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인천 삼산월드체육관에서 열린 남자프로농구 6강 플레이오프 3차전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와 서울 삼성 썬더스의 경기. 4쿼터 이상민 삼성 감독이 경기를 지켜보다가 뒤돌아 언짢은 표정을 짓고 있다.

지난 4일 인천 삼산월드체육관에서 열린 남자프로농구 6강 플레이오프 3차전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와 서울 삼성 썬더스의 경기. 4쿼터 이상민 삼성 감독이 경기를 지켜보다가 뒤돌아 언짢은 표정을 짓고 있다. ⓒ 연합뉴스


2016·2017시즌 6번을 맞붙어 5번을 이겼다. 리카르도 라틀리프와 마이클 크레익, 문태영, 김준일이 상대 골밑을 압도했고, 김태술이 중심을 잡아주면서 속도 싸움에서도 밀리지 않았다. 서울 삼성의 4강 진출은 확실해 보였고, 1차전 압승이 이를 증명하는 듯했다. 그런데 대반전이 일어나고 있다.

전자랜드는 정규리그 우승을 노렸고, 4강 직행이 확실해 보였던 삼성이 3위에 머물렀던 이유를 잘 알고 있었다. 유도훈 감독은 주전 가드인 박찬희를 대신해 김지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삼성의 가장 큰 약점인 앞선을 공략했다. 스피드를 활용한 속공과 정확한 외곽슛으로 상대 수비를 무너뜨렸고, 강한 압박 수비로 삼성의 고질병인 턴오버를 잇달아 유도해냈다.

개인플레이와 수비에서 문제점을 드러냈던 제임스 켈리도 변했다. 동료들이 켈리의 능력을 살려주기 위해 희생했고, 켈리 역시 팀플레이에 눈을 떴다. 그 누구보다 수비에 적극적으로 임했고, 주변 동료를 활용하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그 결과 6강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는 패했지만, 2연승을 거두며 4강 진출을 눈앞에 두고 있다.

양날의 검, 마이클 크레익

이상민 감독의 머리가 복잡해졌다. 전자랜드가 잘한 것도 사실이지만, 삼성이 스스로 무너진 면도 없지 않기 때문이다.

삼성은 승리했던 1차전(3월 31일)에서 턴오버가 무려 15개였다. 전자랜드보다 8개가 더 많았고, 집중력을 끌어올리지 못한다면 문제가 될 것이 확실했다. 그러나 삼성은 고질병인 턴오버를 줄이지 못했다. 2차전에서는 16개로 상대보다 6개 더 많았고, 3차전에서는 전자랜드보다 4개 많은 18개의 턴오버를 범했다.

그 중심에는 크레익이 있었다. 지난 2차전에서 4개의 턴오버를 범했던 그는 4일 6강 플레이오프 3차전에서 5개의 실책을 범했다. 특히 무리한 일대일 공격이 너무나도 많았다. 전반전에만 무려 15번의 일대일 공격을 시도했는데, 득점보다는 상대의 속공으로 이어진 장면이 많았다.

사실 올 시즌 중반까지만 해도, 크레익은 삼성의 중심이었다. 육중한 몸과 믿기 힘든 운동 능력을 자랑하며, 웬델 맥키네스를 위협할 최고의 단신 외국인 선수로 떠올랐다. 골밑과 외곽을 가리지 않는 득점, 라틀리프와 임동섭 등 동료를 활용하는 패스, 꾸준한 리바운드 능력 등 삼성에서 크레익의 존재감은 매우 컸다.

그런데 크레익이 패스에 집착하고, 그의 플레이가 상대에 읽히기 시작하면서 삼성은 흔들렸다. 크레익은 지난해 12월 30일 부산 KT와 경기에서 트리플 더블을 기록한 이후 패스에 재미가 들렸다. 김태술이 해야 할 일을 뺏기 시작했고, 관중들의 탄성이 나올 만한 멋진 패스를 수차례 시도했다.

문제는 성공률이었다. 그의 화려한 패스가 동료의 득점으로 연결될 때도 있었지만, 실패할 때가 훨씬 많았다. 크레익의 볼 소유 시간이 길어지면서, 김태술을 포함한 삼성 가드진의 역할도 애매해졌다. 볼의 흐름이 원활하지 못했고, 안 그래도 많았던 턴오버는 더 늘어나기 시작했다.

정규리그 막판까지 안양 KGC와 우승 경쟁을 했고, 고양 오리온에 앞서며 최소 2위는 확보한 듯했지만, 삼성이 최종 3위로 마무리한 데는 '양날의 검' 크레익이 있었다.

위기의 남자 이상민, 유재학 감독이라면 어땠을까

이상민 감독의 과감한 결단이 필요하다. 플레이오프인 만큼 외국인 선수 교체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외국인 선수가 2명 모두 뛸 수 있는 2, 3쿼터에 크레익을 제외할 수는 있다. 삼성에는 김준일이라는 센터가 존재하고, 문태영과 임동섭이라는 훌륭한 포워드가 버티고 있는 만큼, 크레익 제외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삼성 3차전 패배의 가장 큰 원인은 크레익이었다. 켈리를 의식한 나머지 무리한 공격이 너무나도 많았고, 상대에 흐름을 내주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때라도 이상민 감독은 변화를 줬어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크레익을 제대로 컨트롤하지 못했고, 한 번 넘어간 흐름을 되찾아오지 못했다.

크레익의 이런 모습은 6강 플레이오프 3차전뿐 아니라 2차전과 정규리그 후반기에도 꾸준하게 나왔다. 크레익의 무리한 공격 시도와 패스가 상대의 속공으로 이어지고, 흐름을 넘겨주는 일이 전혀 새롭지 않다는 이야기다. 오는 4차전에서 변화를 통해 크레익에게 충격을 주지 않는다면, 전자랜드를 이긴다 한들 우승을 노리는 데는 한계가 있다.

똑같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삼성을 지켜보면서, 이런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만약 이상민 감독이 아닌 노련한 유재학 감독이었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올 시즌 유재학 감독은 KBL 최고의 장신 외국인 선수로 손색 없는 찰스 로드를 과감하게 내쳤다. 여전히 그는 팀플레이가 아닌 자신을 우선시하는 선수를 제외하는 데 뜸을 들이지 않는다.

양동근과 함께 울산 모비스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함지훈이라 할지라도 팀플레이에 해가 된다면, 과감하게 벤치로 불러들인다. 과거 김효범과 문태영 등 개인적 성향이 강한 선수들을 지도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전술과 경험 등 유재학 감독의 능력이 뛰어나기도 하지만, 과감한 결단도 끈끈한 모비스를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상민 감독에게도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 올 시즌 내내 1, 4쿼터에만 출전하고 있는 김준일을 더 활용하고, 문태영의 공격력을 극대화할 필요가 있다. 물론 김준일과 문태영은 부상 때문에 정상적인 몸 상태는 아니다. 하지만 팀에 전혀 도움이 안 되는, 화려함만을 추구하는 크레익보다는 훨씬 좋은 카드가 될 수 있다.

농구는 앞선보다 뒷선이 훨씬 더 중요하다. 스피드가 높이를 제압할 때도 있지만, 여전히 농구는 높이의 스포츠다. 삼성은 그 높이에 확실한 강점이 있다. 기본에만 충실하면, 자신들이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한다면, 삼성은 4강에 진출할 수 있다. KBL 최고의 외국인 선수 라틀리프와 김준일, 문태영 등 선수 면면으로 볼 때도 삼성은 밀리지 않는다.

앞선 역시 풍부한 경험과 수비에 장점이 있는 이시준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면, 김지완을 막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이시준은 외곽슛 능력도 갖춘 선수인 만큼, 이상민 감독은 폭넓은 선수 기용과 과감한 결단으로 승부를 내야 한다. 변화를 두려워한다면, 삼성은 정규리그 때부터 이어져 온 똑같은 문제에 발목 잡혀 4강 진출에 실패할지도 모른다.

정규리그 우승을 넘어 챔피언을 꿈꾸던 삼성, 이대로 물러나기에는 너무 억울하지 않은가. 삼성의 중심인 임동섭과 김준일이 군 입대를 앞둔 만큼, 지금이 우승의 적기 아니던가. 삼성 이상민 감독의 어깨가 그 어느 때보다 무겁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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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삼성 이상민 유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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