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판 삼김시대의 말년이 아름답지 못하게 저물고 있다. 김응용 대한소프트볼야구협회장, 김성근 한화 이글스 감독에 이어 김인식 국가대표팀 감독도 지도자 인생 말년에 '흑역사'를 피하지 못했다.

이들 '삼김'은 한국 현대야구사를 논할 때 누구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거물들이다. 나란히 1940년대생으로 프로 1세대 감독으로 활약하며 KBO 통산 최다승 1~3위를 삼분했으며, 세 사람이 합작한 우승 횟수만 15회에 이른다.

자신만의 확고한 야구관과 지도철학을 바탕으로 한국야구의 트렌드를 이끌거나 후배 야구인 육성, 현장과 행정 분야에 이르기까지 큰 영향력을 남겼다. 이들이 걸어온 야구인생이 곧 한국야구사 그 자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공교롭게도 이들 3인방이 모두 한화의 전-현 감독이라는 것도 기묘한 인연이다.

하지만 KBO 역대  최고의 명장들로 추앙받던 삼김의 지도자 인생 말년은 하나같이 초라했다.

초대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장 김응용 전 감독 당선 김응용 전 한화이글스 감독이 30일 오후 서울 송파구 방이동 서울올림픽파크텔에서 열린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장 선거'에서 회장으로 선출되어 당선 인사를 하고 있다.

김응용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장 ⓒ 연합뉴스


한국시리즈 10회 우승에 빛나던 김응용 회장은 2004년 삼성 사장에 취임하여 현장을 완전히 떠난 듯했으나 9년 만인 지난 2013년 돌연 한화 사령탑에 부임하며 화려하게 귀환했다.

그러나 김응용 회장이 한화 복귀 이후 남긴 성적은 2시즌간 91승 3무 162패로 승률은 고작 3할 6푼에 불과했다. 전성기였던 해태와 삼성 시절 승률이 무려 5할 6푼 5리(1,463승65무1,125패)에 이르렀던 것을 감안하면 초라하다. 한화는 당시 신생팀 NC에게도 뒤진 'KBO 역사상 첫 9위 및 2년 연속 꼴찌'라는 최악의 성적표만 남기고 김응용 시대는 초라하게 막을 내렸다. 김 회장은 이후 감독직 완전 은퇴를 선언했고 지난해 대한야구소프트볼 협회 회장 선거에 당선되어 행정가로 또다른 야구인생을 이어가고 있다.

 한화 김성근 감독

한화 김성근 감독 ⓒ 한화 이글스


김 회장이 물러난 직후 후임자로 등장한 인물이 바로 지금의 김성근 감독이다. SK 와이번스와 독립구단 고양 원더스 등에서 특유의 '스파르타 훈련'과 '감독 중심의 야구'를 표방하며 신드롬을 일으켰던 김성근은, 김응용도 재건하지못한 한화를 암흑기에서 구원할 구세주로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한화는 김성근 감독 부임 이후에도 지난 두 시즌간 가을야구 진출에 또다시 실패하며 포스트시즌 좌절이 9년 연속으로 더 늘어났다. 표면적으로는 2015년 6위, 2016년 7위로 만년 꼴찌였던 김응용 시절보다는 나아진 것 같지만, 김성근 감독이 전임자들과 비교할 수도 없는 파격적인 투자 지원과 전권까지 보장받았고, 10구단 시대를 맞이하여 가을야구가 5강까지 문호가 넓어진 것을 감안하면 명백한 실패였다.

오히려 김 감독은 성적뿐만이 아니라 구시대적인 야구관과 독선적인 리더십으로 선수 혹사, 비매너 야구, 유망주 유출과 노쇠화, 구단-팬들과의 불화 등 숱한 논란을 자초하며 구단 이미지에도 큰 흠집을 남겼다. 팬들의 경질여론이 빗발치는 가운데 한화 구단은 고심 끝에 일단 김 감독을 유임하고 3년 계약의 마지막 시즌을 보장하기로 결정했지만, 대신 박종훈 신임단장을 중심으로 프런트의 권한을 강화하며 김 감독에게 집중된 권력을 회수한 것은 사실상 김성근 야구가 실패했음을 인정한 것으로 평가된다.

 지난 8일 오후 서울 구로구 고척 스카이돔에서 열린 2017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한국대표팀 훈련에서 김인식 감독이 생각에 잠겨 있다.

지난 8일 오후 서울 구로구 고척 스카이돔에서 열린 2017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한국대표팀 훈련에서 김인식 감독이 생각에 잠겨 있다. ⓒ 연합뉴스


삼김시대 대망의 마지막 흑역사를 장식한 것은 막내 김인식 감독이었다. 김인식 감독이 이끄는 야구대표팀은 2017 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서 이스라엘과 네덜란드에 연패하며 안방에서 2회 연속 1라운드 탈락이라는 굴욕을 당했다. 마지막 대만전에서 승리하며 최소한의 자존심은 지켰지만 경기 내용은 마지막까지 졸전이었던데다 선수구성과 용병술 등에서 많은 문제점을 드러내며 팬들의 질타를 피할수 없었다.

김인식 감독은 앞선 '양김' 형님들에 비하여 프로보다는 대표팀에서의 영광으로 더 평가받았던 인물이다. 김인식 감독은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금메달)을 시작으로 2006년 초대 WBC(4강), 2009년 2회 대회(준우승), 2015년 프리미어 12(우승) 등을 지휘하며 15년가까이 대표팀에서 불패 신화를 작성하여 '국민 감독'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하지만 하필이면 그의 지도자 인생에서 마지막 대표팀 경력이 될 수도 있었던 이번 WBC에서 최초이자 가장 뼈아픈 실패를 경험하며 그동안의 명성에도 큰 흠집을 남기고 말았다.

물론 승패는 병가지상사라고 했다. 최근의 실패만이 부각되어 그들이 과거에 이뤄온 업적과 역량이 모두 폄하당하는 것도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누구보다 풍부한 관록과 경험을 지닌 백전노장들이 유독 야구인생 말년에 하나같이 쓰디쓴 실패를 반복했다는 것은 단지 우연이나 불운으로만 치부하기는 힘들다. 바로 흘러간 과거의 성공방식과 패러다임에만 안주하며 시대의 변화를 따라잡지못한 '옛날 감독들'의 한계를 드러냈다고 할수 있는 장면이다.

삼김이 지도자로 한창 활약하던 시대의 야구는 체계화된 '시스템'보다는 개개인이나 리더 의 역량에 의존하는 1인 리더십에 대한 환상이 강했다. 감독의 능력만으로 승부를 좌우할 수 있다는 믿음이 통하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오랜 세월을 거치며 현대야구는 엄청나게 발전했다. 프런트 야구, 스태프의 분업화-전문화, 세이버매트리스같은 각종 야구통계 등으로 야구를 한층 과학적-이론적으로 접근하고 분석하려는 시도가 보편화됐다.

안타깝게도 삼김은 지도자로서 이런 현대야구의 흐름을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도 시대에 뒤떨어져 있었다.

김응용 회장은 프로 초창기 시절을 제외하면 해태나 삼성처럼 항상 선수 층이 풍부하거나 구단의 지원이 확실하게 보장된 강팀에서 좋은 성적을 내온 감독이었다. 김 회장은 당시로서는 시대를 앞서간 자율야구를  펼친 감독이기도 했다.

하지만 만년 꼴찌팀이던 한화는 단지 코치진에게 역할을 맡기고 방임만 하거나, 몇몇 젊은 선수들에게 무작정 기회를 몰아준다고 해서 바로 '리빌딩'이 이루어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결국 김 감독은 임기 말년에는 '한화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왔다'며 자신의 준비 부족을 스스로 인정했을 정도다.

김인식 감독은 흔히 '믿음의 야구'로 평가받는다. 자신이 선호하는 선수들을 중심으로 마음껏 역량을 펼칠 수 있도록 믿고 기다려주는 스타일은 잘 풀릴 때는 가장 이상적인 야구처럼 보인다. 하지만 반대의 상황에서 보면 쓰는 선수들만 돌려 기용하고 변화와 임기응변이 부족한 '철밥통 야구'가 될 수도 있다는 게 부작용이다.

2017 WBC는 김인식 야구의 단점들이 폭발한 대회이기도 했다. 물론 이런저런 이유로 최상의 선수들을 소집하지 못한 구조적인 한계도 있었지만, 그나마 구성한 대표팀에서도 정작 발탁 기준이나 대회 당시 컨디션에서 의문부호가 붙는 선수들이 많았다는 것은 김인식 감독의 패착이었다고 밖에 할 수 없다. 돌이켜보면 그가 마지막으로 프로팀 지휘봉을 잡았던 한화에서도 초반에는 선전했으나 결국 세대교체 실패와 특정 선수에 대한 의존하는 야구로 몰락한 것이 결국 대표팀에서도 되풀이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김응용 회장과 김인식 감독이 앞으로 지도자로 다시 복귀할 가능성은 낮다고 했을 때,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이제 김성근 감독뿐이다. 하지만 김 감독의 미래도 현재로서는 그리 밝은 편은 아니다. 계약기간이 불과 1년을 남겨놓은 가운데, 한화의 전력은 예년보다 더 고령화되었고 감독의 실질적인 권한은 줄었다. 아직 시즌이 개막도 하기 전임에도 김성근 감독이 프런트-구단과 불화를 겪고 있다는 소문이 공공연하게 떠돌 정도다.

김성근 감독은 어쩌면 김응용-김인식보다도 더 철저한 감독 중심의 야구를 신봉하는 인물이다. 그나마 최소한 신뢰하는 선수들을 중심으로 자율성을 보장하는 두 감독에 비하여 김성근은 철저하게 선수를 장기판의 말이나 언제든 소모가능한 부속품처럼 다룬다는 게 가장 큰 차이점이다. 잦은 퀵후크와 벌떼야구, 혹사에 대한 무개념과 과도한 훈련강박증 등 시스템아니 데이터보다 '감독 개인의 주관적 신념이나 경험에만 의지한 야구를 일반화하려든다'는 오류는 어쩌면 삼김을 관통하는 공통적인 실패 요인이다. 김성근 감독은 삼김 중에서도 가장 낡은 야구관을 지금까지 고집하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어떤 빛나는 경험이나 연륜도 끊임없는 혁신과 성찰을 통해서만 발전할 수 있다. 어른이라고 해서 옛 경험이나 가치관만을 주장하며 변화의 필요성을 부정한다면 결국 어른이 아니라 꼰대로 변질될 수밖에 없는 법이다. 한때 한국야구를 대표하는 노장들의 실패는 후배 야구인들에게도 진화하지못하면 도태된다는 교훈을 남기는 냉정한 반면교사로 여겨야 할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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