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대표팀에 새롭게 합류한 정해성 수석코치가 지난 19일 오후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취재진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한국 축구대표팀에 새롭게 합류한 정해성 수석코치가 지난 19일 오후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취재진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정해성(59) 전 전남 드래곤즈 감독이 슈틸리케호의 수석코치로 선임되며 그 배경과 앞으로의 역할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대한축구협회는 지난 18일 정해성 수석코치 선임을 공식 발표했다. 슈틸리케호가 공식적으로 수석코치를 임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카타르전(6월 13일·원정), 이란전(8월 31일·홈), 우즈베키스탄전(9월 5일·원정) 등 러시아월드컵 최종예선 3경기를 앞두고 대표팀은 슈틸리케 감독을 보좌할 경륜 있는 코치 영입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라 정 코치를 영입했다.

정해성 신임 수석코치는 국내 지도자로서는 가장 풍부한 경험을 지닌 인물이다. 국가대표팀에서는 코치로서 2002 한일월드컵 4강, 2010 남아공월드컵 첫 원정 16강 등 한국축구에 가장 빛나는 최고의 순간을 함께 경험했다. 거스 히딩크·허정무 전 감독을 보좌하며 소신있고 엄격한 리더십으로 선수단을 성공적으로 묶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관건은 정해성 수석코치와 슈틸리케 감독간의 관계와 역할분담이다. 슈틸리케 감독은 그동안 별도로 수석코치를 두지 않았다. 신태용 전 코치가 U-20대표팀으로 떠난 이후 지속적으로 코치진 보강의 필요성이 제기되었을 때도 차두리 전력분석관, 설기현 코치 등 두 명의 젊은 코치를 대표팀에 수혈하는 데 그쳤다.

당초 영입 대상으로 거론되었던 외국인 수석코치가 비용과 조건상의 문제로 무산된 이후 슈틸리케 감독은 아예 경륜 많은 지도자보다는 선수단의 가교 역할을 하며 자신의 보좌역에 충실한 젊은 코치를 선호했다. 자신보다 경험이 풍부하고 소신이 뚜렷한 지도자가 코치로 부임할 경우, 자칫 감독의 권위와 입지를 위협할 수 있다는 경계심 때문이었다는 분석이 많다.

슈틸리케 감독은 그간 리더십에서 많은 문제점을 드러냈다. 원칙과 기준이 없는 내 멋대로 선수 선발과 특색없는 용병술, 동문서답에 가까운 화법 등으로 축구팬들의 신뢰를 상실했다.

최종예선이 어느덧 막바지에 이른 시점에서 '대안이 마땅치 않다'는 이유로 재신임을 얻기는 했지만 더 이상 지금까지의 슈틸리케 방식으로는 안 된다는 공감대가 축구계 안팎으로 두텁게 형성된 상황이다. 축구협회는 감독교체는 아니더라도 슈틸리케 감독의 독선과 전횡을 내부에서 어느 정도 견제하고 역할을 분담할 수 있는 '감독급 코치'의 필요성을 절감했고, 그 대안으로 선택된 것이 바로 정해성 카드다.

사실 정해성 코치같은 사례는 평상시 같았으면 대표팀에서 나오지 말았어야 할 상황이다. 보통 수석코치는 감독의 오른팔로 그 축구철학과 비전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공유하는 인물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정 코치는 감독의 의사와 무관하게 협회에 의하여 선임된 인물이다.

정해성, 슈틸리케와 리더십 분담 잘할까

정 코치의 성향이나 경력을 감안해도 그의 역할이 단지 슈틸리케 감독이 시키는 대로만 고분고분 따르는 보좌역이 아니라, 감독의 역할을 일정 부분 분담하라는 것은 명백하다. 그런데 선수 선발이나 용병술에 대하여 슈틸리케 감독과 정해성 코치의 의견이 대립할 경우, 이는 감독의 고유권한에 대한 침해나 리더십의 혼란을 불러올 수도 있다.

슈틸리케 감독의 입지가 가뜩이나 벼랑 끝에 놓인 상황에서 감독을 능가하는 권위와 경력을 지닌 수석코치의 등장은 자칫하면 한 팀에 감독이 두 명이 존재하는 상황을 초래하는 불안요소가 될수도 있다. 그만큼 한국축구가 이러한 비정상적인 상황을 수용해야할 만큼 절박한 처지에 내몰렸다고도 할 수 있다.

성향이 전혀 다른 외국인 감독과 국내 코치가 대표팀에서 갈등을 빚은 경우는 드물지 않다. 역대 대표팀 사령탑 중 비교적 강력한 권한을 행사했던 거스 히딩크나 딕 아드보카트의 경우, 외국인 수석코치(핌 베어백) 등 자신이 데려온 스태프들을 측근으로 배치하고 국내 코치진과의 적절한 역할분담을 통하여 공존에 성공했다.

반면 쿠엘류 감독 시절의 박성화·최강희 코치, 본프레레 시절의 허정무 코치 등은 외국인 감독과 국내 코치진의 갈등으로 팀이 원만하게 돌아가지 않았다. 외국인 감독들은 국내 코치진이 감독의 권한을 침해한다며 경계했고 코치들은 한국 축구 실정을 잘 모르는 외국인 감독이 독선에 빠져 있다며 서로 인신공격적인 비난을 퍼붓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정해성 코치는 얼마 전까지 K리그 전남에서 사령탑을 지냈고 대표팀에서의 업적(월드컵)이나 경험은 당시 코치 역할이었음을 감안해도 오히려 슈틸리케를 뛰어넘는다. 역시 '한 성격'하는 히딩크나 허정무 감독을 보좌하던 시절에도 직언을 서슴지 않을 정도로 강직한 성격으로도 알려져 있다. 전술이나 선수선발 등 슈틸리케 감독과 대등한 눈높이에서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전형적인 감독급 코치라고 할수 있다. 물론 어쨌든 대표팀에서 그의 공식 직책은 수석코치인 만큼 되도록 코치의 본분을 넘어서는 상황이 발생해서는 안 될 것이다.

정 코치의 역할도 역할이지만 슈틸리케 감독의 태도도 중요하다. 코치진의 조언을 어느 정도로 유연하게 수용하고 그동안 감독에게 지나치게 집중된 권한을 얼마나 합리적으로 분담할 수 있느냐에 따라 대표팀의 변화 여부도 달라진다. 만일 슈틸리케 감독이 코치진 개편 이후에도 독단과 전횡에서 벗어나지못하고 심지어 정 코치와도 팀내 주도권을 놓고 갈등이 형성된다면 돌이킬수 없는 상황에 놓일 수도 있다. 협회의 지속적인 중재와 관리가 필요한 대목이기도 하다.

한국축구의 9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이라는 대의를 위해 슈틸리케와 정해성, 두 지도자가 서로 화합하고 존중하며 서로의 역량을 대표팀에서 함께 녹여내는 것이 절실하다. 만일 그 반대가 될 경우 슈틸리케호만이 아니라 한국축구 전체가 불행한 운명에 놓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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