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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본격적으로 '존속살인 김신혜 사건' 속으로 들어가 보자. 앞으로 나는 8회에 걸쳐 17년 전 그때 내가 직접 확인했던 사건의 진실을 밝히려 한다. 반전과 반전이 거듭되는 이 사건의 진실은 도대체 무엇일까? 그리고 누가 진실을 말하고 있으며, 그 진실을 비틀려 하는 자는 누구일까. 시간은 2000년 3월로 돌아간다.

2000년 3월 7일. 채 어둠이 가시지 않은 새벽 5시 50분경. 남도 바닷가의 한적한 시골 마을 버스정류장 앞에서 50대 초반의 남자가 숨진 채 발견됐다. 사망자는 한쪽 다리를 제대로 쓰지 못하는 3급 장애인으로 시신이 발견된 현장에서 차량으로 약 20분가량 떨어진 곳에 살고 있던 50대 남자였다.

교통사고로 위장된 살인사건

한편 마을 여자 주민에게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처음 이 사건을 단순 교통사고로 판단했다. 시신이 도로에서 발견되었고 또 주변에는 현대자동차가 생산하는 '마르샤'의 부서진 라이트 조각이 뿌려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시신을 검안한 후 경찰은 수사 방향을 바꾸게 된다. 교통사고로 보기에는 외상이 없었던 것이다. 이에 따라 경찰은 교통사고로 위장된 타살 사건으로 보고 수사 방향을 전환한다.

그렇게 사건 발생 만 하루가 조금 지나가던 3월 9일 새벽 0시 10분 경이었다. 이 사건에서 충격적인 첫 번째 반전이 벌어진다. 교통사고를 위장한 살인사건으로 의심하던 경찰에게 찾아온 사람이 있었던 것이다. 그는 이 사건 피해자의 큰 딸인 당시 23살의 김신혜씨(아래 김신혜)였다.

존속살해죄로 구속된 김신혜
 존속살해죄로 구속된 김신혜
ⓒ 고상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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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사건 발생 약 1년여가 지나가던 어느 날, 대법원은 그녀에게 아버지를 살해한 후 사체를 유기한 혐의를 유죄로 인정하여 1심과 2심 선고 형량인 '무기징역'을 확정한다. 1심과 2심 재판 당시 검사가 구형한 '사형'에서 감형 사유를 인정받아 그야말로 목숨만은 부지한 판결이었다. 그렇게 해서 조그마한 시골 마을을 들썩이게 했던 엽기적인 존속살인 사건이 모두 끝나가고 있었다.

한편 김신혜가 아버지를 살해한 동기에 대해 경찰이 밝힌 전모는 매우 충격적이었다. 중학생 때부터 자신의 아버지에 의해 상습적인 성추행을 당해온 김신혜가 결국 아버지를 살해했다는 발표였다. 김신혜는 이러한 아버지의 성추행으로 인해 비관하여 고교 시절 자살을 기도하기도 했으며 고향을 떠난 이유 역시 '사실은' 아버지의 그 추악한 욕심에서 벗어나기 위한 것이었다고 경찰은 밝혔다.

경찰 발표에 의하면 김신혜가 이처럼 아버지를 살해하기로 최종 결심을 굳힐 때는 2000년 1월경이었다고 한다. 또 다른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된 직후였다고 했다. 당시 열 여덟 살이었던 여동생이 자신의 집인 서울 강남의 월셋집을 찾아와 하룻밤을 잘 때 듣게 된 고백이었다고 한다. "아버지에게 강간당했다"는 여동생의 고백이었다. 자신뿐만 아니라 여동생마저 아버지에게 끔찍한 일을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김신혜는 뜨거운 분노에 휩싸이게 된다.

그렇게 분노와 증오심으로 잠을 이루지 못한 채 고민하던 김신혜는 마침내 희뿌옇게 밝아오는 새벽녘이 되어서야 마음을 정리하게 된다. '이제 그만 끝내야 한다'는 모진 마음이었다. 아버지를 살해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내용 역시 경찰이 발표한 수사 내용을 중심으로 재구성한 이 사건의 전모다.

경찰 수사 - 아버지를 죽이러 가는 길

2000년 3월 6일 저녁 6시경, 이 시각은 아버지의 시신이 마을 주민에 의해 발견되기 약 11시간 전이었다. 김신혜는 자신이 살고 있던 서울 강남구 월세집에서 수면제 가루를 A4 용지에 싸서 여행 가방 안에 넣었다. 전날 아버지를 살해하는 데 사용하고자 미리 갈아 놓았던 수면제였다.

30알의 수면제를 빻아 이를 섞은 술을 아버지에게 두 잔을 먹여 살해했다는 김신혜씨 진술을 재연하는 장면.
 30알의 수면제를 빻아 이를 섞은 술을 아버지에게 두 잔을 먹여 살해했다는 김신혜씨 진술을 재연하는 장면.
ⓒ 고상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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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혜는 알약 형태로 된 수면제 30알을 가루로 빻기 위해 전날 사기 밥그릇 뚜껑을 열어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그런 후 사기 밥그릇 뚜껑 위에 수면제 알약을 쏟아 놓고 숟가락을 이용하여 잘게 부수기 시작했다. 부서진 수면제는 양이 상당했다. 김신혜는 그렇게 부순 수면제 가루를 조심스럽게 A4 용지에 쏟았다.

그런데 그때였다. 실수가 벌어지게 된다. 종이 위에 쏟던 수면제 가루가 그만 식탁 유리 위로 일부 쏟아지게 된 것이다. 그러자 김신혜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오물이 묻은 행주가 보여 그것을 닦은 후 쓰레기통에 버렸다고 한다. 이어 냉장고를 열어 약 1/3 정도 남은 0.7 리터 일본산 양주를 꺼내 함께 가방에 넣었다. 술을 좋아하는 아버지에게 수면제를 섞인 술을 권하여 사망케 하려는 계획이었다. 이로써 아버지를 살해하기 위한 모든 준비가 끝난 것이다.

김신혜는 가방을 들고 집 앞에 미리 빌려놓은 렌터카에 몸을 실었다. 서울 강남에서 아버지가 있는 전남 완도까지는 굉장히 먼 거리였다. 그렇게 해서 출발하고 약 7시간이 걸린 다음 날 3월 7일 0시 55분 경, 김신혜는 고향인 전남 완도에 도착했다.

잠시 후, 김신혜는 아버지 집 앞에서 차를 세운 후 곧바로 할머니 집으로 들어가는 골목 초입의 오래된 이층집을 바라봤다. 아버지가 살던 집이었다. 그런데 그날은 이상했다. 평소 아버지가 생활하던 2층에는 늘 불이 켜져 있었는데 이날 따라 불이 꺼져 있었다는 것이다. 김신혜는 떨리는 마음으로 2층을 향해 "아버지"하고 불렀다. 또 이상했다. 평소 귀가 밝아 한 번만 불러도 대답하던 아버지가 그날따라 아무런 인기척도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김신혜는 조금 더 큰 목소리로 다시 아버지를 불렀다. 그때였다. 깜깜했던 2층 유리창이 환해지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이내 창문이 열리며 기다렸던 아버지의 모습이 보였다. 김신혜는 아버지를 확인한 후 자신도 모르게 주변을 둘러봤다. 아무도 없었다. 주변은 깜깜했다. 김신혜는 빠른 속도로 아버지 집 안으로 들어섰다고 한다. 야식을 파는 식당으로 이용하는 1층 홀을 지나 아버지가 생활하는 2층 나무 계단을 밟고 올라갔다.

방이 있던 2층에는 조금 전까지 잠을 자다가 일어났는지 이불이 펴져 있었다고 한다. 그 자리에 아버지는 앉아 있었다. 신혜는 그런 아버지를 보며 서울에서 가지고 온 가방의 지퍼를 열었다. "술에 취하지 않는 약을 가지고 왔다"며 준비한 일본산 양주와 잘게 부순 수면제 가루를 꺼냈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긴장된 순간이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런 딸의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기만 했다고 한다. 왜 말이 없었을까. 그저 딸이 준비해온 약과 일본산 양주를 섞는 과정을 묵묵히 지켜볼 뿐이었다고 한다. 여하간 신혜는 그런 아버지의 반응과 상관없이 술과 약이 잘 섞이도록 손에 들고 흔들었다. 그런 후 방 한쪽에 놓인 장식장에서 작은 양주잔 두 개를 가져와 아버지와 자기 앞에 각각 하나씩 내려놓았다.

이제 끝이었다. 이 술만 아버지가 마시면 아버지는 죽을 것이다. 신혜는 말없이 자신의 행동만 지켜보던 아버지에게 '술에 취하지 않는 약과 양주'라고 말한 그 술을 양주잔에 가득 부었다. 과연 아버지는 아무 의심도 없이 그 잔을 들까. 걱정할 틈도 없었다. 아버지는 큰딸 신혜가 부어준 자기 앞의 양주잔을 들어 한 번에 마셨다.

그때였다. 아버지가 죽음의 잔을 들어 의심 없이 마셔 버린 순간 신혜는 참을 수 없는 겁이 몰려왔다. 그래서 처음에는 아버지와 함께 죽어버릴까 싶어 자신 앞에도 한잔을 따라 놨지만 도저히 마실 자신이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때 또 돌발적인 일이 벌어진다.

자기가 마시려고 놓았던 그 죽음의 잔을 아버지가 또 가져간 것이다. 그리고 이내 아버지는 그 잔에 든 술마저 거침없이 마셔 버린 것이다. 신혜는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다. 일어섰다. 그리고 정신없이 밖으로 뛰어 내려왔다. 나무계단으로 되어 있는 2층에서 1층으로 정신없이 뛰어 내려갔다.

하지만 발소리는 하나가 아니었다. 둘이었다. 아버지가 정신없이 도망치는 신혜를 뒤따라 아주 짧은 차이를 두고 쫓아오는 발소리였다고 한다. 다리를 절뚝이는 3급 지체 장애인인 아버지가 왜 쫓아온 것일까. 혹시 눈치를 챈 것일까.

하지만 아버지의 요구는 너무도 뜻밖이었다. 겁에 질려 돌아본 신혜에게 아버지는 의외의 제안을 했다고 한다. "오랜만에 네 차로 드라이브를 시켜 달라"는 것이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시작된 아버지의 드라이브는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죽음의 길이었다.

아버지와 함께한 마지막 '죽음의 드라이브'

신혜는 아버지가 요구한 대로 자신이 빌려온 자동차에 몸을 실었다. 이내 부드럽게 시동이 걸린 뉴-EF 소나타는 어둠을 밀어내며 시골의 시내로 들어섰다. 얼마나 지났을까. 목적지가 따로 있지 않은 '죽음의 드라이브'를 하는 동안 내내 불안과 공포를 느끼던 신혜가 아버지의 죽음을 느낀 것은 다름 아닌 아버지의 '추악한' 손 때문이었다고 한다.

드라이브를 시작할 때부터 아버지는 내내 신혜의 몸을 추행하기 시작했다. 끔찍했지만 그 손길을 피할 수 없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어디를 어떻게 갔는지 모르는 시간이 약 30여 분 정도 지날 때 즈음이었다. 신혜는 어느 순간 추행하던 아버지의 손이 축 늘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죽었을까?

신혜는 이내 차를 세웠다. 주위를 돌아보니 어둡고 불빛 한 점 없었다. 심하게 요동치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신혜는 조심스럽게 아버지의 코 밑으로 손가락을 대 보았다. 1초, 2초, 3초, 4초... 하지만 아버지의 코에서는 들숨도, 날숨도 느껴지지 않았다. 숨을 쉬지 않는 것이었다.

마침내 아버지가 죽은 것이다. 그토록 죽이고 싶었던 아버지가 이렇게 쉽게 죽다니 신혜는 순간 너무나 허망했고 또 말할 수 없이 두려웠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아버지의 시신을 유기할 적당한 장소를 찾아야 했다. 어디로 가야 할까. 신혜는 다시 차에 시동을 걸었다.

잠시 후. 차가 멈춘 곳은 인적이 없는 시골 마을의 정류장 앞이었다. 가로등조차 없는 새벽의 시골 정류장 앞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두웠다. 지나가는 차도 없었다. 신혜는 마침내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 운전석의 문을 열었다. 그리곤 재빠른 동작으로 아버지가 앉아있는 보조석의 문을 연 후 다시 차에 올라탔다.

이제 남은 것은 하나였다. 신혜는 열려진 보조석 차 문을 향해 숨진 아버지의 상체를 힘껏 밀었다. 그러자 아버지의 몸은 힘없이 차 밖 땅바닥으로 굴려 떨어졌다. 시각은 새벽 4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널브러진 아버지의 시신이 완전히 차 밖으로 떨어져 나가자 신혜는 다시 시동을 걸었다. 이제 현장을 벗어나면 된다. 아버지는 죽었다.

나는 아버지를 죽이지 않았어요

경찰의 수사 조서. 과연 이 안에 담긴 내용은 전부 사실일까.
 경찰의 수사 조서. 과연 이 안에 담긴 내용은 전부 사실일까.
ⓒ 고상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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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은 경찰의 조서를 토대로 김신혜의 범행을 재구성한 내용이었다. 경찰의 발표에 의하면 그 아버지는 죽어 마땅한 사람이었다. 첫째 부인과 둘째 부인 사이에서 각각 태어난 자신의 두 딸을 상대로 자신의 추악한 성적 만족을 위해 차례로 성폭행한 인면수심의 아버지. 그리고 이로 인해 자살까지 기도하는 등 고통에 시달렸던 큰딸에 이어 어린 둘째까지 강간한 아버지를 살해 후 유기한 사건.

그래서 사건 당시 김신혜의 마을 사람들은 경찰의 발표를 믿고 오히려 김신혜를 동정하기도 했다. 비록 아버지를 살해했지만, 그 불쌍한 사정을 참작하여 관대하게 처벌해 달라며 마을 주민이 전부 탄원서를 제출해 주기도 했다.

실제로 이 사건이 벌어졌던 그 당시에는 이와 같은 패륜 사건이 심심치 않게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 가장 널리 알려진 사건이 1992년의 대검찰청 고위간부 출신의 의붓아버지에게 지속적으로 성폭력을 당한 한 여대생 사건이었다. 그녀는 9살 때부터 무려 12년 동안 대검찰청 고위간부 출신이었던 의붓 아버지에 의해 성폭행을 당했다. 그러다가 연인이었던 남자 친구와 함께 그 의붓아버지를 살해한다.

그야말로 충격적인 이 사건은 우리 사회에서 윤리적 충격과 함께 치열한 법정 논쟁을 일으켰다. 다행스럽게도 많은 시민단체의 적극적인 관심과 지원 속에서 그 정상이 참작되어 매우 관대한 처분을 받을 수 있었다. 그래서 김신혜 역시 아버지를 살해하게 된 그 특별한 사정을 재판부에 호소하고 선처를 바랐다면 보다 더 관대한 처벌을 받을 가능성도 컸다.

그러나 김신혜는 달랐다. 그녀는 재판부에 선처를 요구하지 않았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아버지의 성추행은 사실이 아니라며 반박했다. 오히려 그런 주장이 내 아버지의 명예를 훼손한다며 강하게 항의했다. 내 아버지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며 아버지를 위해서라도 법정에서 싸우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녀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당사자가 아니라는 데도 검찰은 사실이라고 주장했고 법원은 그것을 받아들여 검사의 사형 구형에도 무기징역으로 감형하는 이유로 삼았다. 그러자 김신혜는 "딸들을 성추행한 파렴치범이 되어버린 아버지의 명예 회복을 위해서라도 끝까지 자신의 무죄를 위해 싸우겠다"며 무기수로 복역 중인 오늘까지도 치열하게 싸우고 있다.

그는 정말 억울한 누명을 쓰고 인권을 유린당하고 있는 피해자일까? 아니면 검찰과 법원의 주장처럼 '아버지를 살해하고도' 끝까지 반성하지 않은 채 거짓말을 하는 극악한 패륜 범죄자일까?

다음 4화에서는 경찰이 주장한 이 사건 전모에 대해 반박하는 김신혜의 주장을 전할 것이다. 2000년 12월 김신혜가 내게 보내온 2000년 3월 7일 밤 이야기이다. 17년 전 그날의 진실은 여전히 우리에게 말을 걸어온다.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태그:#무기수 김신혜의 17년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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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운동가, 재야인사 장준하 선생 의문사 및 친일 반민족행위자의 재산을 조사하는 조사관 역임, 98년 판문점 김훈 중위 의문사 등 군 사망자의 명예회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저서- 중정이 기록한 장준하(오마이북), 장준하, 묻지 못한 진실(돌베개), 다시 사람이다(책담) 외 다수. 오마이뉴스 '올해의 뉴스게릴라' 등 다수 수상

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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