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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일 오재영 정의당 원내대표 정무수석이 심근경색으로 가족과 동지들의 곁을 떠났습니다.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가 "나와 같은 국회의원들은 오재영이라는 줄기에서 나온 꽃같은 존재이다"라고 표현한 것처럼 오재영 정무수석은 진보정당의 줄기와 같은 존재였습니다. 역시 진보정당에 오랫동안 헌신해온 김정진 정의당 미래정치센터 소장(변호사)이 <오마이뉴스>에 추도사를 보내왔습니다. 오재영 정무수석의 발인은 25일 오전 8시 고대구로병원 장례식장 202호에서 열립니다. [편집자말]
3월 22일 가족과 동지들의 곁을 떠난 오재영 정의당 원내대표 정무수석.
 3월 22일 가족과 동지들의 곁을 떠난 오재영 정의당 원내대표 정무수석.
ⓒ 정의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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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아무리 비루하고 보잘것없어도 지속된다. 눈을 뜨고 밥을 먹고 주어진 일을 하기 위해 바둥댄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무언가 일이 되기 위해서는 단순한 일상만 지속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그 일상을 뛰어넘는 계획과 결단이 있지 않으면 비루한 삶이 계속된다는 것을. 하지만 그 계획과 결단은 많은 희생이 요구되기에 우리는 일상에 머무르며 사는지 모른다.

이승만과 김일성이 양분하여 결국 수백만 명의 희생으로 끝난 내전에서 생겨나 서로에 대한 적대만으로도 체제 유지가 가능한 한반도의 남쪽에서 진보정당은 가능하지 않은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대중적 인기에도 불구하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조봉암부터 냉전과 양당제라는 거대한 틈바구니에서 노동자와 민중을 대변하는 정당이라는 드높은 이상은 초라함으로 귀결되기 일쑤였다.

그는 진보정당 성장에 모든 것을 바쳤다

고 오재영 동지 약력

- 전남 보성군 등량면 출생
- 광주광역시 광덕고 졸업
- 서울대학교 외교학과 졸업
- 1991년 민중회의 활동
- 1992년 대통령 후보 백기완 선본 조직국 활동
- 1994년 서울진보청년회 회장
- 1997년 진보민청 사무처장
- 1997년 국민승리21 대통령 후보 권영길 선본 조직국
- 2000년 민주노동당 조직실장
- 17대, 19대, 20대 국회의원 노회찬 보좌관

여전히 진보정당은 매우 허약하다. 그러나 진보정당이 현재 수준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의 눈물겨운 희생과 헌신이 있었다. 역사 속에서 많은 민중들의 희생이 기록되지 않은 것처럼, 진보정당의 역사에서도 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헌신은 기록되지 않는다.

하지만 부인할 수 없는 부분은 "무명의 희생과 헌신"이 있었기에 세상은 돌아가는 것이고, 진보정당은 여전히 자그마한 사회적 입지를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여기까지 온 것이라는 사실이다.

지난 3월 22일 누구보다도 무명의 헌신을 했던 한 분이 운명했다. 과거 민주노동당의 "영원한 조직실장"이라고 칭해졌던 오재영 동지다. 힘도, 돈도, 의석도 없는 진보정당에서 그 복잡다단한 갈등과 충돌을 누구보다도 훌륭하게 잘 조정했고, 진보정당의 성장에 모든 것을 바쳤다.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이러한 노력이 있었기에 민주노동당의 얼굴들은 마음 편히 외부 활동에 주력할 수 있었고, 2004년의 원내진출이라는 도약을 이룰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영원한 조직실장' 칭호를 얻게 된 이유

정당은 당의 대표 얼굴들만으로는 굴러가지 않는다. 당의 대표들이 실제로 힘을 쓰기 위해서는 서울부터 제주까지 모든 지역조직들의 힘을 모아 쉽지 않은 일들을 해내는 것이 필요하다. 당시 나는 민주노동당에서 정책부장으로 일하고 있었는데, 정책을 생산하는 것이 조직 전체를 조정하는 것보다 더 쉬운 일이었다. '저렇게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조율하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오재영 동지는 누구보다도 이 "미션 임파서블(MISSION IMPOSSIBLE)"을 잘 수행해 냈다. 때로는 정당의 내부 약속인 당헌과 당규로, 때로는 설득과 대화로 불편부당하게 조직 내부의 갈등을 조정해냈을 뿐만 아니라 민주노동당의 도약 발판을 만들어 냈던 것이다. 그래서 '민주노동당의 영원한 조직실장'이라는 영광스러운 칭호를 얻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안다. 무언가 갑자기 생겨나는 것은 절대 없다는 것을. 혜성같이 나타난 그 무엇도 실제로는 누군가 아무도 돌아보지 않을 때 묵묵히 소를 키웠기 때문이고, 지루하고 당장의 결과는 없지만 돌이켜 보면 그 소를 키우던 시기가 가장 의미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상관없다. 젊은 시절 가장 우리들의 가슴을 뛰게 했던 역사가 바로 왕과 영웅들이 주도하는 역사가 아니라 이름 없는 민중들이 일궈낸 역사가 아니었던가.

한 명의 위대한 조정자를 잃었다

당시 그런 생각을 했었다. 정당에서 이처럼 다양한 사람과 집단을 잘 조정해 낸다면 복잡다단한 대한민국과 한반도를 조정해 내지 못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하고 말이다. 개인적인 서글픔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한 명의 위대한 조정자를 잃었다는 사실인지도 모른다.

삶도 지속되고 조직도 지속된다. 남은 사람들은 자신이 서 있는 위치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헌신이 쌓여 있는지 자각하면서 그 무거운 짐을 지고 다시 산에 올라갈 것이다.

오재영 실장님, 편히 쉬소서.


태그:#오재영, #민주노동당 영원한 조직실장, #김정진, #노회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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