들었던 곳이라는 설이 있음."

그리고 650m 떨어진 곳에 사도감 터가 있고, 2,650m 떨어진 곳에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관이 있다고 표시해 놓았다. 그런데 설명문에 아쉽고 부족한 점이 많다. 말을 바꿔 타는 교통통신의 중요성보다 죽을 먹는 말에 중점을 두고 있으니 말이다. 말로써 말 많으니 말 말을까 하노라.

청계산 가는 길에 만난 미륵보살

 양재천을 건너는 대원들
 양재천을 건너는 대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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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양재역 부근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다시 최종목적지 청계산 정토사를 향해 출발한다. 길은 강남대로를 따라 양재천을 건넌다. 양재천은 관악산에서 발원해 과천, 서초, 강남을 지나 탄천(炭川)으로 흘러들어간다. 양재천을 지나면 분위기가 확 바뀐다. 고층빌딩은 줄어들고, 멀리 청계산 산줄기가 보인다. 정토사까지는 7㎞가 조금 넘게 남았다.

길은 한국 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센터)까지 일사천리다. 양재동 농수산물 유통센터로 불리는 곳이다. 이곳에는 작은 규모의 꽃동산도 조성되어 있다. aT 센터를 지나 남쪽으로 계속 내려가면 염곡동 사거리에 이른다. 그곳에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 빌딩이 있다. 빌딩 옆길에는 유성기업 노조파괴를 규탄하는 플래카드와 피켓이 걸려 있다.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 본사 건물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 본사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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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건너 동쪽 편에는 코트라(Kotra), 코이카(KOICA), 한국연구재단(NRF) 등 공공기관이 들어서 있다. 하늘에 구름이 조금씩 끼기 시작한다. 한국연구재단을 지나면 길은 헌릉로와 청계산로로 갈라진다. 우리 일행은 오른쪽 청계산로로 방향을 튼다. 이 길로 들어서면 오른쪽으로 농협 하나로 클럽이 있다. 그리고 하나로 클럽을 지나면 여의천을 만나게 된다.

여의천을 건너기 위해서는 원지교를 건너야 하고 여기서부터는 여의천을 따라 상류로 올라간다. 이 길이 걷기에는 아주 좋다. 하천 안으로 또는 둑으로 따라가는 길은 신원(新院)까지 이어진다. 본말(本村)을 지나 청룡13통 마을에 이르자 비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잠시 후에는 우박까지 동반한 강력한 소나기다. 우리는 마을회관에서 잠시 소나기를 피한다.

 원지동 석불입상
 원지동 석불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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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삼십 분쯤 후 비가 그쳐 일행은 다시 길을 재촉한다. 길은 경부고속도로 쪽으로 이어지고, 길옆에서 미륵당(彌勒堂)을 만난다. 미륵당 앞에는 3층 석탑도 있다. 안내판을 보니 미륵당 안에 있는 석불입상과 3층 석탑이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93호다. 문화재의 공식 명칭은 원지동 석불입상 및 석탑이다. 석불입상은 높이가 225㎝로 얼굴은 하얗게 머리는 검게 칠해졌다.

조선시대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왼손에 든 지물 때문에 미륵보살로 여겨진다. 미륵부처는 원터골의 수호신으로 받들어지고 있으며, 1년에 한 번씩 주민들이 이곳에서 당제를 지내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불상과 석탑이 같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곳에 절터가 있었을 가능성도 있다. 미륵당은 바깥에서 문이 잠겨 있어 문틈으로 불상을 들여다볼 수 밖에 없다. 불상의 상호가 그리 원만구족해 보이지 않는다.

정토사에서 과일과 다과를 대접 받다

 옛골로를 따라가는 대원들
 옛골로를 따라가는 대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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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당에서 우리 일행은 경부고속도로 아래로 난 길을 따라 청계산 정토사로 향한다. 고속도로 아래에는 채소 등 농산물을 파는 노점상들이 즐비하다. 우리 대원들은 아직 우비를 벗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날이 좋아졌지만 고속도로를 지나는 차들이 뿌려대는 물안개는 여전하다. 길은 달래내 고개를 따라 조금씩 오르막이다.

우리는 상적교 부근에서 청계산로를 벗어나 달래내로로 들어선다. 상적교라는 이름은 상적천(上笛川)이라는 하천 이름에서 따왔다. 바로 이곳에서부터 행정구역이 서울시 서초구 신원동에서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고등동으로 바뀐다. 길은 달래내로에서 옛골로로 이어진다. 이 길을 따라 상적천 상류로 올라가면 정토사가 나온다. 대원들은 오후 5시 12분 최종목적지 정토사에 도착한다.

 정토사 기념촬영
 정토사 기념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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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토사는 불사를 하느라 어수선하다. 마침 주지인 보광 큰스님이 나와 우리 일행을 맞이한다. 2년 전 조선통신사 옛길 걷기 할 때도 스님을 만난 적이 있어 구면인 대원들이 여럿이다. 보광 스님은 현재 동국대학교 총장으로 바쁘기 때문에 주말에만 이곳 정토사에 머무는 것 같다. 그는 새로운 불사에 대해 대원들에게 자세히 설명한다. 그는 일본 교토 불교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기 때문에 일본어가 유창하다.

그는 정토사가 위치한 지세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한 마디로 명당이라는 것이다. 대원 중 일부가 법당이 완공되면 2년 후 조선통신사 옛길 걷기 때 템플스테이를 할 수 있도록 배려해 달라고 부탁을 한다. 대원들은 법당 앞 계단에서 첫날 무사한 워킹을 기념해 사진촬영을 한다. 완주한 회원이 70명쯤 되어 보인다. 보광스님은 회원들과 함께 종무소로 이동해 다과와 과일을 들며 담소를 나눈다. 이때 시간이 5시 35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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