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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송군 현서면에 위치한 면봉산. 폭 2m짜리 진입로가 이미 뚫려 있다.
▲ 청송 면봉산 풍력단지 진입로를 오르는 주민들 경상북도 청송군 현서면에 위치한 면봉산. 폭 2m짜리 진입로가 이미 뚫려 있다.
ⓒ 윤수현 김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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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자리로 걸어야 편해."

산길은 어수선했다. 밀려 나간 지 얼마 안 된 나무 기둥들이 여기저기 쓰러져 있었다. 나무가 없는 가파른 비탈을 오르는 일은 고단했다. 녹아버린 눈은 진흙이 되어 걸음걸음마다 엉겨 붙었다. 개펄 같았다. 그곳에서 세 사람만은 질척이는 길이 익숙한 듯 묵묵히 걸었다.

경상북도 청송군에서 사과 농사를 짓고 있는 남상관(54)씨, 김수하(45)씨, 김종오(38)씨다. 이들이 본업을 뒤로한 채 산에 오르기 시작한 건 인근 면봉산에 풍력발전소가 들어선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부터였다. 그렇게 작년 9월부터 십여 차례 왕복 7시간이 넘는 산길을 걸었다.

청송 면봉산 풍력사업이 추진된 건 약 8년 전부터였다. 2009년 사업 타당성 조사가 시작됐고 2012년 10월엔 산업통상자원부에서 발전사업 허가가 떨어졌다. 2013년 9월 안덕면사무소에서 주민설명회를 열었지만 몇 개 신문에 광고를 내거나 청송군 홈페이지 등 접근성이 낮은 매체에만 알려 소수의 주민들만 참여했다. 그나마 참석한 이들도 70대 이상 노인이었다. 마을에서 '청년' 역할을 하는 40~50대 장년층은 사업의 낌새를 알아채지 못했다. 사과 추수로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업은 '반대'없이 순탄하게 진행되는 듯했다. 환경영향평가를 거쳐 2016년 8월 2.7MW급 풍력기 10기에 대한 승인이 났다. 주민들이 풍력 사업을 인지한 건 이 무렵부터였다. 사업이 진행된 지 7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2016년 9월 26일 개발사인 주식회사 청송면봉산풍력은 또다시 안덕면사무소에서 주민설명회를 개최했다. 이미 허가가 난 2.7MW급 발전기는 공급에 차질을 빚어, 3.6MW급 24기에 대한 재승인을 받기 위해서였다.

설명을 들은 장년층은 반대할 수밖에 없었다. 가파른 면봉산에 풍력발전기를 세우는 일은 그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일이자 마을의 자랑거리인 자연 생태계 가치를 떨어뜨리는 일이었다. 소음피해도 빼놓을 수 없는 걱정거리였다. 주민들에겐 효용보다 '비용'이 더 큰 사업이었다. 문제는 그 비용이 생존권과 직결돼 있다는 점이다.

박근혜 정부 때 풀어버린 산지 규제, 산사태 위험 높여

안전은 인간이 충족시켜야 할 최소한의 욕구이자 국가가 마땅히 보호해줘야 할 기본권이다. 주민들은 풍력발전단지 건설이 '안전권'을 침해할 수 있다고 말한다. 안전문제와 관련해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진입로 건설이 산사태를 유발할 수 있다는 점이다.

경상북도 청송군 현서면에 위치한 면봉산. 폭 2m짜리 진입로가 이미 뚫려 있다
▲ 청송 면봉산 풍력단지 진입로 경상북도 청송군 현서면에 위치한 면봉산. 폭 2m짜리 진입로가 이미 뚫려 있다
ⓒ 윤수현 김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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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력발전단지가 들어서려면 진입로를 닦아야 한다. 진입로란 블레이드(날개)와 타워(기둥) 등 풍력발전설비를 나르고 건설 이후 발전단지를 관리하기 위해 내는 도로다. 흔히 알려진 태백과 횡성 풍력단지 건설 땐 진입로 문제가 크게 대두되지 않았다. 고랭지농업을 위해 산을 이미 깎아낸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막 건설을 앞둔 태백·영양·경주 등 풍력단지는 상황이 다르다. 이들 발전소는 대부분 산림 훼손이 진행되지 않은 백두대간에 입지하게 된다. 청송풍력단지가 들어설 면봉산 또한 생태자연도 1등급지 비율이 높은 지역이다. 원시 상태 그대로 잘 보존된 지역이라는 뜻이다.

개발사 청송풍력 측 자료에 따르면 면봉산엔 군 계획도로와 관리도로를 포함해 폭 6m, 길이 10.8km의 산길이 새로 뚫린다. 진입로로 인해 훼손되는 산지만 축구장 10개 면적인 6만 4800㎡에 이른다.

산지개발이 원래부터 쉬웠던 것은 아니다. 기존 발전설비시설 면적은 최대 3만㎡였다. 현재 청송풍력이 새로 닦을 진입로의 절반 수준도 안 되는 면적이다. 무분별한 개발로 훼손되는 산지를 최소화하고자 내건 규칙이었다. 하지만 이런 규칙은 박근혜 정부의 슬로건이었던 '규제개혁' 아래 깨졌다.

2014년 박근혜 정부는 규제개혁의 일환으로 발전설비시설 면적을 10만㎡로 대폭 늘렸다. 진입로 또한 발전설비시설에 포함된다. 개정된 산지관리법 시행령은 진입로를 "폭은 최대 6m, 연장거리는 산지가 시작되는 부분부터 마지막 풍력기가 있는 곳까지 10km 이하"로 규정했다. 대피소, 차 돌림 구간 등에서의 유효 너비는 따로 정해놓지 않았다.

시행령이 몇몇 구간에 대한 진입로 유효 너비를 정해놓지 않았기 때문에 깎여나가는 면적은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면봉산에 설치될 풍력발전기의 블레이드 길이는 63.5m, 타워 길이는 115m다. 블레이드는 해체할 수 없기 때문에 이를 옮길 차량 길이는 길어질 수밖에 없다.

차량 길이가 길면 당연히 차 돌림 구간에서 필요한 도로 폭도 넓어진다. 2008년과 2015년 두 차례에 걸쳐 풍력단지가 들어선 경북 영양 지역 주민은 "법적으로 고시된 진입로 너비가 6m라고 말하지만 이보다 훨씬 넓어질 수 있다"며 "(영양)풍력발전기 날개 길이가 55m임을 고려하면 도로 폭이 가장 넓은 곳은 20m쯤 될 것"이라고 말했다.

면봉산은 경사각이 40도 가까이 되는 곳도 있을 만큼 가파르다. 주민들은 “빨간 끈이 묶여있는 곳까지 진입로가 닦일 것”이라며 대규모 벌목을 우려했다.
▲ 면봉산 일대의 높은 경사각 면봉산은 경사각이 40도 가까이 되는 곳도 있을 만큼 가파르다. 주민들은 “빨간 끈이 묶여있는 곳까지 진입로가 닦일 것”이라며 대규모 벌목을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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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가가 떨어지지 않은 11호기 지역에서 잘린 나무들
▲ 면봉산 일대에 잘린 소나무들 허가가 떨어지지 않은 11호기 지역에서 잘린 나무들
ⓒ 윤수현 김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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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대규모 벌목과 절삭이 산사태를 유발할 수 있다는 점이다. 벌목은 흙의 응집력을 떨어뜨려 장마·집중호우 발생 시 토사유실 위험성을 높인다. 실제 작년 9월 폭우로 인한 산사태를 겪은 경북 울릉도 도동리 또한 임대주택 부대공사를 위해 일대 야산 나무 전체를 벌목해 피해 규모를 키웠다는 지적을 받았다.

산사태 1등급지 전국 및 지자체 통계. 경상북도의 1등급지 비율은 전국에서 네 번째로 크며, 면봉산이 위치한 청송군?포항시북구의 1등급지 비율은 경북 25개 시?군 중 각각 상위 3위, 4위를 차지했다.
▲ 전국 17개 시도 산사태 1등급지 비율 산사태 1등급지 전국 및 지자체 통계. 경상북도의 1등급지 비율은 전국에서 네 번째로 크며, 면봉산이 위치한 청송군?포항시북구의 1등급지 비율은 경북 25개 시?군 중 각각 상위 3위, 4위를 차지했다.
ⓒ 김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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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태 1등급지 전국 및 지자체 통계. 경상북도의 1등급지 비율은 전국에서 네 번째로 크며, 면봉산이 위치한 청송군?포항시북구의 1등급지 비율은 경북 25개 시?군 중 각각 상위 3위, 4위를 차지했다.
통계출처 산림청 그래픽 재가공 김민정
▲ 산사태 1등급지 통계 산사태 1등급지 전국 및 지자체 통계. 경상북도의 1등급지 비율은 전국에서 네 번째로 크며, 면봉산이 위치한 청송군?포항시북구의 1등급지 비율은 경북 25개 시?군 중 각각 상위 3위, 4위를 차지했다. 통계출처 산림청 그래픽 재가공 김민정
ⓒ 김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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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송지역의 높은 산사태 발생 위험도도 문제를 심화시킬 수 있다. 산림청에서 제공하는 행정구역별 산사태 위험등급 통계에서 경상북도의 산사태 1등급지 면적은 13만 7260ha로 경북 전체 면적의 10.8%를 차지한다. 전국 17개 시도 중 강원, 전북, 충북에 이어 네 번째로 높은 수치다.

이 중에서도 면봉산이 위치한 청송군과 포항시 북구의 1등급지 비율은 각각 13.5%, 13.0%로 경북 평균을 상회한다. 이를 증명하듯 면봉산 초입부터 토사유실을 막기 위한 사방댐이 설치돼 있었다.

실제 2015년 기준 경북지역 사방댐 수는 1838개로 전국에서 가장 많았다. 전체 시도에 설치된 사방댐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수치다.

원칙적으로 산사태 1등급지에는 진입로 설치가 불가능하다. 하지만 '예외'가 없는 것은 아니다. 2014년 개정된 산지관리법 시행령은 "풍력발전시설을 위한 진입로에 산사태위험 지도상 1등급지가 편입되지 않을 것"을 주문하면서 "재해방지시설을 설치할 경우는 예외로 규정한다"고 밝혔다. 산사태 발생을 최소화하기 위한 규칙에 예외를 둠으로써 산사태 1등급지를 절삭 가능하게 만든 것이다.

산사태 위험과 재해방지대책과 관련해 청송풍력 측은 "법과 규정대로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주식회사 청송면봉산풍력 관계자 함아무개씨는 "산림청 산하기관인 산림조합중앙회에서 3개의 사방댐만 추가적으로 설치하라고 했다"며 "풍력단지 공사가 진행될 경우 사방댐 설치에 드는 비용을 지불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사방댐 설치가 근본적인 대안이 아니라는 얘기도 나온다. 산사태 특성 및 방지대책연구를 하는 서울시립대 이수곤 교수는 "산을 인위적으로 깎아내는 것 자체가 산사태의 시작점이 될 수 있다"며 "안전을 위해선 최소한으로 깎아내는 것만이 대책이다"라고 말했다.

청송풍력단지의 경우 전체 절·성토량을 따져봤을 때 깎아내는 절토량이 메우는 성토량보다 약 40만㎥(부피) 정도 많다. 컨테이너 박스 12만 개 부피와 맞먹는다.

화재 위험에도 대책은 미비
2015년 제주 구좌읍 김녕리 풍력발전기 화재 현장
▲ 제주 김녕리 풍력발전기 화재 현장 2015년 제주 구좌읍 김녕리 풍력발전기 화재 현장
ⓒ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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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력발전기 결함 및 관리 소홀로 인한 화재 발생 또한 우려되는 부분이다. 국내 풍력발전기 중 사고로 운영이 중단된 경우는 2011년부터 2016년까지 총 12건이었다. 이중 노후화로 인한 운전정지가 5건, 화재로 인한 사고가 4건, 부품 고장 및 안전성 저하로 인한 운전정지가 2건, 타워파손으로 인한 전복사고가 1건이었다. 사고 원인 중 화재 발생이 차지하는 비중이 3분의 1가량 된다는 뜻이다.

문제는 풍력발전단지가 들어서는 지역의 지리적 여건 때문에 소방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대규모 풍력발전단지가 건설되는 군 단위 지역은 소방서가 아닌 소방센터가 관할하고 있다. 청송군도 그런 지역 중 하나다. 현재 청송소방센터엔 높은 구조물에 발생한 화재를 진압하는 데 사용되는 고가사다리 소방차가 1대도 없다. 고가사다리 소방차를 끌어오기 위해선 인근 안동소방서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안동소방서 측도 풍력발전기 화재 진화엔 어려움이 있다고 밝혔다. 안동소방서 관계자는 "고가사다리차 2대와 굴절사다리차 1대를 가지고 있지만, 차체가 워낙 커 산길을 올라가긴 힘들다"며 "산림청에 소방헬기 지원을 요청해 화재 확산을 막는 것이 현재로썬 최선의 방법이다"라고 말했다.

시간과 비용을 줄일 수 있는 가장 좋은 대책은 풍력발전단지 내에 화재감지 및 자체 소화시스템을 갖추는 것이다. 그러나 이를 강제하는 법령은 어디에도 없다. 사업자 또한 자체  소화시스템을 도입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자체 소화시스템을 갖추고 있냐는 기자의 질문에 청송풍력 측은 "화재 발생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 일"이라며 "현재 들여오는 기기에 자체 소화시스템이 있는 지는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보이지 않는다고 중요치 않은 것은 아니다

풍력발전단지 건설엔 눈에 보이지 않는 '안전 비용'이 들어간다. 산사태와 화재 같은 재해는 언제 발생할지 알 수 없기에 '논외 대상'이 되기 일쑤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다고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안전은 모든 사람에게 최우선으로 담보되어야 할 기본권이다. 당장 피부로 느껴지지 않아도 예측할 수 없는 미래에 대비해 고려되어야만 한다.

국제에너지기구(IEA) 규정에 따르면 1MW당 풍력발전시설 관련 투자액은 25억 원으로 풍력발전기 1기 기준(2MW) 50억 원, 1개 단지 평균 10~15개 풍력발전기 설치 때 500~750억 원의 투자유발 효과가 있다고 한다. 이 계산대로 한다면, 청송에 3.6MW급 발전기 24기가 설치될 경우 2160억 원의 '돈'을 끌어들일 수 있다.

그러나 돈은 사람보다 앞서지 못하며, 앞서서도 안 된다. 설사 돈으로 비교한다고 쳐도 '벌어들일 수 있는' 2000억여 원보다 '벌어질 수 있는' 재해 복구비용이 값비싸다는 건 상식이다. 실제 2010년부터 마지막 통계자료가 수집된 2013년까지 들어간 산사태 복구비는 3313억 원이다. 주민들이 느낄 공포와 불안감이라는 사회적 비용 또한 만만치 않을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상식은 쉽게 잊힌다.

☞ 이어지는 기사 :

덧붙이는 글 | 청송 풍력발전소의 과정과 문제를 분석한 '청송이 답했다' 의 두 번째 기사입니다. 시리즈로 4편까지 연재됩니다.



태그:#풍력발전, #신재생에너지, #친환경에너지, #청송 풍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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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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