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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도가 높고, 식감과 청량감이 뛰어나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고령군 우곡 그린수박.
 당도가 높고, 식감과 청량감이 뛰어나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고령군 우곡 그린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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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닐하우스 속에서 조그맣게 피어난 노오란 꽃송이를 본다. 장미처럼 화려하지도 않고, 에델바이스처럼 애달픈 전설을 담고 있는 꽃도 아니지만 사람의 마음을 따스하게 해주는 빛깔이다.

바로 수박꽃. 이 수박꽃의 꽃말은 '크나큰 마음'이다. 한국에서 재배되는 과일 중 크기에서 수위를 다투는 큼지막한 수박에 썩 잘 어울리는 꽃말이 아닐 수 없다. 수박의 원산지는 아프리카. 고대 이집트에서도 수박을 길러 먹었다니 우스개처럼 이야기하자면 '역사와 전통이 있는' 과일이라 할 수 있다.

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최후의 통치자였던 클레오파트라 여왕이 새하얀 은쟁반에 담긴 새빨간 수박을 손가락으로 한 조각 집어 드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이르게 찾아온 초여름 더위가 어느 순간 잊힐 것이다.

수박이 고향인 아프리카를 떠나 세계 각지로 퍼져나간 시기는 15세기 중반을 전후해서였다. 한국의 경우 <연산군일기(燕山君日記)>에 백성들이 수박을 재배했다는 기록이 등장한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수박은 서기 1500년 이전부터 한반도 사람들의 갈증을 해소해준 달콤한 과일이었다.

시과(時瓜), 서과(西瓜), 수과(水瓜) 등의 이름으로도 불리는 수박. 경북 고령군은 바로 이 수박으로도 유명한 고장이다. 고령군청 관계자는 "청정한 가야산과 낙동강 맑은 물이 길러내는 수박은 청량감이 뛰어나고 당도가 높다"는 말로 고령의 특산물로 자리 잡은 '우곡 그린수박'을 자랑했다.

고향으로 돌아온 지 20년, '새로운 길' 열어준 수박

최송기(53)씨는 서울에서 사업을 하다가 1996년 한국에 불어 닥친 경제 불황의 여파에 하던 일을 정리하고 고향인 경상북도 고령으로 돌아왔다. 귀향 20년을 넘긴 최 씨는 최근 우곡면 들판에서 올해 첫 수박 수확을 했다.

660㎡짜리 비닐하우스 17동을 이용해 아내와 수박농사를 짓는 그는 "농경지에는 지하수 시설이 잘 정비돼 있어 물 걱정은 없습니다"라고 했다.

최송기 씨가 자신이 재배한 수박을 들고 환한 웃음을 짓고 있다.
 최송기 씨가 자신이 재배한 수박을 들고 환한 웃음을 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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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농사가 다 그렇지만, 수박농사도 하늘이 도와주지 않으면 안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라며 웃음을 보이는 최씨. 옆에 있던 마을 주민 역시 "신과 동업하는 게 수박농사"라는 농담을 보탰다.

서울에서 사업으로 이루지 못한 성공을 수박농사로 절반쯤은 이뤘다는 최송기씨는 "고향에서도 어려움 없이 살아갈 수 있도록 새로운 길을 열어준 수박이 내게는 효자"라는 말도 덧붙였다. 실제로 그가 재배해서 판매하는 '우곡 그린수박'은 전국적으로도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그런 까닭에 고령에서 생산된 수박의 거의 대부분이 서울과 수도권에서 소비된다.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일단 한 번 맛을 보라"며 빨갛게 잘 익은 수박 한 조각을 기자에게 건네는 최 씨의 손길에서 넉넉한 시골의 인심이 묻어나온다.

"제가 어릴 때는 비닐하우스가 아닌 노지(露地·비닐이나 지붕 따위로 가리거나 덮지 않은 땅)에서 수박을 길렀어요. 원두막에서 지켜보는 어른들의 눈을 피해 한두 통씩 몰래 따먹던 수박 맛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해요"라는 추억담을 들려준 최씨. 과거를 떠올리는 그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수박 수확현장에 자리를 함께 한 주민들도 "인정을 나누고 사는 건 옛날이 훨씬 좋았다"며, "요즘은 시골에 아이들이 없어 수박을 서리하는 풍경도 전혀 볼 수가 없다"며 아쉬워했다. 그 아쉬운 표정에서 고령 사람들의 소박한 마음씨를 읽을 수 있었다.

1960년대 시작된 고령의 수박농사... 요도염과 방광염 등에 효과

배수성이 좋은 모래성분의 땅과 진흙성분이 많은 점질토가 고루 분포된 고령은 예로부터 "수박농사에 적합한 환경"이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수박의 품질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크게 재배기술과 토양의 조건, 기후와 종자개발 등이다. 고령은 이중 토양의 조건과 재배기술이 타 지역에 비해 월등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고령군이 수박농사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1960년대. 이후 재배지와 생산량은 매년 늘어났다. 1970년대 초반엔 우곡면에서 처음 시작한 비닐하우스 재배방식이 성공함에 따라 인근 성산면과 개진면에서도 같은 방식의 재배를 연이어 시작했고, 그때부터 '명품 고령 수박'의 역사가 시작됐다.

정성으로 기른 수박을 수확하며 구슬땀을 흘리는 고령의 농민들.
 정성으로 기른 수박을 수확하며 구슬땀을 흘리는 고령의 농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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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박의 맛과 품질을 높이는 노력과 함께 진행된 수박 관련 이벤트(고령 수박 한마음축제)와 직판장 개설 등은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이는 고령 수박이 전국적으로 그 이름을 알리는데 작지 않은 역할을 했다.

수박은 과일 중에서도 특히 수분 함량이 높다. 90% 이상이 수분으로 이루어진 수박은 무기질, 비타민, 아미노산 등을 다량 함유하고 있어 피로회복에 도움을 준다. 또한, 수박의 포도당과 과당은 인체에 흡수되는 속도도 빠르다.

'한국식품과학회'의 자료에 따르면 "이뇨제로서 부종에 효과가 있고, 신장염, 요도염, 방광염 등에 좋으며, 해열 작용도 하는" 과일이 바로 수박이다.

그렇다면 고령군 우곡면, 개진면, 성산면에서 생산되는 수박은 다른 지역에서 재배되는 수박과 어떤 차이점을 보일까.

"구릉성산지로 이루어진 고령은 온난하고 연중 일조량이 풍부하며, 내륙에 위치해 있어 일교차도 크다. 그렇기에 당도가 높고 식감이 뛰어난 수박의 재배가 가능하다"는 것이 고령군 농협 관계자의 설명이다. 여기에 "낙동강변에 형성된 충적평야의 비옥한 토질도 고령 수박을 맛있게 만들어주는 한 요인"이라고 덧붙였다.

차츰 높아지는 기온에 불어오는 바람에서 초여름의 향기가 느껴지는 5월 중순. 식구들이 모이는 오늘 저녁엔 시원하고 달콤한 고령 수박 한 통을 가운데 놓고 수박꽃의 꽃말처럼 서로를 향한 '크나큰 마음'을 정겹게 나눠보면 어떨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경북매일신문>에 게재된 것을 일부 수정한 것입니다.



태그:#고령, #우곡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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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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