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나'했지만 '역시나'였다. 철저하게 대회를 준비한 네덜란드 앞에서 대한민국 대표팀은 속절없이 무너졌다.

지난 7일 서울 고척 스카이돔에서 열린 2017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 A조 예선 네덜란드와의 경기에서 대한민국 대표팀이 5-0 영봉패를 당했다. 이 날 패배로 대표팀은 9일 대만전 결과와 관계없이 사실상 2라운드 진출이 무산됐다. 네덜란드가 대만과 이스라엘에게 2연패를 당한다면 경우의 수를 따질 수도 있지만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다.

선발 우규민은 3.2이닝 3실점을 기록하면서 만족스러운 피칭을 보여주지 못했다. 더 뼈아팠던 것은 계투진의 분전에도 불구하고 타선에서 단 한 점도 뽑아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토록 기대했던 김태균과 이대호의 한방은 이 날에도 터지지 않았고 하위 타선도 침묵했다. 이스라엘전 패배의 여파는 생각보다 크게 느껴졌다.

2013년 WBC 당시에도 네덜란드는 대표팀에게 5-0 영봉패를 안겨줬다. 대표팀은 그 1패로 인해 조별 예선 탈락이라는 수모를 겪어야만 했다. 4년이 지난 2017년 3월 7일 네덜란드는 또 한 번 5-0이라는 스코어로 대표팀을 완전히 압도했다. 다시 말해 4년 전과 현재를 비교했을 때 크게 다를 바가 없다는 이야기다. 이는 꽤 심각한 문제이다.

인사하는 대표팀 2연패에 빠진 대표팀, 4년 전 예선 탈락의 악몽이 다시 떠오르고 있다.

▲ 인사하는 대표팀 2연패에 빠진 대표팀, 4년 전 예선 탈락의 악몽이 다시 떠오르고 있다. ⓒ 유준상


특정 선수 탓할 수 없는 패배...세밀함과 조직력은 없었다

빅 리거가 대거 합류한 네덜란드와의 경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됐다. 아니나 다를까 대표팀은 상대 선발 릭 밴덴헐크에게 경기 초반 꽁꽁 묶이며 기선제압에 실패했다. 반면 네덜란드는 1회말 주릭슨 프로파의 투런포로 포문을 열더니 3회말 안드렐톤 시몬스의 1타점 적시타로 우규민을 무너뜨렸다.

탄탄한 타선 못지않게 마운드도 빈 틈이 없었다. 릭 밴덴헐크가 4회초까지 마운드에 오르며 2사사구 3피안타 무실점을 기록했고 뒤이어 올라온 디에고마 마크웰 역시 2이닝 동안 무실점을 기록해 팀의 리드를 지켰다. 그나마 대표팀이 맞이한 8회초 1사 1루의 찬스에서는 김태균이 병살타를 치면서 승부의 추가 네덜란드 쪽으로 완전히 기울어졌다.

이스라엘전 패배의 여파가 이어진 것은 물론이고 이틀 동안 세밀함과 조직력의 싸움에서 한계를 드러냈다. 어느 특정 선수의 부진을 탓하기엔 전반적으로 대표팀이 짜임새 있는 야구를 하지 못했다. 전날과 마찬가지로 네덜란드전에서도 잔루(총 10개)가 많았고 2회말 김태군의 악송구 등 수비 조직력에서도 불안한 모습이 연출됐다.

김인식 감독은 '믿음의 야구'를 표방하면서도 당일 선수들의 컨디션과 몸상태에 따라 라인업을 조정했다. 하지만 불펜 자원으로 엔트리에 합류한 장시환이나 추신수의 대체 선수로 대표팀에 발탁된 박건우같은 경우 두 경기에서 볼 수 없었다. 28명으로 짜여진 엔트리를 효과적으로 이용하지 못했다. 선수 차출 과정부터 잡음이 많았고 실전에 돌입한 이후에도 그런 아쉬움은 이어졌다.

다른 팀들에 비해 해외파 차출에 어려움을 겪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만이 2연패의 이유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해외파가 나오지 못한 만큼 리그에서 내로라하는 선수들이 태극마크를 달았고 리그의 수준을 평가받을 수 있는 자리였다. 결국 이들은 이렇다 할 결과물을 만들어내지 못했고 뚜렷한 성과도 없었다. 지난해부터 우려됐던 것들이 하나둘씩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0이 가득한 전광판 1회초부터 9회초까지 무득점, 전광판에는 0이 가득했다. 오늘의 아픔을 잊어선 안 된다.

▲ 0이 가득한 전광판 1회초부터 9회초까지 무득점, 전광판에는 0이 가득했다. 오늘의 아픔을 잊어선 안 된다. ⓒ 유준상


4년 전 악몽의 재현, 한국 야구의 현주소를 보여주고 있다

이스라엘전과 네덜란드전 패배가 단순히 1패의 의미를 지닌 것이 아니다. 또한 이번 대회 탈락으로 끝낼 문제도 아니다. 대표팀이, 더 넓게 보면 한국 야구가 짊어져야 할 짐이다. 이 짐을 내려놓기 위한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거품'이 낀 FA 계약, 기대치에 못 미친 선수들의 부진은 현상에 불과할 뿐 궁극적인 원인이라고 할 순 없다.

오래 전부터 논의된 전임 감독제부터 엔트리 선발 과정, 동기부여 부족, WBC를 비롯한 국제대회 준비 미흡 등 풀어야 할 문제가 한 두 가지가 아니다. 2년 전 프리미어12에서 초대 우승의 주인공이 됐던 기억은 이제 지워야 할 때다. 이미 진작에 지웠어야 할 기억이다. 프리미어12 우승이 한국 야구의 현주소를 말해줄 수는 없다.

김인식 감독의 선수 기용에 대한 비난과 특정팀에 대한 비난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단지 이렇게 책임을 돌린다고 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쿠바, 호주와의 평가전을 통해 가능성을 보여줬던 선수들에게 아예 준비를 안 했다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냉정한 시선이 필요하다.

손짓을 한다고 해서 지나간 버스를 잡을 수 없다. 이제는 떠나간 버스를 왜 놓쳤는지에 대한 분석과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 이변이 없는 이상 대표팀의 2라운드 진출은 불가능하고 대표팀도 이를 잘 알고 있다. 당장 9일에 치러질 A조 예선 마지막 경기인 대만전을 만족스럽게 마무리하는 것이 급선무다. 만약 대만전에서도 패배할 경우 대표팀은 이번 대회를 A조 최하위로 마감하는데, 2021년에 열리는 WBC에선 본선행 티켓을 얻기 위해 지역 라운드를 거쳐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2006년 WBC 4강 신화를 시작으로 상승 곡선을 그린 한국 야구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 2009년 WBC 결승 진출,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금메달까지 탄탄대로를 걸어왔다. 그러나 그 때의 영광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채 발전 없는 제자리걸음이 반복되고 있다. 2017 WBC는 한국 야구에게 질문을 던졌고,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한 연구는 시작되어야만 한다. 이번 WBC에서 탈락하더라도 그게 끝이 아니라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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