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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하마트 마을에서 먹다

 초가잔빌의 지구라트
 초가잔빌의 지구라트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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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가잔빌은 수사에서 동남쪽으로 30㎞ 지점에 위치한다. 그곳에 가려면 37번 도로를 타고 남쪽으로 12㎞를 내려간 다음, 데즈(Dez)강 방향으로 좌회전해 지방도를 따라가야 한다.

데즈강 못 미쳐 다시 우회전해 하마트(Khamat) 마을을 지난 다음에야 초가잔빌의 지구라트 유적이라는 표지판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초가잔빌로 가기 전 하마트 마을에서 점심식사를 한다.

하마트 마을은 20여 가구 정도 사는 작은 마을로 식당이 없다. 그 때문에 미리 예약을 한 가정집에 들어가 점심을 먹는다. 가이드인 다리우쉬가 미리 연락을 해서 주인 남자가 길에 나와 우릴 기다리고 있다. 거실로 들어가니 어느 정도 상차림이 되어 있다. 우리식으로 말하면 가정식 백반을 먹게 된 것이다.

 하마트의 점심 준비
 하마트의 점심 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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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바닥의 카펫 위에 깔린 식탁보가 환상이다. 가운데 강과 야자나무 그리고 하늘을 표현했다. 하늘에는 새가 날고 식탁보 가장자리는 꽃장식을 했다. 천상의 나라를 표현한 것 같다. 여기에 야채 샐러드, 밥, 난, 치킨, 소스, 요구르트, 대추야자가 놓여 있다. 밥과 샐러드를 섞은 다음, 그곳에 소스를 넣어 다시 비비니 우리식 비빔밥이 된다. 맛이 있다.

후식으로는 요구르트와 차 그리고 대추야자를 먹는다. 대추야자도 맛이 있는데, 겉에다 통깨를 붙여 더욱 맛있게 만들었다. 당도는 줄이고 고소하고 씹는 맛을 가미했다. 그리고 우리식으로 방바닥에 앉아 식사를 하니 마음이 훨씬 더 편하다. 마침 이집 딸들이 나와 차 시중을 든다. 호텔이나 식당만큼 음식이 풍성하진 않지만 내실 있는 점심식사였다.

지구라트가 도대체 뭘까?

 지구라트 원형
 지구라트 원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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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가잔빌의 지구라트는 길에서 안쪽으로 한참을 들어가야 나온다. 주변에는 사람이 살지 않아 지구라트 유적만 남아 있다. 초가잔빌은 현재의 이름이고, 과거의 이름은 두르 운타쉬(Dur Untash)다. 운타쉬왕의 도시라는 뜻이다. 기원전 1250년경 운타쉬 나피리샤(Untash Napirisha)가 자신의 힘을 과시하려고 이곳에 신전과 도시를 만들었다. 당시만 해도 데즈강이 좀 더 가까이로 흘렀고, 강으로부터 수로를 통해 이곳까지 물길이 연결되었다.

그러나 현재는 지구라트를 중심으로 한 유적만 남아 있다. 초가잔빌은 가로 세로 4㎞ 정도의 성곽으로 둘러싸인 사각형 성곽도시였다. 그 안에 지구라트, 왕궁, 거주지 등이 분포했다. 내․외부 성곽과 성문, 탑, 몇 개의 궁전, 사원, 수로 등은 일부 흔적만 남아 있다. 그에 비해 도시의 중심에 위치한 지구라트는 원형을 거의 유지한 채로 남아 있다.

 그리폰
 그리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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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라트는 계단식 신전으로 인슈시나크 신에게 바쳐진 일종의 성전이다. 우리는 지구라트를 보기 위해 차를 내부 성곽 동남쪽 문 앞에 세운다. 매표소에서 나는 '역사적인 장소(세계유산)' 초가잔빌이라는 영어 팸플릿을 하나 얻는다. 그곳에는 사진과 지도, 설명과 복원도는 물론이고, 발견된 유물까지 비교적 자세히 나와 있다. 유물사진 중 머리와 몸의 절반은 날개 달린 독수리고 몸의 절반과 다리는 개 같은 그리폰(Griffon)이 특이하다.

우리는 내부 성벽 남동쪽 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간다. 문은 벽돌로 쌓아 만들었다. 그리고는 동쪽에 있는 네 개의 신전을 지나간다. 이들 신전도 벽돌로 만든 벽체의 바닥 정도만 남아 있다. 그래도 쌓은 벽돌이 드러나 옛 모습을 조금은 파악할 수 있다. 이곳을 지나 서남쪽으로 우뚝 솟은 지구라트로 향한다. 2월이고 건기여서 그런지 바닥에서 먼지가 풀풀 올라온다.

 아치형 통로
 아치형 통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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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구라트의 남쪽 면으로 간다. 그리고 내부를 보기 위해 1층 안쪽으로 들어가 본다. 촘촘하게 벽돌이 쌓여 있고, 문의 상단부에서는 아치 모형을 확인할 수 있다. 구운 벽돌 곳곳에서 쐐기문자도 발견할 수 있다. 문의 상부에는 돌로 만든 고리 형태의 구조물도 발견할 수 있다. 일부 벽돌에는 채색 흔적도 남아 있다. 우리는 2층으로 올라가고 싶었으나 철문으로 막아놓았다.

지구라트는 5층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위로 올라가면서 층의 폭과 길이가 작아지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지구라트 기단부는 가로 세로 길이가 각각 105m이다. 3층 일부까지는 형태가 어느 정도 남아 있으나 4, 5층은 훼손되었다. 그것은 현재 높이가 24.75m 정도이기 때문이다. 원래 높이는 53m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위로 올라가는 계단은 사방의 한 가운데 있다.

 철문으로 막힌 게단
 철문으로 막힌 게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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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계단 입구에는 황소나 날개 달린 동물이 수호신 또는 문지기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테헤란의 국립박물관에서 그 테라코타 황소를 이미 본 바 있다. 그 외 도자기, 장식물, 제기 같은 것이 발견되었다. 신전의 건축에는 벽돌이 사용되었고, 외벽은 구운 벽돌로 마감해 내구성을 높였다. 일부 벽돌에는 쐐기문자가 있어, 건축과 관련된 이야기를 해주고 있다. 문 안쪽에서 돌로 만든 고리 같은 것을 볼 수도 있다. 또 일부에서는 조각과 예술을 발견할 수도 있다.

지구라트를 한 바퀴 돌아보다

 14개의 작은 피라미드
 14개의 작은 피라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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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가잔빌은 완공된 후 엘람왕국의 정신적인 수도 역할을 했다고 한다. 일부 학자들은 초가잔빌이 바빌로니아 평야지역과 파르스 산악지역을 연결하는 구심점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기원전 640년 앗시리아왕 아슈르바니팔에 의해 파괴된 후 역사 속에서 잊혀져 갔다. 초가잔빌이 다시 발견된 것은 1951년 프랑스 고고학자들에 의해서였다. 1961년까지 6차에 걸쳐 발굴과 연구를 했고, 그 결과 중동지역에서 가장 완벽하게 보존된 지구라트라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우리는 지구라트 남쪽에서 두 줄로 된 낮은 구조물을 발견한다. 안내판을 보니 14개의 작은 피라미드라는 이름이 붙었다. 한 줄에 7개의 사다리꼴 형태 12면체가 만들어져 있다. 한 변의 길이는 35㎝ 정도다. 이곳은 시트 샴시(Sit Shamshi)라는 종교의식을 행하던 공간이라고 한다. 해가 뜰 때 사제들이 이곳 주위에서 어떤 의식을 진행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제단과 계단
 제단과 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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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서쪽 면으로 돌아간다. 벽돌이 아직도 완벽한 형태로 남아 있고, 위층에서 아래층으로 내려오는 수로를 볼 수 있다. 서쪽 면에는 원통형의 제단이 남아 있다. 제단이기 때문에 종교적인 의식을 위해 사용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제물을 놓고 의식을 거행한 다음 계단을 통해 5층까지 올라가 제물을 바쳤을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 일부 학자들에 의해 해시계로 오해되기도 했다. 

다음은 북쪽 면으로 간다. 가운데 지구라트 외곽에 세 개의 소신전이 있다. 이것은 나피리샤, 키리리샤(Kiririsha), 이쉬니카랍(Ishniqarab)에게 바쳐진 신전이다. 이들 신전에는 직접 들어갈 수 있어 내부를 확인할 수 있다. 그렇지만 많이 파괴되어 옛 모습을 알기는 어렵다. 이제 동쪽 면만 남았다. 그러나 우리는 동쪽 면으로 가기 전에 데즈강에서 외부 성곽 북서쪽으로 연결된 수로를 보러 간다.

물길이 끊어지며 버려져

 수로와 연결된 수조
 수로와 연결된 수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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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수로는 끊겼고, 그 흔적마저 찾기는 쉽지 않다. 외부 성곽 밖으로 차량이 다닐 수 있도록 신작로 같은 것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수로를 통해 이곳으로 끌어온 물을 저장하던 수조 또는 연못은 비교적 온전한 형태로 남아 있다. 그렇지만 상단부분은 많이 훼손된 편이다. 수조를 만들기 위해 쌓은 벽돌과 바닥 그리고 물이 들어오는 구멍과 나가는 구멍은 완전하다.

또 수조 상단부 물이 새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벽돌 사이에 모르타르를 발랐는데, 그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수조의 크기는 높이가 8m, 가로가 10m, 세로가 15m쯤 되어 보인다. 이것은 훼손된 상태의 것이기 때문에 원래는 좀 더 컸을 수도 있다. 이 수조는 이곳에 거주하던 신관들의 생활용수를 공급하는 용도로 사용되었을 것이다. 의식이 진행될 때는 많은 사람이 운집하기 때문에 더 많은 물이 필요했을 텐데 어떻게 그 문제를 해결했는지 궁금하다.

 지구라트 주위를 어슬렁거리는 소
 지구라트 주위를 어슬렁거리는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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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곳으로 물길이 흘러선지 주변에 나무가 자라고 있다. 나중에 지구라트를 나오면서 소들이 이곳을 어슬렁거리는 것을 보았다. 그렇다면 주변에 풀과 같은 식물이 자라고 있다는 얘기다. 그렇지만 지금이 2월이어서 그런지 풀이 별로 보이질 않는다. 이처럼 지구라트는 농사도 불가능하고 사람도 살기 어려운 불모의 땅이 되어버렸다. 우리처럼 문화유산을 공부하고 좋아하는 사람들만이 찾고 있다.

이제 남은 곳은 지구라트의 동쪽 면이다. 동쪽 면에는 둥근 제단 옆으로 약간 높은 연단을 만들어 놓았다. 이곳은 사제들이 민중을 대상으로 연설을 하거나 행사를 진행하는 용도로 사용되었을 것 같다. 또 북동쪽 문 방향으로 우물터도 발견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곳에도 많은 사람이 모여 의식을 거행했을 것이다. 문 쪽에서는 밖으로 연결된 원통형 수로도 발견할 수 있다. 

 훼손된 수조 상단부
 훼손된 수조 상단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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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라트는 훼손이 심한 편이기는 하지만 남아 있는 이들 흔적을 통해 그 역사와 의미 그리고 용도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선지 고고학자들은 이란 최고의 문화유산으로 이곳 초가잔빌의 지구라트를 들고 있다. 그렇지만 관광객들에게 물어보면 이란 최고의 문화유산은 페르세폴리스다. 그것은 페르세폴리스가 웅장하고 볼거리가 훨씬 더 많기 때문이다.

이제 아쉽지만 지구라트를 떠난다. 이 유적을 보면서 우리는 3300년 전 우리 인류의 선조들과 교감했다. 그를 통해 그들의 삶과 정신세계를 조금이나마 유추하고 파악할 수 있었다. 문화유산 답사라는 것이 이처럼 선조들과 교감하고 해석하고, 현재의 입장에서 역사를 재구성하는 일이다. 설사 그 해석과 재구성이 틀린다고 할지라도 의미 있는 일이다. 틀린 사실은 또 다른 사람이 바로잡을 것이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초가잔빌의 지구라트는 197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었다. 그것은 중기 엘람시대(기원전 1400-1100) 신에게 바쳐진 성스러운 도시로, 그 시대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종교를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초가잔빌의 지구라트는 다음 두 가지 이유에서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되었다. 첫째 중기 엘람시대 건축의 발전을 증명하는 문화유산이다. 둘째 메소포타미아 지역 외곽에 남아있는 지구라트 유적 중 가장 크고 가장 잘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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