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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민 바른정당 대선후보가 19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본관에서 열린 KBS 주최 대선후보 토론회에서 토론 준비를 하고 있다.
▲ KBS TV토론 참석한 유승민 후보 유승민 바른정당 대선후보가 19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본관에서 열린 KBS 주최 대선후보 토론회에서 토론 준비를 하고 있다.
ⓒ 국회사진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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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이 집권 초인 2008년 3월에 대북정책 원칙을 제시하면서 "1991년에 체결된 남북기본합의서의 정신을 지켜야 한다"고 말했을 때, 피식 웃음이 나왔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이 이뤄낸 6·15선언과 10·4선언을 격하하고 비핵화를 강조하기 위해, 노태우 정권 시절에 나온 '남북기본합의서'를 강조해야 한다는 참모들의 건의를 수용한 발언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비핵·개방 3000'으로 사실상 북한의 무릎을 꿇리려 했던 그가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 협력에 관한 합의서'(아래 '남북기본합의서')가 본래 제목인 이 합의서 내용을 제대로 읽어봤어도 그런 얘기를 했을까. 그랬으니 피식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남북기본합의서는 남북한 분단 이후 처음으로 공식 국가명칭을 표기하고 양측 총리의 이름으로 서명·채택함으로써 서로 상대방을 공식 인정한 '역사적 합의'로 인정받고 있다. 남북이 각각 국가의 이름을 걸고, 상대방 체제를 인정하고 존중하면서 화해 협력하자는 데 뜻을 모은 것이다.

남북관계를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라고 선언한 것도 큰 의미가 있다. 이에 따라 1992년 9월에 나온 '남북교류협력 부속합의서'도 "남과 북은 물자교류에 대하여 관세를 부과하지 않으며, 남북사이의 경제관계를 민족내부관계로 발전시키기 위한 조치를 협의할 것"을 규정하였다.

남북교역의 성격을 국가간 거래가 아닌 '민족내부 거래'라고 못박은 것으로, 이같은 대원칙은 6.15선언과 10.4선언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1990~1993년 남북고위급회담 모든 과정에 참여한 남쪽 회담대표로서 이 남북기본합의서를 낳은 산파가 바로 '햇볕정책 전도사' 불리는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이라는 점에서 이는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남북관계를 특수관계로 보는 시각은 헌법3조 영토조항(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에 따라 북한이 우리 영토를 불법 점거하고 있는 반국가단체이며 주적으로 보는 시각이나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 등과는 궤를 달리한다. 남북관계는 이처럼 모순적이다.

김진태, 홍준표에 "북한이 국가냐? O·X로만 답하라" 장면의 재판

유승민 바른정당 대선후보는 19일 대선후보 토론회에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에게 "북한이 우리의 주적인가?"라고 물었다. 북한이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는 실체인 동시에 통일을 이뤄낼 동반자라는 점을 외면한 단순화다.

문 후보가 자신의 질문에 "그런 규정은 대통령으로서 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피해가자, 유 후보는 "정부 공식문서에도 북이 주적이라고 나오는데 군 통수권자가 주적이라고 못 하는 게 말이 되는가"라고 몰아붙였다. 유 후보를 필두로 보수세력은 이를 대선쟁점으로 만들어 문 후보를 맹공하고 있고, 국민의당도 가세하고 있다.

이는 자유한국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김진태 의원이 홍준표 후보에게 "북한이 국가냐, 아니냐? O·X로만 답하라"고 색깔론을 들이댄 장면을 떠올리게 만든다. 공안검사 출신인 김 의원은 헌법3조 영토조항을 '전가의 보도'삼아 홍 후보를 몰아댔고, 왕년에 안기부 파견까지 나갔던 홍 후보가 "남북한이 1991년에 유엔에 동시가입했기 때문에 국제법상으로는 국가다 91년부터 국가다, 국제법과 국내법이 충돌한다"며 황당해한 '웃픈' 상황의 재판이다.

또 하나 재미있는 것은 대선 본선에 안보공세의 선두에 선 유 후보의 바른정당도 당 강령에 7.4남북공동성명, 6・15 남북공동선언, 10・4 정상선언과 함께 '남북관계를 특수관계'로 규정한 이 남북기본합의서를 존중한다고 명시해 놓고 있다는 점이다. "남북간의 다양한 대화와 교류협력을 통해 민족의 동질성을 회복하고 한반도 평화와 공동이익을 추구한다"고도 했다.

각종 토론회에서 발군의 명석함을 과시하고 있는 유 후보는 자기가 만든 당의 이 강령을 읽어봤을까?

특정국가를 '주적'으로 규정한 나라는 거의 없다

북한을 오로지 '주적'으로만 보면, 어떻게 '민족의 동질성'을 회복하고 '공동이익'을 추구할 것인가? 이런 시각으로는 무력에 의한 굴복밖에 남지 않는다.

이와 함께 군사적으로 '주적'규정은 단순한 일이 아니다. 주적이 있으면 부차적인 적도 상정해야 하는데, 북한이 주적이면 부차적인 적은 어디인가? 전 세계에 특정국가를 주적으로 규정해 놓은 나라는 거의 없다. 냉전시대 미국의 국방백서도 소련을 '주적'은 물론 '가상적'으로도 명시하지 않았던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노무현 정부가 '2004 국방백서'에서 주적 용어를 삭제한 이후 이명박 정부가 '2010 국방백서'에서 '적'이라는 표현을 부활시키면서도 "북한 정권과 북한군은 우리의 적이다"라고 기술함으로써 '주적'이라는 극단적 표현을 피한 것은 이런 배경에 따른 것이다.


태그:#유승민, #2017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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