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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약 4000명이 각기 다른 목적을 갖고 캐나다 워킹홀리데이를 떠납니다. 누군가는 여행이, 다른 이는 영어가 혹은 돈이 목표입니다. 몇몇은 영주권을 얻어 새로운 삶을 꿈꿀지도 모릅니다.

저 또한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현지인의 삶에 깊숙이 들어가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이곳 사람들과 가까워질 수 있는 기회를 찾아다녔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스페인어 모임, 그림 동호회(Barrie Art Club) 그리고 자원봉사 활동을 알게 되었습니다.

은퇴가 새로운 기회인 사회

구세군 자원봉사 활동 중 만난 Arlene
 구세군 자원봉사 활동 중 만난 Arlene
ⓒ 최정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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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서 반가워요. 난 알린(Arlene)이에요."

구세군(Salvation Army) 무료 급식 자원봉사를 시작한 첫 날 여성 한 분이 말을 걸어왔습니다. 푸근하고 차분한 인상이 제 마음을 편안하게 했습니다. 무료 급식에 대해 궁금한 것을 여쭤보다 자연스럽게 말이 나왔습니다.

"이곳에서 자원봉사 하신지 얼마나 되셨어요?"
"은퇴(retire)한 뒤 시작했으니 이제 5년 정도 되었어요."

그분의 대답 중에 은퇴(retire)라는 단어가 귀에 꽂혔습니다. 생각해보니 스페인어 모임과 그림 동호회(Barrie Art Club)에서 만난 어르신들도 하나같이 '은퇴(retire)'한 뒤 새로운 언어를 공부하고, 지금껏 하지 않던 취미를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노인 한분이 Barrie Art Club, 그림 동호회로 들어가고 있다.
 노인 한분이 Barrie Art Club, 그림 동호회로 들어가고 있다.
ⓒ 최정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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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가 두려운 사회

"할아버지, 제가 밀어드릴게요."

대학생 시절 동네에서 유모차를 끌며 폐지 줍는 노인을 보는 건 일상이었습니다. 재활용품으로 가득 차 젊은 사람에게조차 벅차 보이는 수레도 종종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 무거운 손수레를 끌고 오르막길로 향하는 모습이 그분의 고단한 삶과 겹쳐지기도 했습니다.

미디어를 통해 알게 된 이야기도 있습니다. 70대 노인이 배고픔에 못이겨 김치를 훔쳤다는 뉴스와 생활고에 내몰려 성매매에 나선 '박카스 할머니' 영화. 두 사건 모두 한국사회의 노년층이 처한 비극적인 상황을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노인빈곤율, 노인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

OECD 가입국 중 한국의 노인빈곤율(49.6%, OECD 평균 12.4%) 및 노인자살률 1위는 더 이상 새로운 뉴스가 아닙니다. 이제는 너무 익숙해져 무감각하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냥 쉬이 지나쳐선 안됩니다. 적절한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초고령화 사회와 함께 문제는 더 심각해질 것입니다.

같은 OECD 가입국인 캐나다는 어떨까요? 캐나다의 노인빈곤율은 6.2%로 한국의 1/8이고, 노인자살률 또한 10만명당 12명으로 한국(10만명 당 58.6명)의 약 1/5 수준입니다. 왜 이런 결과가 나올까요? 캐나다인보다 한국인이 특별히 더 게으르고 나태해서 이러한 불행한 미래가 있는 걸까요? 물론 그렇지 않습니다.

알린(Arlene)은 말합니다.

"은퇴한 후부터 연금을 받고 있어요. 생활을 유지하는데 크게 부족하지 않다보니 내가 원하는 여가활동을 하거나 이렇게 자원봉사도 할 수 있어요."

이 말에 힌트가 있습니다. 캐나다 정부는 노령연금(OAS 최대 578.53CAD 약 50만원)과 국민연금(CPP) 이외에도 저소득층 노인을 위한 노령연금보조금(GIS), 배우자보조금(SPA), 미망인보조금(Survivor's Allowance)을 통해 은퇴한 노인이 빈곤층으로 떨어지는 걸 막습니다.

반면 한국의 기초노령연금 지급액은 최대 20만원입니다. 국민연금의 경우 월 평균 연금액이 36만 8천원(2016년 기준)으로 용돈연금이란 지적을 받고 있으며 이조차도 65세 이상 노인 중 38%만 수급대상입니다. 또한 빈곤층의 최저생활을 보장해야 할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부양의무제로 인해 노인층 상당수가 혜택을 보지 못합니다.

결국 한국의 사회보장∙사회복지 그물망이 촘촘하지 못한 탓에 사각지대에 빠진 노인이 빈곤층으로 떨어지는 것입니다.

민다(Minda) 아주머니는 월요일과 금요일엔 이웃 아이봐주고, 화요일엔 적십자에서, 수요일엔 구세군에서, 목요일엔 교회무료급식소에서 자원봉사를 하신다.
 민다(Minda) 아주머니는 월요일과 금요일엔 이웃 아이봐주고, 화요일엔 적십자에서, 수요일엔 구세군에서, 목요일엔 교회무료급식소에서 자원봉사를 하신다.
ⓒ 최정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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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이 아닌 자아통합으로

유종지미, 시작한 일을 끝까지 잘하여 결과가 좋다는 말입니다. 인간의 삶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처음도 중요하지만 마무리 역시 놓쳐서는 안됩니다.

에릭슨의 심리 사회적 발달 이론에 따르면 생의 마무리인 노년기는 자아통합 대 절망(Integrity vs. Despair) 단계입니다. 이 시기 동안에 인간은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진정한 의미를 깨닫거나 혹은 정반대로 인생에 대해 좌절하고 희망을 잃게 됩니다.

제가 살고 있는 배리(Barrie)엔 RVR Health Centre란 종합병원이 있습니다. 이 병원에서 일하는 방사선치료사 줄리아에 따르면 이곳 자원봉사자의 약 90%가 60~90대 은퇴자라고 합니다. 이처럼 우리 사회도 노년층의 에너지를 폐지줍는 것에서 다양한 사회활동으로 돌릴 수 있다면 어떨까요? 인생의 마무리가 절망이 아닌 자아통합으로 향할 것입니다. 이러한 방향이 개인에게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적으로도 바람직하다는 것은 자명합니다.

우리 사회의 노년층은 지금 자아통합과 절망 사이 어디쯤 있을까요?



태그:#캐나다워킹홀리데이, #사회복지, #사회보장, #노인빈곤율, #노인자살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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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늘 고민하는 30대 청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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