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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남 아산시 선장면의 한 마을입구. 은행나무 뒤편에 가려진 낡고 허름한 함석집에는 8명의 가난하고 불편한 동거가 이뤄지고 있다.
 충남 아산시 선장면의 한 마을입구. 은행나무 뒤편에 가려진 낡고 허름한 함석집에는 8명의 가난하고 불편한 동거가 이뤄지고 있다.
ⓒ 충남시사 이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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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낡고 허름하고 기울어진 함석집 안에는 각종 잡동사니가 뒤엉켜 집 사정을 한 눈에 보여준다.
 낡고 허름하고 기울어진 함석집 안에는 각종 잡동사니가 뒤엉켜 집 사정을 한 눈에 보여준다.
ⓒ 충남시사 이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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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가족에게 이런 시련이 닥쳤는지 모르겠어요. 조금씩 가난을 극복해 가며 나름대로 행복한 미래를 설계했는데. 앞으로 살아갈 길이 막막하기만 해요."

충남 아산시 선장면의 한 농촌마을 입구에 커다란 은행나무가 한 그루 서 있다. 그 은행나무 뒤편에는 보기에도 낡고 허름한 함석집이 눈에 들어온다.

함석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위태한 모습으로 기울어진 함석지붕과 함석 물받이가 이 허름한 집의 가난을 대변해 준다. 이 집은 방 한 칸에 부엌과 사랑채 그리고 비좁은 창고 겸 마당이 전부다. 마당에는 어디에 쓰는 물건인지 모를 각종 잡동사니가 어지럽게 놓여있다.

이 낡고 비좁은 집에는 자그마치 8명의 가족이 모여 산다.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시집 온 강소라(29·가명)씨와 그의 남편 정대만(46·가명)씨 그리고 세 명의 자녀, 병든 시부모, 베트남 국적의 소라씨 어머니다.

이들은 가난을 극복하기 위한 꿈을 키워 나가고 있었다. 대만씨가 사고를 당해 전신마비가 되기 전까지는 그랬다.

생각보다 더 가난한 한국생활 10년

베트남의 한 평범한 여고생이던 소라씨가 한국에 온 것은 지난 2008년이다. 한국에 가면 잘 살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코리안 드림이 19살 소라씨를 한국이라는 낯선 나라로 이끌었다.

베트남에서 여고를 갓 졸업한 소라씨는 자신보다 17살 많은, 친정어머니와도 동갑인 한국남자 대만씨를 만나 결혼했다. 자신과 결혼한 대만씨는 평소 생각했던 한국의 부자도 아니었으며, 훨씬 더 가난한 사람이었다. 그렇지만 성실하고 책임감 있는 자상한 남편의 모습이 좋았다. 둘은 3명의 자녀를 두고 나름 행복한 가정을 꾸려 나갔다. 

대만씨는 회사에 다니며 가족을 부양했고, 소라씨는 전업주부로 아내와 엄마의 역할을 충실히 했다. 그러다 회사생활을 하던 남편 대만씨는 귀농을 결심한다. 다섯 식구가 먹고살기 위해서는 좀 더 많은 돈을 벌어야 했고, 보다 안정된 생활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부엌에 딸린 단칸방에는 덕지덕지 낚서 흔적들이 이 방에 어린 아이들이 살고 있음을 보여준다.
 부엌에 딸린 단칸방에는 덕지덕지 낚서 흔적들이 이 방에 어린 아이들이 살고 있음을 보여준다.
ⓒ 충남시사 이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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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남편의 갑작스런 사고, 좌절된 '부농의 꿈'

2016년 회사생활을 정리한 대만씨는 3000만원을 대출받아 선장면에서 미꾸라지 양식업을 시작했다.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미꾸라지 양식업에 뛰어든 대만씨는 부농을 꿈꾸며 밤낮없이 양식장에서 일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대만씨는 아무도 없는 양식장에서 발을 헛디뎌 추락사고를 당했다. 그날 대만씨는 끔찍한 고통에 시달리며 밤을 지샜다. 이날 대만씨가 돌아오지 않았지만 소라씨와 가족들은 평소처럼 양식장에서 일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다음날 대만씨가 이웃들에게 발견됐을 때는 돌이킬 수 없는 부상을 당한 뒤였다. 급히 병원으로 옮겼지만 병원에서는 하반신 마비로 2년 이상 재활치료를 해야 한다는 진단을 내렸다.

2년간 재활치료를 해도 완쾌된다는 보장은 없다. 모든 것이 암담한 상황이다.

 귀가 안들리고, 몸이 불편한 아버지와는 대화 자체가 불가능했다. 그러나 그 아버지는 상대방이 알아듣건 말건 뭔가를 열심히 말하고 싶어 했다.
 귀가 안들리고, 몸이 불편한 아버지와는 대화 자체가 불가능했다. 그러나 그 아버지는 상대방이 알아듣건 말건 뭔가를 열심히 말하고 싶어 했다.
ⓒ 충남시사 이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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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낡고 빛바랜 참전용사 국가유공자 복장을 한 한국의 아버지는 평생 이 가난을 어쩌지 못했다.
 낡고 빛바랜 참전용사 국가유공자 복장을 한 한국의 아버지는 평생 이 가난을 어쩌지 못했다.
ⓒ 충남시사 이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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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살아갈 자신이 없어요"

"옆에서 누군가 도와주지 않으면 남편은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이 모든 상황이 현실이라고 믿어지지 않아요. 앞으로가 더 걱정입니다. 아이들도 너무 보고 싶어요."

천안의 한 재활병원에 입원한 남편을 돌보느라 소라씨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처지다. 심지어 자녀들 얼굴을 보러 갈 수조차 없는 상황이다.

8명이 살던 집에는 현재 거동이 불편한 시아버지와 세 자녀, 그리고 베트남에서 온 친정어머니가 살고 있다. 말도 통하지 않는 친정어머니가 자녀 3명과 거동이 불편한 시아버지를 돌보는 상황이다. 시어머니도 병환으로 요양병원에 입원해 있다.

그나마 친정어머니는 내년 초 베트남으로 돌아가야 한다. 한국에 체류할 수 있는 기간이 1년도 채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앞으로 소라씨 가족의 생계가 너무도 막막하다. 8명의 가족 중 경제활동이 가능한 사람이 아무도 없다. 수 백 만원의 병원비도 미납된 상황에서 계속 눈덩이처럼 쌓여가고 있다.

산산이 부서진 소라씨의 코리안드림 뒤에는 감당하기 힘든 현실의 고통만이 남겨졌다. 소라씨는 가끔 고향 베트남에서 살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부질없는 생각도 든다. 소라씨 고향에는 농사짓는 아버지와 장사하는 남동생 가족이 살고 있다. 여고시절 소라씨 4가족은 가난했지만 단란하고 행복했다. 일년내내 따뜻한 나라에서 살던 소라씨는 지독하게도 추운 한국의 겨울이 너무 힘들다.

소라씨는 그토록 힘든 한국의 겨울을 10번이나 견뎠지만 더 큰 고통과 마주쳤다. 소라씨에게 닥친 한국에서의 현실은 어린시절 고향 베트남보다 더 가난하고, 더 고통스럽다. 이들 8가족의 가난하고 고통스러운 동거가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충남시사신문>과 <교차로>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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