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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를 가진 어머니, 그 어머니의 아들

 인터뷰 중인 효자아들 원종건
 인터뷰 중인 효자아들 원종건
ⓒ 강영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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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아버지는 어린 딸에게 말했다.

"착한 사람도, 공부 잘하는 사람도 다 말고 관찰을 잘하는 사람이 되라고. 겨울 창가의 양파는 어떻게 뿌리를 내리며 사람은 언제 웃고, 언제 우는지를. 오늘은 학교에 가서 도시락을 안 싸 온 아이가 누구인가를 살펴서 함께 나누어 먹으라고."

딸에게 그 말을 한 아버지는 마종하 시인이다.

한 어머니도 어린 아들에게 말했다.

"우리도 더 좋은 일 하는 사람이 되자. 우리보다 더 어려운 사람 도우면서 살자."

그 어머니는 박진숙(55)씨다. 그녀는 듣지도 보지도 못하는 장애를 평생 가지고 있었지만, 2005년 방송된 MBC '눈을 떠요' 프로그램의 도움으로 각막 수술을 받아 시력을 되찾았다. 그 후, 그녀는 아들에게 했던 말처럼 폐지와 공병을 팔아 모은 돈으로 자신보다 더 어려운 사람을 도우며 살고 있다.

그 당시 엄마의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주었던 아들 원종건(25)씨는 대학생이 되자마자 장기 기증 서약서에 서명했고, 각종 사회 공헌활동에도 적극 참여했다. 지난 3월 11일 강남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올해 대학을 졸업하고 이베이 코리아 사회공헌부서에서 일하고 있다. 회사 일은 어떠냐는 질문에 그는 최근에 팀원들과 진행한 사회공헌 프로젝트를 소개했다.

"제가 입사하자마자 강원소방공무원지원 프로젝트를 맡았어요. 지원금만 전달하고 끝낼 수도 있는데, 저는 강원소방본부만의 문제가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그래서 직접 강원소방본부를 찾아갔고, 소방공무원들과 대화하면서 그분들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하나하나 살폈어요. 소방공무원 업무 특성상 응급 전화를 받으면 바로 달려가야 하는데, 눈이 내릴 때마다 눈 치우느라 체력 소모가 너무 큰 거예요. 출동시간도 지연되고요. 그래서 1인제설기와, 신발건조기를 지원해주었어요."

그는 어릴 때 어머니가 "우리도 더 좋은 일 하는 사람이 되자"라고 한 말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한창 멋모르고 뛰어놀 나이인 13살. 그때부터 그는 앞으로 어떻게 어려운 사람을 도우며 살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사회복지사나 목사는 되기 싫었다.

"어릴 때 제일 많이 마주한 직업이 목사와 사회복지사였어요. 어머니께서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여서 그분들이 집에 찾아와서 자주 도움을 주었거든요. 그 분들이 늘 제게 했던 말이 '너 커서 목사 될 거지, 사회복지사 될 거지'라는 말이었어요. 그때마다 저는 치기 어린 마음에 '절대 목사와 사회복지사는 되지 말아야지' 생각했죠.(웃음) 그런 직업이 아니어도 충분히 사회 어려운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직업이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감사하게도 지금 그 일을 하고 있고요."

'뉴스룸'에서 소개해 화제가 된 '엄지 장갑 캠페인' 

 'JTBC 뉴스룸' 에서 엄지장갑 캠페인을 진행한 원종건 씨를 소개했다.
 'JTBC 뉴스룸' 에서 엄지장갑 캠페인을 진행한 원종건 씨를 소개했다.
ⓒ 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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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벙어리장갑대신 엄지장갑이라고 불러요.
 벙어리장갑대신 엄지장갑이라고 불러요.
ⓒ 원종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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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회사에서 사회공헌업무를 하면서 큰 보람을 느끼고 있다. 하지만 그걸로 모자랐는지, 주말마다 마음 맞는 친구들과 역삼역 근처 카페에 모여 사회 기여프로젝트도 진행하고 있다. 얼마 전 JTBC 손석희 앵커가 '뉴스룸'에서 소개해 화제가 된 '엄지 장갑 캠페인'도 친구들과 기획한 프로젝트다.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거치면서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고 생각해요. 대학교 졸업이라는 배움의 끝자락 앞에서, '내가 20년 동안 무엇을 배웠다고 세상에 이야기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 머릿속에 떠오른 단어가 벙어리장갑이었어요. 평소에 사람들이 엄지손가락만 따로 가르고, 나머지 네 손가락은 함께 끼는 장갑을 두고 벙어리장갑으로 부르는 게 듣기 불편했어요. 저 말고도 장애를 가진 이들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친구들과 '엄지 장갑 프로젝트'를 기획했어요. 그동안 제가 배워왔던 것을 이 프로젝트에 전부 반영해보자는 생각으로 시작했죠."

'엄지 장갑 캠페인'이 세상에 알려지자, 사람들은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며칠 만에 1천 명이 넘는 사람이 후원자로 나섰고, 2천만 원이 넘는 돈이 후원금으로 모였다. 하지만 그를 놀라게 한 건 숫자가 아니었다. 코다(CODA) 들의 반응이었다. CODA란, Children Of Deaf Adult의 약자로, 농인의 말을 들을 수 있는 자녀를 뜻하는 말이다.

"엄지 장갑 캠페인을 시작하고, 저와 같은 코다(CODA) 아이들이 많은 메일과 문자를 보내왔어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위로를 받았다'는 편지를 받았을 때 오히려 제가 고맙더라고요. '부모님 앞에서 평생 입으로 담을 수 없었던 단어를 바꿔주어서 고맙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정말 많이 울었어요."

 앞으로 제 주변에서 불편함이 또 보인다면 사회공헌프로젝트를 계속할거예요.
 앞으로 제 주변에서 불편함이 또 보인다면 사회공헌프로젝트를 계속할거예요.
ⓒ 강영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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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엄지 장갑 캠페인' 이후 또 다른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있다. 청각장애인을 위한 '이어(EAR) 프로젝트'다. 그는 이 프로젝트를 위해 청각장애인 안영회 교수를 찾아가 인터뷰를 진행했고, 서초 수화통역센터에서 농아인과 소통하며 그들의 불편한 점을 조사했다. 이처럼 그의 프로젝트는 '공감'에서부터 시작한다.

"이어(EAR) 프로젝트는 농인과 청인을 이어주는 애플리케이션 이름이에요. 농아인과 청아인(농아인의 반대말)을 이어주는 사람이 수화통역사거든요. 하지만 현실적으로 농아인이 수화 통역사에게 직접 연락해서 도움을 받기란 매우 어려워요. 그래서 수화통역사들이 사는 지역, 활동시간 등 다양한 데이터를 정리해서 그 둘을 이어주는 애플리케이션을 만들 거예요."

인터뷰 내내 밝은 표정으로 이야기하던 그에게도 요즘 고민이 있다. 사람들의 시선이다. 그의 어린 시절 모습과 최근 소식이 TV를 통해 사람들에게 알려지면서, 사람들은 그를 통해 '희망'을 보았다. 또 앞으로 그가 어떤 선행을 할지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그런 기대가 부담스럽다.

"저는 그냥 평범한 사람이에요. 제 또래 아이들처럼 노는 거 좋아해요. 만화도 즐겨 보고, 게임도 자주하고요. 힘들 땐 친구들과 한잔하기도 해요. 그런데 사람들은 저를 특별한 사람으로 봐요. 제가 계속 어려운 사람을 위해서 무언가를 할 것이라 생각하죠. 사실 그동안 진행해온 프로젝트도 사람들의 기대 때문에 시작한 건 아니거든요. 제가 필요해서, 어머니에게 필요할 것 같아서 시작한 것뿐이에요. 앞으로 제 주변에서 어떤 불편함이 또 보인다면 계속할 거예요. 하지만 사람들의 기대 때문에 무조건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찾아다니지는 않을 거예요."

그의 말처럼 그는 평범한 삶을 산다. 회사에서는 여느 직장인들처럼 바쁘게 일을 하고, 집에서는 어머니와 소소한 시간을 보낸다. 밖에서는 어려운 사람들을 척척 돕는 '작은 영웅'이지만, 집에서는 영락없는 '어린아이'다.

 원종건씨 어머니 박은숙씨는 MBC 눈을떠요 프로그램을 통해서 시력을 되찾았다.
 원종건씨 어머니 박은숙씨는 MBC 눈을떠요 프로그램을 통해서 시력을 되찾았다.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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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와 나누는 대화는 거의 비슷해요. '오늘 회사에서 무슨 일 있었니.', '밥은 잘 챙겨 먹고 다니니.', '늘 조심해야 한다.' 늘 걱정 섞인 말들을 많이 하세요. 저도 이제 어른인데. (웃음) 어머니 눈에는 여전히 어린 아이로 보이나 봐요."

어머니께 어떤 선물을 해주고 싶냐는 마지막 질문에 그는 고개를 숙여 잠깐 생각하더니 이내, 두 눈에 눈물이 어렸다.

"어머니와 단둘이 여행을 가고 싶어요. 어머니는 동네에서만 계속 지내세요. 저는 활동반경이 넓어서 여기저기 많이 다녔는데, 어머니는 아니에요. 젊은 날 아버지를 잃고, 혼자 저 키우시느라 고생만 하셨거든요. 그런 어머니께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고 싶어요. 같이 맛있는 것도 먹고 사진도 찍고 싶고요. 어머니가 지금 몸이 많이 불편하신데, 나이가 더 드시면 힘드실 것 같아요. 그래서 어머니가 하루라도 젊을 때, 어머니를 모시고 같이 여행을 다녀오고 싶어요."

프랑스 철학자 장 자크 루소는 "인간에게 공감 능력이 없었다면 인류는 오래전에 멸망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의 말이 200년이 지난 지금도 살아 움직이는 것을 보면, 삶에서 정말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한다. 딸에게 "착한 사람, 공부 잘하는 사람 말고 관찰을 잘하는 사람이 되라"고 말한 마종하 시인. 아들에게 "우리도 더 좋은 일 하는 사람이 되자"고 말한 박진숙씨. 이 두 사람이 자녀에게 했던 말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도 필요한 지혜가 아닐까.

덧붙이는 글 | 월간 세상사는 아름다운 이야기 5월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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