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모니카 비커트는 페이스북 정책 책임자다. 또한 사우스 바이 사우스웨스트(SXSW)는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에서 매년 봄(대개 3월)에 열리는 대규모 문화 페스티벌, 콘퍼런스다. 영국 <더 가디언>의 12일 보도에 따르면, 비커트는 지난 토요일 밤 SXSW의 '인터넷을 회복하자: 극단주의에 맞서서' 패널로 참석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제안을 하나 했는데 내용이 흥미롭다. 그는 우선 소셜 미디어가 익스트리미즘과(extrimism, 극단주의) 헤이트 스피치(hate speech, 증오 발언)에 맞서 싸울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러나, 단순히 극단주의자들의 게시물들을 삭제하는 것 외에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고 주문한다.

"우리는 폭력적 극단주의가 공동체에 타격을 가하는 것을 완벽히 방지할 수 있고 기술 회사들이 존재한들, 이것만으로는 사람들의 마음을 바꾸고 폭력적 극단주의가 퍼지는 상황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페이스북 정책 책임자인 모니카 비커트.
 페이스북 정책 책임자인 모니카 비커트.
ⓒ 인디언익스프레스 유튜브 캡쳐

관련사진보기


비커트는 분란이나 조롱으로 가득 찬 게시물에 대해 군중에 의한 '카운터 스피치(counter-speech)'라는 대응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오해 말자. 여기서 '카운터'란 누가 증오 발언을 했다고 똑같이 증오 발언을 해주자는 뜻이 아니다.

"최선의 해결책은 사람들이 생각할 수 있게 또 (극단주의에) 도전할 수 있게 해주는 이데올로기를 얻을만한 좋은 발언입니다. (말하자면) 우리는 폭력적인 서사에 맞서기 위해 그러한 좋은 목소리들을 증폭시키는데 중점을 둡니다."

여기서 '좋은 발언'이란 뭘까. 힌트는 지금 페이스북이 하고 있는 일의 성격을 보면 얻을 수 있다. 페이스북은 현재 미 국토 안보부 '반 폭력적 극단주의 태스크포스'와 분석 회사 에드벤쳐 파트너(EdVenture Partners)와 제휴하여, 증오와 극단주의에 맞서는 켐페인에 기금을 지원하고 있다.

이 캠페인은 대학생들에게 ISIS와 신나치주의 그룹에 유인된 사람들의 마음을 바꾸기 위한 프로토타입(기본 모델)과 디지털 미디어 운동을 설계해볼 기회를 주고 있다. 왜 학생들을 앞세우는 것일까? 왜냐하면 카운터 스피치 발언자가 누구냐가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비커트는 "(사람들이) 신뢰할 수 있을 만한 발언자가 필요합니다"라고 말했다.

이어서 정부 관계자나 기술 회사 중역은 "젊은이들이 젊은이들의 커뮤니티에 목소리를 내는 것과 같은 공명을 가능하게 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와 비슷한 취지로, 미 국토 안보부의 매튜 라이스 디지털 주무관 역시 "정부는 이 공간에서 활동하기에 최고의 적임자가 아니"라는데 동의했다.

이 프로그램은 2015년에 론칭했으며, 로체스터 기술 연구소 학생팀의 "때가 됐다: 익스아웃 익스트리미즘(It's Time: ExOut Extremism)"이라는 프로젝트가 우승을 차지했다. 그리고 이 학생들은 동영상, 인포그래픽 및 기타 교육 도구와 자원들을 만듦으로써 침묵을 지키던 사람들이 극단주의자들의 콘텐츠에 맞서 싸울 수 있는 권위를 주는 활동을 해왔다.



익스아웃(ExOut)의 CEO인 올리비아 호크는 "급진화되는 사람들은 (결국) 동지애, 공동체를 찾는 것이더라구요"라고 말했다. 이어서 "만약 상대에게 '당신 틀렸어' '당신 생각은 멍청해'라고 말하면, 의견을 바꾸지 않습니다. 그러나 유머를 사용하면, 보다 공동체 의식을 공유하고 (비로소) 스파크가 튑니다"라고 말했다.

긍정적인 메시지를 던지는 게 부정적인 메시지를 던지는 것보다 훨씬 효과가 있다는 설명이다. 호크는 "누군가를 테이블에 앉히는 것을 불편하게 만들면, 당신은 결코 그와 대화를 할 수 없습니다"라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이런 식의 '카운터 스피치'의 사례를 국내에서 찾을 수 있을까? 물론이다. (페이스북의 지원을 받는 것은 아니지만) 국범근씨가 페이스북에서 운영하는 '쥐픽쳐스', 부산시 유튜브 채널 '다이내믹 부산'이 만든 20대 청년의 노인 체험 영상 등이 대표적이다.



최근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된 이후 연세가 많으신 어르신들이 격앙돼 경찰과 충돌하고 두 분이 사망하는 등의 인명 피해가 있었다. 물론 박근혜 탄핵에 승복하지 못하는 이분들의 주장에 동의할 사람들은 많지 않다. 최근 여론조사에 의하면 6% 정도일 것이다.

그러나 상대의 주장에 동의하느냐 마느냐는, 상대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느냐 마느냐와는 별개의 문제다. 후자는 아주 기본적인 차원의 문제이며 '공동체' 자체가 성립하기 위한 기본적인 조건이며, 인간 존중이다. 비록 어르신들의 주장에 동의할 수 없고 이분들과 아옹다옹 살아가는 것이 무척 피곤한 일일지라도,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애정이 있다면 냉소와 조롱은 멈춰야 한다.

최근 인터넷에서는 어르신들을 '틀니 딱딱충(틀딱충)'이라 조롱하며 본인 스스로도 노인혐오자가 되는 모순에 빠진 일부 청년들을 볼 수 있다. 또한 백남기 농민이 물대포를 맞아 사망했을 당시 '이유가 뭐든 간에' 살인적인 국가 폭력은 비판받아 마땅하다던 깨어있는 시민들이, 태극기 집회 참가자 어르신들에게는 물대포를 쏘라고 야유하는 댓글을 다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이것은 실망스러운 일이다.

조롱은 민주주의를 나아가게 하는데 하등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정치학자 켈젠이 말하듯, 민주주의는 적도 가슴에 품고 가야 하는 제도다. 인구의 6%를 없애버릴 수는 없다. 우리에게는 오히려 '카운터 스피치'가 필요하다. 쥐픽쳐스나 다이내믹 부산의 동영상은 청년들이 어르신들에 대한 내재적 이해를 시도하고, 또 그 내용을 같은 청년들에게 전한다.

이와 같은 콘텐츠들은 시민사회 구성원들 간의 상호의 이해의 지평을 넓혀 혐오 없는 세상을 앞당기는데 기여하고 있다. 반면에 상대에게 물대포를 쏘라고 야유하는 행위는 상대의 존재 자체가 삭제되기를 염원함으로써 '공동체'가 성립할 수 없게 만들 뿐이다. '나'의 존재는 언제나 '나'와 구분되는 '너'의 존재를 전제하기 때문이다.


태그:#페이스북, #노인혐오, #틀딱, #태극기 집회, #박근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