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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노동자 중 비정규직이 절반에 육박하는 현실에서 학교라고 예외일 순 없다. 아이들의 영양을 책임지는 급식소 조리 종사자에서부터 교무실 행정 실무사에 이르기까지 학교마다 다양한 이름의 비정규직이 양산되고 있다. 심지어 매일 교실에서 아이들을 만나야 하는 교사들조차도 상당수가 비정규직으로 대체됐다. 이름하여 기간제 교사들이다.

과거에는 출산휴가를 떠나거나 병으로 장기 입원한 교사를 대체하기 위해 급히 초빙한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요즘엔 상황이 달라졌다. 우선 학교마다 기간제 교사의 수가 적지 않다. 전체 교사 중에 적게는 10% 안팎에서 많게는 30%를 넘는 학교도 있다. 일부 사립학교의 경우에는 절반이 기간제 교사라는 말까지 나온다. 기간제 교사 없이는 학교 운영이 힘들 정도다.

다들 기피한다는 학급 담임을 비롯해 주어지는 업무가 정규 교사들과 별반 다르지 않고, 기간제 교사라고 그에 따른 책임이 가벼운 것도 아니다. '신분'에서는 차별을 받을지언정 책임에 있어서는 평등하다.

1년 단위로 재계약을 해야 하는 불안한 처지이지만, 그들을 위한 '배려'는 없다. 경력을 쌓아 추후 교직으로 나아가는 데에 도움이 된다는 것도 옛말이다. 사립학교의 경우, 한때는 정규 교사로 발령을 받기 전 '인턴' 과정쯤으로 여기던 호시절도 있었다지만, 그런 '희망 고문'조차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공·사립을 막론하고 학령인구의 급속한 감소를 이유로 정규 교사의 신규 발령을 주저하고 있기 때문이다.

점점 늘어나는 '기간제 교사'... 이들 위한 배려는 없어

교직생활 5년동안 4번 넘게 학교를 옮겼다는 한 기간제 교사가, EBS 뉴스 인터뷰에서 자신이 당한 차별에 대해 이야기하며 양손을 꽉 쥐고 있다.
 교직생활 5년동안 4번 넘게 학교를 옮겼다는 한 기간제 교사가, EBS 뉴스 인터뷰에서 자신이 당한 차별에 대해 이야기하며 양손을 꽉 쥐고 있다.
ⓒ EBS 뉴스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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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몇 해 전까지만 해도 학교마다 기간제 교사 비율이 높으면 교육에 지장이 초래된다며 우려하는 목소리가 컸다. 하지만 요즘엔 되레 교육청이 앞장서서 학교에 일정 비율 이상을 유지하라며 종용하는 모양새다. 더욱이 정년퇴직 등으로 결원이 발생해도 바로 정규 교사를 채용하는 경우가 드물다. 임용시험을 거쳐 정규 교사가 되는 길이 나날이 좁아지고 있는 셈이다.

학령인구가 줄어들면 학급 수의 축소로 이어지고, 학교의 교사 정원 역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여전히 OECD 평균보다 많다고는 하지만, 학급당 학생 수가 해마다 눈에 띄게 줄고 있어 기간제 교사는 물론 정규 교사들까지도 전전긍긍하고 있다. 참고로 올해 담임을 맡고 있는 고2 교실은 35명이지만, 중3인 아들 학급은 25명이란다. 이대로라면 2년 뒤 우리 반의 학생 수가 될 것이다.

기간제 교사 자리조차 수십 대 일의 치열한 경쟁을 뚫어야 할 만큼 녹록지 않은 상황이 된 것이다.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단지 1년짜리에 불과하다 해도 그만한 일자리를 찾기 힘들다는 인식마저 팽배해있다고 한다. 아무리 경제가 어렵다지만, '단군 이래 최고의 학력을 갖춘 세대'라는 그들이 기간제 교사 자리 하나에 애면글면하는 모습이 낯설고도 가엾다.

전교조 27주년 행사에서 한 참가자가 "기간제 교사의 고용 안정 보장하라"는 내용의 피켓을 들고 있다
 전교조 27주년 행사에서 한 참가자가 "기간제 교사의 고용 안정 보장하라"는 내용의 피켓을 들고 있다
ⓒ 김형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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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듯 천신만고 끝에 꿈을 이뤘다 해도, '기간제'라는 굴레를 벗어날 순 없다. 아무리 아이들과의 소통에 능하고 재미있는 수업으로 아이들의 사랑과 존경을 독차지한다고 해도 계약 기간이 만료되면 그것으로 끝이다. 정부와 학교가 그들 앞에서 교사로서의 소명의식 운운할 자격이 없다는 이야기다.

기간제 교사들 스스로 자신들을 '땜빵 교사'나 '알바 교사'라고 자학하는 경우도 있다. 이해 못 할 바는 아니지만, 학령인구의 변동 추이에 따라 쓰고 버리기를 반복하는 신세에 놓이다 보니 자괴감이 든다는 것이다. 해마다 여기저기 옮겨 다니다 보니 근무했던 학교 이름마저 헷갈려하는 이들도 봤다. 오죽하면 자신들의 처지를 '티슈'에 빗대기까지 했을까.

정원이 줄어 누군가 학교를 그만둬야 한다면, 당연히 기간제 교사의 몫이다. 뿐만 아니라 교육과정이 바뀌어 교과목의 수업시수가 변동될 때도 그들의 '희생'을 필요로 한다. 거칠게 말해서, 그들은 급변하는 교육 환경에서 혼란을 막아주고 시간을 벌어주는 '완충 장치'와 같은 존재다. 정규 교사들이 그들을 향해 동료 교사로서 손을 내밀기가 쉽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상처받은 교사들, 죽음조차 차별하나

기간제 교사라는 멍에는 숭고한 희생조차 차별하는 결과를 낳았다. 지난 세월호 참사로 목숨을 잃은 고 김초원, 이지혜 교사는 당시 기간제 교사였다는 이유로 지금껏 순직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기간제 교사는 (공무원 신분이 아닌) 민간 근로자이고, 정규 교사보다 근무 시간이 짧으며, (정규 교사의) 대체 인력에 불과하다"는 이유를 댔다.

참사 당시 두 교사는 배에서 쉽게 빠져나올 수 있었던 5층 객실에 있었지만, 아이들을 대피시키기 위해 일부러 아래층으로 내려갔다가 미처 빠져나오지 못했다는 것이 생존자들의 일치된 증언이다. 이러한 희생과 헌신이 기간제 교사에게는 주제넘는 일이었을까. 정부는 그러잖아도 자존감에 생채기가 나 있는 그들을 다독이기는커녕 등에 비수를 꽂는 셈이 됐다.

2015년 5월 9일 '세월호 기간제 교사 순직 인정'을 촉구하며 단원고 고 김초원, 고 이지혜 교사 아버지와 조계종 노동위원장 혜용 스님,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이 종로구 조계사 대웅전부터 정부서울청사까지 오체투지를 하고 있다.
 2015년 5월 9일 '세월호 기간제 교사 순직 인정'을 촉구하며 단원고 고 김초원, 고 이지혜 교사 아버지와 조계종 노동위원장 혜용 스님,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이 종로구 조계사 대웅전부터 정부서울청사까지 오체투지를 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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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근무하고 있는 한 기간제 교사는 순직 처리를 거부하고 있는 정부의 태도에 아이들을 가르칠 의욕조차 꺾였다고 힘들어했다. 자신은 앞으로 그 어떤 일에도 몸을 사리게 될 것이라면서, 이번 일로 자부심에 상처를 입었다고 했다. 나아가 '기간제'라는 주홍글씨로 죽음조차 차별할 거라면, 정부는 더 이상 기간제 교사에게 아이들 교육을 맡겨서는 안 된다고 잘라 말했다.

또 다른 교사는 정부의 태도를 '적폐'라고 못박으며, 어떻게든 향후 책임을 모면하려는 행태라고 지적했다. 이런저런 규정을 들먹이며 한사코 권한 밖이라고 둘러대는 건, 오로지 '윗선'의 명령만을 기다리고 있다는 뜻이라는 거다. 스스로 상식적인 판단조차 내리지 못할 만큼, 공무원들이 상명하복의 권위주의에 찌들어있다는 증거 아니냐고 분노했다.

무릇 교육의 일이라면, 정부가 애꿎은 규정만 들먹일 게 아니라 미래를 염두에 두고 아이들의 눈으로 판단해야 한다. 아이들에게 정규 교사와 기간제 교사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고 김초원, 이지혜 교사 모두 엄연한 교육과정의 일환인 수학여행을 인솔하기 위해 세월호에 탑승한 것이고, 마지막 순간까지 교사로서 인솔 책임을 다하고자 했다.

참사로 희생된 열한 분의 교사 가운데 미수습자인 두 분을 제외하고 일곱 분의 정규 교사는 모두 순직 처리되었다. 시나브로 학교 교육의 상당 부분을 맡겨 놓고 그들의 숭고한 희생에 대해서는 신분이 다르다는 이유로 나 몰라라 하는 건 교육의 본질을 훼손하는 파렴치한 짓이다.

식상한 경구지만,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넘어설 수 없다. 기간제 교사도 학교 교육을 담당하는 엄연한 한 축이다. 적어도 그들에게 교사로서의 소명을 요구한다면, 마땅히 그들의 헌신과 희생에 정부는 보답해야 한다. 요컨대, 두 기간제 교사의 순직 처리 여부는 여러모로 우리 교육의 미래를 예견할 수 있는 시금석이라 하겠다. 아울러, 삼가 두 분의 명복을 빈다.


태그:#기간제 교사, #세월호 참사, #순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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