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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국 사회로부터 추방당하는 상황에 이르게끔 사태를 악화시킨다면 러시아가 그에게 망명을 허가할지도 모를 일이다."

반이민의 물결이 전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는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로 유세기간 동안 강조했던 반세계화와 보호주의를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선언과 행정명령 13767호 서명과 같은 조치로써 실천에 옮기고 있다.

세계 1위의 경제대국이자 최대 이민 유입국인 미국의 이러한 결정은 해외노동자들의 송금에 크게 의존하는 국가의 반감뿐만 아니라 시민사회의 비난에 직면하게 되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내세운 반이민정책은 불법적인 경로로 미국에 입국을 한 비정규이주자를 대상으로 삼고 있으며, 그중에는 신변의 위협으로 자국을 도망쳐 온 난민도 포함되기에 윤리적 맹점을 안고 있다.

그렇다면 세계 3위의 이민 유입국인 러시아의 상황은 어떨까? 러시아는 이민 뿐만 아니라 유입되는 난민의 수에 있어서 상위권에 속하는 국가이다. 국제연합 경제사회부 산하 이민정책연구소가 작성한 '2015년도 국제이주추세 : 도착/출발국가별 이주자 수' 통계자료에 따르면, 러시아에 체류 중인 난민의 수는 23만6천여명으로 독일의 21만7천여 명을 웃돈다.

대량난민의 유입에 러시아는 과연 어떠한 대응조치를 취했을까? 지난 2월 8일 러시아 난민구호기구 '시민지원위원회' 위원장 겸 러시아연방 대통령직속 시민사회인권기구발전위원회 위원을 맡고 있는 스베틀라나 간누슈키나(여·75)를 모스크바 사무실에서 만나 러시아의 전반적인 난민유입 추세와 난민정책 현황에 대해 물었다.

소련시절 건축된 주상복합 건물의 1층에 자리잡은 사무실 외부 전경
▲ 러시아 난민구호기구 '시민지원위원회' 소련시절 건축된 주상복합 건물의 1층에 자리잡은 사무실 외부 전경
ⓒ 신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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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지원위원회는 소련이 해체되기 전인 1990년 모스크바에서 설립되었다. 설립 초기에는 아제르바이잔에서 발생한 인종학살로부터 피신한 아르메니아인들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을 지녔으나, 이후 러시아 내 난민들에게 법적 지원과 상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난민 5만여명 지원과 러시아연방 난민법 개정 등의 공로를 인정하여 미국 포춘지(Fortune)는 '2017년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지도자 50인'에 가누슈키나 위원장을 등재했다.

- 러시아 내에는 법적인 '난민' 이외에도 다른 형태의 보호를 받고 있는 난민이 체류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우선 통계수치에 대해서 얘기해보자. '정치적 망명자' 지위를 받은 난민은 전무하다. '난민' 지위를 보유한 난민의 수는 대략 7백명 정도로 미미한 수준에 그치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러시아에서 '난민' 지위를 보유한 난민들은 누구인가? (국적별로 구분하면) 우크라이나인 3백여 명과 아프가니스탄인 3백여 명이며, 그 외 1백여 명은 여타 국적인들이다. 시리아 국적인 난민은 2명에 불과하다. 반면에 '임시망명자' 지위를 보유한 시리아 국적인의 수는 약 1천명에 달하며, 아프가니스탄인 5백여명이 임시 피난처를 제공받고 있다. 반면에 '임시망명자'로 인정받은 우크라이나인 국적자 수는 30만여명에 달한다."

- 통계수치를 놓고 보면 우크라이나 국적인들이 난민으로서 전폭적인 법적 보호를 받았다. 그들은 어떤 근거로 '난민' 지위를 인정받았는가?
"'난민'의 지위를 인정받은 우크라이나 국적인 3백명은 전직 베르쿠트(우크라이나 내무부 소속 특수경찰) 요원들이나 전직 검사들이다. 그들이 '난민' 지위를 인정받은 이유는 우크라이나로 귀국했을 경우 개인을 대상으로 한 박해가 가해질 가능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임시망명자' 지위를 인정받은 30만 명의 우크라이나 국적인들은 전쟁을 피해 대규모 난민행렬을 이루어 러시아 영토로 피신한 자들이다. '임시망명자' 지위를 인정받은 자는 1년간 지위를 보유하게 된다."

텔레비전에서 돈바스 전쟁 영상이 나오자 장난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시청중인 국적불명의 아동들
▲ 난민구호기구 '시민지원위원회' 대기실의 난민아동들 텔레비전에서 돈바스 전쟁 영상이 나오자 장난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시청중인 국적불명의 아동들
ⓒ 신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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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난민의 유입추세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합병이 결정된 2014년 3월에 소폭 증가세를 보이다가 우크라이나 돈바스(동부지역)에서의 군사적 갈등이 시작된 2014년 4월부터 본격화됐다.

당시 우크라이나와 흑해 연안에 인접한 러시아 크라스노다르 주에는 천막으로 된 난민수용소가 설치됐으며, 그 수가 2만2천명에 달한 같은 해 8월에는 주정부 차원에서 비상사태가 선포되었다.

초기에는 로스토프 주, 볼고그라드 주, 펜자 주와 같은 우크라이나와 가까운 지역에 선포되었던 비상사태는 이후 자바이칼 지방, 하바롭스크 지방, 캄차카 지방 등지로 확대되었다.

- 러시아 난민법상에서 보았을 때 우크라이나 국적자 중 '난민'의 지위를 인정받은 개인은 어떠한 종류의 '박해'를 인정받았다고 보는가?
"러시아 정부는 (대체로) 특정 사회집단에 속한 개인이 박해 가능성에 노출될 가능성이 있을 때 '난민' 지위를 인정한다. 우크라이나 국적인 중 '난민' 지위를 인정받은 개인은 전직 치안당국자나 그 대표자로서 우크라이나 내에서 전투임무를 수행하거나, 독립광장(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 중심부에 위치)에서 시위대 해산작전에 투입된 자이다. 따라서 이러한 배경을 지닌 개인은 간접적인 압력이 행사되거나 생명에 위협이 가해질 가능성을 주장하기 위한 충분한 근거를 가지고 있다.

반면에 러시아 정부가 여타 국적인에게 '임시망명'을 허가한 경우에는 인도적 차원이 부각된다. 여기서 인도적 차원이라 함은 전쟁이 발발한 고국으로 난민이 귀국하지 못하는 사정을 반영하여 망명을 허가하는 것을 의미한다. '임시망명'을 인정받은 개인은 근로자로서의 권리보장 등 추가적인 혜택을 적용받았다."

-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국적인으로 하여금 법적 보호와 추가적인 혜택에 쉽게 접근하게 한 목적은 무엇인가?
"러시아는 아프가니스탄에서 발생했던 일련의 사건들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의 난민 발생 원인 중 하나가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이기 때문이다. 이건 과거의 일에 지나지 않는다. 오늘날에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자국군을 배치하고, 크림반도를 병합했으며, 우크라이나 동부지역에서 전투를 전개하고 있다.

이로부터 불거지는 결과는 결국 러시아가 짊어져야 할 책임이다. 따라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인 난민행렬이 러시아 영토로 유입됐던 초기에 우크라이나 국적인을 대상으로 한 '임시망명자' 지위 인정에 있어 우선권을 부여했다.

우크라이나 국적인을 대상으로 한 '임시망명자' 지위 심사에는 통상 3일이 소요됐고, (우크라이나 난민들은) 각지의 난민수용시설로 분산됐다. 우크라이나 국적인에 한해서 간소한 러시아연방 국적 취득절차가 마련됐는데, 그 결과 루간스크주에서 피신한 대부분의 우크라이나인 약 17만명이 러시아 국민이 됐다."

이후 난민정책의 현황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되자 가누슈키나 위원장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을 이어갔다. 목소리에는 힘이 실렸고 거기에 손짓도 더해졌다.

2016년 수상한 '라이트 라이블리후드 어워드' 표창장 앞에 선 가누슈키나 위원장
▲ 스베틀라나 간누슈키나 시민지원위원회 위원장 2016년 수상한 '라이트 라이블리후드 어워드' 표창장 앞에 선 가누슈키나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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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시아는 난민에 대한 보호를 위해 어떠한 법적인 틀을 마련해놓고 있는가?

"'1951년 난민의 지위에 관한 협약(이하 '국제난민협약')'의 내용과 동일하다. 러시아가 소련으로부터 분리된 1992~1993년 무렵에 러시아는 국제난민협약에 가입했다. 1993년에는 '난민의 지위에 관한 법(이하 '러시아난민법')'이 마련됐으나 순전히 선언에 그쳤다. 그러나 1997년에 현재까지 이어져 내려오는 러시아난민법 개정안의 기틀이 마련됐다.

이를 마련하는 과정 중에 러시아 국가두마(하원) 내에서는 장기간 벌어질 투쟁이 시작됐다. 당시 본인은 해당 법안 작성을 위한 전문가단에 위원으로 참여했다. 기나긴 투쟁의 결과로서 국제난민협약과 동일한 모습의 국내난민법을 마련하게 된 것이다. (러시아난민법에 명시된) 난민의 정의는 국제난민협약의 난민 지위에 대한 정의와 일치한다. 이러한 사실만 놓고 본다면 러시아의 난민정책은 양호한 편이다.

난민의 지위에 관한 법 이외에도 보리스 옐친 행정부 당시에 승인된 '정치적 피난처 제공에 관한 러시아 대통령령'이 있으나 아야즈 무탈리보프 전 아제르바이잔 대통령에 대한 피난처 제공사례를 제외하고는 과거부터 현재까지 단 한 번도 효력을 발휘한 적이 없다. 만약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국 사회로부터 추방당하는 상황에 이르게끔 사태를 악화시킨다면 러시아가 그에게 망명을 허가할지도 모를 일이다."

냉소적인 유머를 선사한 위원장은 숨을 고르고 답을 계속했다.

"이외에도 러시아에는 추가적인 보호책으로서 '임시망명'이라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임시망명'의 조건에 부합하는 개인은 어떠한 사람인가? 난민의 정의에 부합하나 단기간 도착국에 피신하기 위해 '난민' 지위를 부여 받고 싶지 않은 개인이다.

또한 '임시망명자' 지위를 인정받는 개인으로서 (도착국으로부터) 인도적 지원을 받으려는 개인이 있을 수 있다. 난민이 고국에서 치료할 수 없는 질병에 걸리거나 사회적인 대혼란이 발생했을 경우, 혹은 (이질적인) 혈족관계로 인한 차별의 대상이 됐을 경우 '임시망명자' 지위를 부여 받을 수 있다."

- 최근에 러시아 이민정책에 큰 변화가 있었다. 2016년 4월에 러시아 연방이민국이 러시아 내무부로 흡수된 것이 그 사례 중 하나이다. 왜 이러한 구조개편이 이루어졌는가?
"이민문제와 관련하여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가지는 유일한 관심사는 불법이민(관리)이다. 푸틴 대통령에게는 이민문제가 불법이민자들과의 전쟁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따라서 불법이민자들과의 전쟁을 수행할 치안기관에 이민관리의 역할을 부여했다. 푸틴 대통령은 그 외의 다양한 이민문제들을 보지 못하며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고 있다.

이러한 인식 경향은 러시아 대중 사이에도 나타난다. 러시아 대중은 유럽에서 난민유입으로 발생한 일부 부정적인 사례들을 떠올리며 혹시 있을지 모를 불법이민으로 인한 부작용에 대해 심히 우려하고 있다. 물론 유럽의 거리는 그러한 망상과는 달리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서 질서가 유지되고 있다."

각종 표창장이 걸린 위원장실 벽의 모습
▲ 난민구호기구 '시민지원위원회' 위원장실 각종 표창장이 걸린 위원장실 벽의 모습
ⓒ 신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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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원장은 갑자기 설명을 멈추고는 책상 위에 어지럽게 널려있는 수많은 종이들을 살폈다. 그리곤 그 중 하나를 집어서 자신 앞에 놓고는 펜으로 몇 개의 원을 그리기 시작했다.

"(구조개편 이전에는) 연방차원에서 이민문제를 총괄하는 러시아 연방이민국이 존재했고 그 산하에 각 연방주체의 이민문제를 담당하는 88개의 연방이민국 지부들이 존재했다. 그보다 하위개념인 분과가 하위 행정단위의 이민문제를 관장했다. 현재는 러시아 내무부 내부에 이민문제담당본부(GUVM)가 존재하고 그 산하에 내무부 지방본부(GUVD)가 설립되어 있다. 지방본부 내에도 동등한 서열의 이민문제담당본부가 존재하고 있으므로 지휘체계나 소통방식이 파괴됐다.

내무부와 내무부 지방본부 내에 설치된 이민문제담당본부 실무자는 자신이 속한 내무부 기구의 장을 상관으로 한다. 예를 들어 모스크바 시를 관할하는 이민문제담당본부측이 인권법을 위반했을 경우 '시민지원위원회'는 이민문제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내무부 경찰에게 이를 항의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러한 조건에서 이민문제담당본부가 할 수 있는 역할은 인권유린 사례가 발생했을 경우 고작 권고안을 내놓는 것이 전부이다. 이민관리체계가 붕괴된 상황인 것이다. 이젠 모든 민원인들이 어디에다 자신들의 불편을 호소할지 몰라 본인에게 문의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것이야말로 불합리 그 자체인 것이다. 물론 다른 나라에도 내무부가 존재한다. 그러나 안전유지와 복지향상이라는 임무를 수행하는 프랑스의 내무부와 인도적 지원에 몰이해한 러시아 내무부의 사고방식은 엄연히 다르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 우크라이나 난민 발생 초기에는 인접한 러시아 남부지역으로 난민이 유입되었다. 이후에 어떠한 지역으로 분산되었는가?
"우크라이나 난민 개인의 역량이랑 성향에 따라 다르다. 2014년 말엽까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국경지역에 난민수용소가 설치되었으나 이후 철거되었고 우크라이나 난민들은 러시아 전역으로 퍼졌다. 우크라이나 난민이 도착한 지역을 관할하는 지방정부는 기숙사와 펜션 등의 주거형태를 내용으로 하는 '난민집단거주지'를 마련할 것을 이민관련 기관 및 기구들로부터 권고 받았으며 이를 시행했다. 그러나 2015년 말엽까지 이 모든 시설들도 난민수용소와 마찬가지로 철거되었다. 이후로 우크라이나 난민 중 다수는 러시아 각지에 퍼져 살거나 고국으로 돌아가는 실정이다."

- 그렇다면 우크라이나 난민들은 자신이 희망하는 지역으로 흩어진 것인가?
"러시아 지방당국이 우크라이나 난민에게 다른 지역으로 재정착할 것을 제안한 사례가 다수 존재한다. 우크라이나 난민 10만8천여명은 '자발적 재정착 프로그램'을 통해 시베리아나 극동지역을 포함한 러시아 전역으로 흩어졌으며, 이후 다수가 러시아 국적을 취득했다. '자발적 재정착 프로그램' 대상자는 해당 지역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항공권 구매비용을 지급받았다.

프로그램 대상지역으로는 마가단 시 같은 험지도 포함되었으나 프로그램 지원자 다수가 그런 지역을 선호하는지에 대해선 의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 민원인 한 명이 당시 열한 살이었던 자신의 아이를 데리고 마가단으로 향했다는 걸 알게 됐다. 알아야 할 것은 마가단 시가 그녀가 태어난 곳이라는 점이다. 이후에 그 민원인은 시민지원위원회 사무실에 연락해 고마움을 표했고 덧붙여 재정착한 마가단에서 비행조종사 남편을 맞이했다는 기쁜 소식을 전했다."


태그:#우크라이나 사태, #크림반도, #난민, #반이민, #러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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