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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됐습니다. 이제는 '새로운 나라'에 대해 이야기할 때입니다. <오마이뉴스>는 '내가 살고 싶은 나라, 내가 꿈꾸는 국가'에 대한 각계각층의 목소리를 대선 기획 '100인의 편지'를 통해 전하고자 합니다.

이번 기획은 '열린 기획'으로 시민기자 누구나 참여할 수 있습니다. 차기 정권에 하고 싶은 말, 바라는 바에 대해 적어 기사로 보내주세요. '이게 나라냐'는 탄식을 넘어 '이게 나라다'라는 새로운 지향점을 여러분과 함께 열어나가겠습니다. [편집자말]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가지고 있고, 행복할 권리를 가지며, 누구든지 차별받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헌법에서 말하는 대원칙이다. 하지만 정치인들은 성소수자 인권을 이야기할 때마다 '아직 사회적 합의가 되어있지 않다는 이유로', '시기상조'라는 말 뒤에 숨어 회피하는 태도를 보여 왔다.

보수교계 지도자들을 만나는 자리에서 '동성애는 반대하지만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는 말로 그들을 안심시키려고 하고, 자신이 뱉은 말, 자신이 추진한 정책조차 책임지지 못하고 있다. 정권교체의 가능성이 높아진 시점에서도 나아질 가능성이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말 바꾸기는 기본, 차별금지법 제정처럼 참여정부가 추진했던 정책조차 쉽게 뒤집히고 있는 상황이다.

인권변호사 출신이라는 이력도, 인권조례를 만들었던 경험도, 한국의 버니 샌더스가 되겠다는 약속도 '차별금지법' 앞에서는 너무 쉽게 무너지고 있다. '차별금지법'을 제정하지 않겠다고 약속을 하는데 조용하기만 한 대선후보의 지지자들, 오히려 성소수자들이 정권교체의 훼방꾼인 양 비아냥거리고 조롱하던 이들이 '나중에'라는 말의 함정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는 것인지, 정권교체를 위해서 버려도 되는 패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내 인권의 '순위'는 몇 번째여야 하는가?

 16일 오후 서울 중구 페럼타워에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주도하는 '대한민국 바로세우기 제7차 포럼'이 '새로운 대한민국, 성평등으로 열겠습니다'를 주제로 열렸다. 성소수자 단체와 장애인단체 회원들이 성소수자 보호 등의 내용을 담은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해 사실상 반대 뜻을 밝힌 문 전 대표를 규탄하며 피켓시위를 하고 있다.
 지난 2월 16일 오후 서울 중구 페럼타워에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주도하는 '대한민국 바로세우기 제7차 포럼'이 '새로운 대한민국, 성평등으로 열겠습니다'를 주제로 열렸다. 성소수자 단체와 장애인단체 회원들이 성소수자 보호 등의 내용을 담은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해 사실상 반대 뜻을 밝힌 문 전 대표를 규탄하며 피켓시위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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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고 선언하는 문재인 앞에서 한 여성이 일어났다. "저는 여성이고 동성애자인데 인권을 어떻게 반으로 자를 수 있는지", "왜 성평등 정책 안에 동성애자에 대한 성평등을 포함하지 못하는 것인지" 물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나중에"를 외쳤다. (영상 보기) 나중에 말할 기회를 주겠다고 한 의미였다고 하나, 보수교계 지도자들 앞에서 이미 차별금지법 제정 반대를 언급한 뒤였기 때문에 그 의미로만 해석될 수는 없었다.

나중은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을 뒤로 미루는 말이다. 차별의 문제는 순서대로 찾아오는 것이 아닌데, 나중은 참고 견디고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이 여성과 나는 긴 시간동안 인권운동을 함께 해 온 친구이기도 하고, 또 어떤 차별의 경험을 해 왔는지 익히 알고 있던 터라 '나중에'라는 그 말이 '유보시킬 수 없던' 차별을 다시 떠올리게 했을 것이고, 절박함으로 다가왔을 거라고 감히 짐작해 본다.

그녀는 뇌종양 말기의 파트너가 죽음을 앞두고 있을 때 간병은 물론 비싼 병원비까지 홀로 감당해야 했다. 회사를 휴직하면서까지 최선을 다했지만 가족으로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에 제약이 따를 수밖에 없었다. 사촌동생이라는 핑계를 대고 나서야 병의 진행상황을 조금 엿들을 수 있었다고 한다. 하늘나라로 떠나는 순간까지 책임을 다했지만, 원가족은 가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벽제화장터에 그녀만 덩그러니 남겨두고 떠나 버렸다. 유골함을 들고 차를 타고 몰래 가버린 가족의 뒷모습을 보면서 땅을 치고 통곡을 하는 것 외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지금도 어디에 자신의 파트너가 묻혀 있는지를 모른다. 얼마나 야속한 마음이 들었을까.

동성파트너에게 가족으로서의 권리가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외면당했고 우리 사회가 유보시켰던 현실과 싸워야만 했다. 인권단체에서 함께 활동했을 때는 학교에서 존중받지 못한 청소년 성소수자 회원이 단체 사무실에서 자살한 일을 경험하기도 했고, KBS 공영방송 이사에게서는 공개적으로 '더럽다'는 말을 듣기도 하는 등 '차별'은 늘 삶 가운데 있어 왔다.

성소수자들이 경험하는 차별은 '그럴 것이다'라는 추측이 아니라 구체적인 통계로 확인되고 있다. '한국 LGBTI 커뮤니티 사회적 욕구조사'에서 응답자 41.5%가 차별이나 폭력을 직접 경험한 적이 있다고, 67%가 직장 내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조롱이나 차별이 자주 발생한다고 답했다. '성적지향·성별정체성에 따른 차별 실태조사'에서는 54%의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괴롭힘을 경험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실시한 '2016년 국민·전문가·학생 인권의식 조사'에서는 성소수자가 취약집단이 놓인 인권상황 가운데 가장 낮은 평가를 받았고, '혐오표현 실태조사 및 규제방안 연구'에 의하면 온라인 혐오표현 피해를 받은 성소수자는 94.6%에 달한다. 나중으로 미룰 수 없는 차별의 경험들은 계속 발견되고 있는데, 차별금지법조차 제정할 수 없다는 게 주류 정치권의 입장이라는 것이 개탄스럽기만 하다.

차별금지법, 다시 살려야 할 불씨

주먹 불끈 쥔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로 확정된 문재인 전 대표가 3일 오후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제19대 대통령후보자 수도권·강원·제주 선출대회에서 지지자들을 향해 두 주먹을 불끈 쥐어보이고 있다.
▲ 주먹 불끈 쥔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로 확정된 문재인 전 대표가 3일 오후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제19대 대통령후보자 수도권·강원·제주 선출대회에서 지지자들을 향해 두 주먹을 불끈 쥐어보이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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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정부가 추진했던 차별금지법 제정을 다시 추진할 것이다."
"단 한 사람의 인권도 소홀히 않는 사회를 만들겠다."
"사회적 배제가 없도록 차별금지법 제정을 통해 성소수자들이 동등한 시민으로 생활할 수 있도록 인권을 보장하는 사회정책을 추진해 나가겠다."
"포괄적 차별금지법, 인권교육법을 제정하겠다."

지난 18대 대선에 나섰던 당시 민주당 문재인 후보의 답변이다. 5년이 지났다. 앞서도 말했듯이 여러 연구결과들을 통해 성소수자들이 경험하는 차별의 사례는 구체적으로 드러났고, 통계적으로도 매우 심각한 상황임을 확인하고 있다.

한국의 성소수자 인권 상황을 우려한 국제사회는 한국 정부를 압박하며 유의미한 권고를 발표했다. 2012년 UN 국가별 인권상황 정기검토(UPR)에 이어 2015년 유엔 자유권 규약위원회 역시 성적지향 및 성별정체성을 근거로 한 차별을 포함한 모든 종류의 차별을 규정하고 금지하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채택하여야 한다고 권고했다. 한국정부는 1년 이내 이행상황을 보고해야 했지만 이마저도 성실히 보고하지 않았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16년 11월 차별금지법 제정 권고 내용을 포함한 의견표명을 발표하며 한국 정부가 유엔의 권고를 제대로 이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객관적인 상황을 보면 민주당이 성소수자 인권에 대해 후퇴한 입장을 보이는 것은 국내외 정세를 판단해 결정한 것이 아니라 100% 보수교계 혐오세력의 눈치, 압력 때문이다. 국제적 흐름의 권고내용을 인용하기보다 '사회적 합의', '시기상조'라는 말을 택했다.

그렇다면 차별금지법은 성소수자들만을 위한 법인가. 그렇지 않다. 우리 사회는 다양한 차별의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한 채 회복 불가능한 상태가 되어 가고 있다. 성소수자에 비해 이성애자로서의 자신이 우위에 있는 듯 보이지만 그것은 착시현상에 지나지 않는다. 성별, 장애, 출신국가, 언어, 고용형태, 가족형태, 학력, 병력, 용모 등 신체조건, 혼인여부, 전과 등 우리 사회에는 다양한 차별사유가 존재한다.

그리고 차별금지법은 차별이 무엇인지 정의하고, 다양한 차별들을 예방하기 위해 존재하며, 문제해결을 위해 최소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는 법률이다. 인권의 순위를 정하는 것이 아니라, 차별금지라는 인권의 원칙을 실현해야 한다는 사회적 약속을 강조하는 법률이기도 하다.

국가인권위원회법이 있기 때문에 괜찮다고? 무시하면 그만이다. 정치인들의 말장난이자 핑계에 불과하다. 차별과 혐오를 선동하는 세력은 이제 국가인권위원회법마저 개정하자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차별금지법은 '동성애를 조장하고, 종교의 자유를 제한하는 법률'로 오해받아 왔다. 아니 그렇게 선동하면서 차별금지법 논의를 동성애-반동성애 구도로 제한시켜버렸다. 그 사이 차별은 자신과 상관없는 문제가 되었고, 차별금지법 제정이 우리 사회를 어떻게 변화시켜 나갈 것인지, 차이의 가치를 어떻게 하면 돋보이게 만들 수 있는지 유의미한 토론의 쟁점들은 사라져버렸다.

차별금지법 제정에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것은 보수 교계의 주장을 넘어서지 못하는 것이고, 또 그들이 주장하는 논리에 갇혀 자신이 경험하고 있는 차별에 대해서 판단할 수 있는 힘조차 없다고 선언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유력 정치인들이 차별금지법 제정에 유보하는 태도를 보일 때 오히려 '나중에'를 외칠 것이 아니라, 나의 인권도 나중이 될 수 있음을 인지하고, '지금 당장 차별금지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함께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차별금지법은 성소수자뿐만 아니라 '나중에'를 외쳤던 당신을 위한 법이다. '평등'이라는 소중한 인권의 가치를 공감할 수 있는 힘. 차별금지법 제정은 시작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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