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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13일 페이스북에 게시물이 올라왔다. 순천 촛불집회에서 일명 '촛불 사진작가'라 불리는 박동춘씨(55세)는 "박근혜 탄핵 인용 촛불시민 대잔치"란 제목으로, "2016-17년 추운 겨울 찬바람을 맞으면서 기꺼이 함께했던 순천 촛불시민과 박근혜 탄핵인용의 기쁨을 나누고자 조촐하게나마 자리를 준비하오니, 함께 하실 분 100분을 모시고 '대한민국의 봄'을 맞이하고자 한다"라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이틀 후인 15일 오후 5시, 금당고 인근 오리요리전문점 '정상오리'에서 박씨가 준비한 파티가 열렸다. 뒤늦게 온 이들까지 포함하면 90명이 훌쩍 넘었다. 그중에는 촛불집회에서 마이크 잡고 대통령이 무노동 무임금을 지키지 않는다며 비난한, 눈치 없는(?) 공무원인 임종기 시의회 의장 그리고 탄핵인용 축하 집회에서 춤도 추고, 시민에게 나눠주던 어묵도 같이 먹으면서 한껏 즐기던 이복남 시의원도 있었다. 순천시장은 오질 않았다.
순천촛불시민들이 함께 모여 단체사진으로 흔적을 남겼다.
▲ 단체사진 순천촛불시민들이 함께 모여 단체사진으로 흔적을 남겼다.
ⓒ 박동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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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석자들은 식사 전에 "박근혜 파면! 촛불 승리! 새로운 나라 건설!"이라 적힌 현수막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이 순간만큼은 사진작가도 카메라 사랑을 받느라, 의장의 비서가 카메라맨으로 즉석 캐스팅되었다. 현수막은 박씨가 박근혜 퇴진 순천 시민운동본부에서 기증받았다.  

박씨의 안내를 받으며 식당에 들어가니, 메인 홀 벽면 두 곳에 걸쳐 기다란 직사각형의 현수막이 붙여져 있었다. 현수막은 촛불 사진작가란 별명답게 그간 매회 찍은 400장 이상, 마지막 25차 촛불집회까지 하면 1만 장이 넘는 사진 중에서 눈이 빠지라 모니터 보며 고른, 촛불시민들의 사진으로 가득했다.

그 중앙엔 "촛불시민 새로운 대한민국이 마중물입니다"란 문구가 쓰여 있었다. 2차로 최종 정예요원 6명이 간 호프집에서 박씨가 이런 말을 했다. "촛불집회를 다니며 역사를 더 알게 되었다. 역사는 흔적이다. 결국은 우리 스스로가 촛불의 흔적을 남겨야 한다." 그는 집회 때마다 택시 운전대를 몇 시간 놓는 대신에, 카메라에 그 흔적들을 차곡차곡 남겼다. 언젠가 지역의 <광장신문>에서 커버스토리에 필요하다며 집회 참석자들 사진을 요청하자, 신문사까지 직접 와 건네주며 무료로 도와주었다.

이 현수막에 숨은 이야기가 또 있다. 인쇄광고업을 하던 박씨의 지인 이승철씨는 자다가 일어나 얼떨결에 밑지는 일을 맡게 되었다. 참고로 박씨는 택시 운전을 하기에 아침 8시 반에 집에서 나와 새벽 1시까지 밖에서 돌아다닌다. 식사와 휴식을 위해 잠깐씩 식당과 근처에 위치한 집에 들르는 시간을 제외하고 말이다.

이씨는 지인이 현수막 제작을 의뢰하자 사진 두어 장을 갖고 올 거로 생각했는데, 150장인 것에 뒤로 넘어질 뻔했다. 그런데 점입가경으로 박씨가 커다란 나무 한 그루에 꽃이 가지에 매달린 것처럼 사진 150장 하나하나 원형으로 달아 주라 태연하게 주문하는 것이 아닌가. 이에 이씨가 작업만 3~4일 걸린다고 대답하자, "그럼 사장님 편한 대로 해서 카톡으로 먼저 보내 주쇼"라고 박 씨가 대답하여 바로 협상 타결. 이 씨는 좋은 일 한다 하니 본인도 돕기로 하여 6만 원에 해주었다.

십전대보탕으로 시작된 푸짐한 촛불집회 쫑파티

박씨는 참석자들에게 "현수막은 대선이 있는 5월 9일까지 걸어두고 요금도 10% 할인할 건데, 이 사진 속에 있는 사람은 소주 1병 무료제공"이라 말하면서, "선거 때 투표 꼭 해야 합니다"라고 강조했다.    

메뉴는 조촐한(?) 7만 원짜리 십전대보탕으로, 박씨의 스폰서(?)인 주인장이 오리 1마리에 산낙지와 전복 친구들까지 자꾸 초대하여 모두들 마무리 죽까지 먹느라 힘들었다. 게다가 술과 음료, 반찬 무제한 서비스에, 당일 저녁 참석자 이외 손님은 아예 받질 않아서 10시 무렵까지 느긋하게 즐겼다. 박 씨는 "100명으로 한정한 것은 식당에서 받을 수 있는 최대인원이 100명이어서"라고 밝혔다.

박씨는 그간 집회할 때 "형님 막걸리 한잔 하고 가세요"란 말을 종종 들었는데, 행진까지 끝나고 나면 본업인 택시 운전을 해야 하는 데다, 가능한 한 사진을 얼른 정리해서 순천 촛불밴드에 소식도 전해야 하니 거절해서 아쉬움이 남았다고 털어놓았다.

그런데 3월 10일 탄핵인용으로 마지막인 25차 11일 촛불집회를 하면서도 그간 참석했던 모두가 어우러지는 '쫑파티'가 없으니 더욱 서운할 수밖에. 그간 몇 달 동안, 전에는 서로를 전혀 모르던 이들이 '촛불' 테두리에서 적게는 몇십 명부터 몇천 명이 함께 했는데, "그냥 소주 한 잔도 없이 헤어지기"가 너무 싫었다. 그래서 평소처럼 비빌 언덕인, 아내에게 가서 이야기했다. 그러자 "집사람이 "알아서 하소"라 하던데"라 말하여, 이 일을 벌일 수 있었노라 고백했다. 

부창부수 부부가 살아온 길

박씨는 22살 때, 당시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19살 김현숙씨와 영화관에서 처음 만났다. 둘 사이에는 현재 85년생인 33살 딸이 한 명이 있는데, "낼모레 나도 손주 봐"라며 웃었다. 박 씨는 처음부터 택시 운전을 했던 것은 아니었다.  50대 나이에 중풍으로 쓰러진 부친을 간호하느라 다니던 회사에서 휴직했다가 결국 그만두었다.

그런데 당시 현대자동차 23년 역사에 본인이 아픈 것이 아닌, 가족이 아파서 두 달간 휴직한 사람은 그가 처음이었다고 한다. 원래 한 달만 휴직하려 했는데, 욕창까지 와 도저히 아내 혼자 감당하기엔 무리여서 연장하다 결국 퇴사에 이르렀다. 그는 회사에 "아버지가 아픈데 그럼 그냥 두고 보냐. 차라리 내가 회사 그만두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양친이 모두 한창나이에 돌아가신, 박씨는 집사람에게 "장인과 장모님에게 잘하겠다"라 말했는데, 지금 처남이 아주 아프다며 표정이 어두워졌다. 원래 강원도 태생인 박씨는, 울산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다 거기에서 회사생활도 했다. 이후 처가가 송광이라 순천이 제2의 고향이 되었다. 

기자가 "남편 내조를 확실하게 해주신다"라며 부러워하니, 옆에서 듣던 '마샌'이 "형수가 예전부터 해오셨던 거라 되었던 것"이라 짧게 말한다. 박 씨가 '마샌'이라 부르는 마성완(43세)씨는 30대 초반이던 시절에, 지개꾼('지역분권과 개혁을 위하여 일하는 일꾼'의 약칭)의 창립멤버로 처음 인연을 맺었다. 그간 그들은 시골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컴퓨터 수리, 도배, 효도사진(영정사진), 짜장면, 이·미용 봉사 등을 해왔다.

참고로 김현숙씨가 양산에서 한 10년간 주방장을 데리고 중국집을 했었는데, 그때 잠 안 자고 요리를 배워서 짜장면 봉사가 가능했다. 컴퓨터는 대학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마씨 덕분이고, 택시 운전기사인 박씨는 손님들과 대화하며 봉사할 곳 정보를 얻고, 사전 답사 등의 역할을 맡고 있다.

마샌이 그리 말하자, 옆에서 반찬 챙겨주던 김씨가 "하고 싶어 하는데, 못하게 하면 뭐해"라며 툭 던지듯 말하더니 다른 테이블로 갔다. 이에 기자가 박씨에게 "전생에 나라를 구했네. 두 번은 구했겠어요"라 말하자, 박씨가 껄껄 웃더니 "집사람이 나에게 하는 말이다. 집사람에게 미안한데, 내가 집사람에게 항상 말하는게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중요한 것은 즐기면서 사는 것'이라 한다"라 대답했다. 그리고 "봉사도 즐기면서 해야 오래도록 할 수 있지"라며 중얼거렸다.

본디 체질상 위가 약한 데다 입도 짧아 소식하는데 이날은 음식이 잘도 들어갔다. 맛이 식당답지 않게(?) 자극적이지 않은 데다, 함께 하면 좋은 이들과 천천히 이야기하며 즐기니, 평소와 달리 과식으로 인한 탈도 나지 않았다.

"요리를 너무 잘하시네요. 오리 잡내도 안 나고. 한약재 냄새도 별로여서 애들도 먹겠어요. 김치랑 반찬도 달지도 짜지도 않은데 맛있고"라 말하며 수저와 젓가락을 쉴 새 없이 놀렸다. 그러자 박씨가 씨익 웃으면서 하는 말. "실은 내가 노사모 회원이라 그분이 봉하마을로 가셨을 때, 한 달에 두세 번씩 아내랑 음식 들고 가곤 했지. 그분이 드시고는 이리 말하던걸. "진작 알았으면 청와대로 불렀을 것"이라고... "

아깝다. 연말에 박 씨가 새해 떡국 나누기 봉사하니 죽도봉 주차장으로 오라 알려줬는데, 늦잠 자느라 가질 못했었다. 내년엔 꼭 가야지. 떡을 150kg 정도 준비했는데, 남아서 함께 준비하던 이들에게 말하고 싸 들고 와 해결사인 김씨에게 전해주었다고 한다. 그러자 김 씨가 식당 손님들에게 봉지에 담아 나눠주며 모두 소진.
최미희 촛불집회 집행위원장이 참석자들과 탄핵인용 축하 건배를 하고 있다.
▲ 촛불들의 탄핵인용 축하 건배 최미희 촛불집회 집행위원장이 참석자들과 탄핵인용 축하 건배를 하고 있다.
ⓒ 박동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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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이왕 사는 거 즐겁게 살아야지"라며 연신 일을 벌이는 남자가 있다. 그의 곁에는 365일 식당에서 쉬지 않고 일하면서도, 봉사도 다니고, 나눠주는 마음 씀씀이는 남편보다 더 푸짐한 아내가 든든하게 버티고 있다. 부디 두 분 모두 건강하시기를... 이날 '부창부수' 부부와 촛불시민들은 즐거운 시간을 그렇게 보냈다.  


태그:#촛불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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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어로 '좋아할, 호', '낭만, 랑', 사람을 뜻하는 접미사 '이'를 써서 호랑이. 호랑이띠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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