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오후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17 프로야구 넥센 히어로즈와 두산 베어스의 경기. 2회초 2사 1루 넥센 윤석민이 투런 홈런을 날리고 그라운드를 돌고 있다.

지난 9일 오후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17 프로야구 넥센 히어로즈와 두산 베어스의 경기. 2회초 2사 1루 넥센 윤석민이 투런 홈런을 날리고 그라운드를 돌고 있다. ⓒ 연합뉴스


KBO리그 3연패에 도전하던 두산 베어스의 초반 출발이 다소 저조하다. 막강한 전력을 바탕으로 프로야구 9개 구단들에게 '공공의 적'으로까지 불렸던 두산이지만, 막상 뚜껑을 열자 3승 5패로 공동 5위에 그치며 기대에 못 미치는 출발을 보이고 있다.

심지어 두산은 지난 6일 kt 위즈전부터 9일 넥센 히어로즈전까지는 4연패를 당하고 있다. 시즌 초반 역시 흔들리던 넥센과의 주말 3연전에서는 스윕의 수모까지 당했다.

시즌 개막 전까지만 해도 전문가들은 두산에 대해 '약점이 보이지 않는 팀'으로 꼽았다. 특히 '판타스틱 4'로 꼽히는 막강한 선발진이 건재한 것이 가장 큰 장점이었다. 하지만 마이클 보우덴이 어깨 부상으로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된 데 이어 유희관이 2경기에서 자책점 7.36의 난조를 보이며 선발진의 축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3월 31일 오후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17 KBO리그 개막전 두산 대 한화 경기. 두산 선발 니퍼트가 7회초 역투하고 있다.

3월 31일 오후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17 KBO리그 개막전 두산 대 한화 경기. 두산 선발 니퍼트가 7회초 역투하고 있다. ⓒ 연합뉴스


에이스 더스틴 니퍼트도 첫 등판에서는 8이닝 1실점으로 호투했지만 두 번째 경기였던 7일 넥센전에서는 5이닝도 채우지 못하고(4.2이닝 6실점 5자책)고 패전투수가 됐다. 보우덴의 공백을 메우기 위하여 대체선발로 로테이션에 합류한 고원준은 2경기에서 5.1이닝만을 소화하며 1패 자책점이 무려 11.91에 이르렀다. 첫 등판에서 4.1이닝 2실점으로 무난한 투구를 했지만 9일 넥센전에서 1이닝만에 37개의 공을 던지고 5실점으로 난타당하고 결국 2군행을 통보받았다. 현재 두산 선발진의 평균자책점은 시즌 초반이지만 5.22나 된다.

불펜진도 안정감이 떨어지는 것은 마찬가지다. 홍상삼만이 4이닝 무실점으로 호투하고 있을 뿐 필승조로 꼽혔던 이용찬, 김성배, 김명신 등이 동시에 부진하다. 이현호와 김승회도 자책점은 낮지만 주말 넥센전에서 집중타를 맞을 만큼 흔들렸다. 두산은 8경기에서 선발과 불펜 포함 경기당 4.4개의 볼넷(35개)을 내주며 제구력도 불안하다.

특히 넥센과의 3연전에서는 안방마님 양의지의 공백도 큰 영향을 미쳤다. 양의지는 허벅지 근육통으로 경기에 나서지 못했다. 백업 포수 박세혁과 최재훈이 일단 공백을 메웠지만 경기운영과 투수 리드 능력에서 차이를 드냈다는 평가다.

우승하고 나면 고전... 두산의 우승 후유증?

타선도 저조하다. 지난해 두산은 마운드만 강했던 것이 아니라 팀 타율과 홈런에서도 1위에 오를 만큼 공수가 균형을 이룬 팀이었다. 그러나 팀타율은 0.225(284타수 64안타)로 9위고, OPS(장타율+출루율)도 0.617로 9위다. 득점권 타율도 0.259로 7위에 그치고 있다. 박건우, 오재원, 양의지, 오재일 등 주전급 선수들 상당수가 1할대-2할대 초반의 빈타에 허덕이고 있으며 잔부상까지 겹쳐 정상 컨디션이 아니다.

일각에서는 두산의 고질적인 우승 후유증이 다시 도진 게 아니냐는 지적도 조심스럽게 거론되고 있다. 사실 지난 해까지만 해도  우승을 차지한 이듬해 시즌에는 고전한다는 것이 두산의 오랜 징크스였다.

두산은 한국시리즈 정상에 5번(1982, 1995, 2001, 2015-16)이나 올랐지만 지난해 2연패를 차지하기 전까지는 연속 우승이 한 번도 없었다. 오히려 우승 다음 시즌에는 포스트시즌 진출조차 실패하는 후유증을 겪었다. 또한 우승을 차지한 이후 다음 정상에 오르기까지 기간이 꽤 길었다. 두산은 지난해 압도적인 전력으로 2연패를 차지하며 보란 듯이 징크스를 극복하는 듯했지만, 올해 초반 예상보다 무기력한 행보를 보이며 '징크스의 재림'을 우려하게 한다.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 후유증도 하나의 원인으로 거론되고 있다. 두산은 WBC에서 국내외 구단을 통틀어 가장 많은 8명의 선수가 차출됐다. 실제로 올시즌 초반 부진을 겪고 있는 선수들 중 상당수가 WBC에 출전했던 선수들이기도 하다. 선수들 입장에서는 평소보다 일찍 몸을 만들려 하다 보니 밸런스가 무너지게 되고 개막 이후에도 컨디션을 되찾는 데 애를 먹기 쉽다.

물론 이대호(롯데)나 양현종(기아)처럼 WBC에 출전하고도 초반부터 좋은 모습을 보이는 선수들도 있는 만큼 성급한 일반화는 어렵다. 두산도 장원준(1승. 6이닝 무실점)처럼 WBC와 상관없이 안정적인 활약을 펼친 선수가 있었다. 두산 김태형 감독도 "프로에게 WBC 후유증 같은 것은 핑계일 뿐"이라며 크게 의미를 두지 않는 분위기다.

그런데 두산은 지난해 유독 김재환, 오재일, 김재호, 박건우 등 데뷔 이후 '커리어 하이' 활약을 펼친 선수들이 적지 않았다. 이 선수들이 올해도 지난해와 비슷하거나 그 이상의 성적을 기대하기란 사실 쉽지 않은 일이다. 여기에 몇몇 선수들은 WBC까지 출전하느라 컨디션을 일찍 끌어올려야 했던 것까지 감안하면 연관이 전혀 없다고 하기도 어려운 부분이다.

물론 일시적인 부진일 수도 있다. 두산 이전에 프로야구를 지배했던 삼성이나 해태, 현대같은 왕조들도 늦게 발동이 걸리는 '슬로 스타터' 기질이 강했다. 두산은 스토브리그 기간 전력 누수도 없었고 약점으로 꼽히던 불펜은 양적으로 더 보강됐다. 3년 차를 맞이한 김태형 두산 감독은 아직까지 선수들을 믿고 기다리며 당장 인위적인 변화를 줄 계획은 없음을 밝히고 있다. 하지만 이번 주에도 성적이 나오지 않는다면 신뢰가 언제까지 갈지는 미지수다.

두산은 이번 주 기아-NC와 6연전을 앞두고 있다. 두산의 초반 부진이 일시적 현상인지 심각한 슬럼프인지 가늠할 수 있는 분기점이 될 전망이다. 아직은 겨울잠에서 다 깨어나지 못한 듯한 곰이 언제쯤 발톱을 드러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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