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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기록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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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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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기록이 또다시 관심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대통령 파면 이후 '대통령지정기록물 지정 권한'에 관한 논란이 발생했었다. 그리고 최근에는 청와대가 최순실 게이트 이후 문서파쇄기 26대를 집중적으로 구입한 것이 알려지면서 문건 파기 의혹이 불거진 것이다.

물론 현재는 그 이상의 사실을 알 수 없기 때문에 더 이상 정확한 내용을 알 순 없다. 다만, 최근의 일련의 사건은 공공 기록물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고 있다. 사실 2012년 대선 전후 시점에서도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관련해서 큰 소동이 발생한 적이 있었고 그때도 기록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조성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위와 같은 계기로 인하여 공공기록물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관련 보도가 많이 나올 때마다 필자는 매번 큰 아쉬움을 갖고 있었다. 왜냐하면, 공공기록물 관리 및 보존에 있어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역할과 그 의미에 대해서 제대로 설명이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기자는 일련의 사건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공공기록물 관리 및 보존이 민주주의 발전과 깊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많은 사람들이 알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와 같은 문제의식을 갖고 필자는 이 글에서 공공기록의 관리와 보존에 있어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역할과 의미에 대해서 살펴보려고 한다. 거시적으로 접근한다면 공공기록물의 관리와 보존을 민주주의 관점에서 새롭게 해석해보려는 것이다.

공공기록물 관리 보존은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업적

아마 많은 사람들이 <조선왕조실록>을 떠올리면서 대한민국에서도 공공기록물 관리가 체계적으로 이뤄졌을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공공기록물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가 이뤄진 것은 20년도 채 되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 공공기록에 대한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관리는 김대중 정권 때인 1999년에 '공공기관의 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이 제정된 이후부터다. 그때부터 공공기록물의 의미, 중요성 등에 대한 인식이 형성되었고 체계적인 보존 관리가 본격화된 것이다.

그리고 노무현 정권 때인 2007년에는 '대통령 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었다. 이 법에 제정되기 이전에는 대통령기록물이 1999년에 제정된 '공공 기관의 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를 통해서 정리되었다. 그런데 공공기록물 중에서도 대통령 기록물이 차지하는 중요성을 감안하여 이와 같은 별도 입법을 통해 더욱 체계적이고 엄격한 관리를 하고자 한 것이었다.

이와 같은 노력으로 매우 획기적인 발전이 이뤄졌다. 무엇보다 김대중-노무현 정권 이전과 이후 기록물의 양이 극명하게 차이가 난다.

대통령기록관이 공개한 소장 기록물 통계(2015년 12월 31일 자)을 보면 이승만 9만3569건, 박정희 6만9770건, 전두환 6만5618건, 노태우 4만5346건, 김영삼 10만114건, 김대중 77만460건, 노무현 750만2724건이다.

그리고 이 기록물 중에서 문서를 보면 비전자 문서의 경우 이승만 2만4820건, 박정희 5만6658건, 전두환 4만2058건, 노태우 3만8633건, 김영삼 7만4992건, 김대중 30만7190건, 노무현 52만1022건이며 노무현 정권 때부터 통계에 잡히기 시작한 전자문서는 노무현 60만3559건이다.

우선 대통령별 전체 기록물 통계 중에서 김대중 정권 때부터 웹 기록(김대중 41만1876건, 노무현 497만1158건)이 포함되기 시작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특히 노무현 정권 시절부터 기술발전에 따른 업무 방식의 개선 등등의 이유로 해당 자료가 본격적으로 생산되기 시작했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그런데 이것을 감안해도 문서 자료의 경우 5년 단임의 김대중 정권이 남긴 기록물이 김대중 정권 이전 이승만·박정희·전두환·노태우·김영삼 정권 기록물을 합한 것보다도 많다. 사실 이 사실 자체가 매우 충격적이다. 그리고 노무현 정권 때에는 김대중 정권 때보다 증가했다.

이처럼 양적인 차이는 질적인 차이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한국 현대사 연구를 하려면 한국에서 기록을 찾지 말고 미국의 국가기록보관소(내셔널 아카이브, 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mistration)에서 자료를 찾아야 한다는 말은 결코 빈말이 아니었다.

김대중은 태조, 노무현은 세종과 같은 역할을 했다

이처럼 김대중 정부 이전 정부의 기록물 관리가 부실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이유가 있는데 기능적이고 문화적인 이유를 먼저 들자면 기록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했다는 점, 기록의 공적 성격을 인식하지 못했다는 점, 기록 관리를 위한 기반 부족 등을 언급할 수 있다.

그런데 더 중요한 이유는 권위주의 통치자들이 자신들에게 불리한 기록이 남는 것을 원치 않아서 기록 자체를 파기한 경우가 많았고 이것이 하나의 문화로 굳어졌다는 점과 관련이 깊다. 그래서 해당 시기 중요 사건과 정책 결정 등에 있어 정확한 사실관계를 밝히지 못해서 추정만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렇게 볼 때 공공기록물 관리와 보존이 체계적으로 이뤄졌다는 것은 한국 현대사의 발전 특히 민주화의 진전과 궤를 같이 한다고 평가할 수 있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소위 민주 정부로 불리우는 김대중·노무현 정권은 공공기록물 정리 및 보존 등에 있어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이끌어냈었다. 비유하자면 이 부분에서 김대중 정권은 태조와 같은 역할, 노무현 정권은 세종과 같은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대한민국이 공공기록물 관리에 있어서도 선진국과 비슷한 반열에 오를 수 있도록 했었다. 이는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의 매우 중요한 성과 중의 하나다.

사실 이 부분 발전에 있어 김대중·노무현 정권이 크게 기여했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잘 모른다. 아마 김대중·노무현 지지자들 중에서도 모르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그런데 이 내용은 상당히 중요하다. 공공기록물 관리 및 보존도 민주주의 발전의 산물이라는 점을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알 필요가 있다.



태그:#기록물, #김대중, #노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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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 박사이며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에서 사료연구 업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김대중에 대한 재평가를 목적으로 한 김대중연구서인 '성공한 대통령 김대중과 현대사'(시대의창, 2021)를 썼습니다.

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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