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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이정재 칼럼.
 <중앙일보> 이정재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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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3일자 중앙일보에 실린 이정재의 '한 달 후 대한민국'이라는 제목의 칼럼은 매우 충격적이다. 이 칼럼은 3가지 측면에서 심각한 문제점이 있다. 1. 대북화해협력 노선에 대한 무지와 혐오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 2. 문재인 후보에 대한 저주에 가까운 독설을 하고 있다는 점 3. 문재인-안철수 후보에 대한 이간질 의도가 너무 노골적이다 라는 점이다.

이 글에서는 이와 같은 이정재 칼럼의 문제점을 분석하고 비판해보려고 한다. 우선 이정재는 이 글에서 3 가지 가정을 하고 있다. 1. 미국의 북폭설 등 대북 안보 이슈가 대선 최대 이슈다 2. 그 상황에서 문재인이 당선된다 3. 대선 직후부터 긴급한 상황이 전개되어 박근혜 정권의 인사를 교체하지 못한 상태다 등 3가지다.

그러면 본격적으로 문제의 이정재의 글을 살펴보도록 하자.

문재인 대통령은 급히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찾았다 … "미국이 북한을 폭격하기 전에 반드시 우리에게 통보하겠지요?" 김관진은 딱 잘랐다. "한 달 전부터 이런 말이 돌았습니다. 트럼프는 어떤 식으로든 북한을 때린다. '문재인이 되면 통보 없이 때리고, 안철수가 되면 통보하고 때리고, 홍준표가 되면 상의하고 때린다'라고. 

그러면서 이정재는 이렇게 글을 이어간다.

"다 나 때문이란 말이지, 좌파 대통령이라서." 간신히 38%의 득표로 대통령이 됐다. 미국의 북폭설로 홍준표에게 20%의 표가 몰리지 않았다면 지금 이 자리에서 웃고 있을 사람은 안철수였을지 모른다. 도널드 트럼프가 그에겐 일등공신인 셈이다. 하지만 취임 일주일이 다 되도록 트럼프의 축하 전화도 받지 못한 터다. 애초 며칠 전 취임사에 '남북 대화, 북한 방문, 개성공단 재개'란 문구를 집어넣은 것이 화근이었다. 이런 말들이 트럼프를 자극했을 수 있다.

이 글을 보면 안보 불안 상황이 조성되다 보니 보수적 유권자들은 홍준표 후보에게 표를 몰아주었다는 가정을 하고 있다. 그래서 안철수 후보에게 갈 수도 있던 보수표가 홍 후보에게 가서 안철수 후보와 각축을 벌이던 문재인 후보가 간신히 승리할 수 있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또한 이 부분을 보면 문재인이 햇볕정책을 지지하고 있는데 이것이 미국과의 갈등의 원인이 된다는 메시지도 함께 담고 있다.

그 뿐만 아니다. 이정재는 군통수권자인 대통령과 군 수뇌부 사이의 갈등이 있을 수도 있다는 식의 언급을 하고 있다. 이정재의 글을 이어서 보도록 하자.

문재인은 즉시 국가안보회의를 소집했다. 북폭이 이뤄지면 즉시 북한의 장사정포가 남한을 향해 불을 뿜을 것이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 김관진은 단호했다. '즉각 대응 사격, 지휘부까지 처절하게 응징해야 합니다. 그게 연평도 사태 이후 군의 지침입니다.' 문재인은 "그럴 순 없다. 대응 사격은 자제해야 한다"고 지시했다. 김관진은 즉시 사표를 던졌다. "군은 만에 하나를 준비하는 집단, 그 만에 하나의 순간에 침묵하라고 하면 존재 의의가 없다." 한민구 국방장관과 군 수뇌부도 동조했다. 나라는 절체절명으로 빠져들고 있는데, 문재인의 청와대는 어쩔 줄 모르고 그저 분노를 터뜨릴 뿐이었다. 누군지도 모를 상대를 향해. 

이정재는 본인도 이 글이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었는지 위의 글은 상상이며 문재인이 유력한 대통령 후보이기 때문에 그의 이름을 넣은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그는 문재인에 한정하지 않고 햇볕정책을 지지하는 안철수도 동일한 문제가 있다는 언급도 곁들였다.

"안철수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햇볕정책의 신도' 박지원을 대입하면 답이 안 나온다. 하필 절체절명의 한반도에 문재인과 안철수, 안보 신뢰 자산이 가장 부족한 두 사람이 차기 대통령이 될 판이다."

필자는 이 글 맨 앞에서 이정재 칼럼 내용이 3가지 측면에서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언급했다. 하나씩 따져보도록 하자.

햇볕정책에 대한 무지와 혐오다

첫째, 이 글은 햇볕정책, 즉 대북화해협력 노선에 대한 무지와 혐오에 기반하고 있다. 햇볕정책이 추진되던 김대중-노무현 정권 시절을 보면 한미관계는 일시적 갈등이 있었다고 해도 그것은 본질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한국이 한국의 국익에 맞게 미국을 설득하는 과정 속에서 나왔던 것이다. 그러므로 특정 국면에 한정된 것이며 한미관계 악화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

1994년 북폭을 고려했던 클린턴과 김대중 정권 초중반 김대중의 햇볕정책을 적극 지지했던 클린턴은 동일한 인물이다. 그럼에도 그렇게 극단적으로 방향이 바뀐 것은 한국의 입장을 미국이 무조건 외면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네오콘 부시는 초기에는 매우 호전적이고 강경한 대북정책을 내세웠지만 김대중 정권 중후반-노무현 정권 초중반 시기의 여러 설득을 통해서 점차적으로 입장을 바꿨다. 그래서 아주 강경한 부시조차도 재선 이후부터는 대화와 협상노선으로 방향을 바꿨고, 그 결과가 2005년 9.19 공동성명이었던 것이다.

이것은 미국의 입장이 결코 고정되지 않는다는 것과 아무리 최강대국 미국이라도 한국의 입장을 고려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데 앞의 이정재 칼럼은, 햇볕정책을 부활시키면 미국과의 관계가 심각한 위기에 처한다는 식의 뉘앙스를 깔고 있다. 이것은 마타도어라고 할 수 있다.

문재인 후보에 대한 저주를 하고 있다

둘째, 이 글은 문재인 후보에 대한 저주에 가까운 독설을 담고 있다. 이 글은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한국은 매우 위험한 처지에 빠진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최근 전쟁위기설에 많은 전문가들이 지적했다시피, 미국이 몰래 북폭을 결정해 실행하는 것은 매우 어렵기도 하지만, 설령 그런 의사를 갖고 있다고 해도 한국 내에 있는 미국 국민에 대한 소개령을 내려야 하기 때문에 우리 정부 몰래 북폭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미국이 한국에 통보도 하지 않고 북폭을 할 수 있다는 식의 주장은 매우 악의적이다.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이 주요 대외 현안을 결정할 때에는 여러 가지 단계를 거치게 된다. 즉, 정책 결정 시스템이 작동된다는 뜻이다. 그 과정에서 한국 정부와의 협의는 필수적이다.

그런데 문재인이 대통령이 될 경우 이런 결정 시스템이 작동되지 않을 수 있다는 식의 주장은 터무니없다.

더군다나 이 글은 군이 군통수권자인 문재인의 명령을 따르지 않을 수도 있다는 식의 주장까지 담고 있다. 이 주장은 매우 위험하다. 이것은 헌법 절차에 의해서 선출된 대한민국 대통령의 법적, 정치적 권한과 권위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자 모독이다. 아무리 문재인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도 이러한 주장까지 하는게 과연 이성적인 주장이라고 할 수 있는가?

문재인-안철수 두 후보를 이간질 하고 있다

셋째, 이 글은 문재인-안철수 두 후보를 이간질하고 있다. 그와 함께 문재인의 안보관에 부정적인 보수적 유권자들을 향한 정략적 메시지 전달 의도가 너무 노골적이다. 물론 이 글은 문재인-안철수 후보를 햇볕정책지지 그룹으로 함께 분류하면서 동시에 비판하고 있다. 그런데 이 글의 주된 타겟은 문재인 후보다.

우선 상상 속의 당선자 이름이 문재인이다. 그리고 '문재인이 되면 통보 없이 때리고, 안철수가 되면 통보하고 때리고'라는 언급하고 있고, 홍준표로 보수 표가 몰리지 않았다면 안철수가 당선되었을 수도 있다는 언급 등을 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글은 문재인을 타겟으로 하면서 안철수를 끌어들이는 방식의 논리 구조를 갖고 있다.

현재 유동적인 보수적 유권자들이 이 칼럼을 보면 어떤 느낌을 갖게 될까? 기존의 관성대로 '안보는 보수' 프레임에 의해 전통적 보수 후보를 밀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될까? 아니면, 문재인-안철수 둘 다 마음에 안들지만 그래도 최악인 문재인의 당선을 막기 위해서 차악인 안철수라도 밀어줘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될까?

안그래도 얼마 전에 극우 인사들이 문재인을 막기 위해 안철수를 밀어야 한다는 주장을 한 바 있다. 이 칼럼은 직접적으로 그런 언급을 하고 있지 않다. 그런데 어떻게 보면 이 칼럼은 앞선 그들의 주장보다 더 노골적이고 자극적이다.

그런데 안철수 역시 햇볕정책을 지지하고 있다. 대북 문제에 관한 안철수 주변 조언 그룹은 기본적으로 햇볕정책 지지론자들이다. 그러므로 보수 세력들이 이 지점에서 문재인과 안철수를 가르는 것은 정략적인 이유 외에 다른 근거를 찾기 힘들다.

보수 세력의 의도에 말려서는 안된다

이정재는 칼럼 끝 부분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남은 한 달, 이들이 어떤 해법을 내놓느냐에 따라 나라의 운명이 갈릴 것이다. 두루뭉실한 말 뒤에 숨어선 안 된다. 아예 두 사람이 끝장 토론을 벌여보라. 그래서 안보 이슈를 국가적 담론으로 끌어올려 보라.

결국 이정재는 '안보 이슈'가 중요하며 이것을 국가적 담론으로 끌어올려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이 글 전체에서 확인되듯이 여기서 말한 안보 담론은 사실상 햇볕정책을 부정하는 '안보는 보수' 프레임을 뜻한다.

대립과 대결의 악순환으로 인하여 이제 전쟁 발발의 경고까지 나오는 상황 속에서 사태 악화의 핵심 원인인 '안보는 보수' 프레임을 또 다시 강조하는 냉전 보수 세력들의 인식에 경악을 금할 수 없다.

그 뿐만이 아니다. 더 큰 문제는 이들이 지금 선거판을 흐리고 있다. 앞에서 보았듯이 이들은 문재인-안철수를 교묘하면서도 노골적으로 이간질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문재인-안철수 지지층은 서로 더 격렬하게 싸우게 된다. 현재 두 후보의 지지율은 호각지세이므로, 두 후보지지층은 감정적으로 격화되기 쉬운 여건에 놓여 있다.

그런데 여기에 보수 세력들이 저런 방식으로 끼어들면 문제가 매우 복잡해질 수 있다. 이것은 누가 이기든간에 대선 이후의 질서를 고민해 볼 때 매우 바람직하지 못하다. 그러므로 각 후보 지지층은 보수 세력의 이러한 농간에 넘어가서는 안 되고 이성적으로 대처하는 것이 필요하다.

덧붙이는 글 | 필자는 '안보는 보수'와 같은 뉴라이트 이데올로기가 진보 세력에 끼친 부정적 영향을 분석한 <진보 오리엔탈리즘을 넘어서-반노무현주의, 탈호남 그리고 김대중 노무현의 부활>이라는 책을 최근에 낸 바 있습니다.



태그:#문재인, #안철수, #보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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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 박사이며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에서 사료연구 업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김대중에 대한 재평가를 목적으로 한 김대중연구서인 '성공한 대통령 김대중과 현대사'(시대의창, 2021)를 썼습니다.

오마이뉴스 장지혜 기자 입니다. 세상의 바람에 흔들리기보다는 세상으로 바람을 날려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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