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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됐습니다. 이제는 '새로운 나라'에 대해 이야기할 때입니다. <오마이뉴스>는 '내가 살고 싶은 나라, 내가 꿈꾸는 국가'에 대한 각계각층의 목소리를 대선 기획 '100인의 편지'를 통해 전하고자 합니다.

이번 기획은 '열린 기획'으로 시민기자 누구나 참여할 수 있습니다. 차기 정권에 하고 싶은 말, 바라는 바에 대해 적어 기사로 보내주세요. '이게 나라냐'는 탄식을 넘어 '이게 나라다'라는 새로운 지향점을 여러분과 함께 열어나가겠습니다. [편집자말]

자취방에서 혼자 밥을 먹을 때면 적적해서 방송 프로그램을 틀곤 한다. 요즘 보는 프로그램에는 나랑 국적은 같지만 소득 수준이 다른 사람들이 나오고, 그들이 외국을 배경으로 생활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밥을 먹다가 작은 노트북 화면에서 조금만 눈을 돌리면, 수건이 없어서 급하게 돌린 빨래와 아무렇게나 쌓인 수업 자료들이 보인다. 먼지가 잔뜩 붙은 거울에 초라한 내가 비칠 때면 나는 간절하게 '탈조선'이 고프다. 하지만 아무리 희망을 가져보려 해도, 잔고가 여섯 자리 숫자를 넘어본 적 없는 나에게 탈조선은 현실성이 없다. 그러자니 간절함의 방향은 확실해진다. 헬조선에 숨구멍을 뚫어야 한다. 이 땅에 살아남는 이상, 뭐든 바꿔야 하는 것이다.

내가 글을 쓴다고 해서 사회가 알아서 척척 바뀌는 것은 분명 아니다. 하지만 나는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내 문제의식에 공감을 한다면, 함께 목소리를 내줄 것이라 믿는다. 나는 그 사람들과 함께 전체 사회를 1mm라도 움직여놓는 것이 목표다. 그런 마음으로 이것저것 적어본다.

청년을 이해하는 정치가 필요해

 경남청년유니온은 30일 오후 창원대 앞에서 '대학가 클린존 만들기 프로젝트 선포식'을 열었다.
 경남청년유니온은 지난 3월 30일 오후 창원대 앞에서 '대학가 클린존 만들기 프로젝트 선포식'을 열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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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대학생들이 주관하는 집회에 많이 참가했었다. 한번은 아는 사람이 방송차량에 올라가 구호를 외친 적이 있다. 그 사람이 외친 구호는 "삼시 세끼 챙겨먹자!"였다. 나는 그 순간 '적폐 청산'이나 '교육 공공성 강화'같은 구호를 듣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충격을 느꼈다.

하루 세 끼와 세 번의 양치질은 어릴 때부터 교육받아온 상식이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정말 나는 하루에 세끼를 챙겨먹는 날이 거의 없었다. 편의점 음식, 인스턴트식품을 먹지 않는 날이 드물었고, 편의점에 가서도 제일 먹고 싶은 것보다 조금 더 싼 물건을 고르곤 했다. 헛웃음이 날 정도로 비참했다. '삼시 세끼' 챙겨먹는 방송이 왜 그렇게 재미있었는지도 알 것 같았다. 1980년대 노동자들이 파업하면서 걸었던 구호가 '배고파 못 살겠다, 먹을 것을 달라'였다. 그때에 비해 아무리 나아졌다고 한들, 외치는 구호에서 배고픔이 느껴지는 것이 변하지 않았다니 서글프다.

지금의 나와 내 또래들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봤다. 취업, 경쟁, 주거 등등 많은 문제들이 떠올랐지만, 하나로 통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내 생각에 그것은 '사회적 습관'이다. 시대가 달라짐에 따라 마땅히 변화해야 할 제도와 문화들이 관성을 유지하면서 구성원들에게 '강요'로 적용되는 것이 '사회적 습관'이다.

"결혼은 돈이 들어도 꼭 형식을 잘 갖춰서 해야 한다"는 관습이나, "젊어서 고생하면 나중에는 다 보상받을 것"이라는 희망고문, "다들 참고 사는데 너도 견뎌야 한다"는 말 등등이 모두 그렇다. 우리가 자유롭게 더 나은 세상을 상상하는 데에 걸림돌이 되는 것들이다. 사실 대학이든 연애든, 결혼이든 취업이든 정해진 답은 없다. 꼭 하지 않아도 별 문제가 없어야 하는 것들인데 사회적 습관을 수행하지 못하는 구성원들은 실패자로 낙인찍히고 있다.

사회적 습관이 무서운 이유는, 분명 기준은 사회적인 것에 맞추어져 있지만 기반은 사회적이지 못하다는 것이다. 남들보다 더 뛰어나고, 남들보다 돈을 많이 벌어야 하지만 모두가 그렇게 될 수는 없다. "너네 부모를 원망해, 돈도 실력이야"라는 말이 공분을 산 이유는 실제로 소득의 격차가 기회의 격차가 되는 것이 부당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이미 부를 가진 사람들에게만 유리하다. '티끌모아 태산' 같은 것은 쌓인 빚에나 적용되는 말이고, '노력하면 안 되는 것이 없다'는 말은 공허하기 짝이 없다. 30년 동안 숨만 쉬고 월급을 모으면 얼마(큰 돈)를 만들 수 있다는 말은, 내게 기억할 가치도 없는 말이다. 곱하기만으로 우리의 삶을 계획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항상 예기치 못한 사고와 질병, 경조사, 그리고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소유욕구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병원 한 번 가지 않고 월급을 계획대로 모을 수 있을까? 정해진 식비 안에서만 소비를 하고 먹고 싶은 욕구를 모두 끊어낼 수 있을까? "그럴 수 있다"고 대답하는 사람이 있다면 다시 물어보고 싶다. 그렇다면 그렇게 사는 사람은 언제 행복해질까?

수많은 변수를 고려하지 않고 소득의 곱하기로만 한 사람의 삶을 고려하는 것은 인간답지 못하다. 그런 신화와 같은 것이 가능성으로 운운되는 것에 우리는 더 고통 받는다. 알바 노동으로 수개월을 보내고, 돈을 모아 여행을 가는 사람들에게 "요즘 애들은 돈도 많다"는 비아냥이 향하는 것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 배고픔은 해결되어야 할 사회적 문제이지, 개인의 '노오력'을 북돋는 자극제가 아니며, 개인의 능력으로 극복해야 할 과제도 아니다. 우리는 기본적인 생계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 국가와 복지체계는 그것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우리는 건강하고 안전하게 생명을 유지하며 더 나은 사회를 풍요롭게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의 상상력이 가로막힌다면 이 사회는 더 진보하지 못한다.

'사회적 습관'은 어디에나 존재하며, 현 체제에 오래 노출될수록 그것을 진리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그나마 '사회적 습관'을 덜 수행하는 청년세대, 보다 어린 미래 세대들을 넉넉하게 지원해주어야 하는 것이다. 청소년은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지원과 연대의 대상이다. 새로운 상상력으로 사회를 변화시킬 사람들이 지금 의복을 규제당하고, 정치적 선택을 할 권리도 박탈당하고, 입시-대학-졸업-취업의 루트를 강요당하고 있으니 미래가 어두울 수밖에 없다.

역사적으로 반복되는 많은 국가들의 흥망성쇠를 봐도, 마지막에 망하는 이유는 결국 기득권의 부패 때문이다. 이미 권력을 가진 이들이 다 해먹게 두면 안 된다. '사회적 습관'의 고리를 벗어나는 세대에게 열쇠를 줘야한다.

대학 교육, 공공재로 바라보고 지원해야

나는 성공회대학교에 다닌다. 구로구와 부천시의 경계에 걸친, 행정구역상의 서울지역 4년제 대학이다. 슬로건은 '인권과 평화의 대학'이며, 신영복 선생님이 돌아가시기 전까지 석좌교수로 계셨다. 다른 대학이 모두 앞서가는 리더를 키우겠다고 할 때, 열사람의 한 걸음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는 학풍에 반해 지원했다. 그런데 얼마 전, 학교가 18학년도부터 학과 구분을 '전부' 없애는 방향으로 구조개혁을 하겠다고 발표했다.

다른 대학에서 구조조정을 해서 학과가 없어지고, 통폐합될 때 '와, 저게 얼마나 어이없는 일일까' 하고 생각은 했지만 막상 우리학교에서 한다고 하니 말로 다 못할 정도로 억장이 무너졌다. 행정상의 학과 구분이 없어지면 당연히 과 학생회도 설 수 없을 것이고, 학과 단위의 학생 대표자들과 총학생회 대표자들로 이루어진 기존의 학생회체계는 와르르 무너질 것이다.

공동체의 가치를 중시한다는 대학에서 학생공동체 파괴를 야기할 정책을 펴는 것을 이해할 능력도 나에게는 없는데, 대학본부는 '칼리지' 방식이라는 것을 대안으로 내놓으며 정작 그게 무슨 방식인지 설명하지 못해서 나를 더 혼란으로 몰아넣었다. 여러 가지 상황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도 없이 수업과 학사제도를 전면 개편하자고 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그 과정에 학생들과의 소통이 너무나 부족하다. 그 많은 혼란의 타격은 모두 학생들의 몫인데도 말이다. 피, 땀, 눈물 모아 등록금을 내는 우리 삶에 학교는 큰 부분을 차지하지만, 학교에게 우리의 삶은 큰 부분이 아닌 거다. 사실 학교는 구체적인 학생들의 삶보다는 당장 '영업'을 유지할 수 있느냐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 같다.

몇 년 전부터 교육부는 대학 수에 비해 학령인구가 줄어든다며, 대학을 평가해서 점수가 낮은 대학들에게 강력한 불이익을 줬다. 대학운영진들은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며 구조개혁을 진행했다. 기업이 구조조정을 할 때 '모두가 살기 위한 방책'으로 정리해고를 한다고 변명을 하는데, 지금 대학은 거의 기업과 다름이 없다. 운영논리가 같아지고 있는 것이다.

애초에 대학이 부지기수로 많아진 이유는, 정부가 대학 설립에 대한 규제를 풀어줬기 때문이다. 심지어 대학이 잘 운영되지 않아도 설립자의 자본은 보존되기 때문에 운영진들은 책임도 손해도 지지 않는 구조다. 밑질 것 없는 자본가들이 대학을 설립하고, 운영에 성실하지 않아도 피해를 보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정책을 다루고 법을 만드는 기관이 제도에 빈틈을 두었기 때문에 이 상황이 초래된 것인데, 그 피해를 학생들이 다 받아내고 있다. 이렇게 부당할 수가 없다. 우리가 겪는 문제의 대부분은 사회적인 결함에서 발생한 것인데, 너무나 쉽게 개인의 책임으로 전가되곤 한다.

대학이 가지는 사회적인 역할, 인재 양성, 연구, 교육기관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려면 그 역할에 어울리는 운영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대학에까지 범람한 기업경영식의 사고를 규제해줄 정치를 원한다. 그리고 대학의 교육 공공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학은 사람들이 모여서 연구를 하고, 공동체를 경험하는 교육기관이다. 교육은 모든 사람들이 누릴 수 있도록 마련되어야 하는 공공재로 바라봐야 한다.

공공재가 사회적인 역할을 잘 수행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은 정부의 책임이다. 고로 대학정책의 실패와 복구에 대한 책임은 정부에게 있다. 교육부는 대학을 기업과 같은 규제대상으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 사회적 소임을 다 할 수 있도록 관리하고 지원하는 데에 힘써야 한다. 그러니까 멋대로 세운 기준에 따라 평가하고 줄 세우지 말고, 이 사태에 대한 합리적인 대안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우리의 정치'가 필요해 

 탄핵심판 선고 전야인 9일 오후 서울 공화문 광장에서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대통령 탄해 인용을 촉구하는 촛불 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이 헌재를 향해 행진하고 있다.
 탄핵심판 선고 전야인 지난 3월 9일 오후 서울 공화문 광장에서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대통령 탄해 인용을 촉구하는 촛불 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이 헌재를 향해 행진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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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원을 생전 처음 가본 정치인의 놀란 얼굴이 기사에 등장했을 때, 사람들은 씁쓸한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기사에 등장한 고시원보다 훨씬 좁고 열악한 공간에 사는 사람들이 허다한데, 정치인이라는 그 사람은 '어떻게 이런 곳에 사람이 사느냐'는 표정을 지었기 때문이다. 그가 우리와 너무 다른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것이 명확해지는 순간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민중가요 중에 '저들이 말하는 국민 중에 너와 나는 간 데 없고, 저들의 계획 속에 너와 나의 미래는 없지'라는 가사의 곡이 있는데, 이 상황에 너무나도 잘 들어맞는다고 생각했다. 우리의 삶은 그런 정치인들의 국정에서 배제되어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국회의원을 거쳐 갔지만 별 차이가 없다면 사람이 문제가 아니라 구조를 바꿔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지금의 구조 안에서는 혁신적인 변화를 꿈꿀 수 없다. 단순히 국회의원들의 나이 분포만 봐도 청년세대를 대변할 정치인이 없다. 여성을 위한 정책을 펼칠 국회의원도 너무 적다. 청소년의 인권을 생각할 정치인은 더더욱 희박하다. 가난한 청년, 가난한 노년, 장애인과 성소수자까지 모두 국민으로 존재하지만, 이들의 삶에 완전히 공감할 수 있는 정치인은 죽었다 깨어나도 없을 구조다. 다양한 입장의 정치인이 필요하다. 어떤 사람이든 국회에 내 입장을 대변해줄 정치인이 있다고 확신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최근에 알게 된 사실인데, 국회의원이 되려면 선거에 출마해야 하는데 출마할 때 내는 기탁금의 금액이 너무 크다. 2000만 원. 나로서는 평생 만져보지 못할 돈인데, 국회의원이 되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돈을 내야 한다고 하니 더 정치와 멀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 돈을 낼 수 있는 사람만 출마를 할 수 있으니 돈 없는 사람들은 정치와 멀어질 수밖에 없다. 국회의원의 자격을 걱정하는 거라면 그 기준이 돈이어서는 안 될 것이다. 공직 선거의 기탁금을 대폭 줄여서 재산이 적은 사람들이 정치에 참여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리고 후보자와 정당의 정책과 방향성이 표심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 '그나마 가능성이 있는 차악'이 아니라, '내가 공감하는 정책을 펴는 선'에 투표할 수 있어야 한다. 현재 기탁금을 500만 원까지 내리는 법안의 발의되어 있다고 한다. 다른 나라의 수준에는 못 미치지만, 정치의 벽을 한참 낮출 수 있지 않을까 싶어 반가웠다.

추운 겨울을 촛불로 버티면서 사람들은 많은 것을 깨달았다. 사는 것이 바빠 관심을 못 두고 살았는데 정치가 우리 삶에 엄청난 영향을 준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광장에 모여 부대끼면서, 우리 안에는 정말 다양한 입장이 있다는 것도 알았다. 지금까지 정치의 벽은 높았고, 입법권이든 사법권이든 행정권이든, 금수저들의 무리 안에서 돌고 돌았던 것이 사실이다. 옛날 성직자들이 글을 모르는 사람들을 상대로 성경을 해독해 지위를 얻고, 법학자들이 법전에 한자를 빼곡히 박아 법을 독점했던 것처럼 대대손손 재산이 없던 사람들을 상대로 대대손손 부자인 사람들이 지위를 독점해왔던 것이다. 재산 뿐 아니라 학벌, 신체, 사회적 권력을 가진 기득권 세력의 통치였다.

대통령이 바뀌어도, 국회에 다양한 입장이 존재하지 않으면 국정 안에서 약자들은 여전히 배제의 대상일 것이다. 나는 내 입장에서 보았던 사회의 부조리와 불평등, 불만, 그리고 내가 상상하는 미래에 대해 열심히 떠들고 싶다. 그렇게 해서 조금씩 변하는 게 있다면, 헬조선에 사는 너와 나는 조금 숨통이 트일 수 있다.

전국에서 사람들이 촛불을 들고 일어나자 대통령이었던 사람을 구속시키는 것까지 해냈다. 우리는 우리의 정치를 실행한 경험을 얻은 것이다. 이 경험이 일회성으로 소모되지 않고 지속될 수 있는 방법을 구축해야 한다. 정치 시스템을 바꾸고, 더 변화에 의욕적인 사람들이 참여하기 쉬운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다보면, 40대 대통령, 20대 정치인을 흔하게 볼 수 있는 세상이 올 수도 있다. 광장에서 경험한 우리의 정치를 이어나가자. 광장이 일상이 되고, 어디든 광장이 될 수 있어야 한다. 우리에겐 우리의 정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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