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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표·유승민 두 보수정당 후보에 대한 지지율은 합해봐야 10% 정도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지난 7일과 8일 실시한 대통령 적합도 여론조사에 따르면,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에 대한 지지율은 5.8%,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에 대한 지지율은 2.7%다. 둘을 합하면 8.5%다(그 밖의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

직선제 개헌 뒤에 치러진 1987년 이후의 역대 대선에서 10% 득표율로는 3위권에도 들기 힘들었다. 그때 이후 역대 선거에서 3위의 득표율은 1987년 김대중 27.0%, 1992년 정주영 16.3%, 1997년 이인제 19.2%, 2002년 권영길 3.9%, 2007년 이회창(무소속) 15.1%, 2012년 무소속 강지원 0.2%였다. 10% 미만의 득표율로 3위권에 든 경우는 2002년 권영길과 2012년 강지원뿐이다.

집권 여당 출신 후보들의 낮은 지지율, 아주 이례적

1997년과 2002년에 한나라당 후보로 나섰다가 고배를 마신 뒤 2007년 3수에 도전한 이회창은 무소속인데도 15.1%나 얻었다. 이번 대선에서 홍준표·유승민 후보가 어떤 결과를 받을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의 지지율이 대선 개표까지 이어진다면 2007년 무소속 이회창보다도 못한 결과를 받게 되는 것이다. 야당 출신도 아니고 집권 여당 출신 후보들이 이렇게 낮은 지지율을 얻는 것은 한국 정치사에서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이번 선거에서는 보수 후보들이 고전하고 있지만,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여파 때문이니 다음 선거에서는 나아지겠지'라고 낙관해서는 안 된다. 지금 친박 세력을 포함한 한국의 보수세력은 잘못하면 세상이 바뀔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젖 먹던 힘까지 짜내서 대다수 국민과의 투쟁에 나서고 있다. 태극기를 몸에 칭칭 감고서 대중한테 호소하는 정치인도 있다.

이전 선거 때보다 보수세력이 훨씬 더 총력전을 펴는 지금 상황에서 보수 후보들의 지지율이 10% 정도 밖에 안 된다는 것은, 한국 보수세력이 커다란 벽에 직면했음을 반영하는 것이다. 최선을 다하는데도 이 정도 결과밖에 나오지 않는다면, 이제 수명이 다했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위의 여론조사에서 문재인 후보는 39.6%, 안철수 후보는 35.6%를 받았다. 두 사람에 대한 지지율은 지금까지 여·야 양대 정당 후보들이 받던 지지율 합계에 약간 못 미친다. 안철수 후보는 요즘 약간 색달라지기는 했지만, 적어도 현재까지는 보수세력이 아니다.

존폐의 기로에 선 한국 보수정당

보수세력의 반대편에 있는 두 후보에 대한 지지율의 합계가 75% 정도나 된다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과거의 보수정당 지지자 중 상당수가 두 후보 중 한 명을 지지하고 있다. 보수정당 지지자 중에서 홍·유 후보를 지지하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총력전을 벌이는데도 지지율이 개선되지 않고 그나마 기존 지지층마저 잃었다는 것은 보수정당들이 존폐의 기로에 직면했음을 보여주는 징표가 될 수 있다. 기존의 보수가 역사적 역할을 다하고 퇴장의 길로 접어들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일 수 있다.

지금과 같은 체계적인 정당은 아니었지만, 건국 직후의 미합중국 정치를 주도한 양대 정당 중 하나가 연방당이다. 연방당은 1787년 필라델피아 헌법 제정 회의를 즈음한 시점부터 목소리를 냈다. 이 연방당에 맞서는 것이 민주공화당이었다. 이 당이 발전해서 지금의 민주당이 되었다. 지금의 공화당이 등장한 것은 조선 고종 임금이 등장하기 전인 1850년대다.

미국 제3대 대통령 존 애덤스.
 미국 제3대 대통령 존 애덤스.
ⓒ 위키백과(퍼블릭 도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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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방당은 연방 전체의 정치적 이익을 대변했고, 민주공화당은 개별 주의 이익을 대변했다. 둘 중에 먼저 주도권을 잡은 쪽은 연방당이다. 1대·2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은 소속 정당이 없었다. 그는 조선왕조의 영조·정조처럼 당파 싸움을 싫어했다. 정당에 속한 상태에서 최초로 대통령이 된 사람은 제3대 존 애덤스(1796~1800년 재임)였다. 그런 의미에서 연방당이 먼저 주도권을 잡은 것이다.

연방당은 미국 역사상 최초로 정당 출신 대통령을 배출한 최초의 여당이지만, 1820년 제9대 대선에서는 후보조차 내지 못했다. 그렇게 해서 정치 무대에서 퇴장했다. 연방당은 지금의 한국 보수정당들처럼 계속해서 위축되다가 결국 무대를 떠나고 말았다. 

연방당이 퇴장한 것은 한국 보수처럼 죄를 많이 지어서가 아니다. 연방당 지도자들이 박근혜처럼 행동해서가 아니다. 연방당이 그렇게 된 것은 자신들의 역사적 소임을 다했기 때문이다.

연방제 요소 정착하면서 연방당 존재 의의 약해져

연방당의 핵심 구호는 연방은행·상비군·중앙정부의 강화였다. 1780년대 후반부터 1810년대 후반까지의 약 30년 동안, 이런 구호는 거의 실현되었거나 아니면 실현 직전 단계에 도달했다. 그 사이에 미국 사회가 개별 주 중심에서 연방 중심으로 발전했던 것이다. 민주공화당이 정권을 잡은 기간에도 이런 쪽으로 사회가 발전했던 것이다.

이렇게 연방제 요소가 사회적으로 정착되다 보니, 연방당의 존재 의의가 약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역사적 역할을 다하게 되고, 존립 기반도 잃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이유 때문에 유권자들의 관심에서 멀어진 것이다.

연방당이 소멸한 데는 또 다른 이유도 있다. 연방당은 부유층의 이익을 대변하는 데에 치중했다. 또 뉴욕 위쪽인 뉴잉글랜드 지역의 이익을 대변하는 데 너무 치중했다. 지금의 메인·뉴햄프셔·버몬트·매사추세츠·코네티컷·로드아일랜드주에 걸친 이 지역은 청교도와 중산층과 영국 출신이 많은 지역이었다. 연방당은 부유층과 뉴잉글랜드 지역만 대변했다. 그래서 서부로 팽창하는 미국 사회의 분위기에 역행하고 말았다. 이것도 1820년 대선 때 후보를 내지 못하는 이유가 되었다.   

뉴잉글랜의 위치.
 뉴잉글랜의 위치.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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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방당은 한국 보수와 달랐다. 연방당은 할 일을 다 했기 때문에 역사 무대에서 퇴장했다. 바로 이 점에서 한국 보수와 공통점이 있다. 뭔가를 다 했다는 점에서 연방당과 한국 보수 사이에 공통점이 있는 것이다.  

민주공화당은 개별 주의 이익을 대변하면서도 연방당의 연방제 강화 주장에 대해 상당 부분 동조했다. 이렇게 민주공화당의 협조에 힘입어 연방당은 미합중국이 연방국가로 기반을 잡을 수 있도록 하는 데 기여했다. 그렇게 연방제 정착을 위해 할 일을 다 함에 따라 연방당은 존재 의의를 잃고 말았다.

한국 보수, 할 일 다했다

한국 보수도 할 일을 다 했다. 이명박 정권은 국민의 반대를 무릅쓰고 나랏돈 22조 원을 강물 속으로 밀어 넣었다. 박근혜 정권은 국민들 몰래 국민연금 등을 이용해 재벌과 뒷거래를 하고 그들의 돈을 받아냈다.

이렇게 한국 보수는 돈 문제에 관한 한은 할 일을 다 했다. 할 만큼 다 한 것이다. 여기서 좀 더 했다가는 국민들이 더 이상 참지 못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 보수도 할 일을 다 한 정당이 된 것이다. 할 일을 다 했으니 존재 의의가 약해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연방당처럼 말이다.     

한국 보수가 퇴장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 외에도 많다. 말로는 재벌과 거리를 두면서도 재벌에 의존하는 정치를 해온 상태에서 재벌에 대한 국민적 분노가 폭발한 점, SNS로 표출되는 국민의 정치적 욕구에 제대로 부응하지 못하는 점 등은 그들이 낭떠러지 앞에 서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그들에 대한 지지율이 10% 정도에 불과한 것이다. 앞으로는 잘해보겠다고 백번 천번 다짐해도 국민은 더는 믿지 않을 것이다. 그들에게 남은 가능성 중에 가장 높은 것은 퇴장뿐이다.

조선시대 당쟁에서는 승리한 당파에서 핵분열이 일어나 정계개편이 이뤄지는 양상이 되풀이됐다. 초반에 서인당을 제압하고 승리한 동인당은 남인당과 북인당으로 갈라졌다. 광해군을 몰아내면서 부활한 서인당은 북인당·남인당을 몰아내고 최종 승리를 거둔 뒤 노론당과 소론당으로 갈라졌다. 적대세력이 사라지거나 현저히 약해지면 승자 내부에서 핵분열이 일어나는 것은 권력투쟁의 역사에서 계속되는 패턴이다.

이런 패턴이 미국 정치에서도 나타났다. 연방당이 사라지자 민주공화당이 민주당과 휘그당으로 분열되었다. 그 뒤 휘그당이 사라지고 공화당이 등장하면서 지금의 민주·공화 양당체제가 정착하게 되었다.

휘그당은 개별 주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민주공화당에 뿌리를 두고 있으면서도 '주'보다는 연방의 이익을 우선시했다. 그들은 과거의 연방당과는 또 다른 각도에서 연방의 이익을 대변했다. 연방당이 사라지니까 민주공화당 내에서 연방당의 몫을 수행하는 정당이 나왔던 것이다.

안철수 후보 행보에서 새로운 시대 조짐 읽을 수도

한국 보수가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이들은 조만간 퇴장 수순을 밟을 수밖에 없다. 그런 퇴장이 이번 대선 뒤에 있을지, 이후의 다른 선거 뒤에 있을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기존의 한국 보수가 역사적 역할을 다한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에 처한 정당들은 머지않아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 그들의 운명은 시간문제다.

그렇게 해서 새누리당의 분파들이 사라지면, 지금의 야권이나 제3의 영역에서 새로운 보수정당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렇게 해서 진보·보수의 구도가 새롭게 짜일 가능성이 높다. 사정이 이러므로 한국 보수는 이번 대선에 승리하려고 힘을 뺄 게 아니라, 곧 다가올 상황에서도 계속 생존할 수 있도록 힘을 아껴두는 게 훨씬 지혜로운 일이다.

정치질서 개편의 조짐은 이미 나타나고 있다. 야권 후보인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야당인 듯, 여당인 듯 하는 행보를 보일 때가 있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 중에도 그를 지지하는 이들이 많다. 야당이면서도 여당 역할을 수행할 때가 있는 안철수 후보의 행보로부터, 한국 정치에 곧 다가올 새로운 시대의 조짐을 읽을 수도 있을 것이다.  


태그:#미국 연방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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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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