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부욕이 지나쳤던 걸까, 아니면 묵은 감정이 터진 것일까. 23일 2016-17 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 2차전에서 양팀 선수들간 불미스러운 장면이 나왔다. 이관희(서울 삼성)와 이정현(안양 KGC 인삼공사)이 경기중 몸싸움을 벌이다가 평정심을 잃고 충돌하는 상황이 빚어졌다.

1쿼터 4분 45초경, 이상민 삼성 감독은 이정현을 수비하기 위하여 이관희를 교체투입했다. 사이드라인에서 이관희의 밀착 수비를 뿌리치려고 돌아나오려던 이정현은 팔로 이관희의 턱 부위를 가격했다.

이관희는 코트에 쓰러졌지만 심판은 이관희의 수비자 파울을 선언했다. 이관희는 곧바로 일어나 이정현에게 달려들어 가슴팍을 팔꿈치로 강하게 밀쳐 쓰러뜨리며 격앙된 모습을 보였다. 심판과 양팀 선수들이 재빨리 달려들어 말렸지만 이 과정에서 경기는 잠시 중단됐고 코트 위 분위기는 험악해졌다.

심판진은 비디오 판독 결과 두 선수에게 모두 파울을 부과했다. 이정현에게는 언스포츠맨라이크파울(U-파울)을 선언했고, 이관희는 이정현을 고의로 가격한 것에 대하여 곧바로 퇴장 명령을 받았다. 이관희가 교체 출전한 지 불과 3초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두 선수 모두 좋지 않은 모습을 보인 데 책임이 있다. 이정현이 이관희의 밀착수비를 억지로 떼내려고 하는 상황에서 심판은 이관희의 수비자 파울을 지적했다. 그러나 팔로 턱을 밀치는 동작은 다분히 이정현의 고의성이 의심할 만한 여지가 많은 장면이었다. 이정현은 이관희의 보복성플레이로 잠시 코트에 쓰러졌다가 일어선 이후에 더이상 대응하지 않았지만, 벤치에 들어가서 싱글싱글 웃고 있는 모습이 중계화면에 잡힌 것도 논란이 됐다.

하지만 이미 심판의 휘슬까지 울린 상황에서 감정을 참지 못하고 상대 선수를 고의로 가격한 이관희의 노골적인 보복성 폭력 행위 역시 변명의 여지가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관희는 여기서 끝이 아니라 사후 KBL의 추가 징계를 받을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아무리 승부도 중요하지만 챔피언결정전이라는 큰 무대이고 오랜만에 공중파를 통하여 전국에 중계된 경기인데다 지켜보는 가족-어린이팬들도 많다는 것을 감안하면 프로선수로서 페어플레이에 대한 책임감을 좀 더 자각했어야 했다. 많은 팬들은 양팀의 챔피언결정전을 앞두고 삼성 문태영과 KGC 양희종의 충돌 가능성을 가장 우려했지만 불꽃은 의외의 장면에서 먼저 터졌다.

양팀의 역사를 오래 전부터 지켜봐온 농구팬들이라면 이정현과 이관희의 충돌이 생뚱맞은 상황만은 아니다. 문태영-양희종만큼 유명하지는 않았지만 이정현-이관희 역시 한 번은 터질 뇌관이었다는 평가다.

두 선수는 포지션이 겹치는 특성상 정규시즌부터 수차례 격돌하며 치열한 신경전을 펼쳤던 전력이 있다. KGC의 주득점원인 이정현을 수비력이 좋은 이관희가 전담마크하는 창과 방패의 구도였다. KGC와 삼성은 지난해 6강 플레이오프에서도 마주쳤는데 당시 KGC의 승리를 이끌며 맹활약을 펼쳤던 이정현은 이관희의 거친 수비에 대해 우회적으로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다.

하필 두 선수는 연세대학교 1년 선후배 지간이자 상무에서도 선·후임으로 만나며 같이 오랜 시간 한솥밥을 먹었던 사이다. 물론 코트 위에서는 선후배가 없다지만, 좁은 농구판에서 서로 인연이 없는 사이도 아니고 오랜 시간을 함께 농구해온 선수들끼리 이렇게 대놓고 얼굴도 붉히는 상황도 국내 농구계에서는 흔치않은 일이다. 농구팬들 사이에서는 두 선수간에 뭔가 예전부터 사적인 감정이 있는 게 아니냐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이번 사건을 바라보는 팬들의 여론도 두 갈래로 나뉘고 있다. 양팀의 팬들은 각각 이정현과 이관희의 화려한 과거 전력(?)을 들어 상대 선수가 먼저 원인 제공을 했다며 책임을 떠넘기는 장외 공방전을 벌이는 중이다.

사실 두 선수 모두 '경기 매너' 면에서 여러 번 도마에 올랐던 전력이 있다. 이정현은 습관적으로 파울을 유도하는 과도한 '플라핑'과 함께 상대 선수를 자극한다는 지적을 자주 받았다.

싸움닭 기질이 강한 이관희는 투지가 지나쳐서 종종 상대 선수에게 부상을 입힐수도 있는 거친 플레이를 심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관희는 이정현 외에도 전태풍(KCC)-전준범(모비스)등 여러 선수들과 코트에서 충돌했던 사례가 있어서 대체로 감정조절이 미숙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경기후 양팀 감독들도 대체로 상대의 잘못을 탓하여 자신의 선수들을 감싸는 모습을 보였다. 김승기 인삼공사 감독은 "프로에서 후배가 선배를 가격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하며 "정해진 규칙 안에서 파울하는 것은 상관없지만, 오늘 같은 행위는 잘못됐다. 에이스에게 그런 식의 반칙으로 위협을 가하는 짓이라면 나도 언제든 우리 선수들에게 시킬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며 불만을 터뜨렸다.

반면 이상민 삼성 감독은 "이관희의 행동을 옹호할 생각은 없다"며 잘못을 인정하면서도 "인삼공사와 경기를 하다보면 우리 선수들이 항상 이정현에게 당한다. 이관희도 먼저 가격을 당하고 화가 났을 것"이라며 이정현이 먼저 원인 제공을 했다고 꼬집었다.

결과적으로 두 선수간의 충돌이 부른 후폭풍은 일단 삼성 측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삼성은 이관희의 퇴장 이후 오히려 선수단이 자극을 받아 분발하는 모습을 나타내며 후반 역전승을 일궈냈고 1승1패로 시리즈 동률을 이뤘다.

하지만 경기 후에도 규정에 어긋나는 양팀 벤치 선수들의 자리 이탈이나 이정현-이관희의 행동에 대하여 추가적으로 징계를 내릴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기에 아직 후폭풍은 끝난 것이 아니다. 서서히 과열되어가던 챔프전의 분위기에 불을 붙인 두 선수의 충돌이 앞으로 시리즈의 향방에 어떤 나비효과를 가져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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