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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후보님께 묻습니다, 제가 '갑'철수 입니까, 안철수 입니까?"
"문재인 후보에게 묻습니다. 제가 MB(이명박 전 대통령) 아바타입니까?"

묻고 또 물었다. 유독 문재인 후보에게 물었다. 안철수 후보는 그렇게 자진해서 자신의 '검증' 혹은 '네거티브' 국면에서 불거진 문제들을 하나 둘 '자백'(?)해 나갔다. 그것도 꼭 짚어 문재인 후보에게 확인해 달라고, 맞느냐고 물었다. 민주당 내부에서 작성했다는 '네거티브 문건'에 등장한다는 표현을 스스로 언급한 것이다. 오죽했으면, 문재인 후보는 안철수 후보가 안타까운 듯 이런 요지의 답을 했을까.  

"안철수 후보님, MB 아바타, 사모님 관련 문제는 알아서 해명하십시오. 국민을 바라보고 정치하십시오. 문재인 반대 위해 정치하십니까? SNS 공격은 제가 가장 많이 받았는데 일일이 안 후보님께 따지지 않잖아요. 검증의 과정이니 해명하시면 됩니다."

그러니까, 시작부터 '돼지 흥분제' 논란으로 인해 홍준표 후보에게 쏠린 후보들의 "사퇴" 요구가 준 충격을 안 후보의 뜬금없는 '셀프 디스'가 다 휘발시켜버린 격이었다. 소셜미디어 상에서는 "MB 아바타가 무슨 뜻"이냐는 물음이 난무했다. 'MB 아바타'를 비롯해 '안철수 딸', '전재수 의원' 등 안철수 후보가 스스로 제기한 의혹들이 차례로 실시간 검색어에 등극했다. 토론 직후, 지지자들은 안 후보의 페이스북에 성토에 가까운 댓글을 달았다.

안 후보가 '화난 모범생'으로 복귀했다면, 홍 후보는 예의 그 능글능글한 여유를 잃고 다소 풀이 죽을 수밖에 없었다. 토론 시작부터 심상정 후보를 필두로 유승민·안철수 후보가 연이어 홍 후보의 자서전에 언급된 '돼지 흥분제' 논란을 두고 "사퇴"를 요구한 것이다. 홍 후보는 거듭 국민들에게 사과했지만, 논란 자체가 희대의 사안인지라 대선후보 토론에서 이런 문제가 거론되는 것 자체를 불쾌하게 느끼는 반응들이 주를 이뤘다.

그리하여, 23일 오후 지상파 3사 생중계로 방송된 중앙선관위 주관 정치분야 1차 토론회는 문재인·심상정 후보의 완연한 공동승리로 귀결됐다고 볼 수 있다. 문 후보는 여전히 자신에게로 쏠린 질문 공세를 적절한 '팩트'까지 뒤섞으며 효과적으로 방어하는 동시에 상대방의 약점을 찌르는 공수전환을 보여줬다. 특히 2차 토론까지 볼 수 없었던 단호한 '성격'을 선보인 것은 큰 수확이었다.

2차 토론까지의 결과를 학습하고 복기한 것은 심 후보 역시 마찬가지였다. 2차 토론에서 '문재인 때리기'에 동참하면서 쏟아졌던 문재인 지지자들이나 잠재적 '진보' 유권자들의 비판을 의식한 듯, 이날 공격의 외연을 확대하는 한편 "할 말은 제대로 하는" 진보정당 대선후보로서의 진면목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세 번째 TV토론인 만큼 주제를 무시(?)하는 난상 토론이 이어지면서 후보 간 화력도 어느 때보다 거셌다. 후보별 총 18분의 자유토론 시간이 주어지는 시간 총량제는 그대로였지만, 양상은 분명 달랐다. 각 후보별로 결정적 활약들을 꼽아 봤다.  

공수 전환과 시간 분배 빛난던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선후보가 23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에서 열린 중앙선관위 대선후보 초청 1차 토론회에서 준비하고 있다.
▲ TV토론 준비하는 문재인 후보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선후보가 23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에서 열린 중앙선관위 대선후보 초청 1차 토론회에서 준비하고 있다.
ⓒ 국회사진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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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끊지 마세요!"

문재인이 달라졌다. 송민순 회고록 등 색깔론 공세를 펼치던 유승민 후보에게 "말 끊지 말라", "유 후보는 토론 태도를 바꿔야 한다"며 화끈하게 반론을 펼쳤고, "합리적, 개혁적 보수인데 구태의연한 색깔론을 펼친다"고 반격했다. 그런 장면은 또 있었다. 문 후보는 홍 후보가 '위키리크스'를 계속 언급하자 그의 아킬레스건인 "성완종 리스트"로 응수했다. 이날 홍 후보가 "(참여정부에서) 성완종 회장을 왜 두 번이나 사면해 줬냐"며 유일하게 버럭 화를 낸 순간이었다.

지난 토론에서 자신에게 몰린 질문 공세로 인해 턱없이 부족했던 토론 시간을 의식한 듯, 각 후보들의 질문을 요점만 간추려 대답하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각 후보들에게 "손 드십시오"라고 말하는 여유도 보였다. 특히 홍 후보에게는 "노무현 640만불" 관련 팩트를, 안 후보에게는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을, 심 후보에게는 송민순 회고록 관련한 "공무상 비밀누설"을 짚으며 되받아쳤다. 특히 유·안 두 후보에게는 적절히 훈수도 두면서 강약을 조절하기까지 했다.

한편 심 후보와는 토론다운 토론을 벌이는 진풍경(?)도 연출했다. 심 후보가 선거법 개정 의지를 묻자 "권역별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는 2012년 대선 공약"이라는 점을 확인했고, 심 후보가 다시 "문 후보님 대표 시절 더 개악됐다", "선거법 개정 의지가 미악한 것 아니냐"고 꼬집자 재차 "개헌 과제로 포함시키겠다", "공약대로 내년 지방선거에서 하겠다"고 확인했다. 그만큼 두 후보의 토론은 이례적인 수준이었고, 서울대 조국 교수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3차 토론의 공동 1위는 문재인과 심상정"이라고 평가했다.

'돼지 흥분제' 논란 집중포화 홍준표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가 23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에서 열린 중앙선관위 대선후보 초청 1차 토론회에 참석하고 있다.
▲ 선관위 1차 TV토론 참석한 홍준표 후보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가 23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에서 열린 중앙선관위 대선후보 초청 1차 토론회에 참석하고 있다.
ⓒ 국회사진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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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했다고 했는데 또 문제 삼는 것은 참 그렇습니다마는… 정말 국민 여러분께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대선토론에서만 두 번째 사과였다. 지난 토론에서 '설거지 발언'과 관련해 여성비하 논란에 대해 사과했던 홍 후보는 이번엔 훨씬 더 큰 사안으로 번진 '돼지 흥분제' 논란과 범죄 모의 여부에 대해 위와 같이 사과했다.

토론 초반 기다렸다는 듯이 세 후보가 "사퇴"를 촉구했고, 심 후보는 아예 홍 후보에게 질문조차 하지 않았다. 안 후보 역시 "사퇴해야 한다는 입장에서는 변함이 없기 때문에 홍 후보님을 쳐다보지 않고, 국민만 보고 (앞만 보고) 말씀드리겠습니다"고 질문했고, 홍 후보는 이에 "국민들이 조잡스럽게 생각한다"고 맞받았다. 전체적으로 이날 홍 후보는 자신에게 향한 국민적 비난을 의식한 듯 예의 그 '저격수 본능'은 살짝 접어 둔 듯 보였다.

하지만 문 후보에 대한 공격은 거두지 않았다. '일심회 사건'을 거론하기도 했고, "공수처 신설"과 관련해서는 문 후보로부터 "그게 제 공약이다"라며 웃지 못할 반격을 당하기도 했다. 전반적으로 의기소침할 수밖에 없었던 홍 후보. 그는 안 후보와 문 후보의 토론을 두고 "초등학교 토론회 수준"이란 촌평과 함께 이날 토론을 이렇게 평가했다.

"나라경영 철학이나 사상, 이념을 이야기해야 하는데 그런 식으로 조그만한 저급한 문제를 갖고 서로 물어뜯고 서로 욕설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지지자들까지 걱정했던 토론 자세, 안철수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23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에서 열린 중앙선관위 대선후보 초청 1차 토론회에 참석하고 있다.
▲ 선관위 1차 TV토론 참석한 안철수 후보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23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에서 열린 중앙선관위 대선후보 초청 1차 토론회에 참석하고 있다.
ⓒ 국회사진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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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 좀 괴롭히십시오."
"유승민 후보님, 실망입니다."

'갑철수', 'MB 아바타' 뿐만이 아니었다. 이날 안철수 후보의 토론 자세는 '역대급'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의아한 구석 투성이었다. 위와 같이 자신을 향한 질문 공세에 감정적 반응까지 보였다. 일각에서는 캠프 내 토론 준비팀을 경질해야 한다거나, 왜 저런 전략을 짰는지 의문이라는 반응 일색이었다.

그만큼 자신을 향한 의혹이나 검증 내용을 스스로 강조하는 발언들은 정치 혹은 토론의 초보라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MB와 안 후보의 관계를 모르는 국민들까지 그와 관련한 궁금증을 호소(?)하고 나섰으니 말이다. 문 후보에 대한 구애(?)도 계속됐다. 앞서 언급한 민주당 '네거티브 문건'에 대한 확인은 둘째치더라도, 문 후보와의 공방에서 잘못된 팩트로 일관하는 모습도 지적됐다.

사드 배치와 관련 "5차 핵실험 이후에도 계속 (사드를) 반대하지 않았냐"는 거듭된 질문에 안 후보는 "5차 핵실험이 아무런 상황 변화가 없다는 것이냐"라고 반박한 뒤 "지금 국민들이 다 아신다"는 애매한 말로 마무리했다. 이와 관련, 안 후보는 북한의 5차 핵실험 이후에도 사드 배치에 반대해 왔다.

기댈 곳은 색깔론 밖에... 유승민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가 23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에서 열린 중앙선관위 대선후보 초청 1차 토론회에 참석하고 있다.
▲ 선관위 1차 TV토론 참석한 유승민 후보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가 23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에서 열린 중앙선관위 대선후보 초청 1차 토론회에 참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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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세할 때 박지원 대표가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안철수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나는 초대 평양 대사가 될 거다. 안 후보님께서 박지원 대표하고 초대 평양 대사 또 장관에 대해서 이렇게 합의를 하셨습니까."

유승민 후보는 '강성' 이미지를 이어갔다. 홍 후보를 향해서는 "강간 미수의 공범"이라며 날을 세웠고, "국가 지도자의 품격의 문제고 대한민국의 품격의 문제"라며 "후보 사퇴"를 종용했다. '박지원 상왕론'을 직접 언급해 안 후보로부터 "그만 좀 괴롭히라"는 반응을 끌어낸 유 후보는 문 후보에 대한 공세도 늦추지 않았다.

전방위 타격으로는 유승민 후보 역시 누구 못지않았다. 다만 여전히 안보 문제와 색깔론에 치우쳐 있다는 평가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유 후보는 이른바 '송민순 회고록'과 관련 문 후보에게 "이 문제에 대해서 만약에 문재인 후보님 발언이 거짓말로 드러나면 후보 사퇴하실 용의가 있으신지 물어보고 싶다"며 직격탄을 날렸다.

이와 관련, 문 후보의 발언을 가로 챈 심 후보는 유 후보에게 "말끝마다 북에 대한 태도로 몰고 가는 이런 색깔론을 극복하는 것이 보수가 새롭게 태어나는 가장 우선적인 기준"이라고 맹비난했다. 이에 유 후보는 다소 쩔쩔 매는 모습까지 보였다.

2차 토론과는 다른 공격 방향, 심상정 

정의당 심상정 대선후보가 23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에서 열린 중앙선관위 대선후보 초청 1차 토론회에서 준비하고 있다.
▲ TV토론 준비하는 심상정 후보 정의당 심상정 대선후보가 23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에서 열린 중앙선관위 대선후보 초청 1차 토론회에서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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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범죄를 공모한 후보를 경쟁 후보로 인정할 수가 없습니다. 홍준표 후보는 사퇴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여성 시청자들이 환호했다. 성범죄와 관련해 이렇게 따끔하게 일침을 놓는 정치인은 오랜만이란 반응 일색이었다. "홍준표 사퇴" 요구로 포문을 연 심 후보는 유 후보에게도 "전형적인 안보장사", "북한 없었으면 어떻게 선거 했나"라고 색깔론이나 안보 몰이에 일침을 가했다.

반면 "전태일 열사가 돌아가신 지 50년 가까이 되었지만 노동은 바뀌지 않았다"는 발언 등으로 "노동이 당당한 나라"라는 자신의 슬로건에 걸맞은 발언도 종종 쏟아 냈다. 한편으로 지난 토론의 후폭풍을 의식한 듯, 문 후보에 대한 공격보다는 공방과 토론 분위기를 이어갔다. 문 후보를 대신해 유 후보에게 색깔론 논쟁을 대신하기도 했고, 안 후보에게는 "북한을 주적으로 규정하면 남북 정상회담이 가능하느냐"며 일침을 날리며 안 후보의 '우클릭'을 경계했다.

심상정 후보의 이러한 전방위적 활약은 최근 진보와 중도 성향 유권자들이 늘어가는 '기울어진 운동장'의 선거 지형 속에서 충분히 주목받을 만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5%까지 지지율을 올린 정의당 심상정 후보가 이날 토론 내용을 바탕으로 오는 25일로 예정된 4차 토론까지 얼마만큼 지지율을 끌어 올릴지 주목된다. 


태그:#대선토론, #2017대선, #문재인, #심상정, #홍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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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오마이뉴스 장지혜 기자 입니다. 세상의 바람에 흔들리기보다는 세상으로 바람을 날려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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