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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핵심영상] 촛불특집 "모두가 함께한 촛불이고, 모두가 주인이었던 광장이었다"
ⓒ 이승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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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인용 보도할 때는 '오마이TV <장윤선의 팟짱>'이라고 프로그램명을 정확히 밝혀주십시오.

■ 방송 : 장윤선의 팟짱
■ 채널 :
오마이TV웹 http://omn.kr/tv
유튜브 http://omn.kr/fjo3
카카오TV http://omn.kr/mp9l
아프리카TV http://play.afreecatv.com/ohmytv1/185247516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OhmyNewsTV
팟캐스트 _아이튠즈 http://omn.kr/adno _팟빵 http://omn.kr/ayzm
■ 진행 : 장윤선 오마이TV 방송국장
■ 출연 : 박진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 김덕진 천주교인권위원회 사무국장, 윤희숙 전 한국청년연대 공동대표

아래는 22일 장윤선 오마이TV 방송국장과 박진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 김덕진 천주교인권위원회 사무국장, 윤희숙 전 한국청년연대 공동대표가 함께한 인터뷰 내용이다.

박진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
 박진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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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진 천주교인권위원회 사무국장
 김덕진 천주교인권위원회 사무국장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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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숙 전 한국청년연대 공동대표
 윤희숙 전 한국청년연대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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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깔 있는 인터뷰>

-오늘은 그야말로 향긋한 봄기운과 함께 날아온 기적 같은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박근혜 없는 3월, 그래야 봄이다.' '촛불과 함께한 모든 날이 좋았다.' 전 이 구호가 정말 마음에 들더라고요. 바로 박근혜정권퇴진비상국민행동 얘기인데요. 한 언론에 빚이 1억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진 뒤로 후원이 몰려서 무려 8억 원이 넘었다는 보도가 나와 있습니다. 오늘은 팟짱 스튜디오에 너무나 많은 분이 오셨어요. 종합하면 몇 명입니까. 1600만 사회자 세 분이 오셨기 때문에 스튜디오가 비좁아서 앉을 자리가 없는 수준입니다. 1600만 촛불 사회자 세 분을 모시고 저희가 대화를 나누려고 합니다. 퇴진행동의 박진 상황실장, 김덕진 대외협력팀장, 윤희숙 집회기획팀장 모셨습니다. 어서오십쇼.
김덕진 : 모든 게 다 오마이뉴스 덕분입니다.

-야 카메라가 켜지니까 사람이 달라지네요. (웃음)
김 : 오마이뉴스 창간 때부터 시민기자로 일하면서 정말 오마이뉴스에 대한 많은 애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박진 상황실장님 얘기 좀 해주세요. 그 한 언론이 어딘지.
김 : 제가 알기로는 종이 매체나 공중파 이런 데가 아니었죠?
박진 : 그 유명한 오마이뉴스죠.
김 : 오마이뉴스의 파급력이 이렇게 세다는 걸 다시 한번 각인하는 순간이었습니다.
박 : 사실 저희가 빚이 생기고 나서 이걸 공론화할 것인가 말 것인가. 고민하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공식 계정에 이 글을 먼저 올린 게 아니라, 개인 페이스북에 소심하게 올렸거든요. 바로 오마이뉴스의 선대식 기자님이 전화하셔서.
김 : 박진 상황실장님이 그때 제주도에 가 있었잖아요? 전화 통화를 제주도에서 하셨잖아요.
박 : 제가 쉬러 가서. 제가 쉬면서 돈 번 여자입니다.
김 : 구구절절 기고하거나, 애틋하게 쓴 것도 아니고, 전화 인터뷰해서 나온 기사가 공유가 엄청 됐더라고요.
윤희숙 : 첫 보도가 오마이뉴스였어요? 너도나도 우리 때문이라고 얘기해서. (웃음)

-제가 가장 황당했던 게 TBS 교통방송 김어준 씨가 마치 교통방송의 기여로 8억이 다 모인 것처럼 주장해서 언론인으로서 저널리즘의 원칙에 맞는 거냐. 따지고 싶어요. (웃음)
김 : 대선 캠프 이런 곳에서도 다 그러고 있습니다. (웃음)

-정확하게 사실 보도 한 번 더 해주세요.
박 : 오마이뉴스에 첫 보도가 시작된 거고요. 오마이뉴스가 보도하자 그때부터 지면, 물론 TBS도 많은 영향 주셨고요. 그리고 또 김용민 브리핑 등 많은 분이 같이 해주셨습니다. 어쨌든 첫 보도는 오마이뉴스에서 해주셨습니다. (웃음)

-그렇죠. 이게 역사에 남는 거니까요. (웃음)
김 : 그리고 퇴진행동의 상황실장의 개인 페북 담벼락 이런 데도 주시하면서 찾아내는 오마이뉴스의 기자 정신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김덕진 시민기자가 평가를 해주고 계십니다. (웃음)
박 : 저도 시민기자예요.

-윤희숙 선생님은 아니세요?
윤 : 저는 아닙니다. 그냥 시민입니다. (웃음)

-저는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제가 뉴스공장 들었을 때 12억까지 모았다는 박진 실장님 인터뷰하는 걸 들었거든요. 지금은 얼마예요?
박 : 아침에 확인했는데, 12억 정도에서 멈춘 것 같고요. 사실 저희가 그때 출연한 이유는 그만 보내주셨으면 싶어서. (웃음) 왜냐면 저희가 계속 집회를 할 수 없잖아요? (웃음) 정해진 집회가 있고, 무엇보다 저희가 이렇게 후원을 많이 받으면 정말 받아야 할 곳이 받을 수 없게 될까 싶어서 저희한테 이제 그만 보내셔도 된다고 해서 그 이후로는 크게 들어오고 있지는 않은 것 같아요.

-그럼 지금까지 시민들이 모아주신 성금 총액이 얼마 정도 되는 겁니까?
박 : 지금 현재 계좌후원으로 20억이 좀 넘었고요. 제가 동그라미를 잘 못 세겠어요.

-이게 박근혜 정권이면 좀 쉬운데, 430억 이렇게 되니까. 우리 시민운동가들은 매월 시민들이 보내주시는 만 원, 오천 원 이런 걸로 어렵게 인권 운동, 시민운동, 사회 운동 이어가시기 때문에. 20억이랍니다. 2억이 아니라.
박 : 그리고 현장 모금이 18억이 좀 넘었고요. 늘 집회할 때마다 저희가 모금하잖아요. 그리고 기타 수입이 4천5백만 정도 되고요. 현재는 그래서 잔액이 아직 미수 처리가 다 된 건 아닌데, 11억 정도 통장에 남아 있습니다.

-지금 남은 돈이 11억, 지금까지 모인 액수 총합하면 38억 5천 정도.
김 : 이렇게 된 거예요. 저희가 처음 얘기했을 때 1억 정도 모자란다고 했잖아요? 그래서 그 기사 나가고 나서 12억이 모인 거죠. 그래서 1억을 갚고, 11억이 남았다고 생각하시면 가장 간단할 것 같아요. 지금 말씀드렸던 38억은 10월 29일 첫 번째 촛불부터 지금까지 총 누적 금액을 말씀드린 겁니다. 기사 나고부터는 12억이 정확합니다.

-정말 기적 아닙니까?
김 : 기적이죠. 상상도 할 수 없는 액수였어요.

-근데 그 사연도 정말 다양하더라고요. 보내주신 내용들을 보면 동문회는 안 간 사람들 하루 만 원씩 해서 10만 원씩 보내고. (웃음) 그런 사람들도 있었다면서요.
박 : 그게 사실 제일 눈에 띄고요. 만약 20차인데, 그중에 10번 갔으면 10만 원 내라. 10번 못 갔으니까. 이런 식으로 냈다고 하시고요. 2만 몇 명이 사실 보내셨으니까.
김 : 계좌 입금만 2만5천 명 정도. 그 나흘 동안.

-나흘 동안 2만5천 명이 12억을 낸 거예요.
김 : 통장을 열 개 넘게 갈아야 되는.

-시민들이 얼마나 간절하게 대한민국의 민주공화국을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는 것을 입장하고 싶었던 것인가 하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
윤 : 그 시기에 기사 댓글에 퇴진행동과 관련된 기사만 나오면, '퇴진행동 빚이 1억이랍니다' 이 댓글을 퍼 나르는 분들도 엄청 많은 거예요. 그래서 실시간 검색에도 올라갈 정도였어요.
김 : 해외에서 보내는 분들은 저희가 해외에서 보내는 돈을 받기가 굉장히 어려워요. 페이팔인가 이런 게 있어야 되는데, 이런 걸 하려면 또 단체여야 되고 이렇게 해야 해요. 등록도 해야 하고. 우리가 잘 모르니까, 해외 계신 분들이 알아서 해외에 있는 은행에 문의해서 어떻게 해서 우리한테 어느 지점 가서 찾기만 하시면 됩니다. 이런 식으로 다 설명해서 메시지를 보내오시는 경우도 있었어요.

-사실 지금 대한민국 언론이 미담 기사 잘 안 쓰거든요. 왜냐면 미담 기사가 신문의 휴지통 이런 걸로 조그맣게 실리긴 했는데, 그마저도 사실 별로 없어요. 그리고 비판에만 열을 올리고 하는데. 퇴진행동의 빚이 1억 있다. 그래서 12억이나 되는 금액을 2만5천 명이나 되는 시민들이 모았다는 자체로 미담 기사가 정말 많이 쏟아졌습니다. 퇴진행동이 대한민국의 언론 지형을 바꾸셨어요.
박 : 광장에 나왔던 한 사람 한 사람이 같은 느낌이었어요. 누가 턱 하니 몇백, 몇천 만 원을 내놓는 게 아니라, 만 원, 이만 원, 십만 원씩 이렇게 낸 돈이 그렇게 모인 거니까, 후원에 찍힌 2만5천 명이 마치 이름 없이 서 있던 시민들 같은 느낌이었어요. 물론 보내지 못해서 늘 미안하다고 하시는 분들까지 포함하면.
김 : 그리고 이게 퇴진행동 관계자들만 좋아하고 기뻐한 게 아니라, 빚을 지게 생겼다고 했을 때 막 공유하시고 글을 올리셨잖아요? 근데 이 소식을 다 듣고 나서 '다들 기뻐하세요. 여러분 이렇게 많이 모였답니다. 안심하세요. 이제 음향 비를 줄 수 있게 됐어요.' 이런 글들이 올라오는 걸 보면서 촛불집회뿐만 아니라 퇴진행동이라는 조직도 시민들이 지켜주셨고, 시민들이 '우리 조직이다, 내 조직이다' 이렇게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거기에 차이를 두지 않고 있기 때문에 우리도 더 많이 고민하고, 시민들과 함께 이 돈을 어떻게 잘 쓸지 고민해야 하는 시기인 것 같습니다.

-이전(8일)에 한 번 출연하셨잖아요. 그때 박진 실장께서 저한테 전화하셨어요. '선배 큰일이네. 집회해야 되는데 돈이 없네.' (웃음)
김 : 2주 전이죠. 파면되기 이틀 전.

-요즘은 하루가 너무 길어요. 우리가 24시간씩 생중계하고, 출근하면 26시간 뒤에 퇴근하고 이래서. (웃음) 저희가 시간을 잃어버린 상황인데요. 그때 모금용으로 팟짱에 한 번 나가야겠다. 이렇게 말씀하시고 출연하셨는데, 별로 많이 안 모였어요. 그래서 걱정을 많이 했거든요.
김 : 장윤선 국장님이 그때 저한테 카톡을 하셨죠. '얼마나 모였니?' 이러면서.

-근데 답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이게 힘들구나. 되게 실망을 했는데.
박 : 근데 아마도 팟짱 나가고 나서 몇천만 원 이렇게 쭉 올랐을 거예요.
김 : 삼천만 원 정도 들어왔어요.
박 : 삼천만 원 절대 적은 돈이 아니에요.

-대안 언론들이 이렇게 노력해서 정국을 이어갈 수 있다는 게. 누가 그런 평가를 하더라고요. 같은 동료 언론인들의 평가인데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첫 포문을 한겨레신문이 열었다면, JTBC가 태블릿 피시로 정점을 찍고, 20주간 촛불 생중계로 오마이뉴스가 지켰다. 그러면 한겨레, JTBC, 오마이 중에 누가 제일 고생한 거냐? 역시 현장에서 제일 고생한 건 오마이다. 이렇게 한겨레 기자들이 평가하더라고요.
김 : 오마이뉴스 생중계를 저희가 집회를 (오후) 4시나 5시에 해도 현장 중계를 한 시부터 시작하시거든요. 그러면 우리가 무대 위에서 현수막 걸고 이런 장면이 다 생중계되고.
윤 : 오마이뉴스는 시작부터 그런 현장성이 두드러졌던 언론이라서.

-저희도 이번에 자부심을 가지고 촛불 생중계를 함께 했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오늘 굉장히 중요한 뉴스가 하나 들어왔어요. 저희가 어제 박근혜 전 대통령 검찰 조사를 받느라, 기자들이 4시에 출근했거든요. 그런데 또 세월호 인양을 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밤사이에 또 기자들이 팽목항을 거쳐서 동거차도로 들어가고 있는데요. 지금 연결을 하려고 했더니, 산 위에 아직 올라가지 못했다고, 산 위에 올라가면 연결해 달라는 신호가 들어와 있네요.
김 : 저희도 집회 때 여러 차례 동거차도와 연결해서 영장 틀고 그랬잖아요. 그게 쉽지가 않아요. 신호 잡기가 어려워요.

-사실 박진 상황실장님, 김덕진 팀장님, 윤희숙 팀장님 모두 세월호와 함께 해오신 인권운동가들이세요. 오늘 세월호 인양한다는 소식이 있는데요. 10시에 시험 인양을 하고, 이르면 오후 4시쯤 세월호 선체가 일부 물 위에 뜬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습니다. 박진 실장님 어떠세요?
박 : 실제로 그 배가 바다 위에서 몸을 드러낼 거라고 이야기를 듣는 순간부터 굉장히 초조해요. 이게 빨리 인양되어야 하는데, 저걸 보는 가족들의 마음은 어떨까. 여러 생각이 만감이 교차해요. 오늘 안 되더라도 4월에는 될 걸로 우리 모두 예측하고 있는 거잖아요.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그런 만감이 교차하는 상황입니다.

-윤희숙 팀장님은 좀 어떠세요?
윤 : 저는 그때 2014년 4월 16일로 배가 만약 수면 위로 드러나면, 그 시간으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이 날 것 같아요. 물속에 잠겨 있었으니까, 잠겨 있는 상태로는 계속 인양하라는 거 촉구하고, 세월호 진실을 밝히기 위한 활동을 해왔는데, 막상 그 사건의 실체라고 해야 하나요? 상징물이 드러나는 거잖아요. 그때 그 시간으로 돌아갈 것 같은 느낌이에요.

-시간도 오전 10시 이 무렵이에요. 저는 그날 국회 정론관에서 상황을 봤거든요. 김덕진 팀장님은 어떠세요?
김 : 저도 비슷한 심정인데요. 일단 가족들 생각이 나고요. 침몰하는 세월호를 바라보고 있었을 가족들의 심정이 아마 선체가 드러나는 순간부터 감정이 이어져서, 가족들은 굉장히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낼 거라고 생각하고요. 사실 이번 촛불집회나 이런 것들의 동력이 실제로 박근혜를 퇴진하고, 여러 명 구속한 것 외에 법안을 통과시키거나 이런 것들이 많지 않아요. 국회가 계속 공전 상태였기 때문에. 그 와중에도 세월호 선체 조사에 관련한 법률이 통과된 것도 시민들의 힘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 일이거든요. 무엇보다도 선체 인양을 계속 그동안 날씨 탓을 하면서 미뤄왔는데, 국내 기상청을 못 믿어서 호주의 날씨 전문기관에 의뢰를 해서 3일 동안 가장 날씨가 좋다. 이러고 있는 건데요. 그럼 과정들이 답답하긴 하지만, 이번에는 차질 없이 올라와야 한다. 더 미룰 수는 없는 일인 것 같아요. 올라오면 감정의 소용돌이가 치겠지만, 우리는 가족들의 곁을 지키는 활동가들이니까, 빨리 추슬러서 얼른 그 일이 제대로 진상 규명될 수 있는 과정들을 밟아야겠죠.

-사실 지난 3년의 세월을 어떻게 다 저희가 얘기하겠습니다만, 제일 애가 타시는 분들은 여전히 미수습자 가족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여전히 팽목항을 지키고 있는 건데요. 증거가 남아 있을까요.
박 : 사실 보호 존(zone)을 바다에 쳤는데, 너무 늦게 쳤죠. 미수습자 유실을 막기 위한 조치를 해경이 빨리 취해야 했는데, 상당히 늦게 취해져서 불안한데요. 또 쟁점 중의 하나는 선체를 인양하고 나서 목포로 옮기는 거잖아요? 목포로 옮겨서 해경 주장은 작업을 빨리, 신속히, 안전하게 하기 위해서 절단하겠다는 건데.

-증거를 절단한다고요?
박 : 절단해서 선체를 수색하겠다는 건데. 워낙 내부가 위험하니까 들어가기 위해서는 안전시설을 다 만들어 놓고 수색해야 하는 거잖아요? 그러기에는 너무 시간이 오래 걸린다. 실제로 인양법 자체의 시한을 너무 짧게 만들었어요. 얘기하면 뭐하겠습니까. 어떻게든 꼼꼼하게 막으려는 사람들이 있는가 봅니다. 어쨌든 그러다 보니까 이걸 절단해서 수색하겠다고 나오는 거죠. 근데 그러면 그야말로 함몰되거나 이럴 위험이 있기 때문에 그것도 쟁점으로 남아 있습니다.

-세월호를 인양하라는 구호는 2014년부터 계속했던 구호인데, 드디어 올라오는 상황입니다. 윤희숙 팀장님 말씀대로 시계가 다시...
윤 : 멈췄다가 이제 다시 정상적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고요. 저는 지난 몇 년 사이에 배에 증거가 얼마나 남아 있을지도 걱정되긴 하는데, 이걸 계기로 그사이에 우리가 의혹이 굉장히 많잖아요. 그 많은 의혹을 정상적으로 밝힐 수 있는 신호탄 같은 게 되면 좋겠다. 지금 같은 시점에 정상화하는 계기로 되면 좋을 것 같아요.

촛불집회에서 무대 진행을 맡았던 김덕진·박진·윤희숙씨는, 22일 오마이뉴스 팟캐스트 <장윤선의 팟짱>에 출연해 장윤선 오마이TV 방송국장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 박근혜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의 삼총사 촛불집회에서 무대 진행을 맡았던 김덕진·박진·윤희숙씨는, 22일 오마이뉴스 팟캐스트 <장윤선의 팟짱>에 출연해 장윤선 오마이TV 방송국장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 곽우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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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진 팀장님은 2014년 4월 16일 어디에 계셨어요? 저는 모든 국민이 그날은 매우 특별한 기억이 있을 것 같은데요.

김 : 사실 보도가 나온 게 아침 8시 무렵이잖아요? 저는 집에서 뉴스를 보고 있었고요. 뉴스를 보다가 다 마찬가지로 전원구조 보고 안심하고 사무실 나오다가, 그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됐고. 알게 된 건 10시 이후죠. 어떻게 해야 하나? 말 동동 구르고 있었고요. 그때 아마 박래군 선배나 다 통화하고 이랬던 것 같아요. 우리 뭐해야 되냐. 근데 다들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상태로 상당 기간을 보냈죠. 정말 망연자실한 상태로. 물론 빨리 달려가고 그러기도 했지만, 가족들이 워낙 많으시고, 그때 계속 희생자들이 올라오셨잖아요? 시신들이 수습돼서. 그 과정에서는 사실 뭘 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어요.

-그러니까요. 제가 팽목에 내려갔을 때 시신이 운구돼서 오는 상황을 다 보면서 있었는데. 아휴 그때 생각하니까 다시 또... 하여튼 작은 체구의 여학생 같기도 하고, 키가 큰 친구도 있고. 그런 모습을 쭉 보면서 방송을 하기도 했는데. 중요한 건 정말 가족들이 대단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제가 생각을 해봤어요. 20차 촛불집회를 한 차례도 쉬지 않고 생중계하면서 도대체 이 동력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항상 폭력이 있게 마련이에요. 어떻게든. 근데 버스에 올라갔을 때도 '내려와, 내려와' 이런 자발적인 운동. 물론 그런 비폭력을 꼭 해야 하느냐는 운동 사회 내부에 논쟁이 있지만, 하나의 사건·사고가 없었어요. 연행자 한 명도 없었죠. 저는 230만 모였을 때, 숨통이 막히는 줄 알았어요. 말은 해야 하는데 꽉 갇혀서 움직일 수는 없지. 근데 그걸 다 견뎌냈거든요. 저는 그 근원을 따져보면 세월호 가족들이 정말 질서 있게 잘 싸운 분들 아닌가.
박 : 우리 가족들이 꼭 질서 있게 싸우지만은... (웃음)
김 : 그렇게 비쳤다니 참 다행입니다. (웃음)

-(웃음) 아니 정말, 그렇지 않아요?
박 : 네. 근데 그게 질서 있는 싸움이라기보다는 정말 뭐라고 할까요. 그걸 용기라는 얘기로만 표현하면...

-너무 많이 참으신 거 아닌가 싶기도 해요.
박 : 네. 그런데 저는 그렇게 오랜 기간 단호하게 용기 있게 그렇게 맨 앞에서 싸울 수 있는 사람들은 쉽지 않다고 생각하고요. 세월호 유가족들이 그걸 했거든요. 서슬 퍼런 박근혜 초기였어요. 그때부터 주저함이 없었거든요. 그 시기에 제가 되돌아 생각해도 박근혜를 비판한 모든 사람이 사실 상당히 위축되어 있었어요. 박근혜 되자마자 많은 노동자가 자살하셨고, 전반적인 사회 분위기가 그랬고요. 일종의 박정희를 잇는 공포 정치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공안통치, 국정원 발 뉴스가 계속 나오고, 정말 이건 박정희 시대로 돌아가는 거라는 공포감이 있었거든요. 근데 세월호 참사 나고 그 부모들의 주저함 없고, 단호하고, 용기 있는 그 싸움이 광장을 열었다는 데, 저는 100% 동의합니다.
윤 : 그런 건 있는 것 같아요. 부모님들을 보니까. 부모님들도 있는데 참아야지. 참가한 시민들이 그런 생각이 있는 것 같아요. 좁고, 끼여서 1분에 다섯 걸음을 걷는데도 이렇게 기분 좋은 경험은 처음이라는 글들이 SNS에 올라오고 이런 걸 봤는데. 춥고 다리 아파도 세월호 가족들도 있는데 하는 생각하면서 참게 되는 그런 게 있지 않았나.
박 : 이분이 165만 최대 모였을 때.
윤 : 12월 3일. 그날 서울이 160만이고, 전국이 230만이었는데. 그때는 원래 30만 정도 모이는 작은 집회.

-이제 30만이 작은 게 된 거예요? (웃음)
윤 : 그때는 그랬죠. 그래서 혼자 간단히 보자고 해서 했는데. 연쇄담화범이 담화하는 바람에 시민들이 터져 나와서 많이 오게 됐죠. (웃음)
박 : 박근혜 조직위원장. (웃음)

-생각해보니까 정말 그랬네요.
김 : 제가 그동안 수많은 참사의 피해자 가족들을 지난 15년 만나봤는데요. 다들 대단하신 분들이에요. 당사자의 일이니까 그렇기도 한데요. 이렇게 뭐랄까. 상황 판단, 현실 인식, 어떻게 싸워야 할까, 이런 것들을 스스로 고민하고 판단하는 당사자들은 흔치 않았어요. 그럴 때마다 머뭇거리고 주저할 때, 먼저 결심하시고, 행동에 옮기는 가족들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고요. 말씀하신 것처럼 그런 평화적인 집회로 우리가 20차를 왔는데, 그 평화가 그런 과정들이 누적되면서 우리 스스로 선택했다는 거예요. 차벽을 100만이 넘어서 못 넘지 않아요. 분명히 밀어낼 수 있었고, 그걸 치워내고 청와대까지 들어갈 수 있는 힘이었지만, 우리 스스로 선택했다는 것. 경찰에 막히고, 물대포가 무서워서가 아니라, 우리는 이미 대중의 힘으로 위력을 과시하고 있고, 끌어내릴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요. 다른 물리적 폭력 등이 필요치 않은 상황을 우리가 갖고 있었고, 압도적으로 광장에서의 위력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마 시민들이 더 자랑스럽고 기억나는 이유는 공권력에 의해서 어쩔 수 없이 만들어진 평화 집회가 아니고, 우리 스스로 선택한 비폭력 평화 집회였다는 것이 자랑스러운 일인 것 같아요.

-김덕진 팀장님은 그사이에 정말 많이 컸구나. (함께 웃음) 김덕진의 20대를 알고 있기 때문에. 저는 사실 여기 계신 세 분이 저보다 다 나이는 어리지만, 굉장히 존경하는 후배들입니다.
김 : 한참 누나죠. 제가 어렸을 때 아유 그때는 쳐다도 못 봤어요.

-왜 존경을 하냐면요. 이분들이 항상 진짜 어려운 분들과 늘 함께하시거든요. 이를테면 군 의문사 가족들. 어디 가서 악 소리도 못 내는 피해자들의 인권 문제를 늘 이분들이. 인권운동가들이 이렇게 열심히 활동하니까 우리 사회가 그나마 이렇게 갈 수 있는 거예요.
김 : 그런 활동을 주류 언론들이 보도해주지 않을 때, 오마이뉴스가... (함께 웃음) 저희의 졸필인 글도 메인에 올려주시고, 이러다 보니까요.

-분위기가 이상한데요. (웃음)
박 : 이제 오마이뉴스가 비주류 언론도 아니잖아요.

-오마이뉴스는 이제 비주류 언론 아닙니다. 제가 보기에는 이제 좀 업계에서 상당히 인정받는 매체가 됐어요.
김 : 제1당 대선후보 경선 토론도 진행했는데.

-근데 딴 당은 안 해요. (함께 웃음) 고민이 깊습니다. 저희가 이제 동거차도 현장을 연결하려고 하는데요. 동거차도 현장 상황이 조금 복잡하게 꼬여 있어서 정리한 다음에 연결하겠습니다. 지금 보면 세월호의 엄마, 아빠들이 제일 손에 땀을 쥐는 저 배가 정말 올라올 수 있을까. 오늘은 올라올까. 이런 걱정 속에 현장을 지켜보실 텐데요. 저희가 빠르게 그림을 보여드릴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도록 하겠습니다. 스무 번이 끝인 줄 알았거든요? 이번 주에 또 있죠? 이번 주는 카피가 뭡니까?
박 : 촛불은 멈추지 않는다.

-계속해야 되네. (웃음) 아니 근데 12억 쓰려면 계속해야 되는 거 아니에요?
윤 : 저는 언제든 시민들이 촛불을 들어서 생겨났으니까, 필요하면 촛불은 언제든지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하고요. 당장 저희 계획은 이번 주 3월 25일, 다음 달 4월 15일 예정하고 있고요. 근데 지난주에 보니까 시민들 사이에 약간 공황 상태가. 괜히 광화문 광장에 한 번 나와보시고. 토요일에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김 : 그래서 세월호 광장 토요 촛불문화제에 사람이 굉장히 많이 왔대요. 다시 시작했거든요.
윤 : 괜히 또 집회기획팀원들도 아프고. (웃음)
박 : 상황실 사람들도 많이 아파요.

-이제 우리가 그럼 약을 좀 보낼까요? (웃음)
박 : 아니요. 보내지 마세요. (웃음)

-진짜 여러분 너무 아름답지 않습니까? 탐욕스러운 사람들만 보다가.
김 : 초기에 늘픔약사회 이런 데서 한약을 엄청 보내주셔서 상황실이 나눠 먹었어요. 나눠 먹고 그 힘으로 이 겨울을 나지 않았나 싶어요.
박 : 전국에서 어디서 오고, 어디서 오고.
김 : 저는 순천에서 온 거 먹었어요.

-세상에 그렇게 소리 없이 후원하고. 정말 대한민국 국민이 모두가 한마음을 모았기 때문에 1600만 촛불이 가능했다는 말을 할 수 있겠네요. 3월 25일 집회는 어떻게 돼요?
윤 : 이번 집회는 사실 우리가 박근혜를 파면하긴 했는데, 아직 구속도 되지 않았고, 그리고 이번 촛불이 많은 시민도 얘기했지만, 대통령 한 명 바꾸자고 든 촛불이 아니라는 얘기를 많이 하셨잖아요. 당장에 급한 여러 과제도 있는데요. 특히 이번에 사드 배치 관련해서 굉장히 신속하게 국방부 장관도 잘 몰랐다고 얘기할 정도로 진행되고 있는 것도 있고요. 그 외에 여러 의제가 광장에 좀 더 우리 사회에 있는 과제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집회로 준비되고 있어요. 이번에도 시민 자유발언 신청도 받고, 집회 발언자들도 준비하고 있고요. 공연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원래 언론 팀이 목요일에 기자 브리핑하면서 보통 발표하시는데요.
김 : 특별히 적폐청산이라고 우리가 계속했던 걸 어려워서 사실 안 쓰려고 했거든요. 근데 한 번 쓰자마자 언론이 받으셨고, 대선 주자들이 계속 적폐 얘기를 하고 계시기 때문에 이 용어가 굳어지기는 했는데.

-요즘 초등학생들도 저희가 인터뷰하면 적폐청산 딱 얘기해요. (함께 웃음)
김 : 오늘 너무 행복하기도 하고, 많이 모금해 주신 정성과 마음이 기쁘기도 한데요. 사실 박근혜 씨가 한 송구스러움 말고, 진심으로 송구스러운 마음이 드는 건 우리가 긴급 6대 현안이라고 했던 걸 아직 제대로 한 가지도 해결하지 못했다는 마음이 다들 남아 있어요. 특히 이번에 3월 25일은 공무원 노조가 그날 낮에 집회합니다. 성과 퇴출제라고 우리가 부르는 성과연봉제. 본격적으로 공무원, 공기업 이런 데서 먼저 시작이 되잖아요. 그래서 그런 부분들에 대한 이야기도 좀 해야 하고요. 시민들이 관심 갖고 계셨고, 우리가 이야기해서 광장의 화두로 삼아주셨던 이야기를 이어가는 측면에서 이번 집회를 하는 거고요. 4월 15일 세월호 3주기가 있어서 맞춰서 하게 되는 것 같아요. 4월 16일 일요일 3주기는 안산에서 하고요. 토요일에는 서울에서 합니다.

-이날도 많이 함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 얘기 살짝 하고 넘어갈게요. 말씀하신 대로 긴급 6대 현안 하나도 정리되지 않은 상태이고요. 이걸 국회 탓을 해야 되는 건가 싶기도 하고요. 여전히 존재하는 자유한국당의 문제인 것 같습니다. 성실히 조사에 임하겠다고 했지만 실제 조사받은 시간은 11시간, 조사 고치는 데는 7시간. 물론 전체 머물렀던 기간은 21시간. 잠을 잤냐, 뭘 했냐. 별별 얘기가 다 나오고 있습니다.
김 : 화장실 변기는 가져가냐, 안 가져가냐.
박 : 손석희 씨는 그런 것에 관심 갖지 말고, 중요한 데 관심 가지라고. (웃음)
김 : 저도 아파서 오랜만에 집에 일찍 가서 어제 뉴스를 봤는데요. 계속 신변잡기 나오잖아요. 저녁을 뭘로 먹었니 이런 거 하니까, 현장 기자 연결하면서 '식사를 뭘 했나 이런 건 별로 중요한 얘기 같지 않으니까' 이러면서 연결하더라고요. (웃음)

-그렇군요. 박 전 대통령의 구속 수사 이런 것도 박근혜를 구속하라는 구호를 많이 했기 때문에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요. 얼마 전부터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불구속 수사를 검찰에 수사지휘권을 발동할 수 있다. 물론 현실 가능성은 없다는 반론도 있습니다. 불구속 가능성 있을까요?
김 : 수사지휘권이라는 걸 과거 노무현 대통령 때 발의한 적이 있죠. 유명했던 강정구 교수 사건, 천정배 법무부 장관일 때 불구속 수사하라고 한 적이 있는데요. 사실 그걸 가능하게 하는 건 아무리 봐도 황교안 권한대행의 의지보다는 여론일 거라고 생각해요. 박근혜를 구속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면, 사실 검찰 입장에서도 영장 청구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보이는데요. 여러 가지 해석이 있잖아요. 조사를 밤새도록 받고 다 한 이유가 구속 수사를 면하고, 재소환을 면하려고 변호인단과 논의해서 나온 거다. 박근혜는 충분히 자기 할 얘기는 다 했다고 하려는 건데, 아까 이야기하셨지만, 11시간 조사를 했지만, 특수 1부장인가요? 세 시간밖에 못 했잖아요. 이재용 뇌물 수수를 집중적으로 조사해야 하고, 문건 유출이라든지 조사해야 되는 사건에 대해서는. 실제로 미르와 K-스포츠 재단 조사를 3분의 2 이상 한 거고, 사실 파면 사유 중에 중요했던 이재용 뇌물 관련해서는 미진할 수밖에 없거든요. 이런 부분에 있어서 재소환했을 때 박근혜가 응하지 않거나, 여러 가지 동정 여론, '한 번 가서 24시간 가까이 조사를 받았는데 또 해야 하냐'는 얘기가 나올 수 있기 때문에 인신을 확보하고, 수사를 제대로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왜냐면 공범들인 최순실, 안종범, 정호성 이런 사람들도 어제(21일)도 검찰이 불렀는데 안 나왔어요. 저는 사실 구치소에 여러 번 가봤는데요. 검찰이 부르는데, 불출석 사유서를 내고 안 나가도 되는 게 있는지 아마 교도소에 있는 사람 아무도 없을 걸요? 구속된 상태에서 검찰이 불렀는데, 이걸 거부한다? 저는 이번에 사실 처음 알았어요. 불구속 상태에서는 몇 번 일정 맞추고 전화한 적이 있어요. 인신이 구치소에 있는데, 사유서를 써내고 안 나가는 건 처음 봤거든요.

-검찰 위에 있는 겁니까? 정호성, 안종범, 최순실 다 검찰 위에 있는 사람들이에요?
박 : 우리가 발견하지 못했던 피의자의 방어권들을 깨알같이 누리고 있는 건데요.

-우리가 새로운 사실을 알게 해주셔서 고맙다고 해야 합니까? (웃음)
박 : 다른 사안에서도 법은 공정해야 된다고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할 것 같고, 그렇기 때문에 구속 수사가 필요하다는 이야기인 거죠. 어제도 박근혜 씨가 조사를 받으면서 '모른다, 아니다.'

-'저기요. 대통령님 안종범 전 수석 수첩에 보면요.' '아유, 몰라요.' (함께 웃음)
박 : 저도 많이 조사받아봐서 아는데요. 계속 부인하고, 아니고, 모른다는 건 사실 증거나 사실 은폐하고 인멸하겠다는 겁니다. 솔직하게 얘기하면 안 된다는 겁니다. 확실한 증거가 있는 것에 대해서는 모른다는 거잖아요. 이거 마땅히 구속 사유예요. 보통 박근혜 씨와 같은 경우가 아니면, 이것이 증거 인멸, 부인 등 여러 정황에 의해서 구속 사유가 된다는 거죠. 그러면 피의자 방어권을 저희에게 꼼꼼히 알려줘서 법이 이런 보장을 받을 수 있는구나 했듯이 마땅히 평등하게 구속 수사를 받아야죠. 철저히 수사받아야죠.

-왜냐면 증거 인멸 가능성이 계속 살아 있기 때문에요.
김 : 그렇죠. 예를 들면 우병우 전 수석 같은 사람들은 여전히 밖에 있잖아요. 뭔가 협의할 수도 있는 우려들이 남아 있어요. 다른 사람들도 다 그런 우려 때문에 구속을 시키고 구속해서 안에서도 공범들끼리 철저히 격리해서 만나지 못하게 하는 건데요. 그런 측면에서 필요하다고 봐요.



-저희가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구속 수사에 대한 이야기를 해봤고요. 드디어 현장에 연결할 수 있는 상황이 됐습니다. 현장에 나가 있는 오마이TV 박정호 기자를 직접 전화로 연결해 보겠습니다. 박정호 기자 나와계십니까?
박정호 기자 : 네 박정호입니다.

-지금 여기 1600만 촛불 사회자 세 분 나와 계세요. 인사부터 하시죠.
박 기자 : 안녕하세요. 기분이 새롭네요. 전화로 인사드리니까.

-지금 동거차도에 가셨는데요. 현장 상황이 어떤지 현장 그림을 보면서 설명 들을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박 기자 : 회색 선박이 있는데요. 이게 세월호를 인양하게 되는 재킹 바지선입니다. 지금 옆모습으로 보고 있는데요. 바지선 두 대가 양옆에 있고요. 지금 해수부(해양수산부)는 열 시부터 시범 인양을 시작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시범 인양을 시작했다는 건 오늘 날씨가 괜찮다는 거고요. 시범 인양을 하기에 여러 가지 기술적인 문제도 없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지난 19일에는 인양 줄이 꼬이는 문제도 있었고, 날씨도 생각보다 좋지 않아서 시험 인양을 하지 않았습니다. 오늘 다시 시험 인양을 시도하는데요. 10시부터 시작했다고 하니까 날씨와 기술적인 부분은 별문제가 되지 않는 상황입니다. 화면으로도 보이시겠지만, 파도가 거의 없는 상황입니다. 바람도 없고요. 그래서 날씨도 상당히 도와주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지금 영공이 굉장히 뿌연 것 같아요. 날이 흐린 느낌이 나는데요. 지금 많은 배가 이동 중인데, 세월호의 가족들은 바다에 떠 있는 배 가운데 한 배에 타 계시는 겁니까?
박 기자 : 그렇게 예정이 돼 있었습니다. 제가 아까 팽목항에서 나올 때 확인해봤는데요. 가족들을 태울 조그만 배가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그 배에 가족들을 나눠 태우고 해역으로 오는 배로 이동한다고 들었는데요. 지금 정확히 파악하지는 못했지만, 저 배 중의 한 척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아까 언론사들도 배에 태워달라는 얘기를 했는데, 해수부가 거부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저희는 팽목항에서 동거차도로 들어오는 우리 아버님, 어머님 어선 편에 끼워서 함께 동거차도로 이동했고요. 아까 저희가 전해 드렸는데요. 동거차도로 오던 어선이 잠시 바지선 앞에 멈춰 서서 가까이서 바지선의 모습, 세월호를 운반하게 될 반잠수 선박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드릴 수 있었습니다.

-오전 10시부터 시범 인양을 개시했다는 게 해양수산부 관계자들의 입장인데, 지금 51분 지나고 있는데요. 현장 상황에서는 해수부가 시험 인양에 성공한 것인지 아닌지는 확인이 됩니까?
박 기자 : 현장에서는 확인이 안 되고요. 시험인양 자체가 바다 깊숙이 가라앉아 있는 세월호를 1에서 2m 정도만 들어 올려 보는 시험입니다. 그래서 선체가 보이는 상황은 아니고요. 수면 밑에서 작업이 이어지게 되거든요. 세월호가 지금 누워 있는데요. 누워 있는 세월호 옆으로 리프트빔 33개를 설치해 놨습니다. 그 리프트빔의 양쪽으로 줄을 바지선에 연결해 놨습니다. 양쪽으로 33개씩 66개 와이어가 연결이 되어 있는데, 그걸 바지선에서 유압으로 끌어당기는 겁니다. 그래서 세월호를 천천히 들어 올리는 건데, 시험 인양은 1에서 2m 정도만 들어보고, 무게 분배나 균형이 잘 맞는지, 계속 들어 올렸을 때 문제가 없는지, 안전하게 인양할 수 있는지 하는 것들을 종합적으로 판단하게 됩니다. 그래서 시험 인양 결과를 봐야 하고요. 결과가 나오면 해수부에서 언론사들에 알려주도록 약속이 되어 있습니다. 해수부의 입장을 기다려봐야 할 것 같습니다.

-오늘 이르면 오후 4시경에 세월호 선체 일부가 물 위로 뜰 수 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기 때문에 지금 현장에 계시는 가족분들이 매우 긴장된 상태로 지켜보고 계실 것 같은데요. 동거차도 현장에는 가족분들이 어느 정도나 계십니까? 아까 같이 가신 분들도 계시고, 기존에 있던 분들도 계시죠?
박 기자 : 기존에 계시던 아버님 제가 뵌 분이 세 분 정도 있고요. 아까 제가 들어올 때 6~7분 같이 오셨기 때문에요. 그분들께서는 또 따로 진실호를 타고 해역으로 나가보겠다고 준비하시는 모습도 볼 수 있었고요. 하지만 이게 쉽지 않습니다. 해양수산부 쪽에서 접근을 못 하게 막고 있기 때문에 어떻게 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고요. 아까 말씀드렸듯이 세월호가 인양된다면, 수면 위로 13m 정도 보이게 됩니다. 그게 시험 인양이 성공했을 때 본 인양을 하게 되는데요. 그게 성공하게 되면, 오후 3시나 4시 늦으면 오후 5시까지도 보고 있습니다. 아까 해수부가 준비한 배에도 가족들이 타고 해역으로 오고 있거나 와 있는 상태고요. 아버님들도 동거차도에 텐트가 쳐 있잖습니까? 그 텐트에 앉거나 밖에 나와서 망원경으로 바지선의 모습을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여기 촛불 사회자 세 분 나와 계시는데요. 아버님들 전화로라도 잠깐 인사할 수 있을까요?
박 기자 : 제가 아버님들께 말씀을 드려보겠습니다. 지금 헬기 소리도 들리고 있고요. 다른 방송사들도 동거차도 언덕에 올라와서 방송을 준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언론들의 관심이 많이 쏠리고 있습니다.

-사실 전 국민의 관심이죠. 그때 2014년 4월 16일로 돌아가서 정말 모든 국민이 실시간 현장 중계로 배가 모습을 감추는 걸 보지 않았습니까. 참혹하고 참담한 사고 앞에 저희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답답한 상황인데요.
박 기자 : 제 옆에 동수 아버님 나와 계십니다.

-촛불 사회자 세 분 가운데 동수 아버님하고 누가 제일 친하십니까?
박 : 아버님, 박진입니다. 어떻게 잘 준비하고 계세요?
동수 아버지(정성욱 4·16가족협의회 선체인양분과장) : 잘 준비할 게 뭐 있습니까? 지켜보는 입장밖에 더 있어요. 지금 동동 구르고 지켜보고 있죠.
박 : 아버님 그러면 계속 동거차도에 있어요? 배 안 타고 들어가고?
동수 아버지 : 네 기자들이 너무 많이 들어와서, 관리를 좀 해줘야 해서요.
김 : 아버님 저 덕진이에요. 승리하고 나서 아버지가 발언을 또 멋지게 하셨거든요. 그러고 나니까 선체 인양 시기도 앞당겨 지고 그런 것 같아요. 잘 될 거예요. 걱정하지 마세요.
동수 아버지 : 예, 고맙습니다. 응원해 주세요.
윤 : 저 윤희숙인데요. 같은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습니다.
동수 아버지 : 예, 고맙습니다.

-아버님, 장윤선입니다. 저희 지금 상암동 스튜디오에서 팽목에 거쳐서 동거차도까지 생방송을 진행하고 있는데요. 끊김 없이 다 나오는 게 신기하다. 기술의 발전 수준을 느끼고 있습니다. 아버님, 저희 끝으로 모든 국민이 2014년 4월 16일로 돌아가서 세월호 선체 인양 상황 속보를 전 국민이 지켜보고 있습니다. 국민께 한 말씀 하시죠. 아마도 오늘 하루도 굉장히 길 것 같은데요. 잘 되면 좋겠지만, 경우에 따라서 어려움이 있을 수도 있고요. 잘 되면 오후 4시 정도에 선체 일부가 국민 앞에 나타날 것 같기도 한데요. 국민께 한 말씀 하시죠.
동수 아버지 : 국민 여러분, 세월호 인양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끝까지 관심 있게 봐 주시고, 세월호가 꼭 올라올 수 있도록 모든 마음을 모아주시면 좋겠습니다.

-박정호 기자 지금 시청자분들께서 퇴진행동 활동가분들이 그 전까지는 4·16 위원회에서 같이 다 활동하고 계시는.
김 : 지금도 4·16연대 운영위원이에요.

-겸직하고 계셔서요. 한 식구처럼 가족들과 함께 활동하고 계신 활동가분들과 연결하는 자체가 마음이 짠하다는 말씀을 주고 계시는데요.
박 기자 : 그렇네요. 지금 저희 화면으로 보이는 가운데 하얀색 배가 있습니다. 그 하얀색 배에 지금 가족들이 타고 있다고 합니다. 바지선에서 조금 많이 떨어져 있고요. 사실 바로 옆까지는 접근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접근을 못 하게 하는 이유는 뭔가요?
박 기자 : 작업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입니다. 지금 저기에 있는 게 제일 근접할 수 있는 거리라고 보시면 됩니다. 가족들이 저 거리에서 작업 현장을 보고 있습니다.
김 : 저희가 확인한 바로는 저희 가족들이 어제 새벽 2시에 50명 정도가 맹골수도 쪽으로 가셨고, 아침 10시 40분에 도착해서 해수부의 관용선을 모니터하고 있고, 가족들이 어업지도선을 타고 참사 해역으로 일부 가셨다는 얘기를 박정호 기자님이 해주신 것 같고요. 동거차도에 있는 진실호도 출발하려고 하고 있답니다. 가까이 못 오게 하겠죠. 해경 등에서. 이유는 작업에 방해된다. 안전 문제라고 할 텐데. 가족들 입장에서는 가장 가까이서 보고 싶을 텐데, 차라리 더 안전한 해경 등의 배로 가족들을 옮겨 타게 해서 현장을 직접 보게 하는 게 가장 좋은 게 아닌가 싶네요.

-그러니까요. 왜 이렇게 가족들을 애타게 하는지 정말 너무 답답합니다. 박정호 기자, 저희가 잠시 후에 다시 연결하겠습니다. 박정호 기자가 어제는 서울중앙지검에 있었는데, 오늘은 또 동거차도로 갔어요. 저희가 박근혜 전 대통령 때문에 일을 참 많이 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오마이TV 박정호 기자와 함께했습니다. 올라와야 되는데요.
윤 : 시간이 빠르면 4시에 볼 수 있다고 하는 게 너무 데자뷔 같아요. 예전에도 몇 시에 구조된다, 안에 인원이 몇 명 있다, 에어포켓이 있다는 것처럼 자꾸 기다리게 되는데요. 이번에는 정말 실제로 좀 됐으면 좋겠어요.
박 : 또 같이 걱정이 되는 게 인양이 되고 나면 그때 우리 국민들이 '이제 끝난 거 아니냐'고 하실 텐데요. 아시겠지만 이번에 헌재에서도 실제로 세월호와 관련된 자료가 없는 거잖아요. 뭘 조사할 수 있게 했어야지 자료가 있는 건데, 진상 규명이 안 되는 거거든요.

-세월호 7시간 관련해서도 입증이 안 되는 거잖아요. 대면조사를 한 것도 아니고, 청와대 압수수색을 해서 보안 손님이 언제 왔다 갔고, 그 시간에 뭐 했는지를 박근혜 전 대통령은 안 하고 있는 거 아니에요.
박 : 그걸 밝혀내야 되고요. 세월호 특조위(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2기를 시작해야 하는 거고요. 또 배가 인양돼서 목포로 가더라도 유실물이나 또 혹시 있을 수 있는 미수습자를 찾기 위해서 당분간 해역에서 계속 수색 활동을 해야 하거든요. 그럼 가족들은 여전히 동거차도에서 계속 감시 활동을 할 거고요. 끝났다고 끝난 게 절대 아니라는 점. 인양되면 인양을 통해서 우리가 밝혀야 될 진상 규명이 무엇이고, 한편으로 미수습자 문제 등 다양한 문제를 주목해 주시되, 끝났다고 생각하지 말고 좀 더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세월호가 인양되면 그날부터 2014년 4월 16일로 돌아가서 처음부터 다시 조사해야 한다는 말씀으로 이해가 됩니다. 김덕진 팀장님 계속 세월호 가족들과 함께해 오셨는데요. 아직까지도 정확한 사고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거잖아요.
김 : 사실상 검찰 수사에서는 이유들이 나왔다고 하는 것이고, 그래서 거기에 따른 처벌들을 받았죠. 그리고 실제로 특조위 조사를 하는 과정에서도 중요한 건 의혹들이 계속 제기되잖아요. 원인이고 진실이라는 건 제기되는 의혹들에 답을 할 수 있어야 하거든요. 그래야 의혹 없이 검찰의 수사 등이 명제가 되면서 일단락이 되는 건데요. 의혹들에 대한 대답을 못 하고 있는 게 많죠. 그게 비단 박근혜 7시간뿐만이 아니라, 계속 얘기 나오고 있었던 강정 해군기지 공사용 철근 같은 게 왜 그 안에 있었나. 왜 무리하게 철근 400만 톤(400톤)을 실었는가. 이 과정이 또 강정 해군기지 공사를 재촉하는 누군가가 있었기 때문에 무리한 일이 있었을 것이고, 그럼 재촉한 사람은 누구고 이유는 뭔가. 이런 것들이 꼬리를 물고 나타나고 있어요. 그리고 아시겠지만, 불법 증축이라든지, 규제를 풀면서 선령 20년이 넘은 노후한 배들을 운영해 왔던 과정이 어떻게 가능했나 밝혀내야 하고요. 사실 국정원 개입설 등 여러 가지가 있잖아요. 실제로 회사 사람들과 국정원 직원이 통화한 기록들이 있고요.

-휴가를 왜 국정원 직원들이 조절하냐고요.
김 : 그러니까요. 밝혀낼 일이 한두 개가 아니죠. 일단 미수습자 수습, 유품들 정리하고, 사고 원인을 밝히는 과정에서 계속. 이번 박근혜 게이트 하면서 이화여대 학생들이 그런 얘기 했다잖아요. 고구마 줄기인 줄 알고 당겼는데, 끝에 무열왕릉이 나왔다. 이런 것처럼 세월호 참사의 사고 원인 규명은 분명히 그 원인 뒤에 가려져 있는 다른 부당하고 부도덕한 일들을 다 끄집어낼 거라고 생각해요.

-지금 박근혜 정권의 퇴진 이후에 진실 규명해야 하는 것들이 너무 많은 거죠. 강정 해군기지로 가는 철근이 왜 그렇게 많이 실릴 수밖에 없었고, 이걸 왜 하필이면 수학여행 가는 민간 배에 실었어야만 했는가. 이런 뒤에 있는 추악한 음모와 거래, 권력 비리가 잠자고 있을 수 있다.
김 : 그래서 그런 것들이 지금은 의혹이라고 하지만 특조위 활동을 조직적으로 정부가 방해했고, 이게 법에 의해 만들어서 대통령이 임명한 특조위였잖아요? 그걸 해수부가 나서서 조직적으로 방해했고, 강제로 종료시키고. 그 이후에도 어떻게든 세월호 관련한 진실을 파헤치는 걸 방해해 온 걸 보면, 여기에도 분명히 밝혀내야 할 것들이 있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어요.

-중요한 건 선체가 인양되면 그날부터 우리가 새롭게 조사를 시작해야 하는 건데, 선체 조사 위원회의 법은 국회에서 통과됐어요. 그럼 곧바로 조사가 시작될 수 있는 건가요?
박 : 선체 조사 위원회를 지금 구성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구성에도 상당한 난항이 있는 거 같아요. 일단 관련한 전문가 풀이 넓지 않고, 조사 기간 자체가 짧게 통과되어 있어요. 제가 알기로는 6개월인가? 6개월이면 절단하지 않을 경우라도 안전바를 설치하고 이러는데 몇 개월, 구성하는데 또 1~2개월 이렇게 하면 특조위 1기 꼴이 나는 거죠. 구성해놓고 안전바 다 설치하면 실제 위원회 활동 자체가 별로 없습니다. 여러 가지로 한계가 굉장히 많은 걸로 보고 있어요.
김 : 조사가 총 6개월로 되어 있고요. 4개월을 한 번 연장할 수 있어요.

-이 연장 권한은 누구한테 있습니까? 황교안 총리 때문에 연장 권한에 대해서 굉장히 민감해요.
김 : 아마 정부에 있을 거예요.
박 : 이게 늘 판단은 그런 거예요. 특검도 마찬가지인데요. 그 판단은 특검이 하는 거죠. 그 판단은 특조위가 하는 거예요. 우리에게 기간이 더 필요하다는 요청을 하는 거고, 정부기관은 심사만 하고 행정적으로 결제만 하면 되는 거예요. 그걸 꼭 막는 거죠.
김 : 국회에서 다섯 명을 임명하고 유가족이 추천한 사람 세 명, 이렇게 해서 8명 구성하기로 되어 있는데요. 그중에서 여섯 명 이상이 5년 이상 해양 사고 조사에 종사했던 사람이어야 하는 거예요. 그런 사람을 일단 찾기 어렵기도 하고, 그런 분들이 정부나 기업의 편이 아니고, 진실의 편에 서서 일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을 찾는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닌 거죠.

-외국인이 와야 할 것 같은데요?
김 : 그럴 필요도 분명히 있죠.
박 : 뭐라고 할까요.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국가가 알아서 공정하게 먼저 해주면 얼마나 좋아요. 그런데 늘 힘없는 유가족, 힘없는 비전문가들이 전문가를 찾아내야 해요. 이건 국가에 대한 신뢰가 없다는 거거든요. 지금까지 그래왔기 때문에. 결국, 참사 2중 피해를 받는 거예요. 피해자로 오롯이 남아 있는 게 아니라, 진상 규명 자체를 스스로 해야 하는. 누군가를 끊임없이 찾아내야 하는 것까지 피해자들한테 전가하는 거죠.

-너무 고통스러운 거죠. 자식 잃은 것도 억울해 죽겠는데, 억울한 죽음의 원인을 찾는 것도 내가 해야 합니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아직 끝나지 않은 거예요. 장례도 제대로 못 한 상황이기 때문에.
윤 : 가까운 가족을 잃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가족을 잃은 것 자체도 받아드리기 힘든데, 왜 죽었는지도 모르면 그 가족들은 결코 그걸 잊을 수 없을 것 같거든요. 한이 풀리지 않고. 이게 명명백백하게 밝혀지고, 책임자가 그것에 대해서 사과하든지 해야 가족들이 조금이나마 풀리지. 그렇지 않는 한 그냥 넘어갈 일은 아니다. 그리고 세월호 참사 이후에 많은 국민이 집단적인 우울증에 걸릴 정도로 세월호 사고 소식을 자기 일처럼 가슴 아파했어요. 정부에 대한 불신과 분노가 박근혜 정부를 무너뜨리는데, 세월호 참사가 굉장히 큰 기제였잖아요. 이걸 계기로 나는 우리 사회를 다시 봤다. 이게 나라냐는 게 그때 나온 거잖아요. 그만큼 많은 국민이 이 사건에 대해 자기 문제로 생각하고 있는데, 이번에 이걸 밝히지 않고 넘어간다면 사실 우리가 만들고자 했던 새로운 사회로 나아갈 수 없죠.
박 : 오늘 미수습자 가족들이 성명을 하나 발표했어요. 어쨌든 인양이 제대로 잘 됐으면 좋겠다. 끝까지 관심을 가져 달라. 이 대목이 눈에 띄는데, '바다가 잠잠하길, 작업자들의 안전과 공정이 순조롭게 이루어져서 세월호 인양이 꼭 성공할 수 있도록.' 뭐냐면, 거기서 벌어지는 모든 사고에 대한 책임까지도 본인들이 느끼고 있다는 거예요. 자칫 거기서 불의의 사고가 나면 오롯이 자신의 책임이라는 것까지 안고 있는 거죠. 이건 사실 국가가 해야 하는 거거든요.
김 : 영화 '터널' 보면 하정우 씨가 터널에 갇혀 있잖아요. 그게 세월호랑 굉장히 겹치는 영화인데, 하정우를 구하러 갔다가 구조대 한 명이 죽어요. 그런데 이제 다들 포기하자. 죽었을 거다. 아내 역할이 배두나 씨였죠. 아내는 계속 조사하고, 찾아달라고 하죠. 그러니까 죽은 작업반장의 엄마가 와서 배두나에게 모욕적인 언사를 하고 뭘 던지고 이런 장면이 나와요. 근데 그건 계란을 던진 어머니도 계란을 맞는 아내도 겪어야 할 일이 아니거든요. 그런 일들을 그때 돌아가신 잠수사분들이라든지, 얼마 전에 돌아가진 김관홍 잠수사의 죽음 등을 다 가족들이 미안해하고 있고, 가족들이 우리 책임이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 이런 거 역시 이 사회가 너무나 안타깝고 답답하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세월호 참사같이 참혹하고 참담한 사고는 우리 사회에서 다시 있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세월호가 인양되면, 그 날로부터 시계를 돌려서 이 사고의 원인이 뭐였는지, 어디서 뭐가 잘못되었던 것인지 하나하나 밝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희가 아까 철근 400만 톤이라고 얘기했는데요. 400톤이라고. 우리 시청자분께서 '방송사고다. 빨리 사과하시라.' 빨리 사과하겠습니다.
김 : 200톤 정도가 적정량이었는데, 추가로 210톤인가 더해서 410톤인가 들어있다고 세월호 특조위가 밝혔었죠.
박 : 사실 그 당시에 심각한 과적, 제대로 되지 않은 고박 등이 심각했거든요. 특히 세월호 자체가 그래요. 이명박 정부 때 선박법시행령이 개정되거든요. 그래서 노후 선박이 20년이어야만 수입이 가능했는데, 30년까지 풀렸다는 거죠.

-이걸 MB가 한 거잖아요.
박 : MB가 했어요. 그게 규제 완화거든요. 경제를 살리겠다는 규제 완화인데, 박근혜 경제 개혁의 핵심도 규제 완화예요.
김 : 규제를 다 물에 빠뜨린다고 했잖아요.
박 : 심지어 세월호 참사가 난 다음에 규제를 물에 빠뜨리겠다는 얘기를 했어요. 저는 이건 굉장히 나쁘다고 생각해요. 국민들이 뭘 아파하는지... 그 이전에는 규제를 단두대에 세운다면서 경제 개혁을 얘기했다는 거죠. 심지어 세월호 참사 나고 나서 대국민 담화할 때 눈물 흘렸던 기억나시죠? 그 마지막에 저는 끔찍했거든요. '그래서 앞으로 대한민국을 위해서 경제개발 몇 개년 계획을 막힘없이 추진하겠다.' 눈물 자국이 선연한 얼굴로 그렇게 얘기했는데, 전 소름이 끼쳤어요. 세월호 참사가 규제 완화로 발생한 참사인데, 그 원인과 똑같은 해답을 '난 앞으로 계속 규제 완화하겠다. 막힘없이 하겠다.' 이건 정말 참담했거든요. 이윤을 위해서 무조건 낡은 배를 띄우겠다. 당시 국회에 올라왔던 새누리당이 주장했던 민생법안 중에 크루즈 산업법이 있었어요. 배에서 도박하는 법이었거든요. 그 법을 민생법이라고 하면서 세월호 특별법이 민생법안 못 만들게 한다. 정말 깨알같이 나쁜 정권이고, 깨알같이 나쁜 정당이죠.

-구속해야겠네요. 말씀을 쭉 해주시니까 복기가 됩니다. 어마어마한 일들이 결국 돈과 이윤 앞에 생명은... 갑자기 개, 돼지 이런 발언도 생각이 나요.
김 : 이 박근혜 정권의 일에 자유한국당도 자유로울 수 없거든요. 물론 바른정당으로 나와 계신 분들도 있지만, 그나마 박근혜 탄핵에 일조했다는 면죄부가 있습니다. 자유한국당은 변화한다, 쇄신한다고 얘기하면서도 전혀 달라진 모습 보이지 않고 있고요. 이번에 4월 12일 재보궐 선거 때도 '송구스러워서 공천 못 한다. 우리 당 의원이 잘못해서 생긴 보궐 선거니까 우리 당 추천 안 한다'고 했다가 지금 공천하겠다고 하고 있고요. 국회도서관장도 추천 안 하겠다고 했다가 추천하겠다고 해서 사람을 냈어요. 정치하는 분들의 반성과 회개는 진짜 짧은 것 같아요.

-그러니까 촛불이 멈출 수가 없어요. 촛불이 멈출 수가 없는데, 계속 이들이 호시탐탐 노리는 거예요.
박 : 저도 동의합니다. 촛불을 멈출 수 없다는 건 굉장히 많은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매주 주말에 광장에 나와서 촛불을 든다는 거 의미 있는 일이죠. 그게 사실 역사를 만들어냈기 때문에 의미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광장의 촛불을 어떻게 일상의 촛불로 가져올 거냐. 권력을 감시하는 시민을 이길 권력은 없거든요. 직접민주주의라는 게 그렇게 구현된 건데. 우리의 촛불을 멈출 수 없다는 것은 우리가 얻었던 정치적 주체로서의 에너지를 우리 삶 속에도 가져오자는 거죠. 그냥 저 사람이 그래도 나으니까. 근데 어쨌든 이번 대선에는 좀 더 나은 선택을 할 수밖에 없지만, 그 선택을 할 때 그 사람의 미는 힘은 어디서 나오냐. 그건 일상을 바꾸는, 감시하는 시민의 힘에서 나올 거라고 보는 거죠.
윤 : 그래서 저는 통합이나 연정 얘기가 너무 뜬금없는 거예요. 지금이 그런 얘기를 할 때인가. 국민은 적폐청산 얘기하고, 책임자, 공범자 처벌하고, 부당하게 축적된 재산 몰수하고, 이런 청산 과정이 되지 않으면 반복된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요구하고 있어요. 그런데 지금 대선 후보들 다 너무.
김 : 대선 후보뿐만이 아니라, 온갖 지도자를 자임하시는 분들께서 이제 서로 화해하고, 용서하고, 화합하라고 하는데. 거기에 천주교 제주교구의 강우일 주교 이런 분들이 일갈하셨죠. '화합을 말할 때가 아니다. 화합은 진실들이 밝혀지고 벌 받을 사람 벌 받는 과정에서 나오는 거지. 용서하고 화해한다고 그런 화합이 나오는 거 아니다.' 이런 말씀을 하셨는데요.

-고통 앞에 중립은 없다고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말씀하셨잖아요.
김 : 우리가 그분들을 국외로 쫓아내자는 것도 아니고, 어디 섬에 가두고 살자는 것도 아니잖아요. 법이 정한 대로 처벌받고 그럼 되는 거죠.
박 : 청산하지 못한 과거는 현재만 괴롭게 하는 게 아니라 미래까지도 조여올 수밖에 없고요.
김 : 우리가 친일청산 제대로 못 해서 사실 국정 교과서 얘기까지 나오게 됐던 게 아니냐는 얘기도 있는데요.

-박근혜 전 대통령 표현을 좀 빌리겠습니다. 이게 다 엮였어요. (함께 웃음) 이게 다 엮여있기 때문에 풀지 않으면 안 됩니다. 다 풀어서 하나하나 진실 규명에 힘써야 우리가 제대로 된 대한민국의 출발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서울시가 촛불집회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그리고 노벨평화상 추진을 한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서울시가 주관하는 행사가 아닌데. (웃음) 깜짝 놀랐어요. 우리들의 지난 투쟁의 역사를 보면 늘 누군가 영웅, 집중 받을 만한 인물 이런 게 생기잖아요. 이번 경우에는 그야말로 집단지성의 힘으로, 모두의 힘으로 만들어냈다는 게 퇴진행동 지도부가 대단하다. 누군가는 튀고 싶을 텐데. 그런 것 없이 이렇게 정리했다는 게 정말 대단합니다.
김 : 없어요. 그런 대단한 지도자가 없습니다. (웃음)

-그게 대단한 거예요. 누군가는 이름을 내세우려고 하는데, 그때 판단해서 대선 주자들 못 올라오게 하고. (함께 웃음) 무대 못 쓰게 하고. 저는 그런 판단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김 : 우리 박원순 서울시장님이 대선 후보를 사퇴하시고, 불출마 선언하시고, 3월 1일 18차 촛불집회 무대에 오른 게 유일합니다.
박 : 아니죠. 10월 29일에 정치인들의 발언이 있었죠. 그때는 사실 퇴진행동이 설립되기 전이에요.

-완전 초반이에요. 1차 때.
박 : 그래서 우리 이재명 시장님이 큰 덕을 보셨죠. (웃음)
김 : 많은 분이 서고 싶어 하셨는데, 그 자리가 그런 자리는 아니라고 판단했죠.

-저는 이런 매우 정치한 판단을 했다는 게 놀라운데요. 많은 분이 정말 노벨평화상 감이다. 세계가 주목하고 있고요. 여러분 아시겠지만, 트럼프 반대 시위에 자꾸 유모차가 나오는 거예요. 워싱턴에서 어떤 기자가 물었어요. 왜 유모차를 끌고 나오냐고 했더니, '한국 봤더니. 유모차가 나오더라. 우리도 끌고 나오면 뭔가 될 거 같아서 한국을 벤치마킹 하고 있다.' 진짜예요. CBS 워싱턴 특파원이 취재했어요.
박 : 제가 퇴진행동에 좀 야박한 평가를 하는 내부자이긴 한데요. 우리는 집회 주최자이지 결코 지도부가 아니다. 일단 제가 확실히 자신할 수 있는 것은 100만 넘어가는 군중을 집회에서 큰 사고 없이 이끌 수 있는 건 한국 사회 운동권밖에 없다. 전 이건 자신해요.


-전문시위꾼? (웃음)
박 : 보수 언론은 계속 전문시위꾼으로 했지만, 정말 많은 집회와 시위 경험에 의해서 문화예술 전문가들은 또 아니잖아요. 그런데 100만이 넘었는데, 아무 탈 없이 정말 매끄럽게 행사를 해내는 건 한국 사회운동의 힘이라는 건 자신할 수 있습니다.


-저는 정말 민주화 운동의 한류를 봤어요. (웃음) 세계인이 깜짝 놀랐고, 특히 아랍의 봄 얼마나 기대가 컸습니까. 그렇지만 결국 시리아 내전으로 지금도 고통 받는 어린이들, 난민 캠프에 있는 고통 받는 여성, 특히 늘 사회적 약자가 고통받아요. 우리가 대단한 운동을 한 것은 맞다. 그것에 대해서 자부심은 갖고, 야박하게 평가하지 마시고. 근데 이거 좋은 거 아닌가요? 노벨평화상 추진하고, 세계 기록유산에 등재한다면, 서울시가 추진하는 것은 괜찮으세요?
김 : 저는 그게 해프닝 성으로 하는 게 아니고, 서울시가 그걸 위한 TF팀(전담반)까지 꾸렸다고 해요. 시민추천단 이렇게 해서 사유도 '4개월 동안 진행된 비폭력 평화 집회.' 유례가 없다는 거예요. 전 세계적으로 이렇게 긴 시간 동안. 사실 서울시가 왜 나서느냐고 얘기하는 분들도 있을 수 있는데, 서울시는 사실 숨은 공로자예요. 어떻게 보면 동지적 관점을 가지고, 그동안에 광화문 광장, 서울시청 광장을 사용하게 해준 것뿐만이 아니라, 청소·안전·관리 하시는 공무원분들도 다 집회 끝날 때까지 남아서 주말 야근과 특근을 하셨고요. 또 박 시장님이나 서울시 관계자들의 배려와 동참이 없었으면, 어려운 지점이 많았을 거예요. 그래서 제가 알기로는 그 이전부터도 서울 역사박물관 이런 곳에 전시용으로 사진이나 동영상 이런 것들을 서울시가 모으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고 얘기 들었거든요. 저희와 논의돼서 이런 게 진행되는 것 같지는 않아요. 근데 퇴진행동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니고. 잘 알지도 못하고. 그렇기 때문에 저희는 그동안의 기록들을 정리하고 백서 같은 걸 만드는 작업은 앞으로 필요할 텐데, 이런 건 뭐 서울시나 유력한 시민사회단체 등에서 진행해 주시면 너무 좋은 일이죠.
박 : 아마 서울시가 진행하는 과정에서 퇴진행동을 만날 것 같고요. 아무래도 기록과 관련돼서도 계속 연락을 한 게 있어서요. 저희는 아직 논의한 바는 없어요. 그렇지만 관련해서 윤곽이 잡히면 저희도 내부적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논의해야 되지 않을까 싶어요.
김 : 수상이 만약 정해지면 누군가 받으러 가야 하니까 영어를 잘하는 제가 가야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함께 웃음)
박 : 이래서 걱정이에요. 누가 받으러 갈 것인가. 제 걱정은 그거예요. (함께 웃음)


-근데 김덕진 씨가 영어 잘하는 건 맞아요. (웃음)
윤 : 노벨평화상을 추천할 수 있는 자격도 제한되어 있대요. 수상자가 추천할 수 있대요.
김 : 자천이 가능하다는 건가요?
윤 : 예전에 수사했던 사람이. 그래서 우리나라는 고 김대중 대통령인데. 그래서 가족들이랑 물어본다 그런 얘기도 있고요.
김 : 오바마 대통령한테 추천해 달라고.


-전화 좀 해 보세요. (함께 웃음) 저는 굉장히 의미 있는 것으로 세계가 평가해주지 않을까 싶고요. 이렇게 의미 있는 승리의 기록을 쓰면 아마 대한민국이 세계 시민사회에 더 많은 기여를 하려고 할 거예요. 시리아 어린이들을 도우러 가자. 시리아를 위해서 촛불을 들자. 이렇게 하는 사회로까지 몇 단계 달라질 수 있다.
윤 : 무엇보다 촛불에서 제가 느꼈던 건 예전에 87년 6월 항쟁이 있고 나서 한국 사회에 노동조합도 생겨나고 여러 청년단체도 생겨나고 했었는데요. 최근 촛불이 일어나기 직전에 청년들은 너무나도 절망적이었잖아요. 근데 이런 청년들이 승리한 촛불 혁명의 세대가 될 수 있다는 게 너무 좋고요. 그 전까지는 너무 싫고, 믿을 수 없고, 떠나고 싶기만 한 나라였는데. 오늘 죽도록 고생해도 내일 또 똑같을 것 같아서 너무 절망적이었는데, 지금은 뭔가 자부심을 가지고 바꿀 수 있다는 경험을 한 번 한 것. 외국에 우리 모습이 잘 보이는 것도 좋고 감사한 일인데, 무엇보다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그런 희망과 자부심을 가지게 된 게 제일 큰 성과인 것 같아요. 그래서 이 기록을 잘 정리했으면 좋겠다 싶어요.


촛불집회에서 무대 진행을 맡았던 김덕진·박진·윤희숙씨는, 22일 오마이뉴스 팟캐스트 <장윤선의 팟짱>에 출연해 장윤선 오마이TV 방송국장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 박근혜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의 삼총사 촛불집회에서 무대 진행을 맡았던 김덕진·박진·윤희숙씨는, 22일 오마이뉴스 팟캐스트 <장윤선의 팟짱>에 출연해 장윤선 오마이TV 방송국장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 곽우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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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습니다. 잘 정리해서 기록 유산으로 남겨야 된다고 생각하고요. 서울시에 청소 담당하시는 공무원분들 너무나 감사하다는 말씀드리고 싶어요. 끝나면 거리를 너무 깨끗하게 정리해 주셔서 그 자체로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고요. 지금 김덕진 팀장을 통해서 두 장의 사진이 들어와 있어요. 이 사진을 보면서 김덕진 팀장께서 설명해 주시고, 저희가 마무리해야 할 것 같습니다.

김 : 보내드린 사진은 가족협의회가 마련한 진실호를 타고 가족들이 동거차도에서 해역으로 가는 사진이에요. 저희가 4·16연대에 물어봤어요. 그러니까 사진을 보내주신 거거든요. 사실 아까 우리 동수 아버지가 말씀하신 것처럼 가서 사실 할 수 있는 일이 없죠. 실제로 구조 작업을 할 수가 있어요. 유압 펌프로 당기는 로프를 우리가 당길 거예요. 사실 그건 아닌데. 이게 뭐 박근혜 씨가 썼기 때문에 안 쓰고 싶지만, 그런 간절한 마음들이 모여서 우주가 모아야. 살아 숨 쉬는 모든 것의 기운으로 할 수밖에 없는 일들이 가끔 있는 건데요. 저는 세월호 선체 인양이나 이후의 과정 역시 가족들의 힘만으로는 절대 할 수 없고, 몇몇 정치인들이 앞장서서 한다고 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박근혜를 무너뜨려서 검찰까지 보낸 국민의 힘이 세월호 인양과 참사의 진상 규명도. 하는 김에 같이 해줘야 하지 않을까 하는 얘기를 드리고 싶어요. 그래서 4월 15일, 16일 3주기 때 그런 힘을 좀 보여줘야 다음 정권을 창출할 대선 후보나 세력들도 '내가 다른 건 몰라도, 대통령 되면 세월호만큼은 제일 빨리해야겠구나'라는 생각이 들게끔, 저희가 좀 많이 모여서 그런 걸 보여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정말 세월호 참사 가족협의회가 직접 배를 타고 해역까지 나가서.
박 : 가족들이 구입한 배잖아요.


-아유 배까지 사야 하는.
박 : 해경이 상하이샐비지 작업하는 걸 계속 막고 하니까, 어쨌든 해역에 들어가서 보기 위해 본인들이 구입해서 보고.
김 : 아버지들이 배 운전도 배웠잖아요. 면허도 따고.
윤 :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기가 너무 힘들다 진짜.
박 : 너무 힘들어요. 특히 가족들처럼 참사의 유가족이 되는 건 정말 힘든 일이라는 게.


-그렇습니다. 저희가 이렇게 1600만 촛불 사회자들과 함께할 수 있어서 그 모든 날이 좋았습니다. 너무 감사했고요. 며칠 안 남았네요. 이번 주 토요일(25일) 오마이TV 또 생방송으로 함께합니다. 여러분과 함께한 모든 날이 좋았고, 계속 행복하기를. 촛불은 멈추지 않기 때문에 계속 고생해 주세요. (함께 웃음) 그나저나 그 12억 어디에 쓸 거예요?
박 : 이제 논의를 해야 돼요. 우리가 이런 돈이 모이리라고 생각하지 못한 상황이기 때문에.
윤 : 돈 있으면 고민되는 사람들.
박 : 네. 고민돼요. 지금까지처럼 계속 내역 공개할 거고, 내부감사, 회계사 전부 다 이렇게 하고 있기 때문에 믿고. 저희가 정말 허투루 쓰지 않는다는 걸 보여드리겠습니다.


-얼마나 꼼꼼하게 하시겠습니까. 제가 보기에는 그동안 참여연대를 비롯해서 활동했던 수많은 전문가 그룹들이 또 있어요. NGO(비정부 단체)를 감시하는 전문가들이 또 있기 때문에 정말 국가가 NGO처럼만 해도 이 나라 이렇게 썩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갑자기 구호하고 싶네요. (함께 웃음)
김 : 어디 팟캐스트에 나가잖아요? 그럼 구호시키는 진행자가 있어요.
박 : 저 몇 번 했어요. 아유 부끄러워.


-오늘 정말 재밌었고요. 행복했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말씀씩 국민께 해주세요.
박 : 인권 운동하면서 좀 힘들었어요. 맨날 피해자들 만나고, 쫓겨나고 아프고 해고되고, 이런 분들. 근데 왜 사회는 아무도 이들에게 관심이 없을까. 수만이 절망하고 수만이 힘들었는데. 적어도 저는 개인적으로 이번 촛불을 통해서 제가 앞으로 사회를 포기하지 않고 살아갈 힘을 얻은 것 같아요. 좁은 지하도로 올라가는 어깨들을 볼 때 너무 눈물이 나더라고요. 그래서 저처럼 믿으시고, 우리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으로 살아갑시다.


윤 : 제가 몇 번 말씀드린 적이 있는데요. 촛불이 뭐라고 생각하느냐. 제가 페이스북 친구들한테 물어본 적이 있어요. 촛불집회 중반쯤. 근데 거기에 스물한 살짜리 친구가 '촛불은 저예요. 그래서 꺼지지 않아요.' 그런 댓글을 단 거예요. 근데 그 말이 딱 맞는 거예요. 촛불이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난 것도 아니고, 바람 불면 꺼지는 게 아니라 우리 사회 촛불 시민들 자체가 촛불이어서, 그게 꺼질 수도 없고 언제든 필요하면 다시 켜지고, 영원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번에 승리한 경험을 가진 세대가 태어난 것. 그건 앞으로 우리 사회를 변화할 동력이 될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예전에 유신 독재가 부활하면 6월 항쟁도 부활한다는 얘기가 있었는데, 그 이상의 항쟁으로 이번 촛불이 밝혀졌다고 생각하고요. 이것을 잘 완성시켜 나가는 건 앞으로 다음 세대, 우리 청년들에게 몫이 있다고 생각해요. 이 청년들이 자신감을 가지게 된 게 가장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김 : 저도 감사하다는 말이 가장 먼저 나오고요. 근데 그 고맙다고 말할 자격이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왜냐면 모두가 함께한 촛불이고, 모두가 주인이었던 광장이기 때문에. 저는 그 광장을 '나의 광장이다. 우리의 광장이다'라고 인식해 주신 시민들이 정말 멋있고 존경스러워요. 그래서 아마 청소하시거나, 촛농을 제거하시거나 이런 일 하신 분들도 다 우리가 만든 촛불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점에서 감사드리고, 또 하나 감사드리고 싶은 것은 처음에는 '박근혜 퇴진'이라는 말 외에는 불편해하시거나, 듣기 거북해하시는 분들도 있었어요. 근데 촛불광장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사드 반대,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동의해 주시고. 백남기 농민 죽음의 진실 밝히자고 외쳐주시고. 국정 교과서나 위안부 합의 폐기해야 한다. 이런 걸 동의해 주신 시민분들이 점점 늘어나는 거예요. 퇴진행동이나 무대에서 이야기 한 사람들이 제안하는 것들을 받아주시는 것들이 정말 감동스러웠어요. 그래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이야기, 청소 용역 노동자들의 이야기에 울고 공감해주시고, 인터넷에 글 써주시는 걸 보면서 정말 이 광장이 우리에게 이런 의미였구나. 내가 그동안 보수 언론들이나 이런 곳에서 보여주지 않았던 진짜 이야기를 만날 수 있는 곳이었다는 것을 느끼시고, 또 거기서 감동 받아서 후원도 많이 해주시는 과정을 보면서 흔히 말했던 운동권과 분리된 시민들이 아니라, 정말 우리의 삶이 다 맞닿아 있구나 느끼게 된 것이 정말 큰 자산입니다. 앞으로 또 다른 시민사회의 활동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서 너무 감사드립니다. 아까 박진 실장님이 말씀하신 대로 남은 돈도 그렇고, 남은 시간과 삶도 허투루 살지 않고, 쓰지 않겠다고 결심하게 되는 계기여서 고맙다는 말씀드리고 마치겠습니다.


-정말 감사해요. 무엇보다 5개월이 넘는 긴 시간 동안 아무런 사고 없이 무사히 정국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는 것에 감사드리고요. 예전에 저 초등학교 때 '풀잎 역을 맡은 영희' 이런 게 있었어요. 누구는 주인공인데 누구는 늘 풀잎 역할만 하는 거예요. 그런데 이번 촛불은 모두가 주인공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모든 분이 행복감을 느끼고, 모두의 승리로 만들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새로운 국가. 특히 IMF 세대, '우리는 어디 나가서 말도 제대로 못 한다. 잘릴까 봐 눈치 보여서.' 이번 청년들 보면 늘 파견 노동, 아르바이트, 인턴. 취직이 안 되니까 늘 권력 안에서 굴종하고 했던 젊은 세대들에게 새로운 승리의 기쁨. 우리가 하면 뭔가 바뀔 수 있다는 자부심. 그리고 또 저처럼 애 키우는 엄마들은 '이제 이민 안 가고 이 나라에서 살 수 있겠구나. 이렇게 살다 보니 바뀌기도 하는구나.' 국가가 갑자기 정상화되니까 너무 당황스럽다는 분들도 있어요.
김 : 이민도 맘대로 못 가고 트럼프 때문에 이제. (함께 웃음)


-여러분 수고 너무 많이 하셨고요. 저희가 촛불과 함께할 수 있어서 행복하고 찬란한 봄을 맞이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감사하다는 말씀 또 드립니다.
김 : 오마이뉴스도 고맙습니다.
박 : 마지막 사회 볼 때 이 사람 저 사람 고맙다는 걸 다 했는데, 결정적인 걸 빼먹었어요. 기자들을. 20주 동안 저희와 거의 마찬가지로 거리에 계셨는데요. 그 모든 분께 감사 인사를 못 드렸습니다. 지금 자리를 빌려서 감사합니다.


-정말 대한민국 기자들 고생 많이 하고 있습니다. 함께 할 수 있어서 행복했어요. 오늘 말씀 잘 들었습니다. 고맙습니다.


* 이 글은 방송 인터뷰 전문을 그대로 옮겼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영상을 보세요.


태그:#박진, #김덕진, #윤희숙, #장윤선, #촛불 노벨평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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