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오후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2017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서울라운드 한국 대 대만 경기. 연장 10회 혈투 끝에 11-8 승리를 거둔 대표팀이 고개숙여 인사하고 있다.

지난 9일 오후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2017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서울라운드 한국 대 대만 경기. 연장 10회 혈투 끝에 11-8 승리를 거둔 대표팀이 고개숙여 인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


역대 최초로 홈에서 치러진 2017 WBC 1라운드는 역대 WBC 사상 최악의 성적으로 불과 두 게임 만에 광속으로 탈락이 확정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하지만 결과를 두고 참담한 기분보다는 올것이 왔다는 초연함이 더 앞서게 된다.

어찌 보면 탈락은 당연한, 아니 어쩌면 이미 겪었어야 될 결과였다. 2015 프리미어12 첫 경기에서 맞붙은 일본의 오타니라는 괴물투수 앞에 대한민국 타자들은 압도당했다. 준결승에서 일본과 다시 맞붙었을 당시에도 똑같은 상황이 반복되었다. 하지만 상대팀 고쿠보 감독마저 오타니라는 존재에 매료당한 나머지 판단력을 상실했고, 결국 오타니의 공에 적응된 대한민국 타자들이 기적처럼 일본의 구원투수들을 연달아 공략하면서 믿기지 않는 역전극을 연출했다.

2015 프리미어 12의 한 장면

고쿠보 감독이 잠시나마 대한민국 야구에 산소호흡기를 달아준 것이었다. 만약 당시 준결승이 오타니 앞에 그대로 완패 당한 상태로 마무리 되었다면 한국 야구는 조금이라도 더 빨리 성찰할 기회를 모색했을 것이다. 그리고 오타니 같은 영건을 키워내는 일본야구의 저변과 육성 체계를 조금이라도 더 많이 배우려 했을 것이다.

이미 예전 포스트에도 언급했지만 대한민국 프로야구는 2012 시즌 정점을 찍은 이후 지속적으로 하락세를 거듭하고 있다. 구단 수 확대, 최신 인프라의 신식구장 도입(광주, 대구, 고척, 수원) 등으로 800만 관중시대를 열었지만 늘 붕괴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과연 경기 수준이 그에 맞게 업그레이드되고 있는지 지금부터라도 치열한 고민을 거듭할 필요가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새로운 얼굴의 부재다. 부재다 못해 고사 직전이다. 특히 투수 쪽을 살펴보면 2005년 오승환, 2006년 류현진, 한기주, 장원삼, 2007년 김광현, 임태훈, 2009년 양현종(2007년 입단했으나 본격적으로 선발진에 합류하게 된 년도로 표기) 이후 새로운 영건이 전혀 눈에 뜨이지 않고 있다.

2008년 이후 1차 지명에서 주목을 받았던 투수들을 언급해 보면 다음과 같다. 2008년 이형종(LG), 2009년 성영훈(두산), 2010년 신정락(LG), 2011년 유창식(한화), 한승혁(KIA), 2012년 한현희(넥센), 김원중(롯데), 2014년 윤형배(NC) 등이 언론을 통해 많은 관심을 받았던 투수들이었는데, 이중에 한현희(넥센)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리그에서 주목할 만한 활약을 펼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유창식의 경우 승부조작에 연루되어 스포츠 면이 아닌 사회면에서 더 주목을 받는 불상사를 일으키기도 했다.

이제 류현진, 김광현이 국가대표 마운드에서 에이스 대우를 받게 된 지도 10년이 다 되어간다. 10년의 시간 동안 이들을 위협할 만한 영건이 등장하지 않았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이다. 매번 대표팀 선발 때마다 언제까지 류현진, 김광현 타령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비싼 계약금을 받고 프로에 들어왔으나 재활에 수년 동안 매달리는 경우도 허다하게 발생한다. 가장 중요한 시기에 성장이 멈추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악순환의 근본 원인부터 면밀하게 짚어 볼 필요가 있다.

아마 야구, 근본적인 개혁 필요

결국 아마야구의 근본적인 개혁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제도적으로 강력한 개혁이 선행될 필요가 있다. 특히 유망주 투수들이 프로에 가서 제대로 활약도 펼쳐보기 전에 수술대로 직행하는 경우가 이제는 당연한 코스처럼 여겨지고 있다.

그릇된 인식을 가진 지도자들에 대한 강력한 규제가 뒤따라야 된다. WBC에서 적용하는 투구수 제한 규정을 반드시 도입해야 한다. 현재 고교야구 1경기 투구수 제한규정은 130개로 되어 있다. 그것으로는 부족하다. 1경기에서 100개 이상 투구 시, 다음 경기는 출장을 제한시키는 규정을 도입해야 한다. 그리고 전국 대회 진행 기간 동안 총 투구수에 대한 제한 규정을 도입하여 1, 2선발만으로 투수진을 운영하는 기형적인 폐단을 철폐시켜야 한다.

규정을 위반하는 학교에 대해서는 1년 동안 전국대회 출전자격을 박탈하는 등의 강력한 제제규정을 도입하여 반드시 투구수 제한 규정을 준수하도록 강제할 필요가 있다. 더 이상 어린 투수들의 팔꿈치와 어깨를 담보로 자신들의 안위만을 챙기려는 이기적인 지도자들이 발을 들일 수 없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할 것이다.

비단 유망주 부족현상은 투수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타자 쪽은 더욱 심각하다. 최근 신인 지명에서 대형타자 기근 현상은 해가 갈수록 정도가 심해지고 있다. 모든 고교야구 타자들이 똑딱이 스타일로 도배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대형타자들의 씨가 말라가고 있다.

2004년부터 아마야구 대회에 나무배트를 도입한 이후 어린 선수들의 타격 기술은 점점 후퇴하고 있는 모양새이다. 국내 프로야구에서 가장 최근까지 거포로 위력을 떨쳤던 박병호 이후 토종거포의 명맥은 사실상 끊긴 상황이다. 공교롭게도 박병호는 알루미늄 배트를 사용했던 아마야구의 마지막 세대였다.

언제까지 나무배트를 고집하여 어린 대형 유망주들의 성장을 제한시키려 들 것인가. 다시 알루미늄 배트 시절로 회귀해야 한다. 그래야 어린 투수들이 강속구 연마에 더욱 힘을 기울일 것이고, 어린 타자들은 자신감을 향상시킬 수 있게 될 것이다.

1982년 프로야구 출범 이후, 대형 신인들의 등장은 리그에 활력을 불어넣어 줌과 동시에 대한민국 야구를 진화시키는 원천이 되었다. 또한 1982년 세계야구 선수권 우승과 더불어 불어 닥친 야구 붐은 훗날 2000년 애드먼턴 세계 청소년 야구 선수권 대회 우승의 영광으로 이어졌고, 당시의 주역들인 이대호, 추신수, 김태균, 정근우, 이동현, 오승환 등은 지금도 한국야구의 중심으로 맹활약 중이다.

1983년에 대거 입단한 세계 야구선수권 대회 우승 주역들인 장효조, 최동원, 김시진, 박종훈, 유두열, 이해창, 오영일 등은 프로야구 초창기 인기몰이 및 질적수준 향상에 큰 기여를 했고, 이후 1988 올림픽 출전으로 인해 프로진출에 발이 묶여 있다가 1989년에 대거 입단한 송진우, 이강철, 강기웅, 노찬엽, 최훈재, 이광우, 류명선 등은 프로야구 제2의 중흥기의 중심에 서게 된다.

1990년대가 시작되면서 프로무대에 데뷔한 김동수, 박동희, 김경기, 박정태, 김기태, 전준호, 조규제 등은 1989년에 입단한 대형신인들과 경쟁을 펼침과 동시에 기성 선수들의 자리를 위협하면서 프로야구 수준 향상에 기여한다. 그리고 1993시즌에 입단한 이종범, 양준혁, 구대성, 김홍집, 김경환, 김경원 등은 역사에 남을 만한 족적을 남기면서 1995년 프로야구 최고의 전성기 중심에 서게 된다.

2000년대 초반 침체되어 있던 프로야구에 새로운 희망과 활력을 불어넣은 주역들은 2005년부터 2007년 사이에 프로에 데뷔한 오승환, 류현진, 김광현, 장원삼 등과 같은 새로운 뉴 페이스들이었다.

젊은 피 수혈이 절실하다

 지난 9일 오후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2017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서울라운드 한국 대 대만 경기. 오승환이 9회말 등판해 역투하고 있다.

지난 9일 오후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2017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서울라운드 한국 대 대만 경기. 오승환이 9회말 등판해 역투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하지만 요즘 프로야구는 좀처럼 새로운 젊은 피의 수혈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갈수록 외인 용병에 의존하는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머지 않아 외인 용병들을 귀화시켜 대표팀에 합류하려는 시도가 일어날지도 모른다. 그만큼 국내 선수들의 풀이 좁아지고 있다. 당장 내년 시즌부터는 FA 대박을 터뜨릴 수 있는 투수 자체가 없는 상황이 벌어질 전망이다.

대한민국 야구는 마치 점점 끓어 오르는 냄비 안에 개구리 신세와 같다고 볼 수 있다. 자신이 점점 죽어가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오만과 안일함에 젖어 있을지도 모른다. 이번 WBC에서 적나라하게 알게 된 사실은 동기부여가 확실하게 되어 있는 메이저리거들을 상대하기에 한국야구는 수준이 모자란다는 것이다. 어찌보면 이스라엘과 네덜란드와 한 조가 된 것이 한국야구에게는 다행이었을지 모른다.

행여라도 조 편성의 행운으로 인해 2라운드 나아가 준결승 그 이상까지 진출했을 경우 한국야구는 또 다른 요행의 기적으로 인해 더욱 겉잡을 수 없는 오만의 늪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대한민국 야구는 붕괴되고 있다. 프로와 아마가 손을 맞잡고 회생시킬 방안을 철저히 모색해야 할 것이다. 당장 2017시즌 프로야구 개막전의 열기가 식을 것이 우려된다. 부디 올 시즌에는 리그를 뒤흔들 수 있는 대형 신인의 등장을 기다려본다. WBC로 얻은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희망을 안겨줄 수 있는 새로운 피의 수혈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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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BC 프로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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