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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이 만나 잘 살기 위해선 서로의 도움과 지지가 필요합니다. 내조만큼 외조가 중요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시대와 장소를 뛰어넘어 자신의 반려자를 위해 노력하는 '외조의 끝판왕'들을 만나봤습니다. [편집자말]
"나 왔어! 배고파!"
"왔어? 힘들겠다. 우리 자기, 뭐 먹고 싶어?"
"음... 아무거나, 맛있는 거."
"그럼 고기랑 밥 먹자. 씻어. 밥 차릴게."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남편은 날 기다리고 있다. 쏟아지는 물줄기로 피로에 절은 몸을 씻고 나오면, 우리 집 주부님이 정성껏 준비한 맛난 식사가 식탁 위에 차려져있다. 오늘은 하얀 쌀밥, 된장찌개와 고기. 단백질과 탄수화물 그리고 지방, 3대 영양소 모두를 신경 썼다며 생색낸다. 손이 커서 숭덩숭덩 자른 두부와 고슬고슬 지은 하얀 쌀밥을 한입 가득 넣고, 양파와 함께 구운 돼지 목살을 힘껏 씹는 맛이란! 역시 우리 남편. 밥 한 끼로 일에 지친 나를 위로 할 줄 안다.

식사를 마치고 그대로 침대 위에 벌러덩 누워있으면 따뜻한 물을 가득 담은 족욕기가 어느새 침대 옆에 와있다. 그곳에 발을 담그면 나도 모르게 잠이 든다. 나의 휴일은 이렇게 시작된다. 날 기다리는 남편과 함께.

저는 '주부 남편'을 둔 항공사 승무원입니다 

 남편이 차려준 밥상.
 남편이 차려준 밥상.
ⓒ 강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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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주부 남편을 둔 항공사 승무원이다. 한 번 비행을 나가면 짧게는 3일, 길게는 6일씩 집을 비우고, 한 달에 절반 이상을 해외에서 지낸다. 한국집에 돌아와도 시차 적응 때문에 괴롭다. 적응이 될 만하면 또 나가고, 또 나가고. 겉으로는 화려해 보일지 몰라도, 속으로는 골골댄다.

유학 생활을 오래한 남편은 다른 누구보다 비행과 시차적응의 어려움을 잘 알기에 내가 더 안쓰러운가보다. 집에서 쉬는 날은 늘 이것저것 챙겨주려 한다. 영양가 갖춘 식사를 차려주는 것은 물론, 빨래 및 청소 같은 집안일을 책임져 준다. 팔불출 같지만 좀 더 자랑을 하자면 비행 나갈 때는 초콜릿과 여러가지 곡물을 넣은 쿠키를 직접 구워 가방 안에 넣어준다.

 승무원인 나를 위해 남편이 챙겨준 간식거리.
 승무원인 나를 위해 남편이 챙겨준 간식거리.
ⓒ 강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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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무원인 나를 위해 남편이 챙겨준 간식거리.
 승무원인 나를 위해 남편이 챙겨준 간식거리.
ⓒ 강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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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야기를 회사 동료들에게 하면 정말 말 그대로 찬사가 이어진다. 이런 남편이 없다며, 부럽다며, 진심을 담은 선망의 눈길 세례를 받곤 한다. 그러면 나는 기분이 좋기도 하고 너무 자랑을 하는 건 아닌가 머쓱해지기도 한다. 그러다 가끔 누군가 내게 묻는다.

"남편께서 시간 여유가 있는 직업인가 봐요?"

우리 남편의 직업은 정의하기 어렵다. 일반적으로 보자면 프리랜서 번역가 및 개인 사업 준비고, 남편 본인 기준에서는 주부 및 백수다. 본인이 가정 경제의 100%를 책임지는 것도 아니고, 아직 사업 성과도 없으니 그렇단다. 의외로 이런 것에 깐깐하다. 외국에서 대학 졸업 후 꽤 잘나가는 토익 강사로 일하며 틈틈이 번역을 했었다. 지금은 가끔 번역만 하고 주로 집안일을 한다.

나는 밖에서 일하고, 남편은 주부다. '일반적인 가정'의 모습과 다르다. 처음부터 이랬던 것은 아니다. 2014년 결혼했을 때, 남편은 토익 강사, 난 승무원. 평범한 맞벌이 부부였다. 그러다 2015년 11월, 남편은 학원을 그만 뒀다.

남편은 금수저는 아니지만 동수저 정도 됐다. 아버님이 유통업으로 성공하셨고, 장남인 남편은 대학을 영국에서 나올 정도로 남부럽지 않게 살았다. 그러다 대학 졸업을 두 달 앞두고 아버님께서 갑작스레 세상을 뜨셨다. 남편은 언젠가 웃으며 내게 말했다.

"부잣집 망하면 3년 간다는 속담은 진짜였어. 아버지 돌아가시고, 겨우 대학 졸업하고 한국 돌아와 군대가서 전역하고 오니 3년 금방 지나더라."

남편이 군대간 사이 어머님은 사기를 당하셨다. 그렇게 기울어진 가세를 어떻게든 살리겠다고 남편은 나를 만나기 전부터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글을 써서 먹고 살겠다는 자신의 꿈도 잊은 채. 책임감 하나로 그렇게 10년을 미친 듯이 일만 했던 것이다.

내가 남편과 결혼한 이유도 결국 그 책임감 때문이 아닐까. 내가 조금 덜어주고 싶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힘들어 하는 것을 그저 바라만 볼 수 없었다. 빨리 남편을 돕고 싶었다.

당시 남편은 이른 아침부터 밤 11시까지 학원에서 강의를 했다. 일반적으로 대형 학원 토익 강사라고 하면 다 잘 버는 줄 알지만 실상은 다르다. 몇몇 스타강사들을 제외하고는 벌이는 일반 대기업 연봉 수준이었다. 워낙 열심히 하니 명성도 생겼고, 형편은 조금씩 괜찮아졌지만 남편이 괜찮지 않았다. 10년을 달려오며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이미 너덜너덜해진 상태였다. 남편은 쇠약해져 있었다. 그 모습을 보는 나는 마음이 아팠다.

일과 삶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던 남편에게서 어느 날 아침 전화가 왔다.

"나 학원 그만 둬도 돼?"

그만 두는 것도 직접 결정하지 못하고, 내게 허락을 구하는 남편이 짠했다. 얼마나 고민을 했을까. 눈물이 났다. 얼른 집으로 오라고 말했다. 남편은 일에서 잠깐 벗어날 자격이 있었다. 이제 혼자 아닌 내가, 부인이 있으니까. 내가 일을 하고, 남편은 쉬면서 인생의 다음 단계로 넘어 갈 준비를 하는 게 옳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남편은 일을 그만 두고 주부가 됐다.

성별이 역할을 정해주는 건 아닙니다

사람들은 우리 부부의 결심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본다. 혼자 벌어야 하는데 걱정되지 않냐, 남편이 집에 있어도 괜찮냐고 묻는다. 우리 부모님은 물론이고 시어머니 마저도 여자인 내가 돈벌이를 책임지는 것을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는다. 우리 사회에서 남자 주부는 일반적이지 않고, 남편이 있는데 여자가 가장이 되어 생계를 꾸리는 것은 아직 어색한 이야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일 년이 지난 지금, 내 생각은 더 명확해졌다. 부부는 서로를 위해 각자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 하면 되는 것 같다.

언젠가는 내가 일을 못하게 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아이를 낳을 수도 있고, 남편처럼 지쳐서 그만 둘 수도 있다. 그때는 남편이 나를 위해 가정경제를 책임질 거다. 성별이 부부 사이의 역할을 정해주는 것은 아니다. 남자는 밖에 나가 돈을 벌고, 여자는 주부로 산다는 옛날 사고방식을 벗어나면 편해진다.

 파스타
 자취를 오래한 남편은 요리를 잘 한다. 반면 나는 요리에 관심이 없다. 남편이 주부가 되고 내가 일을 하는 건 신기한 일이 아니라 그저 합리적인 선택이다.
ⓒ 강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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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남편은 요리를 잘한다. 자취도 오래했고, 취미도 요리다. 쌀조차 품종과 원산지를 구별해서 하나하나 먹어보는 사람이다. 나는 요리에 관심이 없고 즐겨하지 않을 뿐더러 못한다. 그래서 남편이 요리를 한다. 남편은 내가 요리하는 것을 아예 기대하지 않는다. 뭐든지 잘하는 사람이 하면 된다. 남들에게는 신기하게 보일지 몰라도 그저 합리적인 판단의 결과일 뿐이다.

내게는 꿈이 있다. 언젠가 지금 하는 승무원 경력을 살려 항공전문가로서 유학도 가고 국제기구에서 전문가로 일하고 싶다. 남편에게 이런 나를 위해 집에서 내조해 줄 수 있냐고 물었다. 집에서 애도 키우고, 지금처럼 내 밥도 챙겨주는. 남편은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우리 남편 주부님과 나의 직장생활이 맞물려 간 지도 어언 1년이 되었다. 우리 부부는 여전히 남들과는 조금 다른 일상을 맞는다. 내가 일을 나가는 날 아침이면 남편은 동네 빵집에서 사온 크로와상과 커피를 준비해준다. 아침을 먹고 남편표 쿠키를 챙기고 직장 나갈 채비를 갖추면 남편은 내 캐리어 두 개를 아래층으로 내려준다. 그리고 택시를 불러서 나를 태우고 손을 흔들고 나면 또다시 우리 각자의 일주일이 시작되는 것이다.

독특하지만 알고보면 너무나도 평범한 우리 가정의 일상. 이렇게 우리 부부는 오늘도 각자가 필요할 때 할 수 있는 일을 해 나가고 있다. 남편과 아내라는 역할을 떠나서 삶의 파트너로서 말이다. 

[남편의 글] 아내가 출근하면 집안일 시작...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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